「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한지영, 황수용 라이프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김보경 기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김보경(김): 「SPACE(공간)」 651호에 브레이스(2020)가 실렸었죠? 이렇게 릴레이 인터뷰에서 다시 뵙게 됐네요. 반갑습니다.
한지영(한): 반갑습니다. (웃음) 브레이스가 「SPACE」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나간 이후로 건축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들로부터 브레이스를 인상 깊게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저희의 첫 번째 민간 프로젝트거든요.
김: 첫 민간 프로젝트로 상을 받은 거네요. 어떤 계기로 개소 초기에 브레이스같이 큰 작업을 수주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황수용(황): 라이프건축사사무소(이하 라이프)의 첫 작업은 강서수도사업소(2017)라는 공공 작업이었어요. 설계공모에 당선되면 할 수 있는 공공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앞으로 민간 클라이언트와는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당시에 설계 플랫폼 사이트에서 클라이언트를 찾아보기도 하고, 공모 이외에 서울시에서 하는 다양한 연구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러다 간혹 규모 검토를 의뢰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처음 개소한 상황에서 당연히 쉽게 일을 맡기는 건축주가 없더라고요. 건축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했고 무엇보다 법규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저희가 그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던 건 대지의 특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40평밖에 되지 않는 땅인데, 용적률이 400%까지 올라갈 수 있다 보니 주차 대수를 꽤 많이 넣어야 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1층은 전부 주차장이 되어야 하고, 건물을 최대한 위로 올려봤자 가장 중요한 1층의 사업성이 나오지 않으니 가치가 크지는 않은 땅이었던 거죠. 그런데 저희가 법규 검토를 제대로 해보니 주차장 설치 제한구역에 들어가는 대지였고, 그래서 주차를 한 대만 설치해도 되는 조건이었어요. 이걸 설명했더니 처음엔 안 믿으시더라고요. (웃음) 이 사람들이 초짜니까 잘 모르는구나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그 사실을 확인한 이후로는 저희에게 프로젝트를 맡겨줬죠.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기회를 잡은 거죠.
한: 사실 저희만 잘해서 된 건 아니고, 정말 건축주분이 저희를 전폭적으로 믿어주셨어요. 구조설계를 두 번이나 했는데, 그런 비용을 다 부담하셨거든요. 여러모로 저가의 설계가 아니었어요. 공사의 난이도도 높았는데 시공사도 잘 만났고요. 그리고 특수 구조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요청을 드려서 구조기술사분과 함께 감리를 할 수 있었어요. 경력이 얼마 없을 때라 잘 모를 수도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관계자들을 잘 만나서 좋은 결과물을 같이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합리적인 구조로부터
김: 라이프의 작업 중 브레이스, 선유도 중공업 지역의 근생(2023), 폴디드 그라운드(2023) 등 브레이싱 구조가 외부에 드러난 작업들이 많아요. 브레이싱 구조 외에도 구조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요.
한: 브레이스가 수직이 아닌 사선의 기둥을 제안하는 데에서 출발했다면, 선유도 프로젝트는 외피가 건축물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내부에서 외피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죠. 폴디드 그라운드는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 발코니 공간을 통해 거대한 구조체의 연속성을 보여주려고 했고요. 사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구조 과목을 너무 싫어했어요. 정말 처참한 학점을 받은 기억도 있고요. (웃음) 실무를 하면서 구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학교에서 설계를 할 때는 적당히 기둥을 넣으면 됐지만, 실무에서는 정말 치열한 논의 끝에야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반대로 이런 구조는 어떨까요 하고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황: 학생 때도 구조가 독특한 건물을 좋아했던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라이프의 작업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그런 형식을 취하게 된 것에 가까워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최저 공사비로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구조가 전제돼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합리적인 구조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로 인해서 공사비가 굉장히 많이 올라가고, 결국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이 합리적인 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죠. 그 한 번의 변형 과정 속에서 독특한 구조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김: 구조뿐 아니라 특이한 형태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한: 사실 형태보다는 공간에 집중해서 설계하는 편이에요. 학부 때 아돌프 로스에 대해서 배우게 됐는데요. 자기 작품이 사진으로 찍히고, 그렇게 자신의 건축이 알려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해요. 당시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데, 건축학도라면 디지털 카메라를 꼭 가지고 다녀야 했던 때였거든요. 그런 때에 저는 아돌프 로스를 보고 나중에 내가 건축가가 되면 절대로 내 작품의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웃음) 그런 생각이 지금도 깔려 있다 보니 형태에 대한 열망보다는 공간에서의 경험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이 업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해요.

어드저스터블 스튜디오의 레고 모형

어드저스터블 스튜디오 옥상
다시 부암동으로
김: 설계도 해야 하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하고, 전시 공간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정말 바쁘실 것 같은데 이 다양한 일들을 다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한: 다들 그렇겠지만, 최근 설계 의뢰가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이에요. 원래 저희 어머니가 아이를 도맡아서 돌봐주셨어요. 그래서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난 여름에 미국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가셨거든요. 그래서 학교에서 데려오고, 학원에 보내고 이런 일들을 저희 둘이서 하고 있죠. 이번 여름방학은 정말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됐고요. 그렇게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당하는 방법을 물으셨는데, 그냥 하면 된다라는 답밖에 못 드리겠네요.
황: 건축가들은 대부분 일에 빠져 있잖아요. 저희도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건축을 하면서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최근에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에게 많이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특별히 큰 목표나 큰 행복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기 삶의 루틴 안에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삶이요. 그나마 요즘에 숨을 좀 돌리는 건 어떻게 보면 아이 덕분인 것 같아요. 아이 때문에라도 집에 가야 하니까요. 또 저희가 12년 함께 산 강아지 타미가 있어서, 바쁜 와중에 꼭 산책을 나가야 하거든요. 그럴 때 내가 숨을 쉬는구나 하고 느껴요.
김: 부암동에 신사옥 어드저스터블 스튜디오(2023)를 새로 지으며 따님이랑 타미랑 더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게 됐을 것 같아요.
한: 맞아요. 다 같이 출퇴근하는 일이 많아요. 딸은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여기서 숙제도 하고, 레고도 하고 같이 있다가 같이 집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요.
황: 회사 자체가 아이를 키우면서 생겨난 거다 보니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예요. 개소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아이 때문이었거든요. 아이가 한 살 때쯤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차라리 우리가 집 안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생각에 개소를 했죠. 그래서 첫 사무실이 부암동 집 안방이었어요. 건축주가 생긴 후로는 바로 옆 방을 얻어서 사무실로 썼고요.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그 집이 있어요. 이 골목 자체가 저희에게는 중요한 기억이 있는 곳이죠.
김: 이렇게 소중한 기억을 쌓게 된 부암동에 처음 이사를 오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황: 딱히 연고가 있진 않았어요. 설계사무소를 다니던 시절, 부암동에 주택을 지으려는 클라이언트가 있었어요. 사이트를 보러 부암동에 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도심에서 터널 하나만 지났는데 정말 다른 세상이 있구나 싶었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에는 송파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키우려면 방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 싶었어요. 타미를 위한 테라스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고요. 마침, 좋은 인상이 있던 부암동에 저희가 생각하는 조건에 들어맞는 집이 나와서 이사를 하게 됐죠. 사실 이 근처에 약국도 없고, 슈퍼도 없어서 불편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삶에 재미를 주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 부암동에 사옥을 새로 마련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저희가 연세대학교 동문, 홍익대학교 정문 등 사무실을 참 여러 군데로 옮겨 다녔는데요, 그동안의 바람을 여기에 가득 눌러 담았죠. 가장 먼저는 층과 층 사이에 구멍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거였어요. 의견을 빨리 나누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너무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한 층에서 다른 층을 볼 수 있게 설계했죠. 또 홍익대학교 인근에 사무실이 있을 때는 앞 건물이 아주 가까웠어요. 그래서 유리창이 많았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린 채 지내게 되더라고요. 여기는 터널이 있어 도로가 넓다 보니까 최대한 창을 많이 내 건물을 투명하게 만들고자 했어요. 최소한의 구조로만 이루어진 건물처럼 보이게 했죠.

선유도 프로젝트 ⓒHwang Sooyong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전시 공간
김: 사옥 1층에는 전시 공간인 ‘워킹 라이크 어 터틀(Walking Like a Turtle)’을 운영하고 계시죠. 이곳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황: 저희가 전시 공간인 1층에 아치를 활용했잖아요. 첫 번째로는 구조적인 생각을 형태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어요. 구조 시간에 모멘트를 그렸던 것 혹시 기억나나요? 그 모멘트의 형태가 아치 형태와 거의 똑같아요. 라멘조를 이용할 때 굳이 아치의 형태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한: 맞아요. 또 아치라는 게 옛날부터 대공간을 떠받치는 역할로, 문으로 쓰이곤 했기 때문에 ‘편히 지나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동네 주민들이 편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미에서 아치를 사용했어요.
김: 바라는 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나요?
황: 부암동은 동네가 좁다 보니 웬만하면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요. 심지어 부암동 주민센터에 가면 누구누구 아버지 오셨냐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런 지역에서 동네 주민에게 공간을 내주고자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 그런데 건축계에 계신 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고 가시는데 정작 동네 주민분들이나 부암동을 놀러온 분들은 여기에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을 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갤러리처럼 보이는 공간이 누구나 편안하게 오기에는 조금 힘든 용도일 수도 있겠다라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벤치를 만들었어요. 1층 보도 바닥에 깐 블록이 남아 있었는데, 그걸 쌓아서 만든 벤치예요. 그 이후로는 주민분들이 편하게 앉았다 가곤 해요.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고요. 그럴 때 되게 흐뭇하죠.
김: 앞으로 라이프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 혹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개인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렸던 아돌프 로스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미지 없이 건축을 설명하는 일을 지금 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욕망이 있죠. 궁극적으로는 건축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다 모여 건축을 오래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황: 최근에 워낙 경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우리가 건축 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뭐다라고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요. 그렇지만 답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전시를 하는 것도 그걸 찾으려는 시도 중 하나인 것 같고요. 전시를 열고 사람들을 많이 초대하면서 관계가 넓어지고, 그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진 것 같아요. 사무실을 잘 지속해나가기 위해서 서로 생각을 나눠야 하는구나를 1년 동안 많이 느꼈어요. 저도 결론적으로는 계속 밀도 있게 건축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여러 조건들로 인해서 우리 생각과는 좀 다른 것들을 해야 될 때도 있겠지만, 점점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들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지영, 황수용은 2025년 1월호에서 김정섭, 김태연(리툴스디자인사무소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황수용(왼쪽), 한지영(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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