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6호)
「SPACE(공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계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건축전 아카이브 연구’의 일환으로 『1996~2025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아카이브 북』(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5월에 출간될 이 책에는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출간에 앞서 이 인터뷰를 「SPACE」에 연속 기획으로 선공개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 건축 전시사의 초창기 서사를 재구성하고,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Venice Biennale Interview]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1 초대 커미셔너, 강석원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4 여섯 번째 커미셔너, 승효상
일시 2024년 12월 4일 14:00~16:00
장소 「SPACE(공간)」 회의실
인터뷰 강석원 전 서울 그룹가 대표, 손진 이손건축 공동대표 × 김정은 편집장
참석 여선희, 유지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방유경, 김보경 기자
기록 이소운 기자
자료수집 김보경, 방유경, 이소운 기자

2024년 12월 4일 「SPACE(공간)」 회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강석원(왼쪽)과 손진(오른쪽) ©Bang Yukyung
커미셔너 인터뷰를 시작하며
비엔날레 과잉의 시대. 전 세계에서 300여 개에 달하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이 시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30주년을 맞이한다. 고 김석철(전 아키반도시건축연구원 대표)과 프랑코 만쿠조(전 베니스 건축대학교 교수)의 공동설계로 1995년 건립된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관은 한국 건축계가 국제 무대와 만나는 독보적인 위상의 전시 플랫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건축계 내부에서도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다. 이는 베니스에서 열리는 전시가 오랫동안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과, 여전히 건축 전시의 상이 뚜렷하지 않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건축계 한편에서는 건축 비엔날레에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를 논의하자면, 지난 30년간 한국관과 한국관에서 펼쳐진 전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SPACE(공간)」는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맞이하여 1996년 개최된 베니스비엔날레 제6회 국제건축전부터 올해 개최되는 제19회 건축전까지 총 14회의 한국관 전시를 기록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일환에서 특히 자료가 부족한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를 인터뷰한다. 2015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맡고 건축계에서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체계로 바뀌었지만, 초창기에는 건축계에서 선정된 커미셔너에게 여러 역할이 혼재되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인터뷰는 단순히 인터뷰이의 육성을 듣는 독자적인 자리가 아니라, 관련 인물들의 존재와 흩어진 자료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의 조각을 맞춰가는 여정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터뷰 원고에는 우리가 자료를 입수하는 경위를 가급적 소상하게 밝혀 향후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또한 인터뷰이가 20~3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원고가 최종적으로 수록될 아카이브 북이 완성될 때까지 최대한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잡을 예정이다. 평소라면 생략했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들도 상당 부분 기록으로 남겨 독자들이 당시를 생생하게 추체험하고, 연구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자 한다.

1996 베니스비엔날레 제6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도록 표지 (자료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6회 건축전의 배경
베니스비엔날레는 베니스 시의회가 이탈리아 황제 부부의 은혼식을 기념하며 설립해 1895년부터 시작됐다. 1975년부터 미술전의 한 섹션으로 시작됐던 건축전은 1980년 제1회 건축전으로 독립해 개최되었다. 이후 건축전은 불규칙하게 개최된다(제2회 1983년, 제3회 1985년, 제4회 1988년, 제5회 1991년 개최). 한국관 설립 이후 첫 번째 건축전인 제6회 건축전은 본래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을 맞아 미술전과 함께 열릴 예정이었으나, 장소 문제로 건축 부문만 1년 연기되었다. 1996년 9월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개최된 제6회 건축전은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한스 홀라인이 총감독을 맡아 ‘미래를 감각하다-지진계가 된 건축가(Sensing the Future-The Architect as Seismograph)’라는 제목의 주제관 전시로 건축 대가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국제 무대에 처음 선보인 한국관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명동성당지구 재개발 설계경기에 출품된 작품 18점, 커미셔너 강석원과 18팀의 건축가가 참여했다. 글 김정은 편집장

김석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SPACE」 327호(1995년 1월호), 80~83, 85쪽.
첫 번째 커미셔너 선정 배경
김정은(김): 강석원 선생님은 1996 베니스비엔날레 제6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의 첫 번째 커미셔너로서 전시회를 이끄셨습니다. 당시 한국건축가협회장(1996~1998)을 지내기도 하셨지만,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국제건축사연맹(UIA) 활동 등 한국 건축계를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일을 다양하게 해오셨던 점이 커미셔너 선정에 주효했을 것 같습니다. 리비아 트리폴리 만국박람회(1962)나 파리 국제박람회(1966) 한국관 설치 등 국제적인 전시에 관여하셨던 이력도 그렇고요. 커미셔너 선정 과정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강석원(강): 당시가 한국관의 첫 번째 전시였기 때문에 모두에게 굉장히 생소한 일이었죠. 아마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건축가협회에 커미셔너 선정에 관해 의뢰했던 거 같아요.▼1
김: 1995년 김석철 선생님의 설계로 한국관이 건립되고 이후 미술계와 건축계가 베니스비엔날레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초창기 과정을 살펴보면 건축계보다는 미술계가 주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건축계에서는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에 대해 어떤 분위기였는지 궁금합니다.
강: 베니스에 우리나라의 파빌리온이 생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관심이 시작된 거 아니겠어요. 그전까지는 우리가 베니스비엔날레에 꼭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베니스비엔날레는 미술이나 연극, 영화 등으로 유명했지, 건축전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잘 몰랐거든.
손진(손): 그렇죠. 그런데 제 기억에는 1985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베니스비엔날레 공모에 출품한 팀이 있어요. 당시 꽤 화제가 됐어요. 김문덕 선생님 아시잖아요. 그분이 제 동기 홍건식과 함께 제3회 건축전 국제공모에 응모해서 입선했죠. 아마 그것 때문에 베니스비엔날레가 국내 ▼2 건축계에 알려지지 않았나 합니다. 해외에서 개최되는 국제공모에 순전히 국내에서 (정보를 알아서) 출품하고 당선되는 사건 자체가 없던 일이잖아요. 김수근 선생님의 퐁피두센터 국제설계공모 참여 정도가 있을까요? 저도 그 소식 때문에 이런 비엔날레가 있구나 했어요. ▼3
김: 당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건축전 자체도 지금만큼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던 시기인 것 같아요.
“1980년부터 시작하여 금년도 제6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국내에 아직 인식이 미약한 상태이지만, 세계현대건축의 흐름을 반영하고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국제건축전으로 대중에게 자리잡을 것이다. 특히 알도로씨가 주관하였던 제3회 전시회부터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어 당시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문화 운동의 정점을 이루면서 타 예술문화 부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_ 1996년 한국관 도록 중 ‘베니스 비엔날레의 개요’, 4쪽

베니스 시에 있는 베니스비엔날레 본부 건물, 카’ 주스티니안 입구 부분에 한국관 신축 프로젝트 전시회의 홍보 현수막을 붙여두었다. 120~123쪽 사진은 강석원이 김동진(홍익대학교 교수)에게 기증한 슬라이드 필름 가운데 일부다. ©Kang Sukwon
손: 지금도 그렇지만 베니스비엔날레는 상당히 오랫동안 미술전의 영향력이 컸죠. 그런데 1985년 제3회 건축전이 일종의 전환점이 되어서 하나의 국제 행사로 부상했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관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먼 나라 이야기였지. 한국관이 건립되면서 우리 일이 된 거죠. 한국관이 지어지기 전에 미술 비엔날레 위원장님을 아르바이트로 도운 적이 있었어요. 그때 보면 이탈리아관 한쪽 구석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 등과 함께 한국도 방 하나 얻어서 전시를 하는 정도였죠.
김: 손진 소장님은 강석원 선생님과 어떤 관계이신지 말씀 좀 해주세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과정이나 제6회 건축전 한국관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요?
손: 강석원 선생님은 제 홍익대학교 은사님이시지만, 제가 군대 제대하고 처음 선생님 강의를 들었을 때는 아마 기억하지 못 하실 거예요. 베니스비엔날레 때문에 선생님과 가까워졌죠. 제가 1987년에 베니스에 가서 1996년 귀국했어요. 한창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건립할 때 베니스에 있었죠. 그때 김석철 선생님이 베니스에 왔다 갔다 하실 때도 많이 도와드렸어요. 베니스에서 로컬 아키텍트였던 만쿠조 교수와 만나실 때도 제가 꼭 통역을 했고, 당시 문화체육부 사람들도 베니스에 자주 왔는데, 제가 도와드리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관 건립부터 관여하고 있었는데, 마침 강석원 선생님이 커미셔너로 오셨죠. 제가 강석원 선생님이 참여하시는 거의 모든 회의에 모시고 다니고, 회의 끝나면 술도 함께 마시곤 했죠. (웃음)
강: 손진 선생은 통역이라기보다도 일원이었지.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 있었으니까.
김: 한국관 도록에 보면 전문위원으로 김경수(당시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문덕(당시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교수), 최욱(당시 K&C 건축 대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이 실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요?
강: 의견이나 도움을 주셨죠. 다만 베니스에 함께 가는 일은, 당시 우리가 경제적으로 지금처럼 여유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돕지는 못했고. 오히려 우리 손 선생이 많이 도와줬고. 기억에 남는 거는 베니스가 굉장히 습하기 때문에 전시장에 뭔가 붙여놓고 이튿날 가보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 그것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김: 2015년부터 커미셔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맡고, 건축계에서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1994~1996년 당시만 해도 건축전은 첫 번째 참여였기 때문에 전시 추진체계나 커미셔너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았으리라 예상됩니다. 한국관 도록에는 “한국의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는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추천한 커미셔너의 주관하에 이루어지고 문화체육부의 협조와 한국 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으로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미술전 역시 한국관이 개관하기 전에 불과 3회 참여했고, 1995년부터 한국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등 그 역사가 짧았습니다. 그러나 전시 경험이 많은 미술계와 건축계를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고, 한국 건축계에서 국제 전시에서 커미셔너 역할을 하는 일도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시 커미셔너로서 어떤 역할을 요청받으셨는지요? 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강: 커미셔너를 쉽게 표현하면, 대사나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여러 가지 이슈를 선전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회의도 많이 하고. 처음이었기 때문에, 한국관이 생긴 후 첫 건축 전시회니까, 한국 건축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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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11월 25일, 한국건축가협회(회장 윤승중)는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당시 협회 부회장이었던 강석원을 협회에서 커미셔너로 선임하였으니 승인을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다.
2 1985년 제3회 건축전은 알도 로시가 담당해 베니스 주변의 10개 대지를 대상으로 ‘베니스 계획안’이라는 표제하에 국제설계공모를 열어 500여 작품이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성의 개수계획에 김문덕+서병건+홍건식 팀이 참가하여 입선했다. 한국건축가협회, ‘협회소식: 강석원 부회장,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선정’, 「건축가」 309호(1995년 1월호)
3 퐁피두센터로 불리는 보부르센터 설계공모는 1971년 2월 전 세계 모든 건축가에게 완전히 열려 있는 국제공모로 진행됐다. 당시 이 공모에 참여한 한국 건축가로는 김수근, 강석원, 김종성 등이 있다. 박정현, ‘공간과 공간의 공간, 보부르센터’, 「SPACE(공간)」 639호(2021년 2월호), 126~131쪽.
(하략)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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