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1월호 (통권 684호)
농(農)의 풍경: 파란곳간
① 인터뷰 조병수 BCHO 파트너스 대표 × 김정은 편집장
② 인터뷰 김서연 파란곳간 대표 × 김정은 편집장
③ 인터뷰 김미주 BCHO 파트너스 부팀장 × 방유경 기자
④ 인터뷰 고소미 소미당 대표 × 방유경 기자

파란곳간의 스테이 전경 ©FRITZ HANSEN KOREA

스테이 뒤로 조성된 언덕 ©FRITZ HANSEN KOREA
① 인터뷰 조병수 BCHO 파트너스 대표 × 김정은 편집장
김: 다시 파란곳간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농부였던 건축주의 아버지가 손수 지은 창고 건물 두 동을 고치고, 스테이를 신축한 프로젝트예요. 길에서 보면 카페로 쓰이는 메탈동(파란동)과 스테이(스테이짚, 짚라운지)는 원형을 보존한 곳간동 뒤쪽으로 감춰져 있죠. 그래서인지 건축가가 고친 건물보다는 농촌의 흔한 창고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건축주인 김서연 대표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해 농사와 새로운 일들을 시작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죠. 그래서 어릴 적 놀이터이자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창고가 소중하면서도 전과는 다른 생활을 만들어가는 데 바탕이 되어야 했어요. 이 창고를 처음 보았을 때 인상은 어땠나요?
조: 저는 그런 투박하고 허름하게 보이는 건물들이 좋아요. 특히 방앗간으로 썼던 곳간동에서 건축주의 부친이 매우 꼼꼼하고 부지런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연장통도 벽에다 빌트인으로 만드셨더라고요. 뚜껑을 열면 연장이 걸려 있는 거죠. 양철판에 못질을 해서 문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게 굉장히 좋아 보여서 모두 보존하고 싶었죠. 그리고 굴뚝이 있잖아요. 플라스틱으로 대충 만들어서 먼지를 빼내던 파이프도 쉽게 철거해 없앨 수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는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대로 둬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저는 앞으로 시골 건물이나 농촌 풍경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지금 사람들은 시골 건물에 가치를 두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시골에서는 빈집이 있는 땅보다 깨끗하게 비워진 땅의 지가가 더 높아요. 잘 고치면 보석같이 될 텐데 말이죠.
김: 그러고 보니 예전에 달동네를 직접 답사하고 조사해서 만드셨던 책도 생각이 나네요.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의 구조와 풍경에 애착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조: 아버지 고향이 상주 낙동면이었는데 어려서 그런 시골 동네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달동네나 우리나라 마을을 보면 공간의 구조가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레 위계를 가지고 만들어지잖아요. 파란곳간 주변 마을도 보면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형성돼서 재미있더라고요. 부안은 바다로 이어지는 평평한 매립지라는 특성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지형학적 위계나 (양동마을, 하회마을처럼) 주민들의 신분 차이에 따른 위계 없이 정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동네예요.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생기고, 그 옆으로 건물이 들어서는 식이죠. 이곳의 옛집에 사용된 흙도 달라요. 갯벌 진흙이라 반질반질하고 푸석하게 부서지지 않아요. 아직 연구하고 발견할 것이 많은데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주변에서 보면 농촌의 건물들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고,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들어선 모습을 자주 보잖아요. 시골의 풍경과 콘텍스트, 그러니까 그 땅과 관계하는 사람들, 거기서 생산된 농산물이건 무엇이든, 그런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는지가 중요한데 말이죠. 건축가들이 그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는다면 누가 중요하게 생각하겠어요. 건물을 부수면서 발생되는 환경파괴도 문제지만, 우리의 고향 마을과 풍경 자체가 다 사라지는 거예요.

파란동 내부에 설치된 고소미의 ‘IN THE WIND’(2005) ©FRITZ HANSEN KOREA

마당에서 바라본 파란동과 짚라운지 ©FRITZ HANSEN KOREA
김: 곳간동의 슬레이트 지붕을 그대로 남긴 것이 흥미로워요. 리노베이션을 할 때 노후된 지붕을 새로운 재료로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지붕과 벽의 낡은 석면 슬레이트를 유지한 것이 독특해 보이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초기 신축 작업인 어유지동산마을(2000)이나 옆집을 바라보는 ㄷ자 양철지붕집(2002)에서도 갈바륨 골강판을 지붕재로 쓰셨어요. 그때부터 수수한 농경 시설물이 만드는 풍경에 대한 동경이나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가요?
조: 유지하겠다는 마음에 앞서, 일단 그게 멋있잖아요. 저는 이상하게 대학 시절부터 헌 건물이 있으면 좋아 보였어요. 반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들은 두드러기가 날 것 같고요. 그래서 자꾸 땅속으로 들어가는 건가 싶어요. (웃음)
김: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인식 때문에 철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대지 않으면 괜찮다고 지붕과 벽의 석면 슬레이트를 남기자고 주장하셨어요.
조: 석면에 관해서는 미국에 아주 긴 역사가 있거든요. 제가 보즈먼(Bozeman)의 역사적인 지역에 리모델링했던 주택(2002~2003)도 외부 마감재가 석면이에요. 1950~1960년대 미국에서는 돌처럼 생긴 타일을 만들 때 석면을 넣으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많이 썼어요. 석면은 가루가 호흡기를 통해 직접 폐로 들어갔을 때 위험한 것이지, 손으로 만지거나 물로 씻겨 내려가거나 한다고 해서 위험하지는 않아요. 물론 벗겨지지 않도록 코팅을 잘해야 하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철거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지만, 평소에는 문제 삼지 않아요. 그래서 파란곳간에서도 우레탄으로 두껍게 코팅을 하면 보존해도 되겠다고 판단을 했던 거죠. 그리고 벽 아랫부분에 흙이 튀어서 시꺼멓게 나이를 먹은 모습이 보기 좋아서 더더욱 남기고 싶었어요.

변경 전 곳간 입구(현 곳간동) ©Blue Barn

변경 전 창고(현 파란동) ©Blue Barn
김: 새삼 재료에 대한 정확하고 폭넓은 이해가 오래된 건물 본연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물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경관에 대한 애정도 포함해서요. 한편, 파란곳간은 어둑한 곳간동에서 환한 메탈동으로, 또 마당 너머 스테이로 이어지는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여기서는 어떤 시퀀스를 의도하셨나요?
조: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나요? 안 멋있는데. (웃음) 사실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대신 있는 거 하나하나에 충실했죠. 물론 메탈동과 스테이 사이의 마당은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메탈동에는 본래 컬러 강판이 붙어 있었는데, 녹이 많이 슬어서 마감재 대신 메탈 스크린을 달아서 빛이 떨어지게 했어요. 메탈동의 폴드업 창을 열어보셨나요?
김: 네. 창을 올리고 내려간 바닥에 앉으니, 마당의 흙과 돌담, 스테이 뒤편의 황금색 들판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라고요. 마침 하늘은 파랗고, 머리 위에서는 고소미 작가가 설치한 천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조: 카페로 쓰이는 메탈동의 천장도 높고, 익스펜디드 메탈이 가볍고 밝은 분위기를 만드니, 이렇게 쫙 열리도록 해서 마당과 하나가 되어 소통하게 한 거죠. 시골집에 가면 마당을 지나 안채나 건넌방으로 들어가잖아요. 여기서도 방(스테이)으로 들어가는데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 조경을 맡은 전용성 교수에게 돌담을 쌓아 달라고 하고, 옆으로는 대나무를 심어서 일종의 스크린을 만들어서 심리적으로는 분리되도록 하자는 생각이었죠. 스테이는 완전히 새로운 기능이니까. 날씨가 쌀쌀해지면, 마당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불을 피우는 걸 상상했어요. 어린 시절,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두고 둘러앉아 밥을 먹곤 했는데, 어떻게 그보다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겠어요. 예전에는 아이들을 마당에 다 풀어놨었거든. 거기서 지지고 볶으면서 지네들끼리 크는 거지. 그런 마당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불을 피우면 좁은 공간에 모르는 사람들하고 있어도 덜 어색할 테니까.

기존 곳간의 구조를 살린 곳간동 내부 ©FRITZ HANSEN KOREA

기존 곳간의 구조를 살린 곳간동 내부 ©FRITZ HANSEN KOREA
김: 유학 시절 작업부터 잘린 단면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거나, 땅을 파내고 내려가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많이 쓰고 계시죠. 카페와 마당에서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깊이는 어떻게 결정된 건가요? 조금 내려갔을 뿐인데,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조: 땅에서 책상 높이(60~70cm) 정도 내려가 있는 건 매직인 것 같아요. 부산의 F1963(2016)에서는 덧붙여 지어진 건물들 중앙을 파내서 중정을 만들었어요. 설계할 당시 그 중정 부분의 땅이 좀 꺼져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봤어요. 몇백 명의 사람들이 땅 밑에 모여서 와인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면서 떠들면 얼마나 멋질까. (웃음) 그 사람들이 땅을 물씬 느낄 수 있게 흙을 밟고 있는 거죠. 건물과 동일한 높이의 마당이라면 내부 공간과 한 덩어리로 느껴질 수 있지만 내려가게 되면 다른 공간이 될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F1963에서도 처음에는 70~80cm쯤 내리려고 했는데, 건축주가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를 해서 45cm 정도 내려가는 중정으로 타협했죠. 쓰긴 편해요. 반면 거제도 바닷가에 있는 지평집(2018)에서는 카페테리아의 바닥 레벨을 70cm쯤 낮췄어요. 대개 바닷가 건물은 땅을 높게 올려서 바다 조망을 확보하려 하는데 반대로 낮춘 거죠. 그럼 앉았을 때 땅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지저분한 것들은 안 보이면서 바다가 보이니 차분해지죠. 제가 그런 공간감을 좋아해서 그렇게 만든 건데, 방문객들도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김: 김서연 대표에게 들으니, 마을 주민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새것 같지 않은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다가, 파란곳간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으니까 놀란 거죠.
조: 현재 이 마을에는 빈 채로 방치된 집들이 많아요. 하나씩 철거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마을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죠. 지금 파란곳간 인근의 빈집을 한 채 고치고 있는데, 벽지를 뜯어낸 모습을 보셨나요? 흙벽을 드러내고, 새로운 지붕을 얹어 단열을 보완하고 입면을 보존하기 위해 창을 외부에 달 생각이에요. 두고 보세요. 정말 멋진 공간이 될 거예요. (웃음) 우리가 얼마 전 경주의 오래된 집을 고치는 걸 도왔어요. 처음에 벽돌로 지은 크고 번듯한 집과 다 쓰러져가는 작은 시골집 두 채를 놓고, 벽돌집은 리노베이션하고 쓰러져가는 집은 철거하겠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제가 반대로 큰 집을 허물고 다 쓰러져가는 작은 집을 보존하자고 했어요. 시공자에게 열심히 설명하면서 우리가 고쳐주다시피 작업했죠. 나중에 동네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아, 집을 이렇게도 고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은 거죠. 사람들이 그런 허름한 집들이 좋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는데, 우리가 이런 사례를 많이 알려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스테이 뒤편 언덕과 논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 산책로는 철거하면서 발생한 콘크리트를 사용해 포장했다. ©Bang Yukyung
② 인터뷰 김서연 파란곳간 대표 × 김정은
김정은: 파란곳간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서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농부셨는데, 8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삼남매가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일을 이어받게 됐어요. 급작스런 변화에 혼란을 겪다, 귀농 2년 차에 ‘아버지의 곳간’을 ‘나의 곳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됐죠. 아버지가 손수 지었던 창고와 곳간의 파란색을 따서 파란곳간이라고 이름을 지었고요. 아버지가 남겨주신 것들을 키워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처음엔 농촌 생활이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문화 공간을 만들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어요. 4년 동안 논에 꽃을 심기도 하고, 생화로 돌상을 꾸며주고 사진을 촬영하는 청년 활동도 1년간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이곳에 얼마나 오는지 실험하는 계기가 됐죠. 이 공간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자료를 찾다가 조병수 대표님을 알게 됐어요. 사무소에 바로 전화할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편지를 썼어요. 나는 어떤 농업을 하고 있는지,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적었죠.

곳간동 입구. 기존 곳간의 철문을 재사용해 미닫이문으로 달았다. ©FRITZ HANSEN KOREA

파란곳간 답사 모습. 왼쪽부터 김정은, 김미주, 고소미, 김서연. ©Bang Yukyung
김정은: 공간에 대해 요구하셨던 건 없었나요?
김서연: 옛날 곳간처럼 ‘드러나지 않는 건물’을 지어 달라는 게 첫 번째 요청이었어요. 시골에 갑자기 새로운 게 들어서면 거부감부터 들잖아요. 일단 마을과 어우러져야 잔잔하게 흡수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저는 벼농사 짓는 사람이니까, 논 풍경과 쌀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어요. 동시에 마을 전체가 변화될 모습도 함께 그리고 싶었고요. 주민들과 긴 협의를 거쳐 파란곳간 주변의 어지러운 전깃줄을 정리하고 마을 길도 조성했어요. 인근의 공터와 빈집도 스테이로 고치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동네에 재미있는 공간이 하나둘 늘어나 사람들이 관심 갖고 올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거든요. 일본의 나오시마처럼 말이죠.

스테이짚 내부에서 본 볏짚 벽의 모습. 유리로 마감되어 있다. ©FRITZ HANSEN KOREA
③ 인터뷰 김미주 BCHO 파트너스 부팀장 × 방유경
방유경: 파란동의 기둥은 이중으로 겹쳐 있어요. 상부 트러스의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것, 에어컨이 올라간 모습도 특이하고요.
김미주: 기존 골조에 유리를 설치하기 위해 똑같은 규격의 철제 기둥을 추가로 대서 보강해야 했어요. 트러스는 처음부터 비대칭이었고요. 짐작컨대 지붕 하부에 빗물이 떨어지지 않게 거터를 설치하려고 트러스 한쪽을 길게 뺀 것 같아요. 그런 흔적도 그대로 살렸어요. 에어컨을 설치해야 해서 박공 하부의 반 정도 면적에 평평하게 판을 대서 설비 공간으로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조병수 교수님이 이렇게 놔두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다고 하셔서 별도로 마감하지 않고 노출하게 됐어요. 완전한 노출도, 숨긴 것도 아닌 중간 상태죠.

곳간동 외부의 석면 슬레이트는 분진이 날리지 않도록 여러 차례 코팅 처리를 해서 그대로 사용했다. ©Kim Jeoungeun
방유경: 스테이의 볏짚 벽은 어떤 기능이 있는 건가요?
김미주: 벼농사를 짓는 곳이니 교수님이 볏짚도 활용해보자고 하셨어요. 물론 단열 성능도 있고요. 볏집을 연구하는 단체가 있는데 단열 성능에 대한 시험 성적서도 갖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볏짚을 그대로 노출하려고 했는데 파손이나 청소 등 유지 관리 문제가 있어서 바깥은 폴리카보네이트로, 내부는 유리로 마감했어요. 대신 환기가 되도록 통기층을 안팎으로 뚫었고요. 이론적으로는 건조된 볏짚을 소독한 뒤 사용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다고 해요. 햇빛을 받으면 빨갛게 색이 변하는데 교체도 가능하고요.

파란동에 설치된 고소미의 작품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 ©Bang Yukyung
④ 인터뷰 고소미 소미당 대표 × 방유경
방유경: 파란곳간에 여러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고소미: 파란곳간의 브랜딩을 맡은 업체를 통해 스테이에 들어갈 커튼, 침구 등 패브릭을 먼저 의뢰받았어요. 조병수 대표님이 설계한 공간이라고 해서 너무 기뻤죠. 작업 철학이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제가 늘 쓰는 색이 흑색, 쪽색, 먹색, 그리고 종이 고유의 흰색이에요. 네 가지 색에 대해 철학적으로 정리하거나 논문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항상 ‘조병수’라는 이름이 나오는 거예요. 대표님 책을 읽고 나서 결이 비슷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파란동 가운데에 걸린 커튼은 제가 제안해서 설치했어요. 대학 졸업작품으로 소장하고 있던 건데, 이 공간과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작품을 구상할 때는 바람에 흔들리는 게 중요한 개념이었어요. 손수 베틀로 짰고요. 원래 섬유를 짤 때 가로세로로 균일하게 짜야 하는데, 제가 한국화 전공이라 선에 강약을 다르게 주고 싶더라고요. 보시면 선이 고르지 않고, 천이 겹쳐졌을 때 물결 같은 무늬도 보여요.

스테이짚 내부. 커튼은 고소미가 한지실로 제작했다. ©Bang Yukyung

곳간동에 설치된 고소미의 ‘DOOR’(2024) ©FRITZ HANSEN KOREA
방유경: 곳간동에 설치된 집 모양 작품도 흥미로워요.
고소미: 파란곳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아카이브 공간에 설치한 작업이에요. 우리 전통 기법 중에 한지를 두들겨서 평평하게 만드는 기법(도침)이 있는데 리넨에 한지 죽을 붙인 다음 두드려서 섬유 사이에 한지가 끼도록 한 거예요. 땅의 힘, 흙의 힘을 표현하고 싶어서 흙으로 천연 염색을 했고요. 원단 자체도 빳빳해서 힘이 있어요. 천의 장점이 유연한 거고 단점은 자립하기가 힘든 거잖아요. 우리 전통 삼베를 짤 때 풀을 먹이면서 짜는데, 그 기법처럼 풀을 먹여서 형태를 유지시킨 거예요. 스테이짚의 한 곳 커튼은 한지 실로 3개월 동안 코바늘뜨기를 했어요. 살짝 바닥에 끌리는 길이인데 섬유의 수축, 팽창률 같은 걸 계산해서 작업한 거예요. 한지 섬유는 습한 여름에는 늘어났다가 겨울이 되면 바닥에서 2cm 정도 올라갈 만큼 줄어요. 기후마다 달라서 제주도는 좀 더 차이가 나고 부안 같은 내륙은 또 다르고요.

‘IN THE WIND’를 설명하는 고소미 ©Bang Yukyung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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