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1월호 (통권 684호)
인터뷰 조병수 BCHO 파트너스 대표 × 김정은 편집장
김정은(김): 미국에는 잘 다녀오셨나요? 매년 여름 몬태나에 가시잖아요.
조병수(조): 올해는 대학교 은사님의 퇴직 기념 전시가 있어 몬태나에 다녀왔어요. 사모님과 함께 교수님의 스케치를 모아 책도 만들었어요. 몬태나 주립대학교 건축과가 중간에 없어질 뻔했는데, 은사님 덕분에 폐지되지 않았거든요. 은사님이 자주 쓰시던 모자에 ‘School of Architecure, MSU’라고 글자를 입힌 사진도 기념 책자에 넣었어요. 사모님이 아주 좋아하셨죠. (웃음)
김: 저는 며칠 전 김미주 부팀장과 함께 부안의 파란곳간(2024)에 다녀왔어요.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못 알아볼 뻔했어요. 차로 지나쳐온 주변 창고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BCHO 파트너스의 재생건축을 다루는 이번 프레임을 상징하는 장면이었어요. 『새로 숨쉬는 공간: 조병수의 재생건축 도시재생』(2020, 열화당)을 내기도 하셨는데, ‘재생건축’이란 표현이 좀 낯설게 다가와요. 건축가들은 대개 리노베이션이나 리모델링이란 단어를 많이 쓰잖아요. 그래서 대표님이 생각하는 ‘재생’ 그리고 ‘재생건축’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쓰는 말의 미묘한 의미 차이가 결국 작업 방향의 차이로도 드러나는 것 같고요.
조: 그런가요? 크게 의식한 건 아닌데, 느낌상 ‘리노베이션’ 하면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이 생각나요. 리노베이션이 뭘 새롭게 만드는 데 한정된다면 재생은 포괄적인 의미예요. 예를 들어 집을 수리(repair)만 해도 아우를 수 있거든요. 유럽에서는 ‘적응적 재사용(adapted reuse)’이란 표현을 많이 쓰죠. 새로운 기능이나 요구에 적응하고 맞추는 작업을 ‘재생’이라고 표현하면, 그 안에서 다양한 건축 언어가 가능하다고 본 거죠. 그런데 따져보면 ‘생(生)’이 다시 태어난 게 ‘재생(再生)’이잖아요. 원래 것에서 그리 새로울 것 없이 다시 태어난 게 재생이라면, 그 가운데서도 정말 새로운 기능으로 창의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사실 ‘새생(新生)’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태어난 게 아니고 새로 태어난 ‘생’이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생건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의미로 따지면 ‘새생건축’이라고 생각해요.
김: 혁신처럼 완전히 달라지기보다는 기존에 알던 것이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새로움이 더해진 건축이란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조: 건축은 (그냥) ‘만들기’라고 생각해요.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에 새로운 의도를 넣어서 개입(intervention)하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형태나 공간, 움직임 등에서 엄청난 혁신을 보여주었죠. 하지만 저는 혁신은 줄이면서도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북동에 사무실을 꾸릴 때부터 직원들한테 반혁신적인 건축을 하자고 했어요. 누가 설계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편안하고 좋은 그런 건축을 하자고 이야기했었죠.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다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갔었는데요. 두 곳이 건축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하버드대학교에 다닐 때는 교수들이 ‘너의 아이디어가 무엇이냐’, ‘새로운 게 무엇이냐’를 따졌죠. 그런데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갔더니, 투시도(context perspective)를 시추에이션 드로잉(situation drawing)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주변 상황이 어떠한지 그 상황을 보여주고, 나의 것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 잘 맞는 답을 찾는 게 중요했어요. 당시 마리오 캄피(Mario Campi) 교수가 학장이었는데, 그분이 계속 시추에이션 플랜(situation plan)이란 이야기를 하면서 ‘정확한(precise)’이란 단어를 많이 썼어요. 미국에서는 굉장히 개념적(conceptual)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절대 쓰지 않는 표현이었어요. 유럽은 벽돌 건물과 목조 건물 사이에 어떤 건물이 들어갈 때, 기존 건물과 다르면서도 정확하게 맞아들어가는, 상황에 맞는 건축을 추구하는 거죠.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다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독일에 1년 정도 머물렀을 때예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독일 가정집 뒤편에 있는 좋은 정원이 인상적이었어요. 건축도 상당히 좋았고,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öhm, 1920~ 2021)처럼 좋은 건축가도 많이 있었죠. 어떤 건물이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좋은 공간이 많은데, 누구의 작품인지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혁신이나 개입 등의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이유로 리노베이션이란 말도 잘 안 썼던 것 같아요.
김: 평소 자주 말씀하시는 ‘땅으로의 건축’이나 정제되지 않고 즉흥적인 ‘막의 미’를 재생건축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 사실 건축에서 ‘막의 미’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 뭐 어떻게 보면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죠. 일반적으로 건축에서는 도면을 정확하게 그리고, 도면대로 잘 짓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막사발이나 민화 같은 데서 보이는 소박하고, 즉흥적이고, 시원시원한 미학이 재생건축에서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재생의 과정 자체가 미리 계획한 대로 흘러가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뜯어놓고 보면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재료가 드러나는 대로 그때그때 결정하는 즉흥적인 측면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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