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1월호 (통권 684호)

프로젝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06. 9.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계획’ 발표, 사업비 총 243억 원 산정
2006. 9.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2006. 11. 1차 투자심사(총액 1,593억 원)
2007. 2. 국제 지명설계공모 실시
2007. 8.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의 ‘환유의 풍경’ 당선
2007. 9. 2차 투자심사(총액 3,752억 원), 변경 사유: 건립 규모 변경
2007. 10. 3차 투자심사(총액 4,050억 원), 변경 사유: 운영 준비비 추가
2007. 12. ~ 2008. 7. 동대문운동장 철거
2008. 1. ~ 2009. 7. 문화재 발굴 조사 중 서울성곽, 하도감터 등 유물 1천여 점 출토, 문화재 이전 복원 결정
2008. 10.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자하 하디드와 패트릭 슈마허 전〉 개최
2008. 12. 기본설계, 실시설계 완료
2009. 3. 서울디자인재단 출범
2009. 4.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착공식 및 홍보관 개관, 자하 하디드의 첫 동대문 방문
2009. 10.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부분 개장
2010. 3. 기초공사 완료
2010. 9. 4차 투자심사(총액 4,962억 원), 변경 사유: 건립 규모 변경
2011. 3. 철골공사 완료
2011. 3. ~ 2012. 6. 외장패널 공사 및 지하 연결광장 공사
2012. 1. ~ 2013. 7. 내외부 마감공사
2011. 10. 5차 투자심사(총액 5,094억 원), 변경 사유: 공기 연장, 출구 변경 등에 따른 공사비, 감리비 증가
2013. 11. DDP 완공
2014. 3. DDP 개장
2023 ~ DDP 활용 방안 재정립 추진
2023. 2.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발표, DDP 일대 뷰티·패션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

인터뷰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 윤예림 기자
윤예림(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조성사업이 시작된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사회・도시・건축적 맥락에서 존재해왔다. 개관 10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DDP는 풀지 못한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조성 당시와 현재, 기획-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본 DDP의 문제와 한계는 무엇일까?
박은선(박): DDP의 문제는 민주주의가 결여된 도시계획이 가져온 사회적 비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DDP의 개발이 청계천, 을지로를 잇는 서울시 주도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이었다는 맥락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자하 하디드를 포스트모던 건축가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술사로 따지면 자하 하디드는 구축주의처럼 점선면의 구성 요소를 극단으로 표현하는 모더니스트로 봐야 한다.▼1 자하 하디드는 공간을 하나의 조각으로 생각하지 사회적 산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디자이너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DDP의 최종 당선안 ‘환유의 풍경’에 대해 “건물과 공원이 함께 지형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지형을 이용하고자 했던 제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2 서울시가 건축을 도시의 역사나 맥락보다는 조각으로 생각하는 모더니스트 자하 하디드를 건축가로 선정했다는 사실은, 건축가 고 이종호가 이야기했듯이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 시장의 기억과 역사를 남기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3 DDP는 원래 당시 서울시장 오세훈이 기획한 ‘디자인 서울’의 주요 행사인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를 개최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2014년에야 완공되면서 900억 원 규모의 사업이 4,840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주변 경관과의 부조화, 역사성이 결여된 건축물이라고 비난을 받아왔다.▼4
그런데 과연 자하 하디드를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4,800억 원이 넘는 세금이 투여되는 사업을, 중요한 건축물을 철거하는 사업을 왜 개인의 정치적 의견에 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서울 시민들은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시민과 민주적 합의가 없는 도시계획, 도시 역사의 다양성을 무시한 개발은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공공 건축물이라면 응당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야 하고 그들의 역사가 존중되어야 하지만 DDP는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데도,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도 실패했다.
동대문운동장은 철거 당시, 2003년 청계천 개발로 강제 이주한 수많은 상인들을 다시 한번 무리하게 이주시키고, 최초 근대 스포츠 시설에 대한 무리한 철거로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었다.▼5 DDP가 혈세를 이용한 민간기업 기술 테스트 베드 사업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고▼6 철거 과정에서 하도감터를 발견했지만▼7 엉터리로 복원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강력히 저항하며 리모델링 기반 재생을 제안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DDP는 300억 원가량의 예산으로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운영하고 있으나 건설 비용에 비해 활용도가 낮다. 현재 방문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개장 당시 세운 연 550만 명 방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도시 역사와 동대문운동장 주변 시장의 활기가 사라진 점이다. 동대문 상권이 망가진 점에 대해서는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들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철거 과정 전후로 주변 상권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나 기록이 없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설계자가 지명된 이후 5개월 만에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을 누가 이용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근처에서 장사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거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공사를 하는 동안 통행이 가장 많은 제일평화시장 앞을 막으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 이후 동대문 상권은 함께 몰락해갔다. 완공 10년이 넘은 지금, 동대문의 활기는 처참하리만큼 사라졌다. 동대문 시장의 죽음이 단순히 인터넷 의류시장의 성장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나는 서울 성북구 출생이다. 2000년대 초 대학생 시절 늘 동대문에서 옷을 사 입었고,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 아르바이트를 3년 정도 했기 때문에 그 동네는 눈 감고 다녀도 될 정도로 익숙했다. 동대문운동장 공사 직전인 2007년까지 제일평화시장, 뉴존 등 도매시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했고, 동대문운동장 앞에 들어선 노점상에는 옷뿐만 아니라 순대볶음 등을 파는 음식점이 많아 일본 관광객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였다.
서울시가 건축물을 지을 때 간과한 점은 DDP 사용자에서 주변 상인들이나, 공장 사람들, 주변 학생 등 원주민들을 ‘시민’에서 제외한 점이다. 디자인 전시나 특이한 건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원주민이 사용할 수 없는, 원주민을 환영하지 않는 건물을 공공 건물이라 할 수 있을까?
윤: DDP 조성 당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서울의 맥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처럼 정체성을 스스로 거부하는 도시에서, 정체성을 요구하다니 아이러니”이며 애초에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공공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8 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분명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은 개방적 형태를 지녔으나 그것이 개방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3라는 오류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DDP는 충분히 개방적인가? 아니라면, 무엇이 DDP의 고립을 낳는가?
박: 원래 동대문운동장 지역 주요 출입구 동선은 제일평화시장과 밀리오레로 이어지는 14번 출구였다. 소매시장과 도매시장 이용객의 동선이 달랐는데, 자하 하디드 사무실 측이 그러한 맥락을 전달받았을 리가 없다. 현재의 고립은 건물 입구를 지하철 사거리 쪽으로 만들면서 50년 넘게 자리 잡은 동선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은 처참한 결과다. DDP의 비극은 지명설계공모 당시 시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며, 지역에 대한 분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디자인을 의뢰한 서울시 책임이 크다. 그러나 비민주적 토양을 자책한다 하더라도, 자하 하디드의 ‘비맥락’적 건축 철학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지역의 사회적, 지리적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자하 하디드의 노력이 부재했던 것은 사실이다.▼8
현재 DDP와 가장 비슷하게 진행된 건축물은 2010년 아시안게임에 맞추어 개장한 중국 광저우 대극장이다. 한 건축가의 건물이지만, 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라 건축물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서울의 DDP가 엉망으로 귀결된 것이 자하 하디드의 탓인지, 서울시의 탓인지, 서울 시민의 탓인지 가려내고 싶은 마음에 2013년 광저우 대극장으로 향했다. 광저우 대극장은 2010년에 완공됐지만 이미 10년도 넘은 건물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관계자를 인터뷰한 결과 원래 오페라하우스로 건설되었지만, 오페라를 소비할 수 있는 층이 부족하고 운영비가 많이 들어 현재는 외주를 주어 극장으로 운영하며 주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었다.▼8
반면 지역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독일의 파에노 과학센터(2005)는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철학과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지역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공간일 뿐 아니라 어른들의 눈에도 전시나 공간구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편 로마의 국립21세기미술관(MAXXI, 2009)은 다소 외진 곳에 있으나 전시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하며, 전시의 질이 높아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윤: DDP가 향후 시민에게 열린 문화 공간이 되기 위한 제언을 한다면?
박: DDP는 현재 다수 대기업 프랜차이즈에게 상가 임대를 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자체 전시 프로그램 중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은 매우 적었다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개장 10년을 맞이하는 만큼 전시 프로그램 및 공간 사용 방법의 다양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부동산 도시이고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 게임의 참여자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인 도시 역사 철거,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의 소멸, 도심 상권 파괴 등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동대문운동장 상설 전시에는 노점상의 역사, 의류 공장이나 시장의 역사 등 중요한 역사들은 삭제되어 있다. 도시는 복잡한 가치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한다면 도시의 활력을 이해할 수가 없다.
좋은 공공 건축물의 기준은 디자인도 있겠지만 을지로-동대문의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제되는 이상 DDP는 현재의 폐쇄성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다양성이란 단순히 인종, 성별의 다양성이 아니라 삶의 모습과 역사, 건축물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도시는 단순히 보기 좋은 도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중요한 도시계획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시민을 단순히 ‘티켓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이’라는 좁은 모델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 상인들로 넓히고 그동안 삭제되었던 도시의 역사를 주목할 때 DDP의 공공성은 부활할 것이라 본다.
1. Lebbeus Woods, ‘Drawn into Space: Zaha Hadid’, Architectural Design 78 (2008), pp. 28~35.
2. “세계적 건축가 자하하디드<오세훈>”,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hsehoon4u/120067623363, 2024년 10월 9일 접속.
3. 박은선, 『동대문운동장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 리슨투더시티, 2014.
4. 도재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문화 ‘보물단지’ 될까 아니면 4840억짜리 ‘애물단지’ 될까’, 「경향신문」, 2014년 1월 14일.
5. 조수빈, ‘각계각층 100인,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선언’, 참세상, 2007년 8월 20일.
6. 백민석, ‘DDP(동대문역사문화공원)는 Pilot Project인가?’,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2012년 3월 16일.
7. 정성호,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서울성곽 발견’, KBS뉴스, 2008년 9월 10일.
8. 박은선, ‘DDP, 도시 비정체성과 비공공성의 표상’, 「문화과학」 79(2014), 233~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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