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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그린 곡선, 계절이 구상한 정원: 회복의 시간

사진
스튜디오 리빌드(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스튜디오 리빌드
진행
김혜린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3월호 (통권 688호) 

 

하늘에서 바라본 회복의 시간 

 

남쪽에서 본 회복의 시간 ©Kyungsub Shin

 

 

인터뷰 이창엽 한양대학교 교수, 이진 스튜디오 리빌드 공동대표 × 김혜린 기자 

 

 

김혜린: ‘회복의 시간’은 복잡한 구조물들과 식재가 겹겹이 층을 형성하고, 사람들은 좁은 통로 사이를 누비면서 정원을 경험하는 구조다. 외부에서 봤을 때와 내부에 들어갔을 때의 감각도 확연히 다르다. 

이창엽, 이진: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하는 정원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상호작용하게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외부에서 정원을 관망하기보다, 정원 내 동선을 걷고 중심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깊은 자연의 내부로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 회복의 시간에서 사람들은 겹겹의 곡선 사이를 거닐며 의도적으로 낮게 배치된 식물들과 스치게 된다. 이를 위해 일부러 통로를 좁게 만들었다. 가을철 산책하는 사람들이 씨송이가 달린 식물과 스치면서 울소재 옷감에 씨앗이 묻어간다면, 인간이 식물 종자를 옮기며 생태의 일부로서 역할을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했다. 식재 면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을 끌어내는 다년생 초화를 밀도 높게 사용했다. 정밀하게 관리된 정원이지만 야생적인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가능한 한 개화기가 길고 가을 단풍과 겨울 씨송이 구조가 아름다운 숙근초 사용에 공을 들였다. 이로 인해 계절감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수준 높은 공공장소와 그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취향이나 애착을 공유하며 정서적인 교류를 하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은 그런 공공 공간이 많지 않아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복의 시간에서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더 많이 발생하게 만들려고 했다. 정원 가운데 놓인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 역시 거리감이나 방향성을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만들어서 사람들 사이에 우연한 교류가 발생하도록 했다.

 

김혜린: 100% 자유 곡선으로 구성된 비정형의 공간이다. 디자인에 대한 구상은 어떤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이창엽: 의도적으로 특정한 비정형 형태를 만들기보다, 주변의 제약과 공간 내 존재하는 요소들이 얽히고, 연결되며 형성한 매트릭스 속에서 독특한 조건과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형태는 이를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서울시는 뚝섬한강공원의 맥락에 맞춰 시민들이 정서적 회복을 할 수 있는 약 80평 규모의 공간을 요구했고, 우리는 나아가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관계 맺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 연결을 촉진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다만 감각을 과하게 자극하는 사이트 주변의 번잡함과 부지 내 6~8m 간격으로 무질서하게 심긴 나무들이 설계에 제약이 되었다. 기존의 나무들을 베거나 이식하지 않으면서도 지상의 혼잡함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했다. 나무들은 빛을 차단하지만 동시에 장소성을 부여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에 기존의 나무들을 활용해 시각적인 번잡함을 완화하는 동시에 장소성을 형성하고, 형태를 파생시키는 장치로 삼았다. 또 자연 지형이 배수를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땅을 아래로 파서 라운지 구조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겹겹의 구조를 통해, 꽃 내부에서 수분을 돕는 벌의 공간감을 인간의 스케일에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360도로 둘러싸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식재들을 3개 층으로 구성하고, 외곽으로 갈수록 높아지도록 배치했다. 

 

구조물을 선조립하는 모습 

 

구조물 현장 조립 모습 

 

©Kyungsub Shin 

 

김혜린: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통해 복잡한 구조물을 구현하고, 시공의 용이성을 높였다. 그 과정을 말해 달라.

이창엽: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형태화하고 이를 구성하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과 예산, 다양한 제약 안에서 설계하고 시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기존 건축의 전통적인 생산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고, 표준화된 디자인과 유사한 예산 내에서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 회복의 시간 또한 제한된 공공 디자인 예산 안에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우선 초기 아이디어가 정립된 후, 컴퓨터 내에서 파라메트릭 트윈 모델을 선제작해 곡률이나 화단의 최소 폭 등 필수 조건을 충족하는지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부분의 제작 과정은 공장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약 400m 길이의 다섯 개 레이어 구조물을 ‘파트’, ‘유닛’, ‘메가 프레임’으로 분류했다. 곡선 형태는 재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선형으로 최적화해 절단했으며, 약 700여 개 비스포크 파트에는 개별적인 파트명과 그룹이 부여돼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했다. 또 각 파트는 트럭으로 운송 가능한 단위로 선조립해 현장 작업을 최소화했다. 실제 시공에서는 복잡한 구조물을 이케아 가구처럼 쉽게 조립할 수 있었는데, 다섯 개의 링을 가장 안쪽 링부터 하루에 하나씩 조립했다. 외부로 갈수록 링의 크기가 커지고 조립해야 할 파트의 수가 증가했지만, 작업자들의 숙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계획된 일정 내에 완공할 수 있었다.

 

김혜린: 철제이지만 재료 자체의 물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재료적 측면에서는 어떤 것을 고려했나? 

이창엽: 원래는 시간에 따라 에이징(aging)되는 재료를 선호하지만, 공공 프로젝트의 특성상 예산의 제약이 컸다. 또 유지·관리가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먼지가 쌓이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철제 구조물에는 포 페인팅(faux painting) 전문회사인 샤뜨와 협업하여 스페셜 페인팅을 진행했고, 테이블과 의자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발색기법과 수작업으로 표면처리를 했다. 정원의 식재들과 명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은은하게 서로 공명하며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잘 나왔는데, 재료 측면에서 다음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Kyungsub Shin

 

김혜린: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자연주의 정원에서 식재 선택은 특히 중요한 지점이었을 것 같다.

이진: 우리나라 공원이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수관목 중심 정원이 아닌, 다년생 초화류만으로 구성한 실험적인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주변에서는 수직적 요소가 부족해 입체감이 떨어질 것에 대한 우려와, 식물들이 휴면기에 들어가는 겨울 정원 풍경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더 많은 다년생 초화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공공 공간에서 많이 사용되는 일년초들은 대부분 봄이나 가을에 꽃을 보기 위해 심어졌다가 개화기가 끝나면 버려진다. 여기에 들어가는 물, 에너지, 비료, 끝없는 플라스틱 포트들은 시든 식물과 함께 폐기물이 된다. 이에 비해 다년생 초화는 기본적으로 야생화에 가깝기 때문에 인공적인 관수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관목과 잔디만 있는 정원에 비해서는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실험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이런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린: 식재에서 자생종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

이진: 회복의 시간의 경우에는 내 욕심만큼 자생종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우선 정원용 자생식물에 대한 공개된 연구 데이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자생식물 중에서도 외래종과 함께 심었을 때, 밀리지 않고 세를 유지하며 잘 자라는 것이어야만 정원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자생 숙근초 중에서도 농장에서 판매하는 품종들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Kyungsub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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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국내에서는 ‘정원가’라는 표현이 낯설다. 스스로 조경가와 정원가 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진: 개인적으로는 조경가보다는 정원가 혹은 ‘정원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우선 내가 만든 공간이 사용자와 가능한 한 가깝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또 단순히 정원을 설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꾸어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싶어서다. 한국 조경계에서 자주 간과되곤 하는 다양한 초화류의 사용을 통해 이를 이루어나가고 싶다. 사실 실제 업무 영역에서는 명확한 경계를 찾기가 어렵고, 한편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김혜린: 건축가와 정원가 사이의 논의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이창엽: 함께 사는 부부이다 보니, 아무래도 의견 공유가 용이했다. 디자인 역시 처음부터 함께 발전시켜 나갔다. 이진의 경우 정원가의 관점에서 배수나, 식물이 흙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폭과 깊이, 인간의 동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여했다. 나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형태화하고, 구조와 재료, 배수 등의 제약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협업했다. 다만 두 영역을 구분하기보다는 서로 융화해 건축과 정원의 관계성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우리가 가진 공공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질적 경험을 조금이나마 향상시키고 싶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Kyungsub Shin

 

김혜린: 회복의 시간과 스튜디오 리빌드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 같은가?

이진: 학사와 석사 과정에서 공공 정책을 전공했고, 첫 커리어 역시 공공 정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좋은 공공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책 집행의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면서 시민과 가장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한국에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정원은 물리적으로 벽이 있는 건축물과 달리 절대적인 경계가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들이 훨씬 자유롭게 공간을 향유하고 감각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적 확장과 더불어 정원 내 동식물에 대한 존중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계 중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 회복의 시간 프로젝트가 그런 정원의 좋은 예가 되길 바란다.  

이창엽: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공간, 건축, 조경 등 세분화되어 있는 산업의 경계를 흐리고 싶었다. 사회 시스템 속의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의 장소를 만들어 그 안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의미 있는 연결을 장려하는 공간과 경험을 설계하고 싶었다. 또 회복의 시간을 통해 발전시킨 구조와 시스템은 확장될 수 있는 범위가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통로로 조성되어 있는 부분이 동선이 아닌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디자인은 뚝섬한강공원의 공간적 개별성을 반영했기 때문에, 부지에 따라 당연히 형태와 공간감은 달라질 거다. 하지만 더 큰 스케일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인간, 비인간 생명체들이 모여서 긴밀하게 연결되고 사용될 수 있는 하나의 입체적 생태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앞으로는 보다 생태적이고 전체론적 사고의 관점에서 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이 생태 구성의 일부로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되었을 때 사람들 또한 더 큰 소속감과 애착을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건축물의 수명 또한 길어질 것이라 믿는다.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들 속에서 이런 움직임들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국에 실현된 작업들이 많지 않아서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스튜디오 이름인 ‘리빌드’처럼 기존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지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증명해나가려고 한다.​ 

 

 Typical section detail

 

Overall process diagram from design to fabrication 

월간 「SPACE(공간)」 688호(2025년 03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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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엽
이창엽은 한양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에서 학사를,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건축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건축사(ARB, RIBA)자격을 취득했다. 2011년부터 10여 년간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와 프론트에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들 진행했으며, 현재는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조교수로서 스튜디오 리빌드와 협업하며 교육 및 연구와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이진
이진은 스튜디오 리빌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정원 디자이너이다. 공공 정책을 전공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를, 런던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의 식물 전문가 과정인 ‘식물의 성장과 발달 원리 과정’ 자격을 이수했다. 2022년부터 (주)천지식물원에서 피트 아우돌프의 한국 프로젝트 전반에 함께 참여하며 자연주의 정원에 특화된 실무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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