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미네랄 하우스(2024) ⓒKim Hyoukjoon
욕망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도시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악을 쓰듯 과장된 몸짓을 취하는 건축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욕망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주위의 배경으로 사라지는 건축이 있다. 아주 드물게는 자연으로 열려 자연의 기의 변화를 한껏 받아들이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풍화되며 자연 속 배경으로 소멸되는 경지를 드러내는 건축이 존재한다. 정재헌(경희대학교 교수)의 건축은 ‘드문’ 후자의 사례로, 자연으로 열려 회유(回遊)하는 한국적 정감의 추상 공간으로 실험되며 진화해왔다.
정재헌은 프랑스에서 앙리 시리아니, 미셸 카강을 사사하고 형태주의적 성격이 강한 작업 경향으로 시작했다. 이후 그의 공간과 재료 표현은 존재 이유를 근원적으로 탐구하며 방의 복합체를 구성했던 루이스 칸의 느낌이 공존하다가, 이제 자연의 기의 변화와 함께 자연으로 동화되어 소멸하는 제프리 바와의 건축이 연상되는 경지, 즉 한국적 정감으로 자연에 스며들어 소멸되는 궁극의 건축으로 변화되고 있다.
정재헌은 세심하게 조율된 비례를 통해 몸의 감각으로 건축의 미세한 스케일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며 자연과의 관계에서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여백의 장소를 계획해왔다. 다시 말해, 기하학적 절제미를 통해 간결함의 건축을 구성하고 자연과 내외부 공간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여백이 담긴 건축’을 보여준다. 그는 경사지의 흐름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중정 마당과 자연의 외기를 접합하고, 움직임의 과정을 통해 인식의 종합을 추구한다. 땅의 배치를 중시하는 태도와 경사지의 미세한 변화를 잘 담는 것은 한국 건축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는 한국적 정취의 정(靜)적인 ‘미장센’을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진입 및 동선과 연계된 개폐장치를 자연으로 확장되도록 계획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소통하고 체험하도록 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정(靜)적인 것과 동(動)적인 것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정적으로 보이나 공간의 신체적 경험과 내부의 운동감을 중시하는 현상학적 경험이 강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동시대의 보편적인 건축적 해법을 추구하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녹이며 자연과의 연계를 훌륭하게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호시담 카페(2018)
호시담 카페
호시담 카페(2018)는 기암괴석이 수려한 추월산 자락에 위치하는데 가까이는 도마산이, 멀리는 무등산이 굽이치는 산세들의 실루엣을 자연 전경으로 삼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원초적인 맞배지붕의 형태와 전경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고목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마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잡다한 것을 배제하고 건축의 강골(强骨)만이 남아 있는 형국이다. 선비의 결기가 느껴지는 이미지의 건축물과 마당은 단아하면서도, 자연에 열려 방문객을 포근하게 맞이한다. 그는 진입의 시퀀스를 중시한다. 한때 건축 사진작가를 꿈꾸었을 정도로 프레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정재헌은 각 장면에서 시퀀스의 경험을 세심하게 계획하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진입 영역에는 주변 자연 요소들과 연계되면서 시냇가의 돌멩이들이 깔린 수로가 벽의 하부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데, 투시도적으로 마당 안쪽에서부터 보이는 물의 흐름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면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의 작업에는 거의 빼놓지 않고 수공간이 등장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물의 속성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인데, 그의 공간은 역설적으로 물의 일렁임이 고요하고 정적인 추상에 잔잔한 파장을 만들면서 촉각적, 청각적 감각을 배가시킨다. 이러한 수공간은 다양한 바닥재와 조경 요소들을 밟으며 이동하는 과정에 자리해 촉각, 청각, 후각 등 오감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다. 특히, 그의 계획 공간 중 화장실 내외부 영역에서는 재료 사용의 감각과 주변으로 확장시키거나 끌어들이는 자연적 요소들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드러난다. 화장실에서는 재료와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 등 몸으로 느끼는 감각의 경험이 많이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카페 공간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지형에 순응하는 기단들과 이를 연결하는 동선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전통 건축 특유의 영역성이 동시대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와 자연이 합치되어야 하는 천인합일의 정신은 한국 건축의 주요한 관심사이자 가치이다. 선조들은 모형을 만들듯 외부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 것인가 보다는 반대로, 내부로부터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의 기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끼고 자연의 변화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가치를 중시해왔다. 그의 건축적 구성은 이러한 전통 건축의 태도를 충실하게 따른다. 기단과 가벽은 적절하게 산지 구릉에 순응하여 배치된 영역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있지만, 고건축의 담장이 둘러싸는 영역과 같이 완전히 막혀 있지 않고 일정 부분 열려 있는 상태로 연계되고 순환된다. 건축적 시퀀스를 따라 카페 내부로 진입하게 되면 외부로 열린 투명한 공간이 마치 동굴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벽으로 둘러싸인 솔리드 공간으로 이어져 놀라게 된다. 방문자는 뒷면 추월산의 산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이어지는 경사진 천장의 공간을 경험하고, 그 반대편은 거친 가벽의 질감과 함께 상부로 열린 외기의 회색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하부에는 계곡의 시냇물과 돌들을 연상하게 하는 수공간이 뚫려 물이 흐르면서 감각을 자극한다. 한 켠에는 얇은 개구부가 뚫려 처음 진입 영역과 연계되며 순환된다. 충분히 정중동(靜中動)의 공간, 회유의 공간이라 칭할 만하다.
선조들은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자연에 순응하는 장방형의 집을 살포시 앉히고 주변으로 개방하여 소우주를 영조(營造)하며 가꾸어왔다. 호시담 카페는 자연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가치를 중시한다. 기단을 세우고 가벽과 주변 건축물의 높이를 현장에서 세밀하게 조정하여 앉아있을 때 주변의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들을 건축적 선으로 잘라내어 버리고, 온전하게 하늘과 주변 산세와 자연 요소의 이미지들을 불러들여 한국적 정감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갈색’의 가치와 이미지를 중시한다.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은 잎이 풍성한 시기의 조경을 상상하며 작업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산하는 늦가을 갈색의 시기와 동면에 들어가는 정적인 시기가 길기 때문에 오히려 후자의 이미지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조경의 질감으로서 갈색은 한국인의 내면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의 건축은 해 질 녘의 순간에 가장 아름답다. 호시담 카페는 기단과 가벽, 그리고 선 너머 주변 수목이나 멀리 보이는 산세의 실루엣, 갈색 억새풀의 이미지들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모노크롬 회화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그것은 기운생동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단색 톤의 차분한 한국적 추상의 이미지다. 그는 자연의 수려한 산세에 하나의 선을 그으면서 벽을 세우고 영역을 구분하지만, 그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연을 끌어들인다.
또 경계의 모서리 부분이 주변 자연에 흡수되며 뭉개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디테일을 구성한다. 그 공간은 추상적이지만 동적이고 정감이 흘러 넘친다. 따뜻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을 품고 있는 그의 공간에서 놀고 있는 천진스러운 아이들의 뒷모습과 웃음소리가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Kim Hyoukjoon



ⓒKim Hyoukjoon

호시담 카페(2018). 스테이 호시담(2015, 「SPACE(공간)」 578호 참고) 옆에 자리한 카페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열린 ㄹ자의 노출콘크리트 벽체 위 골강판으로 된 박공지붕이 올려져 있다. 두꺼운 벽체는 땅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지붕은 그 위에 가볍게 떠 있는 형상이다.
미네랄 하우스
미네랄 하우스(2024)는 하천변에 넓게 펼쳐진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정재헌은 농지의 그리드 체계에 순응하는 동시에 자연을 담고 끌어들이는 프레임으로 구성하면서 완벽하게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별하게 호명(呼名)되지 않는 실(室)들, 자신의 특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의 공간들이 하나의 장(field)에서 각 영역의 자기장을 형성하며 자신의 위치를 점유하며 진동하고 있다. 각 영역은 구분되지만, 사방으로 열려 있고 순환된다. 각 영역은 적당하게 닫혀 있지만 하부에 틈이 트여 있어서 주변을 거니는 방문자의 동적 움직임과 기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또 전면창을 열어놓게 되면 물리적, 시각적으로 관통하는 실제 자연의 기의 흐름과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다. 정재헌의 수공간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같이 대상화되어 주변과는 유리된 무균질의 추상적 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그의 수공간은 하천과 같은 실제 자연에서 생태 수공간, 그리고 완전 추상의 수공간의 단계를 거치며 그러데이션과 같이 자연에 스며든다. 주변에는 하천이라는 실제 자연이 있고, 건축의 경계면에는 자신이 직접 영조하며 심어놓은 수중식물과 소금쟁이가 노니는 생태 수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방문객은 중간적 성격의 생태 수공간을 거친후, 내부의 좀 더 차분한 추상적 수공간으로 이끌리게 된다. 이 건축은 하천변에 위치하면서 점진적 필터로서의 수공간, 그리고 자연과 동화되는 조경과 수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건축 공간과 프레임들은 향후, 시간의 변화와 함께 프로그램과 다양한 행위와 이벤트들이 창발되며 기능을 담고 다시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동시대의 후기구조주의적 가치와 연계된다. 진입부의 갈색 억새풀과 둔덕, 그리고 수공간은 자연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내부로 끌어들이고 햇빛과 바람을 품으며 고요한 한국적 정감의 이미지를 감지하도록 이끈다. 미네랄 하우스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건축 공간을 향유하는 프레임으로서 자연에 순응하며, 근사하게 나이를 먹으며 풍화될 것이다.


ⓒKim Hyoukjoon



미네랄 하우스(2024). 건물과 담장은 주변 논밭의 질서에 따라 구획되었다. 외부 공간은 수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나뉘고, 사이사이의 공간들은 중심과 주변부의 구별 없이 연결되어 있다.
운중동 카페
운중동 카페(2023)는 앞서 살펴본 두 작품의 자연과의 연계와는 달리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위치한다. 이 계획은 도시의 외적 변수, 즉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콘텍스트와 고속도로, 그리고 주변의 대규모 시설 사이에서 한국성의 가치와 하늘로 열리며 자연의 미묘한 기의 변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한 작품이다. 방문객은 전면의 벽체 하부가 뚫려 시각적으로 연계되는 수공간을 거치며 진입하게 된다. 이는 계곡의 시냇가를 연상시키며 자연적 요소를 느끼게 만드는 시각적 시퀀스로 이어진다. 전체 구성은 우선, 대지 전체 영역의 외부 경계선에 벽을 두르며 잡다한 외적 요소들과 소음에서 보호되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후, 상부에 올라탄 매스의 윤곽선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보를 설치하고 카페 공간 앞뒤에 상부로 뚫린 가벽을 설치함으로써 내부 공간에서 외기의 자연으로 확장되며 자연의 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하늘로 열린 영역이 구획된다. 코어와 계단부, 그리고 외부 담장 벽의 꼭지점에 살포시 얹혀진 거대한 보는 상부 매스와 허(虛)의 공간을 형성하는 대담하고 스마트한 구조적 해결책이다. 하늘로 열린 공간은 날씨가 좋은 시기에는 전면 창이 열리면서 반외부 공간으로 변화된다. 공간의 흐름은 2층으로, 또 전체로 확장되고 연결되면서 회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연속되며 전체가 순환된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전체 하부 벽은 도시의 콘텍스트에 순응하듯 대지의 경계를 따라 구획되어 있고 매스는 무심히 떠 있어서 일견 닫힌 공간으로 느껴지지만,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외부에서 느꼈던 닫힌 매스감이 이를 받치고 있는 벽의 꼭지점을 중심으로 충격적으로 반전되면서 하늘로 열려 있다. 벽을 가로질러 연결되는 수공간의 물소리와 함께 상부로 열린 태허의 우주를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닫힌 벽과 솔리드 매스가 점으로, 면으로 수직적으로 관통되면서 반전의 외기 공간을 형성한다. 태허의 우주와 자연의 기와 물소리의 청각적 감각이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양이 근대성의 폐해를 자체적으로 보완하며 동쪽으로 이동하고, 동양은 서양의 근대성이 강제로 이식되고 난 이후 자체적인 해석과 적용을 거쳐 이제, 중앙부에서 경쟁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건축에서는 근대성을 녹여내고 자체 문명권의 강점을 중심으로 하여 각자의 추상을 발전시키고 극대화하며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재헌은 프랑스에서 보편적 근대성을 흡수하고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다가 자연의 생성과 흐름의 가치를 담으며 배경으로 사라지는 소멸의 아이덴티티를 성취하고 있다. 세계적 보편성이 확보된 가운데, 서구적 가치관이 갖지 못하는 부분, 즉 대상화된 건축이 아니라 자연으로 열려 회유하며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하나가 되며 배경으로 소멸되는 건축적 가치를 탁월하게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공간에서 차를 한 모금 입가에 머금고 있노라면, 산들바람에 버들잎을 물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수에 빠져드는 목동의 감정이 이입된다. 매우 간결한 추상의 공간인데 신기하게도 자연의 한 가운데 혹은 계곡 속에 머무는 듯 한가한 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정재헌의 추상은 그가 언급하듯이 한옥의 뒤안에서 놀던 유년의 기억, 소를 끌고 뒷산에 올라 꼴을 먹이면서 뛰어놀던 기억, 산들바람을 맞으며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누워 휴식을 취하는 유년 시절 목동의 감성이 풍부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공간이 차가운 관념적 추상 공간이나 자본의 색으로 정제된 냉정한 추상이 아닌, 따뜻한 한국적 정감의 추상 공간을 성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Kim Hyoukjoon



운중동 카페(2023). 지면층은 억새와 들풀로 가까운 풍경을 만들고, 2층은 사각 프레임으로 어수선한 도시 풍경을 한 발 물러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최상층은 하늘로 활짝 열려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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