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SPACE(공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계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건축전 아카이브 연구’의 일환으로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1996~2025』를 준비하고 있다. 2025년 5월에 출간될 이 책에는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출간에 앞서 이 인터뷰를 「SPACE」에 연속 기획으로 선공개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 건축 전시사의 초창기 서사를 재구성하고,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Venice Biennale Interview]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1 초대 커미셔너, 강석원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4 여섯 번째 커미셔너, 승효상
일시 2024년 12월 26일 14:00~16:00
장소 이로재건축사사무소 사무실
인터뷰 승효상 이로재건축사사무소 대표 × 방유경 기자
참석 여선희, 유지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소운 기자
기록 이소운 기자
자료수집 김보경 기자
2024년 12월 26일 이로재건축사사무소에서 인터뷰 중인 승효상 Seung H-Sang, being interviewed in the IROJE architects & planners on the 26th of December, 2024 ©Bang Yukyung
2008 베니스비엔날레 제11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승효상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하 건축전) 한국관의 여섯 번째 커미셔너는 승효상이다. 공간건축 김수근 문하에서 15년을 보낸 그는 1989년 독립해 자신의 사무소(이로재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한 뒤 4.3그룹 활동, 서울건축학교 설립 참여 등 건축가로서 다양한 행보를 이어간 바 있다. 1996년 ‘빈자의 미학’을 주제로 출판, 전시 등을 병행하던 승효상은 2002년, 건축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 잡게 된다. 수상을 기념해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서 소개된 수백당(1992), 수졸당(1999) 등 주택 작업을 비롯해, 도시 건축의 공공성을 ‘어반 보이드’ 개념으로 구체화한 웰콤시티(2000)와 이를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한 파주출판도시 프로젝트는 이후 그가 자신의 건축을 소개하는 대표작이 되었다. 한편, 200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에 나선 그의 활약은 다양한 건축전시와 더불어 베니스비엔날레 무대로도 이어진다. 그는 2000년 주제전 초대 작가, 2002년 중국관과 일본관의 초대 작가에 이어 2008년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됐다. 지난 건축전 경험을 바탕으로 승효상은 도큐멘터와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전시팀을 구성한 뒤,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파주출판도시의 조성 과정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관점의 건축전시를 시도했다. 이는 총감독 아론 베츠키가 던진 건축전의 주제, ‘Out There: Architecture Beyond Building(저 너머: 건물을 넘어선 건축)’에 대한 응답이었다. 지난 12월 진행된 「SPACE(공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작가와 커미셔너로 참여했던 건축전 경험을 구체적으로 되짚으며 베니스비엔날레가 자신의 건축 철학에 미친 영향과 함께, 세계에 한국을 내보이는 국제적인 네트워크 무대로서 한국관의 역할에 대해 전망했다.
2008 베니스비엔날레 제11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포스터 Image courtesy of Pai Hyungmin / ©Hong Dongwon
베니스비엔날레, 2000년과 2002년의 경험
방유경: 2008년 2월 13일에 그해 한국관의 건축전 커미셔너로 선정되셨습니다. 최종 선정 소식을 접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승효상: 2008년이면 16년 전이니 오래됐네요.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다만 처음 선정됐던 분은 민현식 선생이라고 들었어요. 민 선생이 고사해서 나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웃음) 직전에 정기용, 조성룡 선생이 커미셔너를 했잖아요. 그때 막연히 ‘내가 한번 하겠구나’ 생각은 했었죠.
방유경: 2008년 이전에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 작가로 참여하신 경험이 있으셨잖아요. 2000년 주제전, 2002년 일본관 전시 두 번이죠?
승효상: 맞아요. 2000년 총감독이 마시밀리아노 푹사스였는데, 그가 내건 주제가 정말 근사했어요. “Less Aesthetics, More Ethics(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 데이비드 하비의 언설을 인용한 이 문구를 제가 요즘도 자주 인용하는데, 이전까지 미학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서양 건축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학적 관념을 버리고 윤리적 관념으로 나가자고 외치는 것에 큰 자극을 받았죠. 사실 그전까지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게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내용으로 전시를 하는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처음 참여할 때는, 주제였던 ‘윤리적 건축’에 맞춰 일반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파주출판도시 같은 공공성을 띤 작업을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 그걸 제출했어요. 작품 제출 방법도 몰라서 고지식한 방법(도면, 모형, 패널)으로 출품했죠. 전시 장소로 꽤 좋은 곳을 배정해줬는데 사람들의 눈길을 별로 끌지 못했어요. (웃음) 그때 주제가 워낙 흥미로워서 출품한 작품들을 다 봤는데,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자기 작업을 보여주더라고요. ‘윤리적 건축’을 고민한 작품을 발견하지 못해서 대단히 실망했어요. 그때 ‘참여 작가들이 주제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구나’ 하는 걸 느꼈죠. 당시 한국관은 김석철 선생이 커미셔너였는데 전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래서 김석철 선생한테 싫은 소리도 좀 했었는데,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렇게 (주제와 상관없이 전시)해서는 안 되겠다고 그때부터 생각했었죠. 그래도 2000년 주제는 후에 내가 건축가로 활동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셈이에요.
방유경: 2002년 일본관 작가로 참여하실 때는 어떤 과정을 거쳐 비엔날레를 준비하셨나요?
승효상: 당시 이소자키 아라타 선생이 일본관 커미셔너였는데 ‘Asian Characters: The Creation of Architectural Languages in Regions where KANJI are Used(아시아의 성격: 한자문화권에서의 건축언어 창조)’를 주제로 전시하면서 나를 작가로 추천했어요. 아시아의 특성을 ‘한자문화권’으로 규정하고, 그 안에 속하는 지역의 건축을 보여준다는 기획이었죠.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네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를 선정한 뒤,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같이 사전 토론을 한 번 했어요. 한자문화권이 주제니까 한자가 중요하잖아요? 나는 작업 중 한자와 관련된 수졸당과 수백당을 가지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을 전시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한테 주어진 전시 공간의 바닥에는 장판지를 깔고, 벽에는 글과 설계 내용을 한지에 프린트해서 벽지로 발랐죠. 물론 모형도 설치했고요. 언어와 관련된 내용이 중요했던 전시라 언어에 담긴 생각을 디스플레이로 표현한 거예요. 그때 같이 전시했던 나머지 세 작가는 또 전혀 다르게 접근하더라고. 한 사람은 자신이 한자문화권에서 성장했으니, 내가 사고하고 작업하는 모든 것이 그와 관련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자기가 설계한 건물을 큰 모형으로 보여줬어요. 그때도 ‘나만 주제에 맞춰 곧이곧대로 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웃음) 그때 이소자키 선생은 커미셔너였지만 개별 작품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어요. 내 계획을 듣고 좋다고 했을 따름이죠.
방유경: 그때까지도 한국관 건축전에서는 타국의 작가를 데려와서 전시한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일본관에서 아시아권의 건축가들을 초청해 전시한 것을 보면 바라보는 시각과 대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지네요.
승효상: 그래서 한편으로 불편한 마음도 있었어요. 일본관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작가로서 참여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일본이 여전히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고. 여튼 그때 이소자키 선생과 친분을 쌓으면서, 그걸 계기로 이듬해 일본 도쿄에 있는 갤러리 마에서 전시도 했어요. 토토라는 회사에서 설립한 갤러리인데, 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초청해서 전시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게 된 곳이었죠. 2004년에는 중국의 장융허와 나, 두 사람의 2인전▼1을 열어주었어요. 덕분에 해외 여러 곳에서 전시하는 길이 열리기도 했고요.
2008 베니스비엔날레 제11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개막식 행사 모습 ©Kim Jongoh
작가에서 커미셔너로
방유경: 2000년 주제전부터 다른 나라의 국가관, 해외 전시까지 참여하신 걸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커미셔너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높으셨을 것 같아요.
승효상: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언젠가 한국관 커미셔너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그래서 2008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서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맡겠다고 그랬고. 커미셔너는 그야말로 커미션, 즉 참가자들한테 미션을 나눠주는 사람이잖아요? 커미셔너가 주제를 확실히 정한 다음, 그 주제에 따라서 필요한 팀을 꾸리고 작가를 선정하는 거죠. 물론 작가들에게도 미션을 확실하게 내려주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미션에 맞게 전시를 수행하는지 점검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있고요. 반면 작가로 참여할 때는 내 건축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것만 고민하면 되니까 전혀 다른 문제죠.
방유경: 커미셔너로서 개입할 영역과 아닌 영역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을 하셨겠네요.
승효상: 나는 주어진 숙제가 있으면 거기에 골몰하는 편이에요. 베니스비엔날레도 전체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서부터 생각을 끌어와야죠. 마지막까지 전시가 주제에 부합하는지 피드백을 통해 점검하는 게 커미셔너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근데 여러 차례 참여하면서 보니까 다른 나라의 커미셔너들은 그 역할을 안 하더라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부분 주제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는데 또 그런 사람들이 다 용인되는 걸 보면서 ‘나만 바본가? 나만 곧이곧대로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방유경: 그럼 2008년에 커미셔너로 선정됐을 때 총감독인 아론 베츠키가 던진 주제를 바탕으로 한국관에서 어떤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승효상: 그때 주제가 ‘Out There: Architecture Beyond Building’이었어요. ‘건물 차원을 넘어서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좋은 주제였죠. 좋은 질문은 그 안에 해답이 있잖아요. 당시 아론 베츠키가 쓴 글에 보면 “건축이 빌딩의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이 있어요. 그 말이 내게는 건축을 물리적인 부동산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현상, 문화적 현상으로 집중해서 바라보라는 뜻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이게 파주출판도시의 메시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어요. ‘Out There’란 표현처럼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자 생각했죠. 거기에 맞춰 한국관 슬로건으로 잡은 게 ‘Here is Paju Bookcity’였어요. ‘그 너머에 뭐가 있느냐’ 하는 질문에 ‘여기에 파주출판도시가 있다’고 답한 거죠. 파주출판도시는 물리적으로는 건축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시지만, 건축가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생활하는 사람, 프로그램, 나아가 사회적인 움직임(movement)과 시대적 상황의 역동 속에서 탄생한 거잖아요. 그래서 ‘건축과 도시는 누가 만드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적합한 대상이라고 판단했어요.
방유경: 처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파주출판도시를 소개했던 2000년 주제전 당시에는, 실상 파주출판도시는 완성되기 전의 모습이었잖아요.
승효상: 한창 건설하기 시작했던 초기여서 모형하고 도면 일부, 사진만 가지고 전시를 했죠. 물리적인 어떤 풍경을 전시한 거죠. 도시 조성에 참여하는 건축가와 건축주가 윤리적인 도시를 세우기 위해 선언했던 설계지침(일명 ‘위대한 계약’이라 불린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개괄적으로 소개했고요. 2008년에는 그 내용을 분해해서 하나하나 요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자 했어요. 2000년에 파주출판도시의 겉모양을 보여줬다면, 2008년에는 도시가 형성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들추고자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도 일반적인 건축가가 아니라 이 도시를 만들었던 참여자들이 돼야 했어요. 파주출판도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했던 출판인들, 그들이 모인 단체와 리더, 훗날 건축주가 된 출판 관련 회사의 대표들,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문화운동가들. 그런 사람들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참여시키고자 했어요.
방유경: 2008년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도시의 모습도 어느 정도 갖추고, 참여자들의 인터뷰도 가능했겠군요.
승효상: 그럼요. 건물도 수십 동이 지어졌고요.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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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효상과 장융허의 2인전(Seung H-Sang & Yung Ho Jang)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최로 일본 도쿄에 위치한 갤러리 마에서 2004년 2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East Asian Architecture: Beyond the Border(동아시아의 건축:경계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출처: https://jp.toto.com/gallerma/ex040228/index.htm, 2025년 2월 17일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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