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5월호 (통권 690호)
중국 근현대건축사의 길목에서 만난 장융허
1978년과 1995년은 지금의 중국 건축이 어떤 토대 위에 형성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점이다.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소련으로부터 건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중국은, 1966년 문화혁명 이후에도 침체 상태였다.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78년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며 엄청난 속도로 세계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정권이 모든 건축 실무를 통제했던 건축설계 환경에도 변화가 시작됐고, 외국의 건축 이론과 작품도 활발하게 소개됐다. 1980년대 중국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사조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국제 교류와 관광 인프라 구축의 일환으로 호텔이 중요한 건물 양식으로 부상했다.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호텔은 중국 건축계에 전통과 혁신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중국 건축가들은 자국에 처음 구현된 유리 커튼월을 목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덩 샤오핑의 남순강화에 따라 중국의 경제개발은 가속화됐고, 상하이 푸둥 신도시 개발과 같은 새로운 건축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이 당시 도시계획과 건축이 시장경제 모델에 영향을 미치고, 부동산 개발은 정점에 달한다. 1995년에는 건축사 자격증 제도가 도입되고 개인 건축사무소 설립이 허가된다. 1995년 이전 중국의 건축설계가 철저하게 집단적 산물이었다면, 1995년 이후 비로소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이 등장하며 지역성 탐구 등 중국 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1
「SPACE(공간)」 5월호에서는 바로 이러한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건축가 장융허를 인터뷰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그의 개인적 궤적은 중국에서 건축이라는 학문적 체계와 실무 분야가 형성되는 역사와 맞물려 있다. 장융허의 아버지 장카이지(1912~2006)는 중국의 2세대 건축가로서 마오쩌둥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였다. 그의 영향 아래 장융허는 문화혁명이 끝나는 시점인 1978년 대학에 입학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건축가로 활동하다 1993년 중국으로 돌아와 아틀리에 FCJZ를 설립했다. 이후 장융허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활발하게 건축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여러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 밖에도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국제 예술 및 건축 전시에 참여하고, 가구디자인, 무대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인터뷰를 진행한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장융허가 본격적인 실무를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이 중국에서, 서구에서 수입된 모더니티와 동아시아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모더니티가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중국 건축의 모더니티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레 중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이어진 그의 건축 교육과 실무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중국 건축계에서 2000년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와 같은 국제적 이벤트를 계기로 자국과 해외 건축가들의 선진적인 작업이 선을 보이며, 결과적으로 중국 건축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다. 2011년 「SPACE」에 중국 현대건축의 흐름을 개괄하는 글을 기고했던 왕루(칭화대학교 교수)는, 2000년 이후 중국 건축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이른바 ‘공동설계’를 꼽는다. 장융허가 리우지아쿤, 장레이, 왕슈, 그리고 승효상 등과 함께 참여했던 별장 개발 프로젝트였던 코뮨 바이 그레이트 월(2002, 「SPACE」 422호 참고)이나 이소자키 아라타와 리우지아쿤이 기획한 국제건축예술실천전(2003~2012, 「SPACE」 442호 참고)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인터뷰에서 장융허는 공동 프로젝트에서 흔히 발견되는 ‘돋보이는 건축’에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그보다는 오늘날 도시성이나 재료와 구조에 대한 관심을 더 내보였다.
흥미롭게도 중국 건축이 빠른 속도로 양적 성장을 이루던 시기, 장융허는 이미 건축의 질적 변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든 경기 호황이 끝나더라도 과열된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과 건축이 존재할 것”이라며, “이제 추상 도시는 평범하면서도 도시 거주자들의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2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딩 미니 블록(2020)이나 원저우 의과대학 국제교류센터(2023) 등 최근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여 년 전, “아시아는 아시아를 모른다”던 윌리엄 S. W. 림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3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 건축가 장융허의 이야기를 통해 아시아의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길 바란다.
편집장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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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 루, ‘1978년 이후의 중국 건축’(특집: 아시아 건축의 자력磁力 2: 중국 현대 건축의 단면), 「SPACE(공간)」 491호(2011년 11월호), 40~45쪽; 「SPACE」는 2020년 2월 11일, 25일 양일간 ‘중국 현대건축의 지형도’란 제목으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의 강연자였던 정인하는 각각 ‘1995년 이전: 대형 설계사무소가 된 국영기관’, ‘1995년 이후: 집단주의에서 벗어난 건축가’를 주제로 중국 근현대건축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탐색했다.
2 창 융호, ‘평범함이 요구되는 시대: 호황기 이후의 중국 건축 전망’ 「SPACE」 491호(2011년 11월호), 52~55쪽.
3 윌리엄 S. W. 림, ‘아시아는 아시아를 모른다’, 「SPACE」 468호(2006년 11월호), 176~179쪽.
「SPACE(공간)」 2025년 5월호 (통권 690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4 FEATURE
중국 건축의 두 모더니티 사이에서: 장융허_ 장융허 × 정인하
Between Two Modernities in Chinese Architecture: Chang Yung Ho_ Chang Yung Ho × Inha Jung
050 PROJECT
탐멜라 스타디움 - 제이케이엠엠 아키텍츠
Tammela Stadium – JKMM Architects
062 PROJECT
통의동 어반 오아시스 - 황두진건축사사무소
Tongui-dong Urban Oasis – Doojin Hwang Architects
072 LIFE
새로운 시간의 축을 만들어내는: 더일마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_ 해리 누리에프 × 김혜린
Creating a New Temporal Axis: THEILMA Seoul Flagship Store_ Harry Nuriev × Kim Hyerin
078 REPORT
배경이 아닌 어떤 것: OMA 시노그래피, 2025 이슬람 예술 비엔날레_ 박지윤
Something Other than a Backdrop: OMA Scenography, Islamic Arts Biennale 2025_ Park Jiyoun
088 REPORT
점유자를 위한 설계: 어반 싱크탱크의 임파워 모델_ 알프레도 브릴렘부르크 × 이소운
Design for Occupants: The Empower Model by Urban-Think Tank_ Alfredo Brillembourg × Lee Sowoon
104 REPORT
공공 프로젝트의 절차적 정당성을 묻다: 통인시장 아트게이트_ 황두진 × 김정은
Rethinking Procedure in Public Projects: Tongin Market Artgates_ Hwang Doojin × Kim Jeoungeun
110 VENICE BIENNALE INTERVIEW: Interview on the 3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5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배형민_ 배형민 × 방유경
Curator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14, Pai Hyungmin_ Pai Hyungmin × Bang Yukyung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언제 어디서든 잘 자라는_ 김선아, 이수빈 × 김혜린
Thrives Anytime, Anywhere_ Kim Seona, Lee Soobin × Kim Hyerin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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