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신축 근린생활시설에 들어간 오피스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이 작업에서 미드데이는 건축적 요소들을 각각의 객체로서 대하며 공간을 구성해나가는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시도한다. 그 안에서 각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공간을 구성하게 되는데, 특히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고 서로 간의 질서를 정의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는 작업명인 ‘인디펜던트 컴포넌츠(Independent Components, 2024)’라는 말로 잘 함축된다. 한편으로 이 작업은 한식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취지를 반영해 또렷한 청색과 국내산 화강석을 사용해 한국적인 미감을 현대적으로 은유한다.
이 작업의 존재 긍정적 태도는 주어진 신축 건물에서 출발한다. 받아들이기 곤란한 디자인의 건물이지만 새것이니 지워내기는 아까워 포용하기로 결정했다. 벽체와 천장에 새로운 마감을 덧바르는 대신, 주어진 공간에 새로운 객체들을 구성해 넣는 방식이다. 선반 또는 탕비실이 숨어 있는 큰 볼륨들과 푸른색 캐비닛 등이 주어진 건물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분할하고 형성한다. 캐비닛은 작은 볼륨으로서 간접적인 공간 분할을 위해 새롭게 디자인된 가구다. 조명 또한 기존 천장 영역을 존중하고자, 천장으로부터 떨어지는 대신 보에 매달리는 캔틸레버 방식으로 특별히 디자인됐다.
디자인의 바탕에는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불러일으킨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감각이 있다. 바로, 대상을 선택 가능한 개별 객체로 인식하고 응시(gaze)하려는 충동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모든 대상은 개별 설정값을 갖는 객체로 존재하며, 개별 선택이 가능하다. 선택이 될 때는 바탕이나 경계선이 하이라이팅 됨으로써 배경과 객체가 시각적으로 구분된다. 객체의 선택은 객체마다 자기만의 가상적 존재 영역이 확보되어 있기에 가능한데, 이러한 객체들로 구성된 환경을 인간은 스크린 밖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응시한다. 이 감각은 스마트폰 인터페이스에서부터 모델링 소프트웨어와 게임까지의 디지털 환경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증상이다.
미드데이가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건축가 본인들이 이미 그런 감각으로 물리적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축이란 기본적으로 투사(projection)에 의한 매개를 기반으로 하기에, 대상을 투사하는 방식이 곧 건축을 상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를 감안하면,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응시는 이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투사 행위로서 앞으로의 건축적 미학을 견인할 잠재 요소라 볼 수 있다. 이미 이것은 우리의 현실 인식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각각의 요소를 긍정하고 존중하고 싶다는 작업의 목표가 생겼을 때, 미드데이는 각 요소들의 가상적 존재 영역을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확보해주고서 이것을 선택 가능한 객체로서 배경으로부터 떼어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인디펜던트 컴포넌츠는 이러한 충동을 극대화해 조금 다른 언어의 디자인을 시도한다. 공간에 새롭게 들어가는 객체들은 시각적 구별이 가능한 컴포넌트로 다뤄진다. 그리고 이것을 최대한 당당히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 모든 컴포넌트에는 미드데이가 설정한 가상의 질서값이 있다. 이 설정값은 디자인 과정을 통제한다. 예를 들어, 컴포넌트끼리 서로 만날 때는 경계를 분명하게 표시해주어 영역을 시각적으로 확보한다. 또한 영역 간의 침범을 최소화해 객체 간의 뒤섞임을 차단한다. 이를테면 천장을 침범하는 매입등 대신 직부등을 설치하는 식이다. 설정값은 각 재료가 만나는 순서까지도 결정한다. 이 제스처는 문, 선반, 창문, 보, 조명, 테이블 등에 모두 적용됐다. 이 과정에서 각각이 표면이 아닌 부피감이 있는 덩어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거운 석재가 두툼하게 사용됐다. 이들은 주로 컴포넌트의 받침과 경계 등에 자리한다. 특히 새로운 객체와 기존의 건물이 만나는 부분에는 두툼한 석재 테두리를 둘러 그 경계를 시각적으로 구분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소위 ‘예쁜’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서 마감을 서로 맞추고 숨기고 가늘게 가져가는 방식과는 정반대다.
한편, 새롭게 디자인된 병풍은 벽체로부터 독립적이되 스스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작업 의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공간적 객체다. 여기에는 전작 ‘패치트 시티(Patched City, 2019)’에서 리얼리티라는 주제하에 탐구했던 이음매(seam)에 대한 디테일이 접목됐다. 이번 병풍에서 푸른색은 모두 인쇄된 색상이 아니다. 인쇄할 이미지에서 파란색을 모두 제거한, 인쇄 영역의 복잡한 경계 사이로 푸른색 패브릭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복잡한 경계를 바탕으로 표면에서 위계와 깊이를 이끌어내는 시도다.
초읽기작 건축가 연보
오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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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7. 서울 출생
2002. 2. 미술 입문
2010. 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입학
2012. 3. 이정훈 설계 스튜디오: 건축 역사적 서사 위에서 작업하는 건축가 상을 인지
2014. 3.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입사
2016. 4. 밀라노, 베를린 건축 및 디자인 여행: 밀라노 디자인위크, 베를린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이하 DCA) 오피스 등
2016. ~ 2017. 건축 시공 현장에서의 8개월, 회사에서 진행한 공동주거 건축 프로젝트의 일환
2017. ~ 2019. 슈테델슐레 건축 석사 과정: 건축적 표상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입각한 담론 체계 탐구
2017. 10. 요한 베툼과의 대화: 건축가로서의 자신을 처음으로 자각, 건축적 사고를 배우면 건축가다!
2018. 8. 『The Projective Cast』(로빈 에반스 저) 탐독
2019. 2. 마이클 영과의 워크숍: 건축적 표상에 대한 사고의 동시대적 맥락 확장
2019. 6. 마크 위글리와의 프로젝트 디스커션: 창작자와 비평가의 이상적인 관계를 배움
2019. 8. 슈테델슐레 건축 석사과정에서 강사 및 연구직 시작: 담론적 차원에서 건축적 도구로서 VR 연구
2019. ~ 2020.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 공동 집필(팬데믹으로 인한 전시 취소, 도록에서 독립 단행본으로 변경)
2021. 3. 귀국 후 미드데이 설립, 첫 작업으로 어퍼하우스-업(Upperhouse-UP) 컨설팅 제안
2022. 6. DCA 밀라노 지사 합류: 건축적 아이디어에 대한 훈련
2023. 3.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프리츠커상 수상: 프랙티스의 기대 수준과 영향력에 대한 각성
2023. ~ 2024. DCA 서울팀 활동: 치퍼필드도 쉽지 않은 한국의 현실
2023. 10. DCA 베니스 파티, 5개국의 지사가 한자리에 모인 일: 오피스 운영 수준에 대한 자각
2024. 2. 「SUPTEXT」에 에세이 기고: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에서 제시했던 건축관의 갱신
2024. 7.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등장하는 건축가들’ 참여: 함께하는 세대의 발견
정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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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12. 대구 출생
1999. 1. 밀리터리 프라모델 입문
2005. 10. 스티브 잡스 평전 『iCon 스티브 잡스』 탐독
2008. 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입학
2011. 8. 『사람 건축 도시』(정기용 저) 탐독
2012. 3. 이정훈 설계 스튜디오: 건축 역사적 서사 위에서 작업하는 건축가 상을 인지
2013. 대구 북성로공구박물관 작업 참여: 지역성과 건축에 대한 실천적 탐색
2013. 9. 첫 유럽여행: 프랑크푸르트, 쾰른, 베를린, 발즈, 헬싱키 등에서 현대건축 답사
2015. 3. 건축사사무소 입사: 미술대학 졸업 직후 건축설계 실무 시작
2015. ~ 2017.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혼자 담당한 프로젝트 아홉 개의 연이은 착공과 완공
2017. ~ 2019. 슈테델슐레 건축 석사과정: 건축적 표상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입각한 담론 체계 탐구
2019. 6. 졸업 프로젝트에 톰 메인이 지대한 관심과 지지를 표시: 자신감 획득
2019. ~ 2020.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 공동 집필 (팬데믹으로 인해 구직이 미뤄졌던 시기)
2021. 3. 귀국 후 미드데이 설립, 첫 작업으로 어퍼하우스-업(Upperhouse-UP) 컨설팅 제안
2021. 11. 첫 번째 대수선 프로젝트에서 시공사의 파행: 재출국 결심
2022. 6.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이하 DCA) 밀라노 지사 합류: 프로세스와 건축사무소 운영 체계 습득
2023. 3.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프리츠커상 수상: 프랙티스의 기대 수준과 영향력에 대한 각성
2023. 9. 전시 〈(찐) 뉴 테리토리〉 참여: 한국에 존재하는 새로운 건축가 하이퍼스팬드럴과 송승엽을 만남
2023. 10. DCA 베니스 파티, 5개국의 오피스가 한자리에 모인 일: 오피스 운영 수준에 대한 자각
2024. 2. 「SUPTEXT」에 에세이 기고: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에서 제시했던 건축관의 갱신
2024. 7.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등장하는 건축가들’ 참여: 함께하는 세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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