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모습. 왼쪽부터 민현식, 이장환, 최종인.
한국 중소도시에 대한 건축 담론은 중소도시포럼(「SPACE(공간)」 675호 참고) 이전에 서울건축학교(이하 sa)의 여름 워크숍이 있었다.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어 나가기에 앞서 과거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덧 사반세기가 지난 sa 여름 워크숍을 돌아보기 위해 sa의 초기부터 끝까지 튜터로 함께한 건축가 세 분과 차례로 대담을 가졌다. 과거와 지금 중소도시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 당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었나? sa와 여름 워크숍은 역사 속에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민현식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대표 × 이장환 중소도시포럼 공동대표,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19기 SPACE 학생기자 최종인, 어주희, 서윤지
PART 1. sa와 여름 워크숍의 배경과 목적
학생기자: 우선,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 드린다.
민현식: 지난 시대 이야기는 대개 다 포장되기 마련이다. 인터뷰에 앞서, 30년 전의 이야기라 기억의 한계로 틀린 말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건축가들끼리도 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선 양지하고 들어 주기 바란다. 그저 sa 에 대한 ‘민현식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학생기자: 먼저 sa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민현식: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당시 건축가들의 통념에 도시를 가볍게 여기며 건축에만 관심을 가지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다. 당시의 추세로, 물론 요즈음은 더 심해졌을 수도 있지만, 학문을 분류하는 과정이 너무 세분된 경향이 있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도시에 무관심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서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있으며, 같은 생각을 가진 건축가들끼리 학생들을 모아 서로 대화하는 것, 그리고, 열심히 노는 것도 목적이었다. sa 정규 프로그램과 별도로 여름 워크숍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에게는 여름 휴가이기도 했다. (웃음) 더불어 여름 워크숍은 인기 건축가들의 참여를 통해 정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자 한 목적도 있었는데, 정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지만 이런 저런 조건이 여의치 않아 참여하지 못하는 건축가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학생기자: sa의 건축 교육이 가졌던 차별점은 무엇인가?
민현식: 4.3그룹이 생산한 두 가지 산물이 있다. 하나는 설계 교육에 집중했던 sa, 다른 하나는 참여 정신을 바탕으로 건축가 사회를 위한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소위 ‘건미준’이다. 그 당시 대학 설계 교육의 수업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즉 설계 주제 선정의 다양성뿐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따른 일대일 도제 훈련과 같은 수업 방식을 부활시키는 것 등을 기대했다. 그래서 한두 건축가가 튜터가 되고, 튜터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며, 소수 학생으로 구성된 스튜디오 중심의 교육 방식에 대한 실험을 하고자 했다. 두 번째로 더 큰 문제는 설계 교육의 커리큘럼이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 데 고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건축가들은 정작 필요한 인문한적 소양이 결여된 그저 ‘설계하는 기술자’로 길러졌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 예술가 등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했다. ‘공학으로서의 건축’ 바깥으로 관심을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한 번은 영화감독 김홍준을 인문학 강사로 초청했는데,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보다 건축과 영화를 구태여 연결시키려 하는 것에 실망했다. 건축하는 사람들 앞에서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가령 김춘수의 시에서 건축을 다루고 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가려내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인문학과 건축이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지점에서 문제를 들추어내고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학문 자체에 대해 배우고 그로부터 건축가의 사유를 풍부히 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에 대한 관심이고, 또한 그것이 건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으로 sa를 만들게 되었다. sa를 시작할 때 건축가들끼리 돈과 시간을 투자하자고 다짐했다. 다들 어려운 작은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다른 대학에 나가 강의하는 시간을 여기에 투자하고, 신입사원을 한 명을 채용하는 데 들 비용을 여기에 투자하고자 했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전반기에는 중소도시, 후반기에는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로 향했다. 워크숍 타이틀에는 ‘한국성’, ‘지역성’, ‘탐험’과 같은 키워드가 나타났는데, 이와 함께 여름 워크숍이 어떤 태도를 추구했는지 알고 싶다.
민현식: 전반기와 후반기가 색깔이 다르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도시에 관해 다루기 때문에, 그저 서울은 마지막으로 하자라고 생각했다. 부산이나 서울이 중소도시와 분명히 다른 점은 존재하지만, 거대 도시라고 해서 서울을 특별히 달리 생각한 건 아니었다. 매해 다른 지역으로 향했던 것은 각 스튜디오 즉 튜터들이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성’이라는 키워드는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이다. 이 말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팽배했던 키워드다. 지극히 열등의식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성'을 표현하는 언설 중 당시 가장 유행했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논리적으로 성립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건축뿐 아니라 예술, 정치,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를 가로질러 회자되고 있었지만, 나는 한국성이라는 말에 개인적으로 지독히도 거부감을 가졌었다. ‘보편적인 것’이 된 한국성은 이미 한국적이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것은 그저 한국적인 것일 뿐이라 반박하면서.
‘탐험’이라는 키워드는 내가 약 1년여 런던에서 지내며, 런던을 탐험한 경험에서 기인한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의 ‘도시 산책자’ 개념이기도 하다. 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탐험하듯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 길을 잃는 것, 그리고 도시를 연구할 때 탐험가의 태도로 보는 것이다.
PART 2. 중소도시 탐방의 의미와 발견
이장환: 도시를 탐험하듯 돌아다니는 것, 길을 잃는 것, 탐험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도시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고, 도시의 숨겨진 차원을 발견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러한 탐구 과정이 건축가의 설계 작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민현식: 완벽하게 직결한다고 생각한다. 건물을 설계할 때 건축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프로그램에 대한 건축가의 독창적 해석이다. 즉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사유할 때 프로그램의 해석이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정부종합청사나 시민회관 같은 프로그램을 생각해보자. 대개의 통념은 시민들이 참여해 즐기고 화합하는 공간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공공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공무원들이 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좋지 않으면 시민을 위한 서비스가 좋아질 리 없다.
건축이 인문학적 사유로 접근하지 않으면 그저, 존재해오던 통념적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다. 프로젝트의 본질과 핵심을 끄집어낼 수 있는 제일 밑바탕이 되는 정보는 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된다.
학생기자: 가장 재미있었던, 혹은 인상 깊었던 스튜디오가 있는가?
민현식: 참여했던 열 번의 스튜디오 중 통영으로 갔던 워크숍이 가장 인상 깊었고 여전히 기억에 새롭다. 워크숍은 튜터들이 주제를 먼저 정하고 학생들이 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튜터들은 워크숍 시작 전부터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당시, 내가 부쩍 관심이 있던 주제는 도시의 특별한 공간 구조나 조직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건축가는 건축을 만들고, 사람들은 건축이 가진 힘에 의해 변화한다.’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오던 말이고, 윈스턴 처칠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기 때문에 갑자기 널리 유명해진 말이다. 나의 관심은 ‘도시 구조가 어떤 사람을 만들어냈는가’ 뿐 아니라 거꾸로 ‘특정 사람들이 어떤 도시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 않겠는가?’에도 있었다. 그 때문에 도시 구조의 변천에 관심이 많았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식의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통영이라는 도시는 정말 기이했다. 1950년을 전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여럿이 통영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유가 무엇인지 추적해 보고자 했다. 그 중에는 이중섭도 있었는데, 이중섭이 어떤 맥락으로 이곳에서 활동했는가를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통영은 조선시대 해군 본부로, 거북선을 탄생시킨 도시다. 모든 기술과 예술의 총체는 무기이지 않나? 무기는 첨단 과학과 첨단 기술이 합쳐진 산물이다. 따라서 무기가 개발되고 나면 그 기술을 이용한 일상용품들도 잇따라 생산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 조선에 있던 모든 기술자들이 통영으로 몰려들었다. 최고의 기술자들이 낮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저녁에는 심심하니까 공예품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아직도 유명한 통영의 나전칠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그러한 공예품을 본 어떤 일본인이 통영에 공예학교를 만들었고, 해방 후에도 지속되어 이중섭이 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거기까지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 통영만의 정서가 있다.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들, 그리고 그것들과 통영의 연관성을 밝혀 보는 것. 나에게 지금까지도 굉장히 큰 숙제처럼 남아 있는 일이다.
순천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디자이너 안상수와 같이 스튜디오를 맡았는데, 안상수 선생이 순천의 시인 한 분을 모시고 왔다. 그분의 고증에 따라, 여수‧순천 10‧19 사건에서 반란군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가에 대한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sa 여름 워크숍은 흔히들 얘기하는 ‘건축적인 것’ 이외의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학생기자: 선생님이 생각하는, sa와 여름 워크숍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민현식: sa로부터 발원한 가장 근사한 결과를 꼽는다면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건축과 설립과 파주출판도시, 그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예종 건축과는 sa의 구조를 그대로 계승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영향으로 한국의 모든 대학 건축과가 스튜디오 방식으로 설계 교육을 하게 됐지 않은가. 가장 먼저 건축 교육이 5년제로 바뀐 것도 그렇고. sa와 한예종의 역량 덕분에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파주출판도시에 참여했던 건축가들 대부분이 sa를 주도했다. 덤으로, 한국에 건축학교육 인증제도가 생기기 전 한예종 건축과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인증을 받았는데, 승인 과정에서 튜터들의 작업으로 소개했던 파주출판도시가 큰 역할을 했다. 여름 워크숍의 가장 큰 성과로는 건축가 고 이종호 선생이 설계한 박수근미술관을 꼽고 싶다. 2001년 진행했던 양구 워크숍의 결실이다.
PART 3. 중소도시 패러다임의 변화와 미래
학생기자: 지역을 바꿔 가며 여러 번 진행됐던 sa 여름 워크숍을 공통된 흐름이나 어젠다로 묶을 수 있는가?
민현식: 공통된 흐름이나 어젠다로 묶는 접근은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sa 여름 워크숍은 10개 정도의 도시에서 진행됐다. 매 워크숍마다 대개 10개의 스튜디오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100여 개에 가까운 스튜디오가 있었던 셈이다. 각 스튜디오 및 건축가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이슈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색깔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 공통된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모더니즘적인 발상이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각각이 어떤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즉 ‘차이’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이장환: 그렇다면 각각의 개별성을 넘어 다른 차원에서 질문드리고 싶다. sa 워크숍이 진행되었던 시기의 중소도시 패러다임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즉 당시 중소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워크샵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어떤 공통된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민현식: 당시에 여러 중소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공통된 관심은 ‘이 지역은 어떤 특성이 있는가’, ‘이곳은 다른 도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였고,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한국의 중소도시들이 모더니즘, 또는 자본주의의 결과로 인해 모두 똑같아져 가는 현상을 경계하고, 각 도시만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좀 더 통속적으로 얘기하자면, ‘지역성의 발견과 탐구’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이 sa 워크숍에서 상당히 강하게 작동하고는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해지는 ‘지역성의 발견과 탐구’ 자체도 실은 지극히 통속적이긴 하다.
이장환: 중소도시 획일화의 주요 원인은 1970년대 정부 주도로 진행된 새마을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워크숍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이 이를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새마을운동이 남긴 결과물에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도시 이외의 지역을 하나의 ‘기획’ 차원에서 접근한 태도는 재평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민현식: sa가 설립되던 당시는 세기말적 분위기가 강했고, 20세기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획 같은 것이 많이 거론되곤 했다. 이런 분위기의 영향이 sa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에게 암암리에 작용했고,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 같다. 반성의 기류에서 가장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그것에 대한 저항과 반성이었을 것이다. 새마을운동 또한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에 모더니즘과 합리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저 옛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감히 김원 선생님의 『건축은 예술인가』라는 책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김원 선생님과 편집자가 이 글을 갑자기 상의도 없이 ‘서문’으로 격상(?)시켜 참 당황했다.) 그 책은 그동안 김원 선생이 주로 근대적인 관점에서 한국 건축의 비합리성을 비판해온 것과 달리, 오히려 비합리적인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서문에 김원 선생이 지금까지 해왔던, 근대에 대한 운동을 이제는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sa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sa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주장들에 대해, 2020년대의 시점에서는 얼마든지 넘어서려는 시도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장환: 지역을 현장에서 조사하고 그로부터 지역성을 발굴하는 방법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이 관광산업과 결합되면서 이후 왜곡된 형태로 변질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특히 지자체에서 발주한 용역 결과물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왜곡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현식: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개별 지역만의 특성을 발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자원, 애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원을 쏟는다 해도 막상 들여다보면 지역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지역의 특성을 지역 바깥에서 가져다 오는 상대적으로 쉬운 선택지를 고르는데, 이로 인해 지역성이 관광과 자본에 결부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 결과물은 언뜻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관광 수입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지면서 결국은 지역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언젠가 일본의 촌락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 우리에게 닥친 현상, 즉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촌락들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보조금을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지역 인프라를 도시 생활에 맞게 뜯어 고치는 데에 활용한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 정작 그 마을의 귀한 것은 잃고, 도시의 허접한 것들이 실용성의 이름으로 판을 치게 됐다. 그런데 어떤 한 지역은 그 돈으로 지역 청년들의 유학을 지원해주고, 학업을 마치면 마을에 돌아와 일정 기간 마을을 위해 봉사하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 유학 후 돌아온 청년들이 마을을 대상으로 여러 조사를 펼친 결과, 그 마을이 지구상에서 목성의 움직임을 가장 정확하게 관측할 수 지역임을 밝혀냈고, 결과적으로 미국 항공 우주국(NASA) 지사가 설립됐다고 한다. 놀랍지 않나? 이러한 사례와 다르게 우리의 많은 중소도시들은 지역성을 고민하다 엉뚱한 곳으로 빠져, 온통 외국 유명 관광지의 이름을 흉내 낸 카페와 민박으로 가득 차고 있는 상황이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 이후로 거의 사반세기가 지났다. 당시와 달리 지금의 중소도시들은 지속되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중소도시의 풍경은 거의 사라졌고, 증가하는 외국인 인구 등으로 중소도시에 가졌던 고정관념이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어떤 새로운 도시‧건축적 과제가 있을지, 우리는 어떤 상상을 더 해야 할지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고 싶다.
민현식: 우선 이장환 교수 같은 분, 즉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일단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백의 민족’과 같은 단일 민족 의식을 넘어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소도시 지방의 마을들의 변화된 유사한 풍경은 충청북도 영동에 갈 때마다 보는 모습이다. 그곳의 초등학교에는 다양한 나라의 국기들이 게양돼 있었다. 이제는 순수 혈통 같은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소도시는 무조건 서울 흉내만 내려 하지 말고, 다른 선택적인 가능성을 끊임없이 열어 두어야 한다. 집을 칠할 때 다른 집과 다른 색으로 칠한다고 해서, 혹은 같은 색으로 칠한다고 해서 욕을 먹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덧붙여서, 중소도시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건축가들이 서울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리고 좀 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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