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SPACE(공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계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건축전 아카이브 연구’의 일환으로 『1996~2025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아카이브 북』(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5월에 출간될 이 책에는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출간에 앞서 이 인터뷰를 「SPACE」에 연속 기획으로 선공개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 건축 전시사의 초창기 서사를 재구성하고,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Venice Biennale Interview]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1 초대 커미셔너, 강석원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4 여섯 번째 커미셔너, 승효상
일시 2024년 12월 10일 10:00~12:00
장소 화상회의(ZOOM)
인터뷰 김종성 (주)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명예회장 × 김정은 편집장
참석 여선희, 유지연, 최혜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방유경, 김보경 기자
기록 김혜린 기자
자료수집 김보경 기자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오프닝. 커미셔너 김종성. / Images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김종성
김종성은 2002년 9월 7일부터 11월 24일까지 개최된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다. 1996년 제6회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강석원(「SPACE(공간)」 686호 참고), 2000년 제7회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김석철(1943~2016)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한국 건축계의 1세대 건축가에 속하지만, 일리노이 공과대학교(IIT)에서 수학하고,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사무실에서 12년간 일하며, IIT에서 교수, 부학장, 학장 서리로 미스의 뒤를 잇는 독특한 길을 걸었다. 2001년 12월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될 당시 김종성은, 1978년 서울 힐튼호텔 설계를 계기로 귀국하여 서울건축(현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을 설립하고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1986), 아트선재센터(1998), SK사옥(1999) 등 굵직한 프로젝트로 국내 건축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터였다.
제8회 건축전의 총감독은 영국 출신 건축 디자인 전문 디렉터 데얀 수직(Deyan Sudjic)이 맡았으며, ‘넥스트(NEXT)’란 주제를 제시했다. 주제관상은 알바로 시자, 국가관상은 네덜란드관이 수상했다. 김종성은 향후 10년 뒤 한반도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고 일곱 개 팀, 아홉 명 건축가의 작업을 한국관에 전시했다. 참가 작품은 헤이리아트밸리-커뮤니티 센터(김종규+김준성), 파주출판단지 집합주거(김영준), 상계동공원과 도서관(민현식+이민아), 헤이리아트밸리 스튜디오+주택(박헬렌주현), 추모공원과 납골당(우규승), 양구 박수근미술관(이종호), 파주출판단지 상가블록(조성룡)이었다.
최근 김종성은 건축 사진 순례집 『로마네스크 건축』(2019, 2021, 2022, 2023) 다섯 권을 매듭지으며 유럽에서 출판 관련 행사를 진행했고, 국내에서는 2년 반 동안 서울 힐튼호텔의 로비와 아트리움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SPACE」 652호, 654호, 677호 참고). 지난 12월,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인 그를 온라인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섬세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김종성은 당시의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2000년대 초반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국제 무대를 접한 한국의 건축인들과 주변의 정황을 묘사했다.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도록 표지 (자료제공: 정운주) / Image courtesy of Chung Oonjoo
커미셔너 선정과 베니스 사전 답사
김정은: 2001년 12월 제8회 건축전(2002.9.7.~11.24.)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되셨습니다.▼1 당시 서울건축을 운영하고 계셨을 때인데, 커미셔너 후보자 추천이나 최종 선정 소식을 접하셨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당시만 해도 건축전은 불규칙하게 열리고 있었고, 국내 건축계에서도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종성: 내 기억으로는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저를 추천했어요. 근데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건축전이 열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중요한 영화나 감독이 부각되는 소식만 보다가, 내가 커미셔너 후보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서 건축전을 처음 알았어요.
김정은: 그러셨군요. 한국 건축계의 경우 1996년(커미셔너 강석원), 2000년(커미셔너 김석철)에 이어 불과 세 번째 참가였기 때문에 아직 전시 추진체계가 명확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시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나가셨나요?
김종성: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커미셔너가 됐다는 통지를 받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김석철 씨가 설계한 한국관 현장도 파악할 겸 2002년 이른 봄에 베니스에 갔어요. 당시 베니스에서 통역을 비롯해 변준희 씨가 상당히 많이 도와줬어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베니스에서 한두 주 있는 동안, 매일매일 어디를 갈 때마다, 시간이 모자라면 20분 동안에 해결할 수 있는 식사가 뭐가 있나. 그런 것들. 아무리 이탈리아어가 능숙하더라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정보를 나한테 줬어요. 처음 변준희 씨하고 프랑코 만쿠조 교수에게 가서 한국관 배경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쫙 들었어요. 조그만 광장(piazza)에 면한 4층짜리 건물에 있는 사무실이었어요. 우리가 오후 3시쯤 방문해서 두 시간 떠들고 나왔더니, 만쿠조 교수가 단골 바에 데려갔어요. 거기는 생활 패턴이 주거지가 있으면, 인접한 광장에 단골 바가 꼭 있기 마련이에요. (웃음) 그래서 만쿠조 교수와 나, 변준희 씨가 슈프리츠를 마시면서 한 30분 또 환담을 했습니다. 아카이브에 변준희 씨가 기여한 거를 꼭 좀 적어주세요.
김정은: 네, 그러겠습니다. (웃음)
김종성: 그렇게 베니스 현장을 파악했어요. 김석철 씨가 포멀리즘에 빠진 사람이거든. (한국관에) 동그라미를 해놨더라고. 전시의 융통성을 많이 저하시키는 형태인데, 서클 아니면 안 된다 이거지.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도록, 22~23쪽(조성룡, 파주출판단지 상가블록) (자료제공: 정운주) / Image courtesy of Chung Oonjoo
총감독 데얀 수직과 주제 ‘넥스트’
김정은: 총감독인 데얀 수직과는 사전에 소통이 있었나요? 『김종성 구술집』▼2에서 데얀 수직은 예외적으로 주제 설명을 위한 커미셔너 소집을 하지 않았다고 회고하셨어요.
김종성: ‘커미셔너가 과연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처음 파악한 게 총감독의 키워드(주제)인데, 그해 키워드가 ‘넥스트’였어요. 나중에 보니까 데얀 수직은 책은 많이 썼지만 건축보다는 응용미술에 대한 게 많고. 하여간 그 사람이 자기 글로 콘셉트를 설명한 것도 없었어요. 그를 만나려고 비엔날레 본부에 연락을 했지만, 베니스에 없고, 올 계획도 없었어요. 다른 국가관의 커미셔너들에게 데얀 수직을 만났느냐 물었더니 만난 기억도 없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는 총감독을 만나는 건 뭐 필요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러니까 그해의 주제는 넥스트지만, 그 개념을 피력하지 않았으니, 이건 말하자면 커미셔너에게 위임하는 거다. 나는 알아서 움직여야겠다, 그렇게 결론을 냈어요.
김정은: 그러면 나중에 전시가 시작됐을 때, 데얀 수직이 직접 진행한 주제전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그때 140개 계획안을 10가지 기능으로 분류해서 전시했습니다.
김종성: 그때 밧줄공장이었던 코르데리관(Corderie)과 다른 하나가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두 군데의 전시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작업이 전시되어 어떠한 주제를 읽기가 힘들었어요. 시각적으로 혼돈스러운 거죠. 머리에 딱 입력이 안 되고 부분적인 정도가 머리에 남고. 나는 주로 국가관을 많이 봤습니다.
“금년의 제8회 건축전은 다분히 2년 전에 대한 반작용이라 유추할 수 있는데, 베니스 비엔날레 이사진이 대폭 교체되었고 ‘환상적이고, 버추얼이 아닌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건축을 전시’한다는 수지치를 총감독으로 위촉한 사실 그 자체가 비엔날레 이사회의 새 칼라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를 통하여 이탈리아 출신 총감독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작품들을 선발하여 전시하였고, 1996년 제6회 전람회의 총감독 한스 홀라인은 ‘지진계로서의 건축’이란 기치 아래 해체주의 건축을 조명하는 데에 초첨을 맞추었다. 수지치는 그가 발탁한 방대한 분량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주거, 교육시설, 고층건물, 공공건축, 박물관, 공연시설, 교통시설, 쇼핑, 마스터플랜 등의 부문으로 분류하여 베니스의 막강했던 해군을 지금도 가늠해 볼 수 있는 16세기에 지어진 대포 생산공장(Artiglierie)과 로프 생산공장(Corderie)을 개조한 전시관에서 2차원적 도면은 물론, 모형, 실물 크기의 상세 자재 목크엎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에디터로서의 수지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저명한 건축가나 설계조직을 모두 망라하고자 한 점이다. 우리는 거대한 공항터미널 같은 계획안은 ‘작품성’을 거론하지 않는데 반하여 그는 SOM 같은 거대 설계사에서 제출한 싱가포르 창이 신공항 터미널 계획안, 렌조 피아노의 뉴욕타임스 신사옥 계획안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명맥이 끊긴 것을 확실하게 인식한 듯, 포스트모던 작가는 한 명도 초청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디컨스트럭티비즘(해체주의)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전시되어 있다.” _ 과천현대미술관 김종성 컬렉션 중 김종성이 작성한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 설명글’ 부분
김정은: 당시 교수님께서 「건축문화」와 인터뷰하신 걸 보면 “비디오 설치 미술전인지 건축전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던 2년 전의 전시회에 비해서 이제 이번 전시회에 대해 전면적으로 공감”한다고 하셨던데.▼3
김종성: 그건 사실이에요. 1990년대 말 건축 전시가 베니스비엔날레뿐만 아니고 어느 나라든 비디오 전시 위주였어요. 다만 아까 얘기했듯이 서로 욕심들을 내가지고 (전시물을) 너무 많이 하니까. 눈에 범람하는 거죠.
김정은: 다시 한국관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2002년이면 한국 건축계가 (국제적인) 건축 전시를 해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한국 건축이 국제 무대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을 것 같습니다.
김종성: 그렇죠. 그런데 현장에 가서 한국관의 규모도 봤고요. 어떻게 창의적으로 전시할 건가, 그런 생각은 쭉 가져갔지만, 그 전시가 국제 건축계에 어떤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는 걸 내가 그때부터 벌써 결론을 냈어요. 그래도 누군가 한국관의 전시를 꼼꼼하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라고 평가받게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작품) 선발을 했고요.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오프닝 당일 모습 / Image courtesy of Arts Council Korea
참여작가 선발 과정
김정은: 작가 선정 과정을 보면, 2001년 12월 18일 건축가 38인에게 비엔날레 출품 의향을 묻는 설문을 보내십니다. 이때 이미 위와 같은 주제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인지요? 아니면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것인지요?
김종성: 10년 내 통일이라는 전제는 어렴풋하게 가지고만 있고, 의향을 물을 때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하지는 않았어요. 38명의 건축가들에게는 건축적으로 전시할 만한 충분한 소지가 있는 작업을 골라 보내 달라고 설문지를 보낸 거죠.
“작품의 최종 선발에 임하여, 커미셔너는 조형적 차원, 테크놀러지 측면, 의미전달의 차원에서 건축적 논의의 발전을 진지하게 시도하고, 동시에 오랜 열망 끝에 다가올 한반도의 통일에 직면하여 건축계가 당면한 과제를 파헤치려는 작품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_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2년도 제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기획 및 참가작가 선정 발표 기자간담회’(2002.3.21.) 보도자료 중 김종성이 작성한 ‘한국 파빌리언의 전시 개념’ 부분
김정은: 네, 그래서 최종 일곱 팀, 아홉 명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셨는지요?
김종성: 일곱 작품 가운데 매체에 발표가 안 됐던 새로운 작업은 우규승의 추모공원과 납골당 하나였을 거예요. 다른 건 전부 매체에 소개됐던 작품들이에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내가 알고 있었고요. 그중에 공교롭게 파주와 헤이리에 지어진 것이 여러 개가 있죠. 그때 파주출판단지에 나도 출판사 사옥을 하나 설계했기 때문에 자주 드나들면서 잘 봤거든요. 그러니까는 우선 건축 매체에 소개된 것과 적어도 어떤 이미지를 봐서 ‘이것은 전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게 심증이 가는 작업을 한 38명의 건축가에게 설문을 보냈죠.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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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한국관 커미셔너는 베니스비엔날레 제8회 건축전 운영위원회가 선정했다. 운영위원은 강석원(위원장, 그룹가건축도시연구소 대표), 김한근(한앤김건축 대표, 전 한국건축가협회장), 김인숙(한국여성건축가협회장, 한내엔지니어링 대표), 정기용(기용건축 대표), 김자호(간삼건축 대표), 승효상(이로재건축사무소 대표), 이진배(한국문화예술진흥원 사무총장), 김장실(문화관광부 예술국장), 황일인(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이었다.
2 목천건축아카이브, 최원준, 전봉희, 우동선, 남성택, 『김종성 구술집』, 마티, 2018.
3 ‘인터뷰: 2002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과 커미셔너 김종성’, 「건축문화」 2002년 10월호,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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