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저층 주거지의 전형적인 모습 (©조성원)
알록달록, 우리네 옥상과 지붕의 가능성
전통 건축하면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단청. 현재 우리 도시에서 단청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색채는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다. 바로 옥상과 지붕이다. 위성지도로 보는 우리 도시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다채롭다. 이런 모습이 우리 도시만의 아이덴티티로 작용할 수 있을까?
글 20기 SPACE 학생기자 정민섭, 조성원, 전서영
지붕의 잠재력

서울 후암동 경관 사진 (©정민섭)
티에리 파코는 저서 『지붕, 우주의 문턱』에서 지붕은 단순한 덮개가 아니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지붕은 하늘(우주)과 땅 사이의 경계선으로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지붕에서 사회적 상징성을 찾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다르게 기술 문명과 함께 빠르게 발전한 오늘날의 지붕은 그 의미를 점차 상실하고 있다. 집을 보호하고 완결하는 폐쇄성의 기능은 지속되고 있지만, 하늘과 도시를 향해 소통하는 개방성을 잃었다. 그러나 다시금 지붕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 도시가 상실한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지붕은 더 이상 남겨진 공간이 아닌, 도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로서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
도시의 이미지는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건물의 입면, 골목, 그리고 그 안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건과 경험들은 미시적 이미지로 기억된다. 반면, 도시의 마천루나 언덕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거시적 이미지로 인식된다.
외국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남산의 전망대, 또는 스카이라인을 담고 있는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옥상 및 지붕은 자연스레 인식되는 도시의 요소이다. 이것이 거시적 관점에서 서울의 도시 이미지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서울은 ‘산의 도시’라 불리는 만큼 산자락에 얹혀 있는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서울 시내 저층 주거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131k㎡로 전체 주거지의 41.8%에 달한다.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일부러 높은 곳에 오르지 않더라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옥상과 지붕의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의 지형적, 사회적 특성으로 인해 지붕과 옥상의 풍경이 도시의 아이덴티티로서 작용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회색 슬레이트 지붕, 녹색 우레탄 방수 옥상, 붉고 파란 컬러 강판….
지붕과 옥상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어떻게 도시적 아이덴티티와 연관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과 그에 대조되는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도시들을 비교해보았다. 우선, 서울의 여러 색이 중첩된 무계획적인 지붕 색채 지형과 반대되는, 대대적인 도시 계획을 통해 단일한 색의 지붕을 가지게 된 파리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역사적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파리와는 다르지만 일찍부터 근대적 도시 성장의 과정을 겪으며 그것 만의 특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 미국 뉴욕 시내의 주거지 지붕 풍경을 분석하였다.
두 대도시는 한국 전쟁 이후로 급속히 성장한 서울과는 다른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과 마찬가지로 지붕 색채 지형의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시적 아이덴티티와 지붕 모습의 관계성을 확인시켜준다.
파리는 ‘지붕’을 떠올렸을 때 한 가지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몇 안 되는 도시다. 파리를 상징하는 회색 지붕은19세기 중엽 오스만 남작이 이끈 도시 개조 사업의 결과로, 도시 전체에 단일한 건축 양식을 도입한 중앙 집권적인 도시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스만식 건축에서의 지붕은 규격화된 높이와 재료, 경사도를 따랐으며 이에 따라 파리의 지붕들은 동일한 색채뿐만 아니라 일관된 실루엣을 가지게 되었다. 지붕의 회색 빛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금속인 아연을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경제성과 시공 측면에서 장점을 가져 파리 시 정부에서 사용을 장려하였다.
파리의 위성 사진을 관찰해보면 회색 지붕이 모여 수많은 회색 패턴이 반복되는 일관성 있는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인 모습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 문화로 인해 도시에 규칙적인 미학을 부여하고자 했던 19세기 프랑스 도시 계획자의 관점을 지금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파리의 지붕은 19세기 프랑스의 도시 정책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 증언으로 남아있다.

프랑스 파리 위성사진 (©구글 어스), 회색 지붕은 19세기 중엽 오스만 남작이 이끈 도시 개조 사업의 결과다.
뉴욕 맨해튼의 지붕은 전통을 유지해온 파리와는 또다른 도시의 성격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대규모 이민과 산업화 속에서 급속히 성장한 뉴욕은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건물이 좁고 높은 수직적인 건축 양식을 채택하였다. 뉴욕은 세계 최초의 마천루 도시 중 하나로, 그리드 기반의 효율적인 도시계획 아래 초고층 빌딩들이 도심을 이루며 근대 도시의 전형을 형성했다.
뉴욕은 빠른 도시 성장을 겪었지만, 19세기부터 주거지로 조성된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 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비교적 정돈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규칙적인 그리드형 도로망과 엄격한 개발 정책으로 유사한 건축 재료와 양식을 사용한 영향이다.
맨해튼은 대부분 아파트 형태의 주거지로 이루어져 있어 경사진 지붕보다는 옥상을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옥상의 옅은 회색 빛은 19 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물에는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슬레이트, 20 세기 초 중반 이후에는 경제성이 좋은 아스팔트 글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나타났다.
맨해튼의 위성 사진에는 그리드의 효율적인 도시 조직아래 초고층의 건물을 중심으로 밀집된 모습으로, 파리와 같이 미학적인 속성보다 경제적인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맨해튼 위성사진 (©구글 어스), 효율적인 그리드는 경제적 논리로 인해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졌음을 드러낸다.
파리와 뉴욕의 지붕이 각 도시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서울 만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동네로 후암동이 있다. 남산 자락의 경사지에 위치하여 작은 저층주거지가 많은 후암동은 개항 이후 시가지로 빠르게 개발되고 1930 년대에 대표적인 일본인 주거지로 사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후암동 골목을 걷다 보면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적산가옥과 문화주택 등의 건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후암동에는 아직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지 않아 다양한 색의 지붕을 가진 집들이 많다. 회색 슬레이트 지붕, 녹색 우레탄 방수 옥상, 붉고 파란 컬러 강판, 여러 색채의 아스팔트 글 등 후암동 지붕들은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위성사진 속 후암동은 서로 다른 색과 크기의 지붕이 섞여 있어 여러 조각을 엮어 만든 태피스트리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서울 후암동 위성사진 (©구글 어스), 여러 색을 엮은 태피스트리를 갖게 된 데에는 제도와 연관이 깊다.
서울의 지붕이 이렇게 다양한 색과 재료로 채워지게 된 데는 제도의 궤적이 깊이 얽혀 있다. 서울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 아래 초고속 도시화 과정을 겪었다. 인구는 도심으로 몰렸고, 그에 따라 주택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법은 잦은 개정을 거치며 현실에 뒤따라가는 식으로 반응했고, 그 틈에서 수많은 불법 증축과 보수가 반복되었다. 이에 따라 지붕의 형태와 재료 또한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뒤섞이게 되었다.
1960~80 년대에는 시멘트와 석면을 혼합한 슬레이트 지붕이 주류였고, 1980 년대 이후에는 평지붕의 방수를 위해 초록색 우레탄이 널리 사용되었다. 1990 년대부터는 기존 지붕 위에 컬러 강판을 덧씌우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그 외에도 아스팔트 싱글, 금속 싱글 등 다양한 방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채택되었다.
제도적 맥락 또한 서울의 지붕 풍경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70 년 건축법 제정으로 용적률과 건폐율이 명확히 규정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느슨한 단속과 제한적인 행정으로 인해 단독주택의 다세대·다가구화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건축물은 수직적으로 증축되었고, 그 위에 덧대어진 가벼운 지붕들은 도시의 상층을 불규칙하게 덮었다.
결국 서울의 저층 주거지는 특정한 패턴 없이 다양한 재료와 색채가 혼재된 지붕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로 파리나 뉴욕처럼 통일된 경관을 가진 도시들과 비교하여 서울의 지붕은 비 정형적이고 불균질 하지만, 그 안에는 한국의 급진적인 도시화의 역사와 제도 내에서의 생존 전략이 응축되어 있다.

건축법과 지붕의 상관관계 타임라인 다이어그램 (©정민섭)
서울의 풍경을 두고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정돈되어 있지 못해 어지럽다고 할 테지만, 필요에 따라 덧대기도 하고, 방수를 위해서 초록색으로 칠하기도 한 주거지의 모습은 도시민의 생활이 드러나는 민낯이다.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지붕 풍경은 정돈되지 않은 활력감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뜬금없기도 한 옥상과 지붕의 모습이 굴곡 있는 변화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 서울의 이야기를 더욱 잘 담아내는 풍경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잘 보지 못하는 건물의 정수리 모습에서 도시 생활의 모습과 시간의 단층을 더 내밀히 볼 수 있다. 파리, 뉴욕, 서울 모두 저마다의 역사와 정치,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지붕 풍경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의 성격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머리 위 지붕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이 붉은 빛이든 회색 빛이든 간에 각자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지붕을 기능적 구조물로만 인식하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시지각적 요소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 위 지붕의 풍경을 읽어내는 일은 곧 우리 도시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고민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후암동 지붕 사진 (©조성원)
우리네 도시와 옥상의 가능성
다양한 재료와 색으로 채워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야기를 채워온 모습이 정체성이 되는 우리 도시는 산자락에 도시가 형성된 지형적 특징을 이용하여 정체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기존 독립적으로 완성된 지붕이라는 건축요소가 아닌, 입체적인 지붕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의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도시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참새와 집비둘기, 까치는 물론, 다람쥐, 청설모, 황조롱이, 너구리, 족제비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도심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과 도시 생물은 서로 분리되어 살아간다.
옥상을 인간과 도시 생물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꾼다. 단순히 옥상에 녹지를 조성하는 것을 넘어, 도시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생물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동식물을 수용할 수 있는 유닛을 설치하여, 옥상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든다. 이 유닛들은 생물들에게 서식지가 되어주며, 옥상은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으로 변모한다.
인간은 이렇게 변화한 옥상에서 인공물이 아닌 작은 자연을 마주한다. 옥상은 더 이상 외면당한 공간이 아니다. 이제는 인간과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된다.

지붕 활용 예시 이미지, 생물과의 공존 (©조성원)
건물의 옥상은 지상에서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고, 대체로 오르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공공장소로서의 접근성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옥상을 도시 속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옥상의 공공장소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적인 시각적 경험 중심의 전시회보다는 일상적인 방식으로 예술적 경험에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옥상 공간에 더 적합한 문화 행사라 할 수 있다.
음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은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공간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공 기관이나 복합문화공간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건물의 옥상을 개방형 음악 공간으로 전환한다면 가장 접근성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는 평소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벤치와 그늘을 마련하고,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간단한 악기를 비치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잼 세션이나 지역 음악가의 미니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렇게 조성된 옥상 문화 공간은 도심 속 거리 콘서트장이 되고, 지역 예술가와 시민 사이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촉진할 것이다.
록 벤치와 그늘을 마련하고,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간단한 악기를 비치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잼 세션이나 지역 음악가의 미니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렇게 조성된 옥상 문화 공간은 도심 속 거리 콘서트장이 되고, 지역 예술가와 시민 사이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촉진할 것이다.

지붕 활용 예시 이미지, 문화예술적 경험 (©전서영)
도시화를 경험한 도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과 건물이 점차 빽빽이 밀집되어 갔다. 더 높은 밀도와 프로그램, 땅 위의 유휴공간은 줄어들고, 일상 속 공동체적 순간은 점점 사라져 갔다. 하지만, 기계실이나 물탱크와 같은 설치물을 두어 출입이 제한된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옥상은 도시 속 새로운 레이어로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옥상의 잠재력은 도시의 ‘밀집성’에서 비롯된다. 본래 도시화로 인해 건물과 건물이 가까이 서 있고, 수직적 확장이 반복되었던 도심의 구조가 옥상 간의 ‘연결 가능성’을 열어준다. 옥상과 옥상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곧 지붕 위 커뮤니티로 확장이 가능해진다.
기존 거리와 골목이 사람들을 이어주고 골목이 모이는 광장과 같은 대공간에 사람들이 모였다면, 옥상과 옥상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보행 경로가 생기고 면적이 큰 옥상에서의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도시 위의 또 다른 면을 만들 수 있다. 지붕을 사람에게 열어준다는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고 법, 안전기준, 관리주체 등과 문제로 가로막혀 있는 장애물이 있지만 소규모 지붕 카페, 지붕 영화제와 같은 작고 구체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옥상은 피난용’과 같은 인식을 가지는 현행 건축법과 소방법에 새로운 기준의 제도 차원의 상상력을 점차 가진다면 연결된 옥상은 경계가 느슨해져 어린이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여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고 지속적인 공동체적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붕 활용 예시 이미지, 공동체적 경험 (©정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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