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모습. 왼쪽부터 최종인, 김인철, 이장환.
한국 중소도시에 대한 건축 담론은 중소도시포럼(「SPACE(공간)」 675호 참고) 이전에 서울건축학교(이하 sa)의 여름 워크숍이 있었다.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어 나가기에 앞서 과거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덧 사반세기가 지난 sa 여름 워크숍을 돌아보기 위해 sa의 초기부터 끝까지 튜터로 함께한 건축가 세 분과 차례로 대담을 가졌다. 과거와 지금 중소도시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 당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었나? sa와 여름 워크숍은 역사 속에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 이장환 중소도시포럼 공동대표,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19기 SPACE 학생기자 최종인, 어주희, 서윤지
PART 1. sa와 여름 워크숍의 배경, 그리고 아카데미즘 건축교육의 비판
학생기자: 김인철 선생님께서는 sa 초기부터 함께하셨다고 알고 있다. sa는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설립됐고 선생님께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
김인철: sa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 배경들을 이야기하겠지만 서울건축학교 sa는 4.3그룹의 연속성이라고 본다. 4.3그룹은 14명이 모여 동인 활동을 시작했다. 2년 정도 각자의 건축론을 제시 토론하고 세미나와 국내외 답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12월 4.3그룹전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건축계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가장 많이 나왔던 문제가 우리나라의 건축 교육 시스템에 대한 것, 공대에 속한 이과로서의 교육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과연 이런 교육 방식으로 제대로 된 건축가를 키워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모여 sa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sa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4.3그룹의 비판의식에서 시작이 된 것이고, 그 원인은 기존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건축전문대학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몇 멤버가 튜터로 참여했다. 그러나 sa는 제도권과 거리를 둔 건축교육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장환: 그 당시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이하 경기대)에서도 상당히 진보적 건축가들이 새로운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건축 실험을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대 튜터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분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학교 커리큘럼이 도시보다는 건축의 형식 언어 그 자체에 대한 탐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반면 sa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선생님들이 많았고 도시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맥락에서 sa 여름 워크숍의 시놉시스에는 전반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도시를 바라보며 지역성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두 학교의 차이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닐 테지만, 당시의 방향성이 지금 세대의 건축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4.3그룹 내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4.3그룹이 집단적인 건축 담론으로 매듭지어지지 못한 데에는 태생적으로 건축적 이념이 동질성을 이루는 모임이 아니었던 점도 있다. 4.3그룹 내에 두 흐름이 있었다. 해외 건축계의 ‘팀 X’과 메타볼리즘처럼 우리도 공동의 논리를 만들어보자는 의견과 이 시대에 그런 선언이 과연 적합한가라는 회의적인 견해가 있었다. 그런 점에 차이가 있어서 결론을 만들지 못했다.
학생기자: 기존 아카데미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sa가 출발했다면, 그 당시 건축 교육과 차별화된 sa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4.3그룹 활동 중 가장 중요했던 활동이 4.3 투어였다. 전통건축 답사는 물론 유럽을 시작으로 대학에서 배웠던 서양 건축사를 현장에서 복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유럽 투어가 비유럽권으로 확대되어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에 갔을 때다. 책에서 많이 봤던 곳인데 가까이 가보니 시공 완성도가 수준 이하였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갔을 때 소름이 끼쳤다. 2D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다들 탄식처럼 ‘우리 세대에서는 이런 건축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과정적 세대이니 그다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가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여기서 다음 세대를 만들 교육 이야기가 시작된 셈이다.
우리나라 건축의 1세대 선배들 대부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기능적인 해법이었다. 도면을 하루에 몇 장 그리느냐가 더 중요했던 시대다. 논리적인 고민 같은 것은 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인 불만으로 현장을 떠난 일부는 교수가 되려 했다. 유학해서 학위를 받아 안정적인 자리를 잡는 것이다. 당시의 유학은 세계 건축의 흐름을 파악하는 목적이 아니었던 셈이다. 설계 기술자 양성 정도로 끝나는 커리큘럼과 현학적이고 비현실적인 교육이 문제라고 인식했다. 건축을 공학이 아닌 인문학으로 접근해야 하고, 건축의 설계는 건축가가 주도하는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sa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계 수업을 시작했다. 아마 이런 움직임으로 자극이 된 일부 교수들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느꼈을 것이기에 5년제 과정이 도입되었을 것이다.
이장환: 교수들 사이에 논쟁이 거의 없던 그 당시 대학과 달리—지금이라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웃음)—sa에서는 크리틱 기간에 선생이 제시한 스튜디오 아젠다를 가지고 다른 스튜디오 선생님들과 치열하게 논쟁하고 살벌하게 싸웠던 기억이 난다. 흥미진진했다. (웃음) 사실 선생님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는 건 학생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경험 같지만, 상당히 교육적이기도 하다. 서로 스튜디오의 가장 아픈 지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걸 보면서 각각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하고 다양한 입장들의 지형도를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없었다. 선후배 관계가 공고해서 ‘감히’ 선배가 주장하는 아젠다에 토를 달 수 없는 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인철: 토론은 4.3그룹이 처음 시작했을 것이다. 4.3그룹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정기적으로 멤버의 최근 작업 현장에 모여 그 작업을 크리틱하는 것이었다. 크리틱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예를 들면 이성관의 전쟁기념관은 건축 이전의 문제로 비화하였다. 어떻게 전쟁을 기념할 수 있냐, 정치적 제스처에 건축가가 그렇게 대응해도 되는 거냐, 이런 식의 비평 아닌 비판을 받았다. 직업의식에 충실했던 작가는 억울해 했지만, 열심히 한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봐주지 않았다. (웃음)
이장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축가가 건축물을 짓기 위해 이행해야 할 지침이나 법규 체계가 지금처럼 복잡하거나 빡빡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체계가 느슨하고 빈틈이 많다 보니, 건축가가 주체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기도 하고, 새로운 교육 체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여지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아가 건축가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직능이라는 것을 처음 이야기한 세대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성관 선생님이 생각하는 건축관은 ‘건축가는 주어진 것을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을 가진 것 같다.
김인철: 나는 선배들을 따라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선배에게 배우되 제 생각을 더 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식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 단계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즉 학생이다. 두 번째 단계는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 즉 선생이다. 세 번째 단계는 습득된 지식과 그로부터 깨달은 지혜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단계이다. 배움은 지식을 만드는 단계까지 가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지식인이 얼마나 있을까? 외국에서 수집한 지식을 돌아와서 전달하는 것으로 지식인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것이 제도권의 건축 교육이고, sa가 지향하는 것과의 차이다. 20년 전 sa가 하려 했던 것이 아직 현실에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이장환: 4.3그룹과 동일한 세대인 렘 콜하스는 20대 후반에 코넬대학교로 유학길에 나선다. 그가 코넬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거기에 독일 건축가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렘의 선생인 웅거스는 그 당시 코넬대학교 건축과의 전권을 잡고 있던 콜린 로우와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로우가 사회성이 배제된 건축의 형식 언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반면, 웅거스는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서로 충돌하기 일쑤였다. 렘은 이러한 두 입장 차이가 대단히 흥미로웠다고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다. sa와 경기대의 구도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sa 선생님들은 사회적인 발언을 계속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태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sa 여름 워크숍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김인철: 사회적 발언은 또 다른 트랙이다. sa에 참여한 일부 멤버들은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 새건축사협의회(새건협) 등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했다. 순수하게 건축을 즐기고 싶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밑바탕되어야 한다. 그러나 건축에 관한 사회 통념은 계몽주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건축과 관련한 제도, 관행, 가치관 등을 바로잡는 일은 게을리할 수 없는 우리 건축의 숙명과 같은 과제다.
이장환: 30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자본주의가 더욱 고도화되었고 건축가는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라는 직능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일이 적어졌고, 건축의 주된 담론이 이를테면 형식 언어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건축 잡지를 보면 세련된 건축은 많지만,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논의가 있지 않았나?
김인철: 4.3그룹이 sa로 연결되면서 제2, 제3의 4.3그룹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나는 1947년생인데 해방 이후 태어나긴 했지만, 전쟁으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자랐고 한국이 OECD 국가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커왔다. 건축의 시간으로 보면 내 경력이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와 같다. 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진화의 각 단계는 생략할 수 없으나 각 단계를 수행하는 시간은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압축성장이 노력으로 가능했었지만, 과정의 생략에서 비롯된 몰이해와 오해로 직능의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창작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 가지고 있는 불만 중 하나가 작가의 자질을 인정받아 대학에 들어간 건축가들이 재래의 아카데미즘에 흡수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작가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안주하려는 그것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기대하는 것은 몇몇 희망이 보여서다.

인터뷰 모습. 왼쪽부터 서윤지, 최종인, 김인철, 이장환.
PART 2. sa 여름 워크숍, 그 당시의 이야기
학생기자: sa 정규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진행됐던 여름 워크숍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지역 선정 및 튜터와 학생의 구성, 워크숍 진행 과정,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김인철: 여름 워크숍의 목적 자체는 정규 프로그램에서만 논의하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오픈해서 새로운 담론의 형성과 새로운 건축가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대상지 선정은 주로 장소적인 이슈가 있는 곳이거나, 요청이 온 지역을 위주로 이뤄졌다. 그렇게 워크숍의 주제와 장소가 정해지면, 튜터와 스튜디오를 구성해서 공고하고, 지원자들이 스튜디오를 선택하도록 했다. 전체 인원이 구성되면 본격적인 워크숍에 앞서 스튜디오별로 사전 답사도 다녀오고, 온라인 채팅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간 현장에서 합숙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었다. 스튜디오 작업과 병행해 튜터들, 또는 워크숍의 주제와 관련된 인사의 특강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결과물이 나오면, 모든 튜터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스튜디오의 발표하고 서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때로는 현장의 결과물이 미흡하면 스튜디오별 추가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리포트를 제작하거나 전시회를 하는 일도 있었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이 다양한 중소도시에서 여러 차례 진행됐는데, 대체로 중소도시에 대해 어떤 관점과 접근 방식을 취했는지 궁금하다. 여러 번의 워크숍에서 공통된 흐름을 뽑아낼 수 있는가?
김인철: sa 여름 워크숍에서 중소도시를 바라봤던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도시가 형성된 역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특성, 혹은 지정학적 의미다. 단순히 분석만 하는 그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두 가지를 합쳤을 때 어떤 미래의 가능성이 있을지 탐구했다. 여기서 일관된 흐름을 찾는다면 지역성, 그리고 도시를 구성하는 방법론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시도이다. 그 도시의 지역성을 단정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각 스튜디오의 다양한 관점을 확인해 공통 분모를 추출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도시와 건축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을 공통으로 추구하지 않았나 싶다.
이장환: 4.3그룹 활동 시기에 4.3 투어로 인도 여행을 가셨다가 인도의 근대 건축가들이 인도의 지역성과 풍토를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3그룹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sa의 여름 워크숍 아젠다에 그러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처음에는 인도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들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서 본 그의 작업들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던 ‘문화 이식’에 가까웠다. 유럽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자신의 건축 언어를 그대로 갖다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 점에서 감동이 아닌 비판적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인도 근대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인도 여행 이후에도 남미, 아프리카 등 현대건축 변방의 건축을 보면서 지역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앞에서 말한 sa 여름 워크숍의 중소도시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의 공통된 흐름과는 별개로, 선생님께서 당시 중소도시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궁금하다.
김인철: 여러 지역을 가보면 각각 다른 조건을 가졌음에도 그 모습이 전부 비슷하다. 강원도 양구의 도시 풍경이나, 충청도 강경의 그것이나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조건에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지방의 모든 도시가 서울만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a 여름 워크숍을 하던 당시에는 지역의 개성, 즉 지역성이라는 것에 관심 자체가 없는 분위기였다. 자료 조사를 위해 현지인, 공무원과 대화를 나눠보면 워크숍의 의도부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건축 문화에 대한 집단 지성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영향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건축 전공자가 되기 전까지 건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건축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며,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건축가가 건축이 어떻고, 지역성이 어떻고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이장환: 말씀하신 당시 분위기와 다르게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성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지역성을 논의하는 단체가 거의 없었는데, sa 여름 워크숍이 이러한 담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워크숍을 진행하며 선생님을 포함한 몇 분께서 우리나라 중소도시에서는 지역성이란 것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 배경에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내용이 기억난다. 그런 이유에서 지역성을 건물이 아니라 오히려 땅의 형상에서 찾으려 했던 것인가? 그리고 워크숍 포스터나 제목에서 'OO의 한국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왜 수도 서울이 아닌 중소도시에서 ‘한국성'을 전면에 내세운 건지도 궁금하다.
김인철: 역사와 풍토로부터 우리 건축의 필연성을 추출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한국성’일 텐데, 그것이 무엇인가 찾아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어느 지역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 예컨대 이 지역이 그렇게 개발되어야 했던 역사는 어떠했는지, 그 바탕이 된 풍토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 사이에 무엇인가 필연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스튜디오별로 화두를 꺼내 탐구했다. 이것이 sa에서 시도했던 한국성을 찾는 방법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한 시도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 전개하기에 서울은 너무 컸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끌어 모으자는 작정으로 중소도시에 주목한 것이다.
한국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견을 더하자면, 나는 땅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풍수’에서 풀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풍수는 미신이 아니라 전통 시대에 운용된 집을 짓는 지침이자 터를 잡는 토지이용 방법론이었을 것이다. 땅을 읽고 공간을 일구는 것이 건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축가들의 그것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성에 대해 누구나 동의하는 대표성을 찾으려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특정한 정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하나의 ‘한국성’으로 규정되어 모든 한국 건축가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성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모인 큰 그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려질 것이다.
이장환: 가까운 일본과 비교했을 때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사실 일본과 한국의 위도가 겹치기 때문에 기후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자연 재료와 적정 기술을 활용한 풍토 건축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러한 풍토 건축을 '일본성'이라 이름 붙여 세계 건축 담론의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김인철: 우선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풍토는 전혀 다르다. 지각이 융기된 정도가 다르고 기후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건축은 땅의 조건에 따라 구축 방식이 달라진다. 일본은 지진에 견디기 위해 부재들의 결합을 확실하게 맞춰야 했고, 변형이 없는 삼나무를 사용해서 직선적인 구조를 발전시켰다. 반면 지진의 위협이 덜한 우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를 주재로 사용했는데, 소나무는 변형이 심하기에 적당히 맞추는 대응 방식으로 발달했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지리적 조건의 차이점은 사회적 측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본은 지형이 험해 봉건제가 가능했으므로 지역 세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반면, 우리는 완만한 지형으로 독자적인 지방색이 성립될 수 없었다. 이는 현대건축으로 넘어와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일본 건축가들은 자기 고향에서 성공한 뒤 중앙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 지역의 건축가를 키워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모든 건축가가 서울로 와서 시작하고, 지방으로 내려갈 때는 ‘낙향’이라는 표현을 쓴다. 결론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지리적인 풍토와 사회적 분위기는 엄연히 다르고, 그것이 건축에 만들어낸 차이 또한 분명하다고 본다.
이장환: 같은 맥락에서 일본 전통 가옥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본 전통건축의 입단면을 보면 여러 겹이 덧붙여지는 방식으로 내외부의 관계가 중재된다. 즉 하나의 벽이 아니라 여러 켜의 덧문(아마도, あまど), 미닫이 문(쇼우지, しょうじ), 차양(히사시, ひさし), 툇마루(엔가와, えんがわ )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전통건축도 여러 겹의 겹창(쌍창, 영창, 사창, 갑창)들과 툇마루, 차양, 눈썹지붕 등이 중첩되는 방식으로 내외부 간 공간을 중재한다. 그러니까 한국 전통건축에도 있는 요소들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김인철: 일본 건축은 켜가 중첩되어 내부 공간에 깊이가 있고 부피가 있다. 그에 비해 홑겹인 한국 건축의 공간은 얇고 가볍다. 여기서 말한 공간은 서구적 개념의 공간을 말한다. 왜 그럴까? 이 또한 땅의 조건 때문이다. 일본의 공간은 켜를 겹쳐 연속된 틀을 이루므로 지진에 흔들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풍토가 만들어낸 공간 구성 방식인 것이다. 조적조에 기반하는 서구의 관습에서 보면 일본의 공간은 이국적인 감각으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간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의 공간은 서구의 개념으로 논할 수 없다. 한국의 공간은 땅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우리의 공간 개념에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땅의 공간에 건축의 공간이 어떻게 결합하는가로 공간성을 이해해야 한다. 겹겹이 이어지는 땅의 지세처럼 우리 공간은 영역의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결국 땅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로 공간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공간은 ‘빈 공(空)’이 아니라 ‘함께 공(共)’을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공간은 땅과 건축이 함께 되는 것이다. 자연의 공간과 인공의 공간이 하나가 된 것이 우리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PART 3. sa 여름 워크숍, 그 이후의 이야기
학생기자: sa와 여름 워크숍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선생님의 건축관, 혹은 개인적인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도시의 풍경을 구성하는 건축의 자세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건축은 사유재이지만 태생적으로 공공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2019년부터 2년간 부산시 총괄건축가를 하면서 공무원들과 개발자들을 설득하는 주제는 그것이었다. 총괄건축가를 보좌하는 건축직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은 법규, 구조, 설비, 에너지 등 물리적인 조건들에만 집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건축의 화학적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다. 화학적 결과란 건축으로 거리가 변하고, 거리의 변화로 시민들이 새로운 경험하게 되며, 그래서 하나의 장소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효과를 의미한다.
학생기자: 당시 여름 워크숍에서 논의됐던 중소도시 담론이 실제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건축/사회/문화적 측면에서 sa와 여름 워크숍이 거둔 성과를 평가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인철: 모범적인 사례는 영주시와 파주시의 경우일 것이다. 공모전을 개최하면 응모 참여율이 제일 높다.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적확하게 기획하고 공정하게 심사하며 좋은 건축을 생산하고 있기에 지역성에 대한 다양한 건축적 시도가 이뤄졌다. 그 결과 주민의 자부심도 많이 높아졌다고 들었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 이후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중소도시의 건축과 도시 구조에 대해서 당시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건물이 아닌 건축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부산의 경우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등에서도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건물을 건설이 아닌 건축 행위의 결과라는 주제로 초점이 옮겨가는 징후들이 보여 희망을 느꼈다. 사실 건축을 생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올바른 작동은 건축가만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 지리, 경제, 정치 등을 망라하는 총체적이고 집단적인 문제까지 겹치는 것이다. 문화와 사회 등 외적인 요소들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이 건축이므로 어느 한순간에 모든 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어 답답할 뿐이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에서 제시했던 중소도시에 대한 도시 및 건축 방법론, 그리고 지역성과 같은 개념들이 현재의 중소도시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중소도시만이 갖는 고유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주민과 행정가들 사이에 어떤 문화적 풍경을 생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우이독경이 된다. 건축가가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그곳의 사람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공감해 주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럽 도시들을 근사하다고 하는 것은 그 도시가 만들고 있는 풍경 때문이다. 그것은 ‘이렇게 만들자’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감하는 가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지역의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건축가를 선정한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환경과 사람, 역사와 문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건축이 도시를 이루고 도시가 고유의 문화적인 풍경을 이루는 과정에 주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생기자: sa에 학생으로 참여했던 이장환 소장님은 2021년부터 ‘중소도시포럼’을 만들어 인구 감소, 고령화, 옅어진 농도, 천공 현상, 덧대기 건축 등 현시대의 중소도시가 마주한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중소도시 담론이 sa 여름 워크숍 당시와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무엇일지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김인철: 시대와 환경이 확실히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한국에 큰 기대를 하게 되었는데, 막상 한국의 풍경을 보면 전부 복사-붙여 넣기 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건축과 도시가 시대 환경이 변했음에도 전통성과 지역성이라는 원천적 문제조차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성은 이것이고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이것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문제다. 두 번째는 현대성의 문제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현대건축은 이미 보편적 방법이 되었는데 우리는 아직 그 보편적 가치에서 고유성을 주장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중소도시부터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이장환과 같은 움직임이 더욱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이장환: 현재 중소도시에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다 보니 그곳에서 다양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빈집이 넘쳐나고, 재건축되지 못한 30~40년 된 노후 건물들에서는 누수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존 지붕 위에 새로운 지붕을 덧붙이는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건물 소유주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덧대기 지붕’이 도시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넘어 전국 모든 중소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소도시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덧대기 지붕은 용적률과 건폐율을 초과하기 때문에 대부분 불법이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풍경을 공식적 틀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이 맞을까? 이러한 비공식적 현상을 긍정하고 그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 있지는 않을까?
김인철: sa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주변에 새로운 건축가가 보이면 불러서 sa의 모든 사람이 학생들과 같이 특강을 듣는 것이었다. 한번은 김광수(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가 특강을 했는데, 강연의 내용이 내부 순환도로가 생기면서 도시의 풍경을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성 건축가로 도시 변두리에 세워지는 몰개성한 상업 건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김광수는 고가도로에서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그라운드 레벨에서 보았던 도시를 고가도로의 레벨로 인해 다르게 보는 관점을 제시한 거다. 이미 변해버린 도시의 풍경을 하나의 기본값으로 보고 새로운 시각에서 도시의 풍경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 시대가 바뀌면 시각도 같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현상을 새로움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도시와 건축의 본질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기자: 끝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현재의 중소도시가 마주한 도시 및 건축적 과제, 그리고 앞으로 가져야 할 방향성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김인철: 건축은 건축가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 요구로 만들어지는 일반적이기 때문에 모든 건물이 건축가의 작업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사회의 변화로 새로운 유형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건축가들은 앞서서 해법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회적 변화로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블록의 밀도를 높여야 할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 등 이전에 없던 유형이 나타났다. 이때 기본이 될 수 있는 모델을 건축가가 앞서서 제안해야 했다. 시대의 변화를 뒤따라가는 수동적 처방이 아니라 예측하고 준비하는 능동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빈집이 발생하는 문제도 공공과 전문가 영역에서 방안을 제안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지역의 도시와 건축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경험상 문제의 해결은 결정권자 또는 집행 조직이 어떤 지성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결과의 수준이 결정된다. 도시와 건축에 대해 지역 주민의 집단 지성이 함양되어야 전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길 것인데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막막할 뿐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역을 베이스로 하는 건축가가 양성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와 시 단위에서 군과 면 단위까지 확산이 되어야 하고, 단기가 아니라 그 지역에 계속 머무르면서 활동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방분권은 건축계 역시 비껴갈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 아닐까 한다. 이왕 총괄건축가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면 지역 건축가 양성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이 낡은 건물의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도시를 리모델링하고 지역의 풍경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건축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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