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7월호 (통권 692호)

라신 빈 샤빕 등의 ‘마나메 파빌리온’/©Marco Zorzanello
<지성: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 2025 베니스비엔날레 | 주제전
2025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총감독 카를로 라티가 내건 주제는 ‘지성: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이다. 자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원시 오두막’의 건축이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이하며 이를 ‘완화(mitigation)’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환경 위기가 모두의 의제가 된 지금, 건축은 이제 환경에 ‘적응(adaptation)’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설계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설계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크게 ‘자연 지능’, ‘인공 지능’, ‘집단 지능’으로 나누어 소개하면서, 건축을 중심에 둔 낙관주의와 세대, 학문, 업역을 두루 아우르는 협업을 강조했다. 이같은 포용적인 태도는 전시작뿐 아니라 큐레토리얼 방법과 실천 전반에도 드러난다. 라티는 오픈콜로 750여 명의 참가자, 300여 개에 달하는 작품으로 주제전을 꾸리고, 건축구조 회사 아룹 등과 함께 비엔날레의 지속성을 위한 순환 경제 선언문을 작성했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디자인, 영화 등 다분야 인사들이 참여하는 토크 프로그램 ‘GENS’도 선보인다. 건축가가 아닌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에게 평생공로상이 돌아간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주제전을 보며 떠오른 질문들을 따라가보자.

에밀리 에즈케로, 찰스 킴 등의 ‘SpaceSuits.Us: 초경량 조정을 위한 사례’/ ©Luca Capuano
하나, 왜 도나 해러웨이인가?
이번 비엔날레에는 건축가뿐 아니라 디제이, 셰프, 노벨상 수상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분야 간 경계 해체를 지향했는데, 이러한 사고법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바로 해러웨이다. ‘실뜨기 놀이’로 설명되는 해러웨이 사고법은 생물학과 기술과학, 페미니즘을 이리저리 꼬고 가로지르며 유희적인 상상력으로 그 사이를 돌파한다. 1985년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문’이 대표적으로 사이보그는 자연/문화, 유기체/기계, 인간/비인간 이분법을 내파한 포스트휴먼 개념이다. 과학을 혐오하지도 물신화하지도 않으면서 인간도, 기계도, 동물도 아닌 존재에 주목하며 한쪽의 영역이 더 이상 반대쪽을 정의할 수 없음을 언어로 풀이한다. 라티가 디렉터로 있는 MIT 센서블 시티 랩 또한 초학문적(omni-disciplinary) 사고를 지향하는데 이는 학문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에서 멈추지 않고, 각 분야가 구분을 무화하고 이를 넘어서서 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황금사자상을 받은 ‘운하 카페’도 이러한 사고와 겹치는 지점이 있다. 2008 베니스비엔날레를 위해 구상됐다가 여건상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던 작업으로, 건축가, 2008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셰프 등의 협업으로 베니스의 석호수를 정화해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만든다. 과거와 현재, 건축가와 셰프, 자연과 인간 등을 설계 과정에서 연결 지은 것은 물론, 대화 속 농담으로 시작했을 것만 같은 유쾌함은 과거의 미래 상상력에 기반한 복고 미래주의적 작업과도 대별된다. 다만, 해러웨이의 ‘사이보그’가 특정 존재를 위한 개념이 아님을 상기했을 때, ‘운하 카페’는 여전히 인간을 위한 작업이라는 사실이 묵직하게 남는다. 물리적 형태와 인간 중심 사상을 벗어나기 어려운 건축‘물’의 매체적 한계가 자각되는 순간이다.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 등의 ‘오래된 미래’ / ©Andrea Avezzù
둘, 전시에서 오픈콜은 유효한가?
오픈콜은 열린 네트워크형 구조다. 집단 지성을 실현하고 권위적인 큐레이션에서 탈피하며 건축 전시를 네트워크 기반으로 조직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IVAAIU 시티, 행림건축사사무소,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등 과거에 비해 다수의 한국 팀이 참여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많은 비평가들에게 큐레이토리얼의 부재를 지적받았다. 주제는 넓고, 작업은 많고, 선별은 미약했다. 그 주요 근거로 과도한 관람 시간이 꼽히는데 결국 이는 섹션과 섹션 간, 작업과 작업 간의 연결점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각 작업을 면밀히 살피기 힘든 환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해석자들이 ‘집단 지능’을 모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개별 작업이 다분야의 협업으로 이뤄져 실현가능성에 한발짝 가닿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례로 IVAAIU 시티의 ‘달의 방주’는 달에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며,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달의 환경에 적합한 재료와 유닛 크기 등 로봇 건설 시스템, 레이저 데이터 통신 시스템까지 고안한 구체적인 작업이다. 이처럼 네트워크형 구조는 큐레토리얼의 결과보다는 각 작업의 퀄리티와 해당 구조로 참여자들을 모집했다는 방법론 그 자체에 보다 의의가 있겠다.

위안펑, 허빈의 ‘협력적 창조’ / ©Luca Capuano
셋, 건축의 낙관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전시장에서 주요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것은 로봇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관람자의 행동에 반응해 같은 행동 혹은 은유적으로 전유된 춤을 추거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과 연관한 작업들에서 주로 드는 인상은 기술적 낙관주의다. 기술은 라티의 MIT 센서블 시티 랩이 추구하는 오픈소스 툴과 같이 민주화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이번 비엔날레의 스펙터클을 형성하는 몇몇 전시작들은 기술의 ‘발전’이 개발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수반한다는 필연적 사실을 뒤편으로 물림으로써 미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특히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 등이 참여한 ‘오래된 미래’는 부탄의 장인과 로봇이 6m 길이의 나무 기둥을 함께 조각하고 다듬는, “인간의 창의성과 기계의 정밀함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업이다. 그러나 땀을 훔치는 인간과 무한히 규칙적인 속도로 일하고 있는 로봇 팔이 서로 등을 지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건 프레카리아트(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고숙련 저임금 노동자’ 또한 곧 실직자가 될 것이라는 미래다. 로봇이 ‘특정’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계급 차별적 암시가 지극히 무심한 태도로 비춰진다. 한편, 진보된 기술로 자연친화적 재료를 개발하거나 폐기물이 될 수도 있었던 재료를 재사용하는 작업들도 있었다. 기술과 건축의 조합에 기반한 작업이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창조와 재사용 등 다양한 영역과 태도를 오가는 가운데 오히려 눈에 들어온 것은 시민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도시 질서에 주목한 토신 오시노워의 작업이다. ‘대안적 어바니즘: 라고스의 자기조직화된 시장’은 건축가를 해결사가 아닌 중재자로 위치시키고, 미래를 예측 가능한 대상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관계 맺기의 결과로 본다.

그라마치오 쾰러 리서치, 메시, 아르민 린케 스튜디오의 ‘로봇의 꿈’ / ©Andrea Avezzù
넷, 건축 비엔날레에서 환경을 논하는 것이 적합한가?
마지막 질문은 가장 거대하고 원론적이며 미세먼지 수치가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매우 좋음’이고, 남극의 빙하가 다시 얼 때까지 계속될 질문이다. 건축 비엔날레가 많은 폐기물을 생산한다는 직시 이후, 재생 가능한 재료, 해체 가능한 유닛이 고안되기는 했지만 가장 정확하고 간단한 해결책은 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베니스비엔날레는 단순 전시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베니스라는 도시의 관광 산업, 쇼 비즈니스 사업, 건축계의 네트워크 형성과 밀접히 닿아 있다. 라티는 건축, 정치, 산업 등으로 조직화된, 이미 시작되어 멈출 수 없는 비엔날레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현실의 바닥에서 할 수 있는 바를 행한다. 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을 수신자로 한 ‘순환 경제 선언문’에서는 “작업의 전체 무게 기준 최소 50%는 재생 자원, 그 이상의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 “사람과 자연에게 해로운 유해, 독극 물질 금지”와 같은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나 이를 성문화했기에 다음과 다른 비엔날레에도 유효할 것 같다. 또한 최근 발렌시아 홍수를 겪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장과 함께 ‘지성: 적응의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일반인들에게 서명을 요청하며, 환경에 대한 건축의 담론을 베니스와 건축계를 넘어 알리고자 했다. 여기서 라티는 환경 위기 앞에서 건축을 체념 혹은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기후, 기술, 사회적 변화로부터 배우고 적응하자고 말한다. 포기와 적응, 발전이라는 일련의 스펙트럼 안에서 라티는 무엇이라도 하는 쪽의 편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환경 위기라는 현실 앞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이에 따라 이번 비엔날레와 개별 전시작, 그리고 비엔날레 산업에 대한 개개인의 평 또한 달라질 것이다.

IVAAIU 시티의 ‘달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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