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7월호 (통권 692호)

트렌스솔라, 빌게 코바스 등의 ‘이용약관’

황금사자상 수상작.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아론 베츠키, 다비드 올다니 등의 ‘운하 카페’
<지성: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 2025 베니스비엔날레 | 주제전
총감독 카를로 라티의 행보에서 읽히는 것은 어떤 포부다. 오픈콜로 역대 최대인 750명의 작가를 모으는가 하면, 주제는 자연, 인공, 집단을 포괄한다.
여기에 각 섹션을 모듈형이자 프랙털 구조의 공간으로 구상해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많은 작업 수, 광범위한 주제, 열린 전시 구성으로 관람객들은 자칫하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지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주제, 섹션, 주요 작업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내 친절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더불어 기자 박지윤은 주제와 큐레토리얼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던지며 건축과 타 분야의 연결을 강조한 라티의 주제와 연관해 전시가 그은 건축의 경계선을 가늠케 한다.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건축계 인사들의 코멘트까지 읽고 나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라티의 큐레토리얼은 포용적인 것인가, 미약한 것인가.

은사자상 수상작. 케이트 크로포드, 블라댄 조들러의 ‘제국을 셈하기: 1500년 이후 기술과 권력의 계보’ / ©Luca Capuano
2025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전 〈지성: 자연적. 인공적. 집단적.〉은 이례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자르디니 중앙관 리노베이션으로 전시 내용 대부분이 아르세날레에만 집약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다소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고밀도의 전시가 연출되었고, 이는 자원이 한정된 지구가 처한 ‘총체적 난국’을 아이러니하게 은유한다.
총감독을 맡은 카를로 라티는 전 지구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로 건축의 긴급성을 소환했다. 건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자연과 인공, 공동체를 엮는 직능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제언이다.
라티는 MIT 센서블 시티 랩의 디렉터로 ‘오픈 소스 건축’을 주장해왔다. 건축을 단일한 영웅주의나 조형적 산물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고, 정보의 중개자로서 건축이 어떻게 각기 다른 지식을 연결하고 대화를 이끌어내는지에 관심을 둔다. 이번 전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건축, 예술, 기후학, 농업, 컴퓨터 공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실무자들이 초대됐고,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오픈콜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존의 약 10배인 75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300여 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데, 이들은 마치 건축이라는 ‘지능’을 이루는 신경 관계망의 먹잇감이 된 듯하다.
아르세날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환풍기의 폐열이 관객을 뜨겁게 맞이하기 때문이다. 실내 공간을 냉각하기 위해 밖으로 내뿜는 열의 방향을 뒤집은 트랜스솔라, 빌게 코바스 등의 ‘이용약관’이란 작업이다. 건축의 안과 밖이 지구적 기후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음을 전시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건축의 원죄에 대해 전시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을까?

특별언급상 수상작. 분섬 프렘타다의 ‘코끼리 채플’ / ©Marco Zorzanello
도입부를 제외하면 전시는 다섯 개 파트로 구성됐다. 먼저 비엔날레가 내세우는 대주제인 ‘자연 지능(Natural Intelligence)’,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세 파트와, 에필로그 성격을 지닌 지구환경의 행성적 이해를 도모하는 지구 ‘바깥(Out)’, 그리고 야외 공간에 설치된 ‘리빙 랩(Living Lab)’이다.
먼저 첫 번째 지능 ‘자연’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을 선두에 두고 자연을 건축의 소재나 배경이 아니라 적극적 행위자로 다시 관계를 설정한다. 태국 건축가 분섬 프렘타다의 ‘코끼리 채플’은 코끼리 배설물로 만든 벽돌을 사용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오랜 공존의 역사를 구조물로 드러낸 작업이다. 건축 재료에 대한 윤리적 질문과 장소를 기반으로 한 고유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스튜디오 강의 ‘베니스의 살아 있는 질서’는 베니스의 박쥐, 새, 벌 등 야생동물을 위한 서식지를 도시 구조물과 결합하면서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구마 겐고를 주축으로 한 ‘도미노 3.0: 살아 있는 구조’는 일본 전통 목재 건축 기법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불규칙한 목재를 구조적 요소로 변환하는 실험이다. 자연과 기술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생태적 건축의 한 면모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스테파노 카포롱고, 콘스탄틴 노보세로브 등이 참여한 ‘재료 은행: 물질이 감각을 만든다’는 바나나 섬유, 바이오 콘크리트, 그래핀 등 지속 가능한 건축 재료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생태계와 생물의 패턴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주거 형태와 자연 지능을 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준다.

특별언급상 수상작. 토신 오시노워의 ‘대안적 어바니즘: 라고스의 자기조직화된 시장’ / ©Andrea Avezzù
두 번째 지능 ‘인공’은 AI의 생성 모델과 로봇이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시대에 건축이란 직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케이트 크로포드와 블라댄 조들러의 ‘제국을 셈하기: 1500년 이후 기술과 권력의 계보’의 거대한 다이어그램이 공간의 주축을 이룬다. 기술이 어떻게 식민주의와 군사화를 돕고 자본주의를 수호하며 감시체계를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관계망을 시각화하는 이 작업은 건축이 전제하는 기술, 자본, 권력의 틀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체하고 재조직화한다. 루이스 오르테가 등이 참여한 ‘재활용하는 지능’의 경우 인공지능 모델 GAN을 훈련시켜 지속 가능하고, 접근성이 좋으며 포용적인 공동주거 공모전을 위한 제안 370개를 생성했다. 그림쇼 아키텍츠와 호주 아룹이 협력한 ‘데이터 센터와 도시’는 AI가 가속하는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환적 접근 방식을 탐구한다. 폐열을 주거용 난방으로, 폐수를 냉각 시스템에 재사용해 데이터 센터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을 제시한다.
세 번째 지능 ‘집단’은 매우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와 대화하는 도시적 집단 지성에 대해 말한다. 나이지리아 건축가 토신 오시노워의 ‘대안적 어바니즘: 라고스의 자기조직화된 시장’은 지구 북반구의 폐기물이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되는 순환 경제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라고스 카타구아 시장에서 제작된 재활용된 데님으로 만든 지도였다. 나이지리아는 지난 20년간 700% 떨어진 환율로 한 사람이 하루 2달러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며, 성장 중심의 전통적인 도시계획 방법론이 통하지 않고 상향적 구조들과 사람이 움직이는 소프트 파워만이 도시를 작동시킨다고 한다. 오시노워는 아프리카의 경제적 결핍을 이미지화하는 관음증적 시선을 거부하고, 라고스에서 하듯 세계가 어떻게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do more with less)’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텍스타일, 자동차, 컴퓨터 부품 등이 어떻게 다시 사용되고, 고쳐서 되파는 경제가 어떻게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지, 또한 주변의 거주지역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순환 경제의 논리 속에서 유기적으로 ‘적응’하는지 자세히 안내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업이 라티가 전시 초입에 도발한 지구적 불평등의 끝단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당연히 높은 상을 탈 것이라 예상했는데, 특별언급상 정도에 머물렀다. 샤론 프린스, 첼시 대처의 ‘자유를 위한 디자인’도 같은 맥락에서 간단한 설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낸다. 건축자재 공급망에서의 강제 노동과 아동착취 문제를 구체적인 증거들과 데이터로 시각화하며 건축 산업 내 근본적인 인권 문제를 꼬집는다.

스튜디오 강의 ‘베니스의 살아 있는 질서’ / ©Marco Zorzanello
아르세날레 실내 전시의 마지막 부분의 지구 ‘바깥’은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 행성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제한적인 자원을 가진 지구 밖에서의 삶을 상상한다는 것이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지구가 처한 문제의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 즉 우주 정복이라는 제국주의적 방향성에 있어서는 전시의 다른 파트의 주장과는 상충하는 면이 있다. 지구 너머 달과 화성에도 계속 쓰레기를 만들어내자는 말인가? 물론 지구를 행성으로 인지하고 분석하며 우주적 대안을 찾는 방법은 유용할 수 있다. 에밀리 에즈케로, 찰스 킴 등이 제안한 ‘SpaceSuits.Us: 초경량 조정을 위한 사례’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복 소재를 활용해 낡은 도시 주택에 초경량 단열/열 반사 옷을 입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에드와르도 카스티요-비누에사와 루이자 크로스만의 ‘기후 프리미엄 0.5’는 AI 기상 예측 기술, 구름 씨앗이나 인공 비와 같은 대기간섭 기술의 상호작용, 또 날씨파생상품 등 하늘의 금융화를 시뮬레이션한다. 작가들이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레시던시 기간 중 개발한 작업이다. 주제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전자 음악의 거장 장미셸-자르 등이 무반향실을 조성해 오직 사운드로만 도시를 상상하게 하는 ‘옥시빌’도 인상적이다.
전시 말미의 야외 공간에 조성된 ‘리빙 랩’은 비엔날레를 구실 삼아 도시 자체를 실험한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아론 베츠키, 다비드 올다니 등이 함께한 ‘운하 카페’는 베니스의 염분 섞인 석호수를 정화해 에스프레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습지가 자연적으로 여과하는 과정을 박테리아와 역삼투화 등으로 가속하는 방식이다. 바다의 조수에 의지해 대부분의 생활 오수를 방류하는 베니스의 폐류 처리 방식은 급증하는 관광객과 기후변화로 도시 생태계를 위협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혼탁한 이 도시의 물이 팬데믹 동안 얼마나 깨끗해졌었는지. 돌고래가 출몰할 정도로 말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 에스프레소 바는 물을 활용해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가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서 선보인 ‘블러 빌딩’을 떠오르게 한다. 그들이 꾸준히 제시하는 건축의 경계 넘기는 이제 베니스의 맛이 담긴 ‘이탈리아 최고의 에스프레소’가 되어 우리 몸속까지 침투한다.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20년 묵은 것이라 하니 그 연관성이 더 뚜렷하다. 오랜 노력의 성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에스프레소 바 인근에는 노먼 포스터가 포르쉐와 함께 개발한 ‘베니스 수로를 향한 게이트웨이’가 곤돌라와 바포레토를 대신할 제로배출 자전거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라신 빈 샤빕 등의 ‘마나메 파빌리온’도 주목할 만하다. 걸프 지역의 전통 건축 마나메(manameh )에서 배운 열린 캐노피와 윈드타워를 활용해 그늘과 공기 순환을 유도하는 작업이다.

노만 포스터, 포르쉐 등의 ‘베니스 수로를 향한 게이트웨이’
이번 비엔날레는 건축을 어떤 형상이나 솔루션의 도구로 축소하지 않고, 다양한 지능 체 계의 관계 속에서 다시 위치시키려 했다. 건축이 인간 이외의 존재와 어떻게 공존하고 기술-자본-정치의 그물망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내용과 함께 방법론에서도 ‘순환 경제 선언문’을 통해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룹, 앨런 맥아더 재단과 함께 마련한 이 선언은 단순한 재료 활용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디자인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비엔날레 참여작이 공유하는 윤리적인 지향점을 설정했다.
하지만 네크워크를 기반으로 한 건축을 소개함에 있어 컴퓨터가 아닌 인간 관객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친절한 가이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느슨한 개념적 틀 속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엮여 있고, 서로 간의 관계성을 파악하기에는 정보량이 너무 많다. 나름 챗GPT가 축약한 버전의 글을 같이 두기도 했지만, 기계적인 ‘일괄 적용’은 결국 그 수많은 프로젝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오히려 마주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주제라는 양적 공세가 주는 긴급성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픈콜로 모인 아이디어들은 전시 공간 구석에 즐비한 패널들로 디스플레이되어 데이터적 수치와 키워드 외에 전시 내용으로써 감응을 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공간의 중심에서 스펙터클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작업은 자주 소환되는 유명 건축가 혹은 학자들의 것이었고, 이국적인 특정 전통의 노동을 퍼포밍하거나, 거대한 데이터로 압도하던가, 어딘가 부실해 보이는 로봇들이 애쓰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남는다. 라티가 주장하는 ‘지능’으로서의 건축이 가리키는 바는, 결국 기술적 진보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서라도 인간과 인간 너머의 존재들이 긴밀하게 연루된 공동체를 촉발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게 아닐까? 진정으로 서로를 감각하고, 소통하며, 가치를 나눌 수 있는가? 건축이 전통적으로 의지하던 자본과 권력이 고갈되는 자원의 한계 속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삶을 연명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때가 돼버렸다.
도나 해러웨이는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관점이 아니라, 더 나은 동행자”라고.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한 2025 베니스비엔날레는 위기의 시대에 건축이 선택해야 할 동행의 방식과 감각을 설계하는 일에 대해 불완전하지만, 가치 있는 제안을 던진다. 전쟁과 불평등, 온난화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복잡해질수록, 건축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구와, 어떻게, 어떤 지구를 만들 것인가?

구마 겐고 등의 ‘도미노 3.0: 살아 있는 구조’ / ©Marco Zorzanello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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