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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 중소도시포럼] 경주를 다시 보다: 초국적 도시의 탄생

글
19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윤예림 기자
지원
중소도시포럼

경주를 다시 보다: 초국적 도시의 탄생

 

오랫동안 ‘역사의 도시’로 불려온 경주가 최근 다문화와 초국적 공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형성한 새로운 커뮤니티는 전통적 도시 맥락과 대비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번 기사는 이러한 경주의 변화 과정과 그 공간적, 건축적 함의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도시가 중소도시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 묻는다. 

 

글 19기 SPACE 학생기자 주하영, 김민예, 최종인​

 

 

경주, 새로운 얼굴의 풍경을 걷다

경주를 걷다 보면 고즈넉한 전통과 흔적을 떠올리게 된다. 불국사의 단아한 건축미와 석굴암의 경건함, 첨성대가 전하는 과거의 지혜. 이 모든 것은 경주가 ‘역사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지켜온 이유를 말해준다. 고즈넉한 한옥과 신라의 흔적을 간직한 거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성건동을 거닐다 보면 전혀 다른 경주의 얼굴이 보인다. 러시아어와 베트남어로 적힌 간판이 늘어서고, 거리 곳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 냄새가 풍긴다. 외국인 가족들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국적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경주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경주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독특한 초국적 중소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초국적 도시는 단순히 이주민의 거주지 이상을 의미한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가 공존하며 그들의 일상과 지역 사회가 얽히고설키는 공간이다. 2022년 기준 경주는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 외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약 9,064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취업을 목적으로 한 노동자가 3,894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연령대는 주로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외국인 가족 단위의 정착이 증가하며 경주의 사회적, 도시적 풍경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이러한 경주의 모습은 단순한 경제적 변화를 넘어 초국적 도시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가족과 함께 정착하며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주는 그저 옛 역사적 이미지만을 가진 것이 아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초국적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건축가에게도 관심을 끌 만한 부분이 많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에 새로운 유형의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으레 새로운 건축적 해석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건축가가 가져야 할 관점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수치와 풍경만으로는 ‘초국적 중소도시’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데이터로 파악된 사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경주를 왜 선택했고 어떻게 정착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지역 사회와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실제 목소리를 듣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팀은 경주 성건동과 북정로에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만들어낸 도시 공간의 변화를 직접 관찰하고, 기존 지역 주민과의 공존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건축가가 해야 할, 혹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도 밝혀내고자 한다. 더불어 역사 고도인 경주가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게 초국적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성건동에 위치한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이하 외국인도움센터, 센터장 황소영)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센터는 외국인이 경주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 동포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전통문화와 공존하는 경주의 독특한 변화는 앞으로 한국 중소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경주라는 도시가 보여주는 초국적 중소도시의 변화와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시간이다. 

 

경주, 변화를 목격하다.

서울, 인천, 포항에서 각자 출발한 우리는 경주 성건동에서 만났다. 외국인도움센터 황소영 센터장님과의 인터뷰 전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주변의 한 마트를 찾았다. 상호부터 ‘글로벌 마트’. 간판에는 다양한 나라의 국기가 열을 맞추고 있었다. 마트 안에 들어가니 판매대 위에 외국어가 적힌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계산하며 마트 사장님께 이 현상에 대해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처음엔 한국인을 위한 물품만 입고했지만,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다국적 마트처럼 외국산 식품과 상품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왼쪽) 마트의 외국어 간판 모습과, (오른쪽) 마트 판매대 위 외국 식품 모습(©최종인)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주의 산업적 특성이 있다. 경주는 포항과 울산 사이에 위치하며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경상북도 전체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약 65%를 차지하는 1,300여 개의 기업은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더욱 체계화되었다. 경주 또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 등 산업 발전에 따라 이 시기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이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울산과 가까운 외동읍에 정착했다. 그러나 공장 주변의 열악한 정주 환경은 노동자들이 더 나은 생활 여건을 찾아 이동하도록 만들었다. 이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성건동이다.

성건동은 한때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살던 자취촌으로 검찰청과 법원이 자리한 행정 중심지였다. 하지만 동국대대학교와 더욱 근접한 석장동에 편리한 인프라 시설들이 개발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가 빈방이 늘어나고 월세가 낮아진 성건동에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었다. 현재 성건동은 러시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다문화 공동체로 변화했다. 거리에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상점과 식당은 물론이고 마트, 통신사 대리점, 노래방, 교회, 직업소개소, 미용실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시설에서 외국어 간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중소도시의 현장에서 본 ‘중소도시 외국인 인구 유입 현상’은 오랜 시간 서서히, 외국인이 정착하며 생활권을 만들어가고 기존 주민과 새로운 외국인 주민이 서로에게 도시 공간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오고 있었다.

글로벌 마트에서 걸음을 나서며 ‘중소도시의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구나’하는 설레고 부푼 마음을 안고 외국인도움센터로 향했다. 황소영 센터장님이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다.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며 건네주신 음료를 앞에 두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경주, 그 속 이야기를 듣다

인터뷰 황소영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 센터장 ⅹ 19기 학생기자 주하영, 김민예, 최종인

 

학생기자: ‘경주=역사도시’가 익숙한 저희는 경주와 외국인,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더라고요. 경주에 언제부터 이렇게 외국인이 많아진 건가요?

황소영: 2017년 이후부터 고려인이 많아졌어요. 그전까지는 경주에 불법체류자나 중국인이 많았어요. 외국인도움센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경주시에 8천 명 정도였던 외국인 인구가 지금은 2만 명 가까이 돼요.


학생기자: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경주시 외국인 인구가 1만 명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황소영: 등록 외국인만 집계한 수치이기 때문이에요. 불법체류 중인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도 있고, 외국인으로 집계되지 않는 고려인도 있죠. 그래서 통계가 이야기하는 수치와 실제 모습 사이에 간극이 있어요. 통계상으로는 경주 외동의 외국인 인구가 가장 많지만, 고려인 동포까지 포함하면 성건동이 훨씬 많아요.

 

학생기자: 정말 많은 외국인이 경주에 살고 있네요. 외국인이 경주를 거주지로 선택하는 이유가 뭘까요?

황소영: 외국인 주민들에게 듣기로는 경주가 조용해서 살기 좋다고 해요. 그리고 중소도시잖아요. 경주는 큰 도시가 가지는 기반시설은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주 넓거나 복잡하지 않아요.

 

학생기자: 그렇다면 외국인도움센터는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블로그를 보니 외국인 자율방법대, 외국인근로자 축구대회 등 여러 활동이 활발히 운영되더라고요.

황소영: 외국인도움센터가 설립되던 2017년까지만 해도 경주 내에서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치안 문제, 낯선 이방인에 대한 불안감 등이 주된 이유였죠.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죠. 지원 요청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한국어 교육부터 지역 방범까지 생활의 다양한 방면에서 외국인을 지원하는 센터가 필요하겠다는 차원에서 센터를 설립하게 됐어요.


학생기자: 외국인 주민들은 외국인도움센터에서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요? 

황소영: 제일 많은 것이 비자 상담이에요. 고려인이나 중국인 같은 경우 비자를 등록하고, 교육받고, 변경과 연장을 하는 등 절차들이 매우 복잡해요. 그래서 저희가 비자 업무 관련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죠. 그 외에는 근로 상담이에요. 외국인 노동시장에서 임금 체불이 아직도 굉장히 많아요. 비자와 임금 체불, 두 가지에 관한 상담 비중이 크고 나머지는 외국인이 타지에서 생활하며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상담이죠. 종류가 많습니다.


학생기자: 기존 성건동 주민들은 외국인 주민을 받아들이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황소영: 외국인도움센터를 시작할 당시 기존 주민의 반대가 심했어요. 한국인 중 어려운 사람들도 못 도와주는데 왜 외국인을 도와주냐는 식이죠. 또 땅값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주 소비층이 외국인 인구가 됐기 때문에, 이들과의 공존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거든요. 성건동과 경주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엄청 많은 수의 외국인 가게와 간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 외국인 인구 유입에 영향을 받은 마트, 통신사 대리점, 음식점 모습(©주하영, 김민예, 최종인)  

 

경주, 선택의 이유를 묻다

인터뷰 후 우리는 처음에 관심을 끌었던 주제, 즉 ‘경주라는 역사 고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초국적 현상’이라는 이야깃거리에 대한 논의를 어느 정도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경주가 가진 역사성 자체가 수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원인과 어떠한 영향 관계를 가진다고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분포해 있는 신라 시대의 문화재와 다양한 관광 요소의 차원으로 경주를 파악한다면, 경주의 지역성은 이주민들과 공존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무관한 ‘병치’에 가깝다. 따라서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주의 도시적 속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외국인이 새로운 거처로 경주를 선택하게 되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과 물가,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한 한적한 분위기, 고령화로 인해 늘어난 일자리 수요, 원도심을 통해 구비된 기본적인 도시 인프라, 주변 거점 도시(울산, 부산)로의 편리한 접근성, 지역의 외국인 커뮤니티를 통한 정보 교류의 용이성 등. 이러한 요인들은 경주의 역사도시로서 특성보다는 중소도시로서 특성과 맞닿아 있다. 즉, 경주가 중소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외국인 유입 급증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경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020년대 대부분의 중소도시들이 공유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을 그저 ‘그렇다더라’하고 가벼이 생각하지 않고, 동시대의 우리가 직접 마주하고 고민해야 하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왼쪽) 북정로 외국인거리의 통신사 대리점과 음식점 모습, (오른쪽) 교회의 외국어 간판 모습(©최종인)  

 

경주, 자율적 공존을 향하여

경주와 같이 이미 원도심이 형성된 지 한참 지난 지역에서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집단이 등장할 때, 기존 지역 공동체와 새로운 외국인 집단 사이에 발생할 충돌과 갈등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외국인도움센터가 설립되던 초반에는 두 집단 간의 마찰이 적지 않게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센터가 개소한 2015년으로부터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 우리가 경주를 직접 찾아가 목격한 모습은 조화로운 공존에 가깝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동네 슈퍼들은 모두 ‘세계 마트’라는 간판으로 바뀌어서 영업하고 있었고, 시장과 식당에서는 외국인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었으며, 초·중·고등학교에는 수많은 국적의 국기가 펄럭이고 교회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예배가 편성되어 있었다. 즉 경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어도 지금까지는, 외부 이해관계자의 어떠한 개입 없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상생의 길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다시금 건축가가 초국적 중소도시에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묻게 된다. 외국인 인구의 유입에 따라 새로운 주거 형태, 새로운 프로그램의 필요를 예상했지만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던 인프라가 이들에게 맞춰 변화함으로써 이 문제는 자율적으로 해결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건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억지로 문제의식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기 보단 중소도시의 이 현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예측하는 것이 건축이 할 수 있는 최선일지 모른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에 비로소 건축이 필요해지고 요청된다면 그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평화로운 공존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경주에서 발견한, 스스로 작동하는 조화의 생명력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넌지시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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