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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자를 위한 설계: 어반 싱크탱크의 임파워 모델

사진
아레 카를센(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어반 싱크탱크
진행
이소운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5월호 (통권 690호) 

 

임파워 커뮤니티 1. 임파워 커뮤니티의 첫 번째 사례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카일리차의 사이트 C 지역 내 BT 구역에 구현됐다. ©UTT​

 

흔히 ‘슬럼’이라 불리는 비공식 정착지는 도시 내부에 있지만 인프라와 법적 권리는 구조적으로 배제된 공간이다. 어반 싱크탱크(Urban-Think Tank, 이하 UTT)는 이러한 제도 바깥의 삶의 조건에 주목해온 건축 실천가 집단으로, 30년 이상 남아메리카의 빈곤 지역에 도시 인프라를 구축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남아프리카 비공식 정착지를 위한 사회주택 모델 ‘임파워(Empower)’를 선보인다. 주택 공급을 넘어 인프라 구축, 제도적 전환, 재정 모델을 통합한 임파워의 첫 실천 사례를 중심으로, UTT의 창립자 알프레도 브릴렘부르크와의 대화를 통해 건축이 제도 밖의 현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버티컬 짐 차카오(2006) ©Ana Luisa Figueredo 

 

이소운(이): UTT는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전 세계의 빈곤 지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도시환경의 실질적인 개선을 시도해왔다. 건축가로서 오늘날의 빈곤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알프레도 브릴렘부르크(브릴렘부르크): 지금까지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베네수엘라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며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고, 덕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카라카스로 돌아왔을 때, 조국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스튜디오를 설립해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헌신하기 시작했고, 건축이 빈민가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냉정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빈곤선 이하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는 인구 증가 때문이다. 이 문제는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제성장이 빈곤, 실업,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실제 빈곤에는 그 해법이 작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빈곤은 정부 차원의 종합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택, 공공 공간, 학교, 병원, 스포츠 시설, 도시 농장 등 사회적 인프라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대부분 비공식 정착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이다. 이런 현실이 우리 직업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이 통과되기 전에 먼저 토론을 거친다. 그 과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런 토론장에 건축가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이: 건축을 통해 빈곤에 접근할 때, UTT만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브릴렘부르크: 설리번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사회 인프라는 목적을 따른다”고 말한다. 이 믿음은 ‘사회적 책임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 모이세이 긴츠부르크, 러시아 구성주의자들과 같은 근대건축가들 역시 건축을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도구로 봤다. 우리는 그 믿음을 계승한다. 건축을 통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장벽을 줄이고, 가능하다면 제거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건축은 순전히 하향식으로나 상향식으로 수행될 수 없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계획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과하기 마련이다. 도시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한 자금이나 후원을 받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는 자는 누구인가’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건축 작업은 관찰과 참여로 시작한다. 이후 분석과 전략 수립을 거쳐 개념이 형성되고 구현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는 항상 현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카라카스든 케이프타운이든, 현지 건축업자와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임시 목표, 프로세스,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개발 패턴을 배웠다. 단순히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지성을 인식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독창성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이 됐다. 

 

임파워 커뮤니티 1 전경 ©1000Things Production

 

임파워 모델의 최초 프로토타입 실험으로 지어진 푸메조의 집​ ©UTT

 

임파워 모델의 최초 프로토타입 실험으로 지어진 푸메조의 집​ ©U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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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UTT의 다학제적 조직 구성 및 협업 중심의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해 달라. 

브릴렘부르크: UTT는 건축가 외에 도시계획가, 엔지니어, 사회학자, 환경 컨설턴트, 영화 제작자, 경제학자, 그리고 지역사회 조직자들로 구성된다. 도시 불평등의 사회적, 생태계적, 그리고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진정한 의미의 다학제적 팀이다.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운동가-건축가로서 우리는 소외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이는 시정부, 엔지니어, 청소년 단체, NGO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또한 엄청난 제약 속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우리가 사명으로 삼은 것은 건축의 지배적인 문화, 특히 독단적 천재, 독단적 저자 중심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프랭크 게리나 헤르조그&드 뫼롱과 같이 형태 중심적이고 사회적 맥락과는 다소 떨어진 인물과 달리, UTT의 작업은 민족지적 연구, 현지 언어, 지역사회 지식을 작업에 통합한다. 한 사람이 홀로 모든 책임을 지고 모든 공로를 차지한다는 개념은 우리가 일하는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사무소의 모든 직원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작업 방식이 한 개인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 저작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 초기 UTT 작업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빈곤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체육관을 포함한 커뮤니티 시설들을 공급하기 위해 어디에나 적용 가능한 조립식 부품 키트인 버티컬 짐(GIMNASIO VERTICALTM)을 개발했는데, 이처럼 복제를 염두에 둔 프로토타입의 개발이 UTT의 주요한 설계 전략인가?

브릴렘부르크: 우리의 목표는 지속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통해 불균형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주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 시스템, 체육관, 학교, 진료소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 전반에 해당한다. 버티컬 짐은 우리 작업의 핵심에 놓여 있다. 모듈형 부품 키트로 구성된 유연한 시스템으로, 조립과 재조립이 가능하며 다양한 부지, 기후, 지역사회에 맞게 조정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어디서든 구현 가능한 구조다. 이 접근 방식은 베네수엘라 내 다섯 곳에서 실행에 옮겨졌고, 콜롬비아 바랑키야의 예술학교 EDA 역시 동일한 모듈성과 유연성의 논리를 바탕으로 설계됐다. 우리는 이미 비공식 정착지 내에서 100곳 이상의 버티컬 짐 설치 가능 부지를 찾아 두었다. 조사에 따르면, 카라카스의 바리오에는 70ha가 넘는 유휴지가 있었고, 이는 체육시설이나 공공건물을 세우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초기 체육관의 설계를 보편적인 모델로 재구성했고, 이는 유럽에서도 적용 가능한 형태다. 베네수엘라에서 등록한 특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통해 누구나 구조를 변형하거나 프리패브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정부와 시장들에게 이 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하며, 직접 제안서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페타레의 체육관은 8층 규모로 지어졌고, 그 아래에는 시장과 주차장이 있다. 로스 테케스의 체육관에는 50m 길이의 수영장과 500석 규모의 관람석도 포함되어 있다. 

 

기존 판잣집 내부(왼쪽), ​임파워 업그레이드 이후 유닛 내부(오른쪽)​ ​©Daniel Schwartz

 

기본 유닛 1층 내부 ©Daniel Schwartz 

 

기본 유닛 2층 내부 ©Jan Ras 

 

이: 카라카스가 아닌 다른 도시들에서는 버티컬 짐 프로토타입이 어떻게 진화했나?

브릴렘부르크: 카라카스는 단지 시작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각기 다른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이 프로토타입의 새로운 버전들을 개발해왔다. 요르단 암만에서는 이 구조를 여성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재해석했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는 운하 위의 조정 클럽으로 구현했다. 케이프타운에서는 임파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옥상 농장이 결합된 체육관을 세웠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사례다. 각각의 버전은 원안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개념을 한층 더 확장해나간다. 우리는 환경 컨설턴트들의 도움을 받아, 버티컬 짐에 지속 가능한 기술을 통합하도록 재설계했다. 이를 통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게 됐다. 최신 설계에는 재활용 가능한 자재, 자연풍 및 태양열을 활용한 수동 냉각 시스템, 빗물 수집 시스템 같은 혁신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예측적 인프라’라고 부르는 방향, 즉 단순히 회복력 있는 것을 넘어서, 재생 가능한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이다.

 

이: 현재 UTT의 주요 활동 지역은 어디인가? 전 세계에 위치한 각 사무소들은 각기 어떤 주제에 집중하고 있나?

브릴렘부르크: 초기의 건축 작업은 주로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현재 UTT는 전 세계에 분산된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각 사무소는 고유한 관심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1 지역의 요구에 응답하는 동시에 더 넓은 공동의 목표에 기여하고 있다. UTT 글로벌은 크게 두 개의 주요 운영 거점을 갖고 있으며, 이는 시간대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 하나는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카라카스와 상파울루의 활동을 총괄한다. 다른 하나는 오슬로에 있으며, 제네바와 남아프리카 사무소와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다양한 실천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우리 작업의 성공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팀 구성뿐 아니라 우리가 봉사하는 커뮤니티에서도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우선시한다. 진정한 혁신과 지속 가능한 해법은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완공된 임파워 유닛 그룹의 배면 ©Daniel Schwartz 

 

코어 앤 셸 모델의 엑소노메트릭 다이어그램. 코어는 구조 및 설비 요소를, 셸은 외피 및 외장 요소를 말한다.​

 

이: UTT는 2012년부터 남아프리카의 주거 위기에 관여해왔다. 임파워 모델이 고안된 배경과 UTT 임파워(UTT Empower, 이하 UTTE)가 비영리 조직으로 설립된 경위에 관해 설명해 달라.

브릴렘부르크: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의 사업은 청사진이나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경청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먼저 동네를 차차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택을 하나하나 작업하고, 비공식 거주지의 배치를 재구성하고, 프로토타입 실험을 반복하면서 80채의 주택, 공공 광장, 태양광 에너지 시설, 옥상 농장, 내부 도로 등 필수적인 인프라를 구축한 현재의 임파워 작업으로 진화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장소 만들기 사업은 자유시장의 편협한 요구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영리 디자인 스튜디오인 UTTE를 설립해 건축과 재정적 탄력성을 연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예술가, 연구자, 기획자, 도시학자, 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케이프타운에 모였다. UTTE는 참여형 도시 개발에 대한 장기적인 약속을 공식화하고 더 강력한 지역 파트너십과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 채널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줬다. 

 

이: 임파워 모델은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공의 국가 주도 재건 및 개발 프로그램(RDP)의 한계에 대한 대응책으로 고안됐다. RDP 정책이 지닌 주요 한계점들은 무엇이었나? 

브릴렘부르크: RDP는 넬슨 만델라의 무지개 국가 비전과 혁신적인 헌법에 기반을 둔 국가 건설, 민주화, 기본 인권 보장이라는 숭고하고 역사적인 포부로 시작됐다. RDP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모두를 위한 주택’이란 강력하고 필수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이 목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시스템적 문제가 발생했다. RDP 주택 프로토타입은 미국의 레빗타운과 같은 교외 지역을 위한 계획 모델을 참고한 저비용 단독주택이었다. 그런데 이 모델은 미국에서도 지속 불가능하고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확산형 저밀도 개발의 시대는 끝났다. 도시 외곽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도로, 하수 시스템, 전력망, 교통망을 모두 주요 업무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그린필드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생태적으로 파괴적이고 경제적으로도 낭비이다. 농지는 절대 도시화해서는 안 된다. 대신 기존의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고 재구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수직적 성장, 마을의 밀집화, 기존 비공식 정착지의 재구획이 필요하다. 그것이 임파워 모델이다.

 

나무 블록을 이용한 토지 재분배 과정 ©Daniel Schwartz 

 

거주자의 지불 능력과 공간적 필요에 기반한 설계 과정. 개인이 점유한 토지를 재분배함으로써 공공 공간이 조성됐다. 주민들은 새로운 고밀도 2층 주택 클러스터 형태로 재분배하는 것에 동의했고, 공공 용도의 토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임파워 모델은 비공식 정착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거주 공간을 재구성하고 계획하는 참여형 도시계획 기법인 ‘블로킹 아웃’을 발전시킨 것이다. 기존 블로킹 아웃 방식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나?

브릴렘부르크: 블로킹 아웃은 우리가 남아공에서 접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접근 방식 중 하나였다. 슬럼 거주민 국제 연합(SDI)에서 개발한 블로킹 아웃은 비공식 정착지를 조직화해 판잣집을 보다 합리적으로 재구획하고 일시적인 개선 효과를 불러오기 위해 만들어진 접근 방식이다. 다만 우리는 이런 일시적인 조치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수년 동안 마을에 영구적인 구조물을 짓는 것은 불법이었고, 정부는 그동안 정착지를 늘 임시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며 언젠가는 철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 이 지역사회는 40년 동안 존재해왔고, 이곳의 거주민들은 이곳에서 삶과 네트워크, 존엄성을 구축해왔다. 그들은 이곳에 계속 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구성을 염두에 두면서 재구획을 진행했다. 새로운 프로토타입인 ‘성장하는 집’은 UTT에서 부엌, 욕실, 계단, 주요 서비스 등 구조적 코어를 제공하고, 지역사회가 개인 취향, 재정적 수단, 점진적 성장에 맞춘 인테리어를 차차 완성하는 ‘코어 앤 셸’ 모델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도화된 블로킹 아웃’ 또는 임파워 모델이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했다. 

 

이: 코어 앤 셸 원칙이 카옐리차와 같은 비공식 정착지의 경제성, 적응성, 법적 준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나?

브릴렘부르크: ‘코어’란 영구적인 인프라, 즉 주택의 필수 시스템과 공간 논리를 의미한다. 즉 레이아웃, 구조, 급수 시설(주방, 욕실), 수도관, 하수, 전기 등 주택 생활의 안전, 안정성, 적법성을 보장하는 모든 기본 요소를 의미한다. 모든 점진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기본 조직 프레임워크인 맨해튼 그리드를 떠올리면 된다. 또 다른 의미로 도시의 용도지역계획이나 지적도처럼 주택에 안전성, 소유권, 회복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반면 ‘셸’은 형태, 마감, 유연성을 제공하는 맞춤형 외부 레이어인 외관을 뜻한다. 화재 안전성 및 불연성 등의 기본 규정을 충족하는 선에서 셸은 진화할 수 있다. 비공식 정착지 거주자 대부분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주택은 일시 구매가 아닌 점진적인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 각 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을 짓고, 거주하고, 개선하는 접근 방식, 즉 소액 금융에 기반한 설계 방식이 바로 여기서 고안됐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점진적 합법화’라는 접근 방식을 개발했다. 단계적으로 개선을 통해 거주자들이 비공식적 주택에서 공식적 주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체적 노선을 마련한 것이다. 그중 하나는 기존의 건축법을 완전히 충족하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장기 거주를 위한 설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새로운 유형의 ‘목적 적합형(fit-for-purpose)’ 거주 증명서다. 현재 남아프리카의 건축법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비용이 높아, 비공식 정착지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 시장은 이러한 수요를 흡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케이프타운 시는 이 간극을 인식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과 협력하여 법적 소유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고자 한다.

 

세미 프라이빗 코트야드를 갖춘 유닛 외부 모습(왼쪽),​ 유닛 확장을 위해 남겨둔 외부 공간 ©UTT​ (오른쪽​​)​

 

세미 프라이빗 코트야드를 갖춘 유닛 외부 모습 ©Daniel Schwartz 

 

체육관 내부 

 

이: 임파워 모델의 핵심은 도시 공간을 실질적으로 점유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건축적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를 구축한 데 있다. 블록 재구획을 위해 각 집의 규모와 위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요구에 어떻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나?

브릴렘부르크: 단일한 접근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답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하고, 각 가구에게 다음 문제들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블록 재구획에 맞춰 건축면적을 줄일 것인지, 기존 판잣집과 같은 층수를 유지할 것인지, 2층이나 3층, 혹은 4층까지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다. 이러한 질문들이 설계 과정을 주도했다. 주민들은 레이아웃, 마당 포함 여부, 여러 주택들을 하나의 블록으로 구성하는 방법 등 모든 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여했다. 25m2의 기본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충분한 건축자재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전형적인 임파워 주택은 약 45m2이다. 가구들이 직접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UTTE와 함께 계획을 결정했다. 각 주택의 레이아웃을 조정하는 일은 기존 토지 권리, 면적 크기, 인프라 접근성이 서로 엮이는 엄청나게 복잡한 난제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을 통해 이 복잡한 상황을 수용했다. 주민들은 모델 위에서 나무 블록을 움직이며 어떻게 이웃과의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집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옵션들을 탐색했다. 토지 재할당 과정은 공간적 전략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전략이 됐다. 우리는 토지와 소득 분배에 엄청난 불균형이 있음을 확인했다. 소수의 고령 주민들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지만 소득은 적었고, 젊고 경제활동을 하는 주민들은 적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득은 더 높았다. 우리의 계획 모델은 공간과 접근성을 교환하는 협의의 장이 되었고, 보다 공평한 도시 구조를 만들었다. 이 사례로부터 디지털 토지 재배치 및 계획 도구인 실시간 적응형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도구는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집을 끌어다 옮기고, 도로를 삽입하고, 블록 구성을 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 접근 방식을 ‘선호 도시 만들기’라 부른다. 이 디지털 도구는 우리로 하여금 소득 수준, 가구 규모, 공간적 수요를 모델링하고 표준화된 주택 단위를 사용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맞춤형 주택을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임파워 모델의 첫 적용 사례가 남아공 케이프타운 카일리차 지역의 사이트 C의 일부인 BT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최종 구현된 커뮤니티의 모습에 대해 설명해 달라.

브릴렘부르크: 우리는 2,500m2의 주거 공간과 1,500m2의 개방형 공공 공간을 포함해 총 4,263 m2의 공간을 조성했다. 기존 판잣집을 고밀도 다층형 연립주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단열 성능과 자연 환기 성능을 개선했고, 명확한 공적-사적 경계를 설정했으며, 치안을 강화하고 집단적 이웃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 모든 작업은 지역사회와 함께, 또 지역사회를 통해 이루어졌고, 위치부터 레이아웃까지 지역사회의 의견이 반영됐다. 각 주택의 위치는 거주자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됐는데, 자동차를 소유한 어느 한 가구는 도로에 접근 가능한 주택을, 가게를 운영할 포부를 가진 어느 사람은 주요 간선도로에 위치한 주택을 선택했다. 이는 커뮤니티 전반의 생활 수준을 급격히 향상시켰다. 고립된 판잣집들이 난잡하게 널려 있던 곳이 사생활, 안전, 정체성, 경제적 기회 등의 측면에서 모두 개선된 활기찬 주거 공동체로 변모했다. 태양광 사업을 비롯해 식량 안보와 지역 농업을 위한 옥상 농장, 수직 체육관, 커뮤니티 학교 및 학습 센터, 탁아소 및 보육 시설, 그리고 도시 농업과 지속 가능한 생계에 초점을 맞춘 복지 및 교육 공간. 이 모든 것이 현재 약 450명이 거주하고 있는 첫 번째 임파워 모델 커뮤니티에 실현됐다. 이 커뮤니티에는 각기 다른 규모, 비용, 소유와 임대를 비롯한 다른 임차 계약 방식을 가진 80세대의 주택이 있다. 이런 다양성은 사회적 균형에 기여하고 건강하고 기능적인 사회를 조성한다.

 

도시 농장 내부 

 

임파워 커뮤니티의 주택 및 공공 공간  

 

체육관과 농장이 수직적으로 결합된 커뮤니티 시설 

 

이: 지역사회 주도하의 점진적 개발 방식에 적합한 자금 조달 구조를 어떻게 마련했나?

브릴렘부르크: 자금 조달은 임파워 모델을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외부적으로는, 남아공 정부가 위생, 전기 인프라 및 기타 도시 시스템을 위한 주요 병행 자금(parallel financing)을 제공했다. 또한 정부는 건설 비용의 약 30%를 보조금으로 지원했는데, 우리는 이를 임파워 스타터 패키지라고 불렀다. 동시에, 남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선 기금, 비상업적(저이자) 대출, 태양광 협력 사업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임파워 솔라(Empower Solar)를 통해 옥상을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로 전환했다. 생산된 에너지는 가구에서 직접 사용하거나, 전력망에 판매함으로써 주택 비용을 상쇄할 수 있게 했다. 내부적으로는, 지역사회 저축 시

스템과 소액 대출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주민들은 전체 비용의 20%를 저축해 자부담금으로 납입하고, 이 금액은 곧 주민의 지분이 된다. 이러한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주민들에게 주인의식을 부여하고 과정에 투자를 보장하며 재정 모델의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이: 구입 가능성(affordability)의 측면에서, 남아프리카의 주거 공급 방법으로 임파워 모델의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브릴렘부르크: 임파워 모델에 대한 데이터 기반 분석을 해본 결과 가장 인기 있고 실행 가능한 유닛 크기가 45m2에 해당된다는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이 크기를 기준으로 첫 번째 임파워 모델에서는 유닛당 약 17만랜드(1,300만 원)의 건축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또 기준점으로 삼아 소액 대출과 장기 상환 옵션을 고려하는 등 조건을 갖춘 거주자와 갖추지 못한 거주자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금융 모델을 설계했다. 20~25년에 걸쳐 대출을 연장하고 연평균 인플레이션율 5.5%를 적용할 경우 매달 1,000랜드(8만 원) 정도의 지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안정적인 임대 또는 소유권 구조가 보장된다는 조건하에 대부분의 카일리차의 BT 구역 거주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외부 공공공간

 

이: 남아프리카와 같이 식민지배 역사를 지닌 빈곤 지역에 외국 건축가나 사무소가 개입하는 데 있어 어떤 이점 혹은 잠재적 장애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나?

브릴렘부르크: 이것은 중요하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먼저 건축은 세계 어디나 있는 관행이라는 근본적인 진실부터 시작해야 한다. 건축은 언제나 그러했다. 20세기 내내 건축가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했고, 그로 인해 종종 비판을 받기도 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영향력은 전 세계에 퍼졌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해외 건축가와 현지 문화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예를 들어 해외 건축가인 월리스 해리슨은 카라카스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외국의 개입이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책임감 있게 접근할 경우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 사무소를 설립하고 현지 팀과 협력하며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남아공에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UTTE는 100% 남아공 현지인에 의해 운영된다. 우리는 해외에서 ‘낙하산’을 타고 들어오지 않고 장기적인 협력과 지원 구조를 구축한다. 역사적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때때로 우리는 특히 학계에서 창의적인 참여를 방해하는 일종의 반사적인 자유주의를 직면하게 된다. 비록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태도는 변화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식민지 역사 이후의 시혜적 관점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협력적이고 존중하며 권력 역학을 인식할 경우 외부자의 관점은 생산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주택 및 인프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 선택은 외부 전문가에 의해 강요돼서는 안 된다. 대신 파트너십과 참여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하향식 계획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언어는 까다롭다. 지역사회, 마을, 현지, 비공식 등의 단어들조차도 통합, 피드백, 공유된 저작물이 필요한 오늘 상황에서 ‘우리’ 그리고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무의식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세상을 둘로 나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나누지 않는다. 나는 피드백 루프와 유동적인 역할, 그리고 개입과 성찰, 교류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변화를 믿는다.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UTT는 신중함과 윤리적 책임을 안고 당사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임파워 모델은 앞으로 어떻게 반복되고 확장될 예정인가? 이 접근 방식을 확장하는 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브릴렘부르크: 향후 몇 년 동안 UTTE 팀은 카일리차의 첫 번째 임파워 커뮤니티 바로 옆에 위치한 부카니 부지를 시작으로 임파워 모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케이프타운의 하우트 베이 지역에 있는 비공식 정착지 이자무 예투(IY)를 위한 새로운 도시 레이아웃을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은 케이프타운의 최고 부유층과 극심한 빈곤층 사이에 위치하며 콘스타니타와 같은 동네들과 접해 있다. 이런 지리적 상황에서 임파워 모델 접근 방식은 단순한 주거 해법이 아니라 계층 간 협업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작업을 계층 사이의 수용성을 강화하고 교류를 구축하는 것으로 설계해 남아프리카의 역사적 분열을 해결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을 상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카라카스에서 시작해 케이프타운에서 시범을 보이고, 전 세계 수십 명의 협력자들에 의해 형성된 이 모델은 이제 타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을 갖췄다고 확신한다. 상업 대출, 정부 보조금, 자선 보조금을 통합한 공평하고 포용적이며 민주적인 도시 개발의 선례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목적이다. 단순한 개발 전략이 아니라 정의롭고, 유연하고, 모든 주민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삼는 포용적 도시주의의 철학으로서 이 모델이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1  각 사무소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뉴욕에서는 도심 지역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할렘, 브롱크스, 퀸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라카스에서는 도시 외곽 언덕에 위치한 비공식 정착지, 즉 바리오(barrio)에 대한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상파울루에서는 도시 주변의 파벨라와 외곽 지역, 리우데자네이루 주변의 저소득 커뮤니티에 주목하고 있다.

•오슬로에서는 공동체 주거, 주택문제, 북유럽에서의 버티컬 짐 도입 가능성 등 사회적 영향력을 위한 새로운 모델들을 탐색하고 있다.

•제네바에서는 주로 펀드레이징과 파트너십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케이프타운 및 그 주변 타운십에서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우간다와 잠비아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임파워 커뮤니티 1(위, 완공)과 임파워 커뮤니티 2(아래, 렌더링) 

월간 「SPACE(공간)」 690호(2025년 0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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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 브릴렘부르크
알프레도 브릴렘부르크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4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 및 건축 학사학위를, 1986년에는 같은 대학교에서 건축설계 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에는 베네수엘라 중앙대학교에서 두 번째 건축학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독립적인 건축 실무를 시작했다. 1993년, 그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어반 싱크탱크를 설립했다. 1994년부터 베네수엘라 건축가 및 엔지니어 협회 회원이며, 2011년부터는 스위스 건축가 협회(SIA)와 노르웨이 건축가 협회(NAL)의 회원이기도 하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컬럼비아 대학 건축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0년부터 2019년까지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학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교의 GRIP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30년 이상의 건축 실무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디자인에 대한 혁신으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수상 경력으로는 2010년 랄프 어스킨 상, 2011년 라틴아메리카 지역 홀심 골드 어워드, 2012년 글로벌 홀심 실버 어워드, 2012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17년 UN 해비타트 슬럼 개선 우수 실천사례상 등이 있으며, 2018년에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세계 최고의 건축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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