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6월호 (통권 691호)

미니시티 테마파크(2004) ©Cemal Emden
비판적 질문에서 시작된: EAA
인터뷰 엠레 아롤랏 EAA 대표 × 이소운 기자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건축사무소 중 하나인 EAA는 국제적 감각과 세련된 조형 언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성과가 형식적 완성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주어진 반복적인 유형에 대한 의심, 그리고 각기 다른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갱신되는 비판적 질문이 이들의 설계를 이끌어왔다. EAA에게 건축은 공식화할 수 없는 감수성과 결단의 영역이며, 그것은 때로 현실의 조건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EAA의 수장 엠레 아롤랏과 함께 한 이번 인터뷰에서는 서로 다른 맥락과 해법을 가진 두 프로젝트 산카클라 모스크(2013)와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2019)를 통해 형식 이전의 질문이 어떻게 건축의 윤곽을 형성하는지 알아보았다.
균형의 감각
이소운(이): 지난해 5월, 서울대-목천 강연을 계기로 서울에 처음 방문한 소감이 궁금하다. 서울의 건조 환경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엠레 아롤랏(아롤랏): 저녁 비행기로 도착하여 해가 진 후에야 포시즌스 호텔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점은 서울의 일부분이 미국 도시의 시내 구역과 닮았다는 점이다. 넓은 도로, 밝게 빛나는 파사드, 유리로 지어진 타워 등이 그러했다. 다음날 아침, 내가 묵었던 30층 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낮의 도시는 그 규모를 전체적으로 드러냈다. 다차선 도로, 광할한 교차로, 그리고 바쁜 보행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고층 건물의 파란색과 녹색으로 물든 유리 파사드에 햇빛이 반사되어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반짝임을 만들어냈다. 한글 표지판이 없었다면, 이 경치는 휴스턴이나 애틀란타의 시내 모습과 쉽게 헷갈렸을 것이다. 서울을 진정으로 구분 짓는 것은 겹겹이 쌓인 도시의 서사다. 우리는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경복궁, 북촌 한옥 마을 및 다른 역사적 지역을 방문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전통적인 구역들이 초근대적인 환경과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고 균일하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병치는 부조화나 충돌이 아닌 공생이다. 서울이 그 유산과 혁신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이스탄불에서도 역사와 근대성은 단순히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중첩되어 있다. 서울은 어느 한 시대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수세기 동안 건축과 기억, 정체성으로 풍요로워진 도시인 것이다. 건축가로서 볼 때, 이는 튀르키예의 서사와 유사하면서도 고유의 리듬과 구문론, 재료적 논리를 지닌 평행 세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EAA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건축사무소 중 하나다. 사무소의 현재 직원 수는 몇 명인가?
아롤랏: EAA 이스탄불 사무소에는 건축가, 실내디자이너, 행정 직원으로 구성된 약 60명 동료들이 일하고 있다. 인원 수는 가끔 약간의 변동이 있지만, 우리는 핵심 팀을 꽤 오랫동안 온전히 유지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모스크에서 초대형 개발사업에 이르기까지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면서도 실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무소 운영 측면에서 그 균형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아롤랏: 솔직히 말해, 이는 내 직업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나는 사무소의 설계 부문을 대표한다. 그 외 사무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책임은 우리 매니징 파트너인 곤차 파솔라르가 맡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업무 분담은 때때로 우리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핵심 단어는 단연 ‘균형’이다. 한쪽에는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사무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해법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대신 각 프로젝트마다 고유한 맥락과 잠재성에 기반해 접근해야 한다는 동등하게 중요한 과제가 있다. 독창적이면서도 높은 품질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종종 어마어마한 결단력을 요구한다. 때로는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며, 때로는 특정 프로젝트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재정적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20년 이상 매일 수많은 상황을 헤쳐오며, 우리는 재정적으로 사무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도, 건축적 가치를 지닌 작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터득했다고 믿는다.

산카클라 모스크(2013) 내 기도하는 모습 ©Cemal Emden
형태 이전의 질문들
이: 산카클라 모스크(2013)는 고전적인 오스만 모스크 유형을 재해석한 작업이다. 이 유형이 지닌 강력한 형식성과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가?
아롤랏: 튀르키예에서 새로운 모스크를 설계할 때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문제는 고전적 오스만 모스크 유형이 지닌 상징적 무게와 형태적 우월성이다. 이 건축 언어는 당대의 구조적 논리와 미학적 정교함을 통해 진화되어왔지만, 오늘날에는 공허한 시대착오적 유물이 됐다. 현대 건설 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은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일종의 신성불가침한 정당성 아래 거의 변형 없이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라는 유형 자체는 단일의 출처에 의해 규정된 하나의 정형화된 형태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화와 맥락 속에서 형성과 재형성을 거듭해왔다. 기도라는 행위에 매듭지어진, 공유된 영적 본질이 다채롭게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산카클라 모스크의 설계안은 기도를 중심으로 한 그 본질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재발견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형태 자체보다는 기도하는 이의 감각적 경험과 대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아롤랏: 이슬람 철학자 세예드 호세인 나스르는 이슬람 건축이 기독교 전통과는 달리 건물이 공간 내에 배치된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부터 파내어진 공백, 즉 존재로 둘러싸인 공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변에 소속될 다른 건축물도, 스며들 도시적 결도 없는 맥락에서 산카클라 모스크는 대지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 이러한 개념을 실현한다. 땅속에 둥지처럼 자리 잡은 하나의 공백으로 설계된 이 건물은 이슬람의 형이상학적 이해에 부합한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건축적 행위인 것이다. 설계의 주된 동기는 원시 세계에 가까운 하나의 내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형태를 가능한 한 최소화해 역사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빛과 재료가 가장 순수한 상태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형태적 장관을 과시하는 대신, 겸손과 초월성에 뿌리를 둔 관조적인 경험으로 초대한다. 미리 정의된 건축 언어를 따르기보다, 기도를 드리는 동안 그 공간에서의 영적 및 물리적 경험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모스크는 지형과 어우러지도록 구상되었으며, 땅의 자연스러운 경사면으로 사라져 마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대지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있으면서도 시간과 문화의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전통적 상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디자인은 모스크 건축 문법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관습화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읽히기도 한다. 다소 급진적인 설계 방향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없었나?
아롤랏: 실제로 산카클라 모스크의 설계안이 여러 플랫폼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건축계는 물론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매우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긍정적인 평가부터 강한 반발까지 반응의 폭이 컸고, 일부는 노골적인 위협의 어조를 담고 있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젝트를 의뢰한 산카클라 재단 대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는 진행 과정 내내 이러한 반응 중 일부와 정면으로 맞서야 했지만, 자신의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도 건설적인 태도로 상황을 이끌어갔다.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에게도 이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프로젝트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 만족스러운 점은 극단적이거나 부정적 반응들이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2019)의 고고학 유적 위를 가로지르는 보행로 ©Thomas Mayer
해법과 타협
이: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2019)는 하부의 고고학 유적 위에 객실을 띄우고 상부층에 공용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등 기존 호텔 유형을 비틀어 주어진 맥락에 맞춤화된 해법을 제시한 작업이다. 모스크와 호텔 두 작업 사이에는 시각적 유사성은 없지만 정형화된 유형을 넘어서는 장소 내지 상황 특정적 설계라는 태도가 공유되는 듯하다.
아롤랏: 산카클라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 역시 유형학적 조건, 어떤 면에서는 자기 반복적인 조건에 도전한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맥락과 프로그램 전반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진부하고 거의 자동화된 디자인 도식(스키마, schema)에 의존하는 조건이다. 그리고 역시 산카클라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유형을 제안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조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맥락 의존적이며 시간적으로 유일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처럼 공유된 개념적 입장은 두 프로젝트 사이에 분명한 정신적 친화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이 형태나 설계 접근 방식에서 서로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두 프로젝트는 상당히 다르다. 산카클라 모스크가 기도의 본질을 추출하고, 깊은 숭배감 속에서 의례가 체험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려는 야망 아래 설계되었다면,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는 훨씬 더 실용적인 설계 논리에 기반한다. 이 프로젝트는 현장에서 발견된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힌 제약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이는 설계 전반을 이끌어간 일종의 정신적 침전물로 작용했다.
이: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였지만 고고학 유적의 보존 문제와 맞물려 복합적인 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보존과 수익성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어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나?
아롤랏: 안타키아 프로젝트의 경우, 고고학 유적과 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주요 시야 축과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하기 위해 초기 계획된 객실 수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건축주를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발굴된 유적들을 호텔 투숙객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상이 필요했다. 나는 모든 디자인 과정이 관습적인 건축 형태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다양한 행위자들과 이해관계자 그룹 간의 반대와 협상이 얽힌 복잡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사전에 작성된 공식이나 쉽게 복제 가능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주와 주제, 상황은 일종의 ‘봉상스(양식, bon sens)’, 즉 이념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는 전문적 의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하는 감수성이다. 이 감수성은 이 모든 과정에서 건축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건축가로서의 주장에 대한 신념이 강할수록, 투자자나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수월해진다.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 부지 내 모자이크 유적 복원 현장 ©Sevim Aslan
‘-성(-ness)’은 형태가 아닌 과정
이: 논의된 모스크와 호텔을 비롯해 EAA가 선보여온 작업들은 세련된 조형성과 국제적인 감각을 드러내며, 전통적인 형식이나 토착적 디테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동시에 고유한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 깊이 반응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EAA는 ‘지역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롤랏: 지역성은 그 의미가 넓고, 어느 정도는 본질적으로 위험성을 내재한 개념이기도 하다. 건축 분야뿐 아니라 음악, 시각예술,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영역에서도 수많은 잠재적 함정을 안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것은 ‘민속적(folkloric)’ 궤도를 따르고자 하는 유혹일 것이다. 이는 과정을 간소화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지적 태만이나 환원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지역성이라는 개념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한 형태주의적 시도를 넘어서서, 훨씬 더 엄격하고 지적 기반이 다져진 과정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형태적 반복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세련된 형식적 해석조차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부터, 이를 위한 공식이나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시한 두 작업은 각각의 시대적 조건, 지리적 및 문화적 맥락의 구체적인 특성,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사용자들이 기대하고 필요로 하는 바에 뿌리내린 비판적 질문들을 중심에 두고 접근했다고 믿는다. 이 설계안들은 미리 정해진 어떤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바로 그 질문들에 이끌린 결과물이다.
이: ‘튀르키예성’이라는 개념 또한 일정한 거리 두기나 경계가 필요한 범주라고 보나?
아롤랏: 이 질문에 의미 있게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하는 ‘튀르키예의 조건’ 또는 ‘튀르키예의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튀르키예를 언급하는 일은 사회정치적, 인구학적, 공간적으로 역동적이며 종종 예측 불가한 하나의 독립체와 관계 맺는 것을 수반한다. 이는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쉽게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며 종종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나는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지나치게 결정론적인 질문을 좇거나, 엄격하고 확고한 행위적 패턴을 따르는 데에는 큰 의미를 느끼지 않는다. 아마도 외부 환경과 무관하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일관된 나침반은 ‘양질’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안정적인 ‘튀르키예의 조건’이나 신뢰할 수 있는 ‘튀르키예의 감각’이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 지역 간 격차의 심화와 시리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로부터의 대규모 이주가 지속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실행 가능한 길은 각 프로젝트의 질적 기준을 가능한 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며, 그 이상을 위해 모든 신념을 걸고 싸우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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