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6월호 (통권 691호)

야마모토 리켄이 헤이타에 작업한 모두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집은 동일본 대지진(2011) 이후 야마모토 리켄, 세지마 가즈요, 이토 도요가 주축이 되어 진행한 소규모 공공 건축 프로젝트다. 모임 공간, 놀이 공간, 농업 및 어업 재건 등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하며, 재난 지역 곳곳에 총 16개 작업으로 진행됐다. / ©Riken Yamamoto & Field Shop
이재민들의 재난 이후 삶을 상상한 적이 있는가? 리슨투더시티(디렉터 박은선), 야마모토 리켄(리켄 야마모토 앤드 필드 숍 대표), 애프터 에스튜디오(공동대표 훌리아 카노, 엘레나 히메네스, 숀 허시, 호세 케레다)가 이번 포럼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일부 건축가들은 대피소 설계에 참여해오기도 했지만, 이는 재난 직후의 일시적 대응에 속한다. 시간이 흐르면 이재민들은 기존의 거처와 공동체로 돌아가거나 완전히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할 때, ‘회복’을 위한 건축적 해법은 가능해진다.

청송 산불(2025)로 사라진 마을 / ©Park Eunseon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 발생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그 피해 규모도 심각해지고 있다. ▼1 이에 재난 회복력이 높은 공동체 설계를 위한 도시계획가들과 건축가들의 역할은 중요해지고 있지만 회복 과정에 실제로 참여한 경험이 부족해 상상력이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예술, 건축, 도시 콜렉티브인 리슨투더시티(디렉터 박은선)는 재난 회복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건축가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4월 15일 온라인(줌)으로 열린 ‘재난, 건축, 그리고 공동체’ 포럼은 도시공학 분야 내 재난 회복 관리를 전공한 필자와 함께 야마모토 리켄(리켄 야마모토 앤드 필드 숍 대표), 훌리아 카노, 엘레나 히메네스(애프터 에스튜디오 공동대표)의 발표로 꾸려졌다.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은 동일본 대지진(2011) 이후 지역공동체를 위한 건축을 하고, 이와 관련한 고민과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애프터 에스튜디오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젊은 스페인 건축가 그룹이다. 발렌시아 홍수(2024)는 23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는데 이들은 발렌시아 건축가 협회(Valencian College of Architects) 소속으로 건축물 피해 평가 활동에 참여했다. 우리는 한국, 일본, 스페인 사례를 중심으로 재난에 있어 커뮤니티의 중요성, 재난 취약 계층, 그리고 임시 거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무너진 와지마시의 전통 건축물들 / ©Park Eunseon
재난 회복은 긴 호흡으로
상당수 건축가들이나 건축학과 학생들은 재난 건축을 이야기하면 반 시게루가 설계한 대피소의 종이 기둥 구조물을 떠올리곤 한다. ▼2 이는 환경적으로 재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생활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고 구조물 보관이 어려워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접이식 실내 텐트가 대신 사용되고 있다. ▼3 또한 반 시게루의 건축적 개입은 재난이 발생한 직후인 ‘대응’ 시기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재난을 온전히 회복하는 데는 10년 이상 긴 시간이 걸리고, 재난 관리는 예방, 대비, 대응, 복구 4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한 단계라도 부실하면 사이클이 깨진다.
이재민은 재난 발생 이후 보통 2개월에서 6개월 이내로 대피소에서 철수하고 임시 가설 주택이나 공공 임대주택으로 이주한다. 재난 발생 직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도움의 손길을 받지만 이재민들의 진정한 어려움은 재난 발생 1년 후에 드러난다. 삶의 터전과 가족을 상실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며, 살던 마을과 거리가 먼 지역의 임시 건축물이나 공공 임대주택에 이주해 고립되는 경우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4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 내 ‘건축적 기여’만으로는 온전한 재난 회복을 이뤄낼 수 없다.

노토반도 지진(2024)으로 불에 탄 와지마시의 새벽시장 / ©Park Eunseon
사람을 살리는 마을
AI가 (아직) 못하는 것이 있다. 공동체와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며, 다른 사람들이 곤경에 처할 때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돕는 행동이다. 동일본 대지진, 구마모토 지진(2016), 노토반도 지진(2024), 발렌시아 홍수, 고성 산불(2019), 청송 산불(2025) 등 재난 상황을 맞닥뜨린 2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피했는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웃이나 가족이 알려주거나 도움을 받아 대피한 사람이 70% 이상이었다. ▼5 재난 문자를 받고 대피를 한 사람도 있으나, 사람들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문자를 받는다고 바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6 즉 새롭고 신기한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이웃, 동료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7
문제는 가족, 친구, 이웃, 동료가 없는 사람들, 즉 사회적 자본이 없는 이들은 재난 시 사망 위험이 높고 ▼8 회복 과정에서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독사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 이후 15년간 진행된 추적 연구에 따르면 응급 가설 주택에서 236명, 재해 복구 공영주택에서 681명이 자살 혹은 고독사했다. ▼9 일본 정부 및 연구자들은 한신-이와지 대지진 이후 박스 형태의 가설 주택 및 아파트형 임대주택 형태가 고독사를 불러왔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재난 이후 주민들이 고립되지 않는 방법을 연구 중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10

야마모토 리켄이 헤이타에 작업한 모두를 위한 집 / ©Riken Yamamoto & Field Shop
공동체를 살리는 건축
이러한 측면에서 야마모토 리켄 건축의 핵심과 재난 이후 건축의 목표는 일치하는 점이 있다. 야마모토 리켄 건축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장소’의 창조인데 이는 재난 이후의 건축과 이주 단지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다. ▼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야마모토 리켄, 세지마 가즈요, 이토 도요 등이 설계한 ‘모두를 위한 집’은 마을 재건을 위해 건축가들이 설립한 커뮤니티 시설이다. 야마모토 리켄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술도 한잔씩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재난 이후 고독사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들은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제도상의 연속성이 아니라, 피해자 삶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 ▼12 이라고 말한다. 야마모토 리켄은 노토반도 지진 이후에도 건축 재건 시 반드시 지역을 상징하는 검은 기와를 살려 디자인하되 지역 시장과 작은 점포를 먼저 재건하여 경제 활동과 복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난 회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건축물의 파손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재난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하는 데 있어 손실 판단은 신속하고 과학적이어야만 정당한 의연금이나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공무원들이 육안으로 간략하게 파악하고 있어 재난 피해 주민들이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도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재난 피해 파악이 정확하지 않다는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발렌시아 건축가 협회 소속 건축가들은 발렌시아 시를 대신하여 재난 피해자들의 집을 방문해 파손 정도와 안전을 진단하는 체계적인 자원봉사를 했다. 홍수로 집이 파손된 한 사진가는 “건축 전문가들이 와서 집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진단해 줬을 때 정말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건축가들, 도시계획가들은 텐트 같은 임시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재난 상황에 기여할 수 있다.
건물 재난 피해 점검표 일부. 스페인 발렌시아 자치정부, 발렌시아 건축연구소에서 제공한 건물 재난 피해 점검표로 구조적 안전성, 후차적인 조치 등을 확인하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 ©GENERALITAT VALENCIANA, IVE (Instituto Valenciano de la Edificación)
1 Jeane Camelo, Talea L. Mayo, and Ethan D. Gutmann, ‘Projected Climate Change Impacts on Hurricane Storm Surge Inundation in the Coastal United States’, Frontiers in Built Environment 6 (Dec. 2020), https://doi.org/10.3389/fbuil.2020.588049.
2 Ban Shigeru, Shigeru Ban: Humanitarian Architecture, Routledge, 2014; Ernesto Antonini, Andrea Boeri, and Francesca Giglio, Emergency Driven Innovation: Low Tech Building and Circular Design, ‘Innovation, Technology, Knowledge Management 1’, 2020, pp. 978 – 983.
3 https://peacewindsamerica.org/, accessed 15 May 2025.
4 Machiko Inoue, Shoko Matsumoto, Kazue Yamaoka, and Shinsuke Muto, ‘Risk of Social Isolation among Great East Japan Earthquake Survivors Living in Tsunami-Affected Ishinomaki, Japan’, Disaster Medicine and Public Health Preparedness 8.4 (2014), pp. 333 – 340; Kathleen J Tierney, James D. Goltz, Emergency Response: Lessons Learned from the Kobe Earthquake, University of Delaware Disater Research Center (1997).
5 Eun-Seon Park, D. K. Yoon, ‘The Value of NGOs in Disaster Management and Governance in South Korea and Japan’,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ster Risk Reduction 69 (2022), https://doi.org/10.1016/j.ijdrr.2021.102739.
6 Nam Yi Yun, M. EERI, and Masanori Hamada, ‘Evacuation Behavior and Fatality Rate during the 2011 Tohoku-Oki Earthquake and Tsunami’, Earthquake Spectra 31.3 (2015), pp. 1237 – 1265; Adeola O. Francis, ‘Katrina Cataclysm: Does Duration of Residency and Prior Experience Affect Impacts, Evacuation, and Adaptation Behavior Among Survivors?’, Environment and Behavior 41.4 (2009), pp. 459 – 489, https://doi.org/10.1177/0013916508316651.
7 Dewald Van Niekerk, Livhuwani David Nemakonde, Leandri Kruger, and Kylah Forbes-Genade, Community-Based Disaster Risk Management, ‘Handbooks of Sociology and Social Research’, edited by Havidán Rodríguez, William Donner, and Joseph E. Traino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pp. 411 – 429, https://doi.org/10.1007/978-3-319-63254-4_20; Rajib Shaw, Mikio Ishiwatari, and Margaret Arnold, Community-Based Disaster Risk Management, World Bank Publications – Reports, The World Bank Group (2011), https://EconPapers.repec.org/RePEc:wbk:wboper:16110.
8 Ryan Ojerio, Cassandra Moseley, Kathy Lynn, and Neil Bania, ‘Limited Involvement of Socially Vulnerable Populations in Federal Programs to Mitigate Wildfire Risk in Arizona’, Natural Hazards Review 12.1 (2010), pp. 28 – 36; EunSeon Park, D. K. Yoon, and Yeon-Woo Choi, ‘Leave No One behind: Experiences of Persons with Disability after the 2017 Pohang Earthquake in South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ster Risk Reduction 40 (2019).
9 田中正人 and 上野易弘, ‘被災市街地の住宅セイフティネットにおける「孤独死」の発生実態とその背景 ’, 地域安全学会論文集 15 (2011), pp. 437 – 444, https://doi.org/10.11314/jisss.15.437; Tierney and Goltz, op. cit.
10 Hitoshi Ohto, Masaharu Maeda, Hirooki Yabe, Seiji Yasumura, and Evelyn E. Bromet, ‘Suicide Rates in the Aftermath of the 2011 Earthquake in Japan’, The Lancet 385.9979 (2015), p. 1727, https://doi.org/10.1016/S0140-6736(15)60890-X.
11 Christian Dimmer, ‘Evolving Place Governance Innovations and Pluralising Reconstruction Practices in Post-Disaster Japan’, Planning Theory & Practice 15.2 (2014), pp. 260 – 265.
12 田中 and 上野, op. cit.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리슨투더시티를 2009년부터 이끌어오고 있으며, 재난 임시 건축물, 재난 대피소, 재난 커뮤니케이션 등의 연구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