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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소설가의 도시, 군산

사진
김종오(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이손건축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인터뷰 황석영 소설가 × 김정은 편집장 

 

 

타자의 도시

김정은(김): 선생님께서 다양한 도시, 국가를 돌아다니신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1943년 만주에서 출생했고, 평양을 거처 월남하여 서울 영등포에서 유소년기 대부분을 보내셨죠.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하셨고, 1970년대에 『장길산』을 쓰면서는 해남으로 내려가셨고,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방북하셨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뉴욕과 베를린에서 지내시기도 했습니다. 그 일로 감옥에도 다녀오셨죠. 최근에는 익산에 계시다가 몇 년 전 군산으로 거처를 옮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산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황석영(황): 2018년부터 익산에 있다가 2021년 경기도 광주의 한 문화재단이 개인 집필실을 마련해줘서 거기 머물렀어요. 리모델링까지 해준 집필실은 산에 빙 둘러싸여 있고, 강이 보이고 풍경이 아주 근사했죠. 아마 작가는 경치가 좋은 곳에서 글이 잘 나오겠거니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숲 한가운데 나 혼자 있는 거야. 산 위에 있다 보니 생활이 좀 불편했죠. 두 해 겨울을 지내고 떠나볼까 싶었어요. 고민 끝에 후배들이 ‘이리로 오시죠’ 해서 군산에 오게 된 거죠.

 

김: 군산의 역사나 건축, 자연 등, 특히 선생님을 이끌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황: 군산은 젊었을 때 와본 게 전부였지. 익산이야 교통이 편리하지만, 군산이 일 보러 다니는 동선상 거치는 지역은 아니잖아요. 젊을 때 추억을 떠올려보면, 군산은 일본의 지방도시, 소항구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옛날에는 예쁜 일식 주택들이 탁탁탁 펼쳐져 있었지. 지금은 1970~1980년대 분위기로 바뀌었더라고. 그것도 역시 괜찮아요. 우리는 나이가 많으니까 건물과 도시의 변화를 알잖아. 가만히 보면 영등포하고 비슷해요. 나는 네 살 때 이북에서 월남해 영등포, 대방동, 여의도 등지에서 서른 살까지 살았어요. 영등포나 군산 모두 일본이 만든 산업도시잖아요. 근데 거기에 덧칠해나가는 과정이나 풍경이 비슷해. 역 앞에 본정통(本町, 혼마치)이 있는 것이며 일제시대를 거친 도시들은 다들 비슷해요. 그래서 친숙하지.

 

김: 한 문학평론가는 선생님께서 자발적인 디아스포라를 실천하신다고 말하기도 했죠.

황: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지. 좀 유식하게 이야기해보면, 하이데거가 현대를 고향이 다 사라진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현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때 고향이란 고유한 실존, ‘근원에 가까운 곳’을 말하는거지. 그런데 그렇게 심각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나는 늘 거주하지 않는 자란 느낌이 들어요. 어딜 가도 지나가는 사람이지. 그래서 한 이삼 년쯤 지나면 들썩들썩해. ‘지루해졌네’ 이렇게. 군산이든 익산이든, 또 어디 낯선 도시에 가 있을 때도 망명했을 때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방북 이후 베를린에서 2년 반, 뉴욕에서 2년 반, 그 뒤에 냉전이 종식된 뒤 2천년대에 런던에서 또 2년 반, 파리에서 2년 반, 그러니까 전부 합하면 10년쯤을 유럽과 미국에 체류했어요. 그런 경험을 거치고 나면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나는 세계성과 지역성을 모두 담고 있는 글로컬(glocal)이란 말이 참 적당한 것 같아. 한국의 낙후된 소도시건,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건, 혹은 뭐 더블린이건, 모두 같아. 장소일 뿐이고, 기억은 내가 여기에 만들어야 돼요. 나에게 원래 그런 자세가 있었어요. 게다가 내가 80대에 접어드니 기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껴요. 그러니까 ‘갈 때가 가까웠나. 그럼 죽을 자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옛날 어른들은 이사할 때 일본말로 ‘니즈쿠리(にづくり, 짐 꾸리기)’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죽을 준비, 니즈쿠리를 잘해야 되잖아요. 작가에게 죽음은 통과의례이고, 동시에 자기를 만들어가는 마지막 과정이거든. 그러니까 죽는 장소나 죽음도 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죠.

 

김: 그러면 군산은 거쳐간다기보다는 좀 더 목적을 가지고 선택한 장소네요.

황: 그렇지. 내가 어디 물레방아가 도는 전원에 가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낯선 해외에서 객사할 것인가. 뭐 어차피 모두 객사지만. 그런데 좀 어울렸으면 좋겠다 싶었지. 그래서 내 문학을 정의해보면 나는 분단 시대의 작가야. 한 70~80년 동안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다 그런 처지니까. 그런데 좀 노골적이잖아.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분단을 포함해서 지난 100여 년을 근대기로 보는데, 동아시아 전체가 근대 극복을 못 했다고 생각해요. 겉모양, 그러니까 트렌드나 하는 행동은 포스트모던인데 알맹이를 까보면 근대를 극복 못 했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도 그렇지. 일본은 아직도 천왕이 있잖아요. 천왕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거든. 그러니 지도층이 여전히 그 옛날 군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지. 우리는 통일된 근대 민족국가를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근대와 씨름하고 있고. 중국은 잘 아시다시피 사회주의 혁명을 했는데 겉모양은 굉장히 부패한 첨단 자본주의인데 내용은 사회주의라고. 그러니까 모두 근대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지. 그럼 나는 어쩌냐. 나는 근대의 극복과 수용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써온 사람인데 군산이 그런 주제와 어울리는 요소가 있어요. 군산은 토박이들의 도시가 아니에요. 군산은 타자의 도시거든. 그래서 새로운 사람에게 덜 배타적이지. 지나가는 사람이 와서 걸치기가 참 좋은 거야. 

 

김: 처음에는 일본이, 해방 후에는 미군이 도시를 만들어갔던 군산의 역사적 궤적이 낯선 이에게 수용적인 이 도시의 성향을 만들어냈고, 그래서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셨던 선생님의 성향이나 소설가로서의 주제의식과 맞아들어 갔다는 말씀이시네요.

황: 근대의 극복과 수용이라는 나의 화두는, 아마 건축가의 생각과 비슷할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의 기억과 정체성을 한쪽은 공간으로 찾는 거고 한쪽은 이야기를 통해서 만드는 거니까. 그러니까 건축이 이야기성을 갖는 거나 소설이 공간성을 갖는 거는 서로 교차할 수 있는 가치예요.

 

 

황석영. ©Bang Yukyung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만나는가

 

김: 선생님은 평소 ‘글쓰기는 노동이다’란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저는 그런 답변을 방대한 자료조사에서 실감했습니다. 일례로 100여 년을 아우르는 『철도원 삼대』(2020)를 보면 영등포, 여의도, 인천 등의 지리적ㆍ도시적 특징이 그림처럼 묘사되고, 근대의 상징인 철도와 관련된 부분은 구체성과 거시적인 통찰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여느 근현대 연구자보다 더 폭넓고 구체적인 조사를 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가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 여쭤보고 싶었어요.

황: 이야기란 역사적 사실을 그냥 옮겨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걸 인간의 삶으로, 일상으로 바꿔야 하니까. 『동국여지승람』이나 군읍지 같은 옛날 책을 보면 다 묘사가 돼 있거든. 그럼 A4 용지를 가져다 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가령 장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다고 치면, 약전을 돌아 들어오면 어떤 포목점이 있고, 옹기전이 있다는 둥, 그런 걸 쫙 그려놓으면 머리에 그림이 들어오잖아요. 그렇게 쓰죠. 그런데 근대를 이야기한 『철도원 삼대』는 나의 추억이나 기억도 녹아 있는 영등포를 배경으로 하니 이야기하기가 훨씬 쉽지. 소설 속 캐릭터도, 당시 봤던 장터의 고구마 장수나 초등학교 때 가출했다가 만난 아주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반영된 등장인물인 거죠.

 

김: 선생님은 2021년 한 작가 초청 강연회에서 “우리 전통서사와 현대 삶의 모습을 접합시켜서 글을 쓸 것”이라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황: 예전에 영국의 소설가 마거릿 드래블(Margaret Drabble)을 만났는데, 『손님』(2001)을 읽고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남미 작가들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한국판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게 아니라 우리는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한다고 했지. 내가 이름 지었어요. 민담은 뭐고 역사는 뭘까. 역사란, 민중의 일상에 가치를 부여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이에요. 옳고 그름을 규정해서 기억시키는 게 역사란 말이지. 그런데 민담은 그 역사로 가기 전 중간 단계예요. 일상이 더 부풀려지거나 상상력과 뒤섞이는 것. 예를 들어 남대문에 가본 이가, “이야, 남대문이 얼마나 높은지 남산하고 거의 높이가 비슷해. 그 밑으로 사람들이 개미 새끼처럼 지나가고 말이야”라고 말하는 식이죠. 서울에는 가보고 싶지만 안 가본 놈은 모르잖아. 그렇게 욕망을 해결하는 게 민담이라고. 문학이 그 세계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역시 문학은 ‘구라’라는 점을 면할 수가 없는 거야. 

 

김: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조선의 3대 구라’, ‘이야기꾼’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웃음)

황: 그런 틈새 속 휴머니티의 따뜻함이나 체온, 이런 것들 때문에 문학이 존재하지. 아니면 역사책을 읽지 왜 소설을 읽겠어요. 

 

김: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하 리터닝 군산) 같은 경우 단순히 기존 가옥을 보존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넘어, 누적된 삶을 이어나가는 데 목적을 둔 작업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고 지속하는 일은 장르를 떠나 정체성을 찾으려는 창작의 공통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리터닝 군산 혹은 오래된 건물을 재생하는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황: 리터닝 군산은 의도가 좋고, 다른 도시들에 비해 성공적인 면이 있어요. 익산만 해도 오래된 건물들은 거의 폐허가 됐어요.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비싸니 관에서 손을 대기도 어렵고. 부분적으로 빈 부분이 생기면 허물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지. 그런데 기억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기억에 의해 삶이 구성되고 과거와 현재의 삶이 만나거든. 특히 건축은 각 시대마다 모양이 다르잖아요. 삶의 형태가 다르니까. 건축은 기억이 축적돼 있는 장소란 말이야. 군산이 일제가 들어와 식민도시로 만들고, 이후에는 미군이 들어와서 환락가가 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중첩되면서 세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쌓여 있죠. 그 삶의 결을 강점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러면서 골목길 같은 것들을 건축적으로 해석해내면 좋겠죠.

 

 

손진(왼쪽)과 황석영(오른쪽). ©Bang Yukyung​ 

 

 

근대의 극복과 수용을 위한 문화적 동행

김: 선생님께서는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현장마다 계셨기 때문에 ‘황 포레스트 검프’라는 별명도 가지고 계시죠. 최근에는 가칭 ‘칼라(KAALA: Korea with Asia, Africa, Latin America)’라는 제목과 ‘글로벌 사우스 문화연대의 재구성과 포스트 식민도시 군산의 재서사’란 부제로 내년 하반기에 페스티벌 개최를 목표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역사의 빈칸을 채워오셨던 선생님께서 이제는 군산에서 더 큰 연대를 도모하시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황: 칼라 역시 마무리의 하나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나 상을 제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한국에 문학관이 148개나 되요. 으리으리한 건물에 나랏돈이 상당히 들어가죠. 그런데 우리가 유럽의 어느 도시에 가봐도 자그마한 명패 하나로 예술가들을 기억하잖아요. 헤밍웨이도 그렇고, 베토벤도 그렇고. 나는 죽어도 이 도시에 칼라가 남아 존재하는 거지. 칼라는 군산 그리고 우리 국가의 정체성에도 맞는 일이에요. 이 세계에는 세 종류의 나라가 있어요. 제국주의를 한 나라, 못 해본 나라, 식민지였던 나라. 그 의미는 세계 모든 나라의 근대는 왜곡된 근대라는 거죠. 제국주의를 했던 나라들은 남의 것을 뺏어서 자기 식구들 더 잘살게 하려고 온갖 나쁜 짓을 해서 근대를 이루었단 말이야. 반면 우리는 식민지까지 되었었지만 한 세대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냈단 말이에요. 물론 내부에서 민중들을 희생시켰지. 그럼에도 이건 대단한 거죠. 이제는 남들이 우리 보고 선진국이라네. 우리는 그 길을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거기서 허덕이고 있는 내 친구들이 많이 있어. 그러면 형 노릇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이 친구들과 함께 제국주의와는 다른 문명을 지구상에 만들자는 이야기예요. 인지상정으로도 그렇지만, 미래 공동체의 기획을 위해서도 필요하죠. 문화적으로는 제3세계,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 정치외교적으로 비동맹운동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그 조건이 시간이 흘렀어도 변한 게 없어요. 지금도 미국과 중국 등 패권 국가들이 계속 싸우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살길을 찾아 나가야지. 요새는 제3세계라는 말을 잘 안 써요. 중동이란 표현도 유럽에서 볼 때 그런 거지. 그럼 우리 스스로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반문해봐야 해. 비서구권,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말도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한 국가들이 모여 탈식민주의를 논하기에 군산이 적당한 서사를 가졌다고 본 거죠. 근대를 극복하고 무엇을 수용할 것인가 이런 것이 나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군산의 주제이기도 하고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거지.

 

김: 칼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지요?

황: 20세기 중후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AALA) 작가연합은 문화적 연대를 통해 탈식민 세계의 공동 정체성을 추구했어요. 이들은 로터스 문학상을 제정하고, 제3세계 문학의 고유한 상상력과 민중적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어요. 이 운동은 최근 이집트를 중심으로 알라 작가연합(Writers’ Union of AALA)에 의해 다시 복원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과 구분되지만 연대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군산을 중심으로 칼라 페스티벌을 비엔날레로 계획하고 있어요. 8월 4일에 창립총회를 할 예정이고. ‘Korea with AALA’라는 이름 아래, 문학과 예술,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남남협력(South-South Solidarity)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가디언 트리 프라이즈(Guardian Tree Prize)’라는 상을 신설해서 문학・미술・영화 그리고 환경평화 부문까지 시상할 예정이에요.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의 작가를 초청해 군산 전역에서 개최할 계획이죠. 격년으로 개최해 비엔날레로 정착시키는 게 목표예요. 제가 이사장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재단 구성원들은 돈을 내기로 하고 기부도 받아요. 그래야 실체가 생기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어요. 처음부터 관 주도로 추진하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민간에서 주도한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결국 시민들이 깨어야 합니다. 건축이나 지방도시의 문제도 밖에서 누가 와서 해주는게 아니라 시민 스스로 해야되는 거죠. 리터닝 군산도 폐허가 되기 직전의 상태에서 시민이 시작한 거죠.

 

김: 그러면 특별한 문화적ㆍ역사적 자산이 없는 지방도시에는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질문 자체가 지역을 바라보는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된 걸까요?

황: 잘못됐어요. 왜냐하면 도시의 가치를 문화재나 산업을 중심으로 판단하는게 중앙이나 서울 사람의 관점에서 위계적으로 본 거예요. 삶은 제각각 다르고 도시도 모두 다른 거예요. 현장에 가서 사람들하고 자꾸 이야기하고, 그들에게서 도시재생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그래서 그 지역의 삶의 결이 드러나게 해야죠. 건축은 해프닝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인 겁니다. 지방도시는 바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복닥거리는 일상에 의해 변해야 합니다. 건축가 정기용이 “나는 창조를 한 적이 없다. 거기 살고 있는 시민들의 상상력을 재현했을 뿐이다”라고 했던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바로 그 지점에 지방소멸이나 지역재생의 해답이 있어요. 정기용은 면사무소 지어 달라고 해서 설계하다가 무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욕탕을 지어 달라는 말에 한국에는 없는 목욕탕이 딸린 면사무소를 지었잖아요.

 

김: 마지막으로 군산을 무대로 한 선생님의 새로운 소설을 기대해도 될까요?

황: 지금 ‘할매’라는 이름으로 팽나무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군산 미군기지 철조망 안에 600여 년 된 팽나무가 있는데, 시민들이 오랫동안 항의를 해서 팽나무보다 더 안쪽으로 철조망을 옮겼어요. 그전에는 캘리포니아 나무였는데, 이제는 조선 나무가 됐지. (웃음) 이번에 칼라에서 제정하는 상 ‘가디언 트리 프라이즈’는 그 이름을 딴 거예요.

 

 

 

월간 「SPACE(공간)」 694호(2025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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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손님』, 『심청, 연꽃의 길』,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으며,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해질 무렵』은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고, 『철도원 삼대』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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