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부재로 존재 입증하기: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글
김혜린 기자
사진
홍철기(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SPACE(공간)」 2025년 10월호 (통권 695호)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클러스터(왼쪽), ‘마녀와 영매의 것’ 클러스터(오른쪽) 

‘등가 교환’ 클러스터(앞),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 망자의 안식은 없다’ 클러스터(뒤) 

 

 

다양한 민간신앙과 종교가 서로 상응하면서도 기묘하게 교차하는 한국에서 영적 존재와의 조우는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져왔다. 지난 8월 26일 문을 연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영혼의 실존에 대한 논증을 차치하고, 영혼을 믿고 또 불러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신적 차원에 주목한다.아직 극복하지 못한 죽음에 관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이 땅에서, 이번 비엔날레는 강령의 기술을 통해 오랫동안 배제되어온 힘과 지식 체계를 수용하고 시대적 상처를 돌보는 예술의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마당에서 진행된 이승택의 ‘분신행위예술전’(1989/2025) 재연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 클러스터, 전면의 작품은 조지아나 하우튼이 생전 여러 영혼들과 교신을 통해 그린 수채화 

 

 

강령이 필요한 시대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팀인 작가이자 영화감독 안톤 비도클(「이플럭스」 창립자),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 할리 에어스(「이플럭스」 부디렉터), 루카스 브라시스키스(「이플럭스」 필름 큐레이터)는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 주제를 ‘강령(降靈, séance)’으로 잡고, 서울 전역을 강령회가 펼쳐지는 장소로 변모시킨다. 프랑스어로 강령, 심령술을 뜻하는 ‘세앙스(séance)’는 영화 상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자를 불러내는 ‘강령’과 현 시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과 시간대를 불러내는 영화 상영이 같은 단어로 쓰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안톤 비도클이 말하듯 “많은 예술이 지나가는 것들을 기억으로 붙잡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미루어보았을 때 우리는 어쩌면 강령과 멀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감독팀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미디어 작품을 비롯해 영화, 회화, 설치 작업 등의 다양한 예술을 조망하며 근현대 미술사 속에서 영적 경험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조사했다. 이들은 식민 폭력에 대한 인식이 영성을 깊이 내포한 비서구 예술을 조명하게 했다고 말한다. 또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화된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영성주의나 주술적 실천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처럼 AI, 디지털 자동화, 알고리즘적 통치 등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또한 많은 예술가들이 물질적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지식과 경험의 형태에 다시 연결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의식, 의례, 명상, 종간(inter-species) 연결 등 더 인간적인 세계와 다시 얽히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국내외 87명(팀)의 작가, 퍼포머, 영화인들의 작품이 다뤄진다.

 

 

​

마녀와 영매의 것’ 클러스터, 수잔 트라이스터의 ‘헥센 5.0’(2023~2025) 

백남준의 ‘TV부처’(1989) 

 

 

서울, 미로와 색으로 풀어내는 공간의 조형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이하 SeMA)과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청년예술청 SAPY 등 서울 전역의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진다. 그중 주된 전시가 진행되는 무대인 SeMA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성재판소 건물의 전면 파사드를 보존한 공간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SeMA의 내부로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검은 반투명 구조물(미로, 튜브)을 마주하게 된다. 튤 원단으로 감싼 통로 형태의 목조 가설물은 분리되어 있던 전시 공간 사이에 물리적·개념적 경로를 마련해 전시 경험의 연속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예술감독팀과 홍콩 기반의 건축팀 콜렉티브(COLLECTIVE)가 협업해 만든 구조물이다. 어두운 미로를 통과해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운 강렬한 마젠타 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감독팀은 콜렉티브와 그래픽 디자인팀 논플레이스 스튜디오와 협업해 색을 단순히 미적이거나 상징적인 요소가 아니라, 전시장의 구조적 요소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애니 베전트와 C.W. 리드비터의 『상념체』(1908), 불교의 사찰, 아유르베다 진단 방법▼1 등 다양한 영적, 종교적 이론에서 색은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예술감독팀은 다양한 색채 이론들을 참조해 새로이 ‘색채선언’을 선포한다. 마젠타,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 분홍색 등 각각의 전시 영역을 구분하는 색들은 점진적으로 그러데이션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색의 장을 거닐며 작품들을 경험하게 한다. 각각의 색은 그 의미나 시각적인 조화가 아닌 지각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 선정되어, 집중, 평온, 강렬함 등의 감각을 전달한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는 색채의 흐름 속에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블랙박스(영상 상영 공간)가 오브제처럼 자리한다. 악기를 판매하는 상업 건물인 낙원상가에 조성한 ‘유리드미’클러스터는 청각적 재정렬과 재조율을 위한 공간이다. 낙원상가 아케이드 여기저기에 흩어진 실들은 망자의 목소리를 닮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사운드룸, 영상이 투사되고 사진과 라디오 등의 설치가 펼쳐지는 장소로 이용된다. 낙원상가의 강한 정체성은 비엔날레에서 전시되는 작품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각각의 작품들이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감각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또한 건물의 주 아케이드는 본 전시장의 미로와 튜브처럼 다양한 전시 공간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 밖에도 청년예술청 SAPY에서는 작가 ORTA가 ‘새로운 천재들의 위대한 원자폭탄 반사기 경험’(2025) 퍼포먼스를 펼쳤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전시 동반 프로그램으로 매주 영화가 상영된다. 예술감독팀은 비엔날레의 질문을 영화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해 영화 자체를 하나의 강령회 매체로 다루는 작품들(유령, 조상, 심령 현상, 꿈, 변성의식 상태) 21편을 선정했다. 이들은 긴 상영 시간 속에서 집단적 관람은 또 다른 형태의 집단적 의례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실천적 우주론’ 클러스터, 전면의 작품은 윙포소의 ‘증발하는 심포니’(2025)​

‘테크네’ 클러스터, 권병준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역사 속에서 부활하는 새로운 서사

근현대의 굴곡진 역사가 담긴 SeMA의 마당과 카페 공간은 전시의 시작점으로 예술감독팀은 이곳을 ‘부활카페’라고 새로이 명명했다. 특히 비엔날레 개막식 당일, SeMA 마당에서는 작가 이승택의 ‘분신행위예술전’(1989/2025)이 펼쳐졌다. 대지미술과 한국 무속 전통을 결합하는 이승택은 마당에 조각상을 배치하고, 불사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예술을 물질로부터 분리해 영적 해방을 이루는 이 작품은 물질을 불사르는 행위, 즉 소멸의 행위로부터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다. 타오르는 불티와 함께 탄생한 새로운 예술은 ‘부활카페’라는 이름과 조화를 이룬다. 전시는 ‘어제 온다면, 내일은 최초가 되리라’클러스터로 이어진다. 사회 개혁가이자 건축가였던 루돌프 슈타이너, 조지아나 하우튼, 힐마 아프 클린트, 데구치 오니사부로, 엠마 쿤츠, 백남준 등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패러다임을 창조한 작가나 인물들의 작품이 전시장의 도입부에 펼쳐진다. 예술감독팀은 이미 고인이 된 작가들을 다룸으로써 전시를 역사적 부분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강령회란 결국 물리적으로 부재한 이들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과 연결되며, 관람객들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중간지대로 안내한다. ‘마녀와 영매의 것’클러스터에서는 자연세계와 초자연세계와 연결된 마녀, 점성가, 예언가와 관련된 작품들을 다룬다. 마녀가문에서 자란 작가 요하나 헤드바는 18세기의 마법 주문서 『악마학과 마법 개요서』에 수록된 수채화를 재제작한 두 점의 직물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 마야 데렌은 미완성 단편영화 ‘마녀의 요람’(1944)에 오컬트 의식을 펼치는 마녀를 등장시킨다. 거울을 통한 분열증적인 미장센과 인물을 포위하는 끈, 박동하는 심장 모형, 어지러운 쇼트들은 관람객들을 마녀의 몽환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수잔 트라이스터의 ‘헥센 5.0’(2023~2025)은 전통 강령회의 형식을 참고해 거대한 직사각형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타로 카드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린 수채화 78점은 타로 카드의 요소들을 현대 과학기술, 실천, 미래의 담론 등의 다양한 분야로 치환하며 과학, 예술, 영성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얽혀 있던 과거의 전통을 다시 이어나간다. 전시는 ‘트랜스’, ‘실천적 우주론’, ‘아픔을 치유하고, 망자를 일으키며, 환자를 씻기고, 귀신을 쫓아내라’, ‘테크네’, ‘등가 교환’ 클러스터를 지나며 트랜스·오컬트·원소적 얽힘·치유·기술 등 우리가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실천의 다양한 형태를 담아낸다. 그런가 하면 ‘적들이 승리한 세상에 망자의 안식은 없다’에서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정치적 유산이 영적 실천을 통해 현재에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에서부터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점에서의 영혼의 기술들이 각각의 클러스터에서 다뤄진다. 예술감독팀은 클러스터의 전환을 통해 관람객이 강렬함·고요함·대면 등 서로 다른 집중의 상태를 오가도록 이끈다. 관람객들은 공간별로 조율된 색의 파동에 주파수를 맞추며, 어제의 죽은 이들과 조우하고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청년예술청 SAPY에서 진행된 ORTA의 퍼포먼스 ‘새로운 천재들의 위대한 원자폭탄 반사기 경험’(2025) 

제인 진 카이젠의 퍼포먼스 ‘동요’(2025),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퍼포먼스 커미션 및 덴마크예술재단 제작 지원 

 

 

실천적 영혼의 기술

이번 비엔날레를 위한 작업들을 커미션하는 과정에서 예술감독팀은 개념을 단순히 ‘삽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이 이미 수행해온 실천과 탐구를 확장하도록 지원했다고 말한다. 키부 루호라호자와 크리스티안 니암페타, 아노차 수위차콘퐁의 영화 작업이나, 터전을 잃은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광범위한 정치적 역사를 탐구하는 제인 진 카이젠의 퍼포먼스 작업 ‘동요’(2025)는 각 작가가 오랫동안 문화적 맥락 속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연장선이었다. 또 히와 케이의 경우 자신의 병증을 현대 의학이 아닌 지역의 전통 치료사의 치료로 치유한 개인적 경험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당신은 무엇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2025)를 만들어냈다. 이들 작업은 단순히 일시적인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를 심화하고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접근법을 활용해 예술감독과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부재하는 세계, 혹은 존재와 마주하게 한다. 이들은 부재에 이름을 붙이고, 형태를 부여하고, 부재 바깥의 것들을 담아냄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가시적으로 소환해낸다.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친밀한 미신들과 조우할 수 있는 이번 비엔날레는 11월 23일까지 진행된다.​ 

 

 

낙원상가에 위치한 ‘유리드미’ 클러스터에 설치된 온다 아키의 ‘백남준의 영혼이 내게 말했다’(2017/2022) 

 

_

1 아유르베다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인도의 전통 의학 요법이며, 그중 색채 요법은 각 색상이 특정 장기와 기질, 에너지에 상응한다고 본다. 

 

 

 

월간 「SPACE(공간)」 695호(2025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