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 경험의 시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특별한 감각을 지닌 호스트가 세심하게 준비해놓고 떠난 환대의 공간과 분위기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스테이를 통해 건축이 경험으로 완결되는 서사를 설계해온 지랩. 지난 10여 년간 이들의 활약은 스테이가 하나의 장르로서 독자적 시장을 형성하며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지랩이 제주를 중심으로 선보인 공간을 함께 돌아보며 스테이의 발전과 진화,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아름집(2024)은 서울에 거주하는 건축주의 세컨드 하우스로,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작은 아지트 같은 집으로 계획됐다. ‘아름답다’에서 ‘나’를 뜻하는 ‘아름’을 이름으로 가져와 ‘나를 돌아보고 나와 시간을 갖는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각 실은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높이에서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낮은 처마, 굴뚝, 선홈통, 고재로 만든 툇마루, 현무암 벽난로, 귤나무와 빌레는 고향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요소다. ©Roh Kyung

아름집(2024). ©Roh Kyung
인터뷰 노경록 지랩 공동대표, 강해천 지랩건축사사무소 대표 × 방유경 기자
방: 이런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축적된 노하우나 공통된 가이드라인이 있을 것 같다.
강: 지랩이 일반적인 설계사무소와 다른 큰 차이는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마지막 끝단까지 직접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침구와 커튼, 집기와 가구, 소품과 룸스프레이까지 고민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만 보이는 디테일이 있다. 이런 점은 특히 유지 관리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인테리어를 할 때도 회사의 철칙이 있는데, 침대를 배치할 때 관리자가 매일 침대 시트를 쉽게 교체하도록 헤드보드 양쪽에 사이드를 붙이지 않도록 한다. 직원들이 가져오는 디자인 레퍼런스를 보면 움직일 수 없이 맞춤으로 들어가는 가구나 요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작업하는 스테이는 호텔과는 달리 한 곳을 정리하는 데 2~3시간이 소요된다. 유지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면 물리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은 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우리만의 노하우인 것 같다.
노: 건축가로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변화가 있었다. 공간의 온기, 촉감, 향, 빛(조명)은 이전에 설계할 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언어였다. 건축에서 디테일은 재료가 만나는 부분의 처리 방식, 마감, 구조의 결구 세부 같은 것을 지칭하지만, 실제 공간의 사용자가 느끼는 디테일은 촉감, 향 이런 것들이더라. 우리 내적으로 축적된 노하우라고 하면, 신축이 아니라 오래된 집을 고칠 때 의도적으로 기존 공간의 구조와 높이감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것이다. 전체 층고를 조금 높이거나, 구조 기둥을 덜어내면 사용성은 좋아질 수 있지만, 오랫동안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문화적인 스케일과 비례는 재현하기 힘들어진다. 작은 요소 하나를 바꾸기 시작하면 구조가 이상해지거나 비례감이 깨지는 등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하더라. 그런 경험들을 통해 프로젝트 매니저가 건축적으로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의지를 자제시키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한다.

아름집(2024). ©Roh Kyung
아름집(2024). ©Roh Kyung
방: 조천마실(2019)처럼 구조나 공간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경우에 ‘건축가는 무엇을 했느냐’ 하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
노: 다른 건축도 그렇겠지만 스테이를 포함한 숙박시설의 목표는 상업적 성공이다. 건축에 대한 근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건축가로서 직업윤리상 이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 기획에서 건축설계, 브랜딩까지 아우르는 우리의 토털 디자인은 균형 잡힌 예산 구조를 통해 실현된다. 건축에서 대부분의 예산을 소모해서 인테리어, 브랜딩 등은 어설프게 마무리되거나 반대로 건축은 보잘것없이 해놓고 고가의 인테리어와 가구, 소품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은 균형이 무너진 공간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 아래 재원을 적절하게 배분해 특유의 오라를 지닌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와 이런 내용을 조율하면서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건축, 인테리어, 스타일링 혹은 가구 등에 가중치를 다르게 부여한다. 스테이 느릇의 경우 건물을 자연 속에 숨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역으로 건축 부분에 가장 많은 예산의 비중을 두고 추후 보완할 수 있는 야외 생태 놀이터와 생태 수영장 등 초기 조경 계획은 미래를 기약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감리까지 수행하면서 끝까지 지켜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담당자가 파악하고 있어야 완결성과 질, 개성을 잃지 않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강: 지랩의 초기 작업을 보면 건축에 무게를 두고 조경은 잔디만 깔고 마무리하거나, 가구는 기성품을 사서 넣는 등 타협한 지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건축에서 힘을 빼고 다른 부분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옮겨갔음을 발견하게 되더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편안함, 좋다고 판단하는 지점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공간으로 읽어야 하는데 건축으로 디자인했던 게 아닌가’ 하는 시선의 전환도 있었다.

아름집(2024). ©Roh Kyung
방: 시간이 흐르면서 제주성이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있다. 스테이를 작업하면서 느끼는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 우리 작업의 상업적인 측면만 너무 부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분명 있다. 그렇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사진일 것이다. 프로젝트 예산을 짤 때 사진 촬영까지 고려해 계획한다. 경험의 서사를 사진으로 함께 담아 전달해야 고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계에서 통용되는 건축적 사진과 다른 경험적 사진이 대중에 공유되면서 지랩의 공간은 ‘인스타그램용이다’, ‘상업적이다’라는 인식이 퍼진 것 같다. 한편으로 이런 경험이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 역시 표현 수단이 지닌 한계 때문이라 본다.
강: 우리가 설계한 공간 경험의 기승전결 중 몇 개의 단편적 장면만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되고 짜깁기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우리는 이 또한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이 지닌 숙명이라고 생각해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일반 대중 사이에서 재생산되는 이미지를 보면 공간을 이해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시장의 변화에 반응하려면 건축가가 고민하는 영역이나 역할에 대한 접근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방: 스테이폴리오의 공동 창립자 이상묵이 지난해 회사를 떠나면서 지랩과 스테이폴리오의 공식적 연결성도 일단락됐다. 플랫폼 운영과 협업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 비즈니스 모델로서 플랫폼 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팬데믹을 계기로 스테이 사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며 인력이 충원되고 거기에 맞는 전문적 대응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는데, 이런 방향이 건축설계업과는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디자인 회사는 프로젝트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마이크로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플랫폼 사업은 매크로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다. 2015년 사업을 분리할 때 현격한 차이를 느꼈다. 그럼에도 스테이폴리오와 협업했던 10년 가까운 시간은 지랩의 작업을 알리고, 또 스테이라는 시장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테이 느릇(2024)의 ‘느릇’은 제주어로 ‘내리막길’을 뜻한다. 제주 동쪽 중산간에 위치한 대지는 메밀밭과 삼나무로 둘러싸인 완만한 경사지였다. 자연에 순응하는 수평적인 풍경을 이루도록 건물을 대지 레벨보다 낮게 앉히고, 객실과 공용 시설은 커뮤니티 공간인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ㄷ자로 배치했다. 기단 하단의 현무암과 담장은 지반 작업에서 굴착한 돌을 활용해 전통 방식으로 쌓았고, 그 위는 농장 주변 나무의 질감을 고려해 삼나무로 마감했다. 지붕은 블랙 노출콘크리트로 처리해 제주의 현무암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으며, 옥상 정원에 억새를 심어 주변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네 가지 타입의 객실은 제주의 자연을 은유해 ‘송이’, ‘억새’, ‘오름’, ‘현무암’으로 이름 붙였다. 수영장이 딸린 중앙 광장. ©Roh Kyung

스테이 느릇(2024). 메밀밭이 보이는 오름 객실 내부. ©Yi Jaesok
방: 스테이 건축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 예상하나?
노: 스테이 시장은 이미 상향 평준화된 상태다. 유명 호텔 브랜드에서도 ‘스테이’를 론칭할 정도로 보편화되지 않았나. 한편 팬데믹을 겪으며 급속도로 확산된 독채 스테이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설계자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어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수의 만족을 위한 곳으로 진화하면서 주변과 소통이 없는 공간이 됐다. 요즘 건축주들은 단순한 스테이가 아니라 카페나 주택, 혹은 호스텔 같은 형태와 결합하는 등 시야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 작업 비율만 보더라도 과거에 독채 스테이가 70~80%를 차지했다면 지금은 30% 정도로 많이 줄었다. 건축주 중에는 스테이폴리오에 올리는 것을 거부하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독자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또한 우리 사무소 출신 디자이너들이 규모와 가격을 낮춰 인디밴드처럼 독특한 감성의 숙박시설을 만든 사례를 보며 시장이 다변화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강: 일반적으로 한 분야가 심화되면 장르가 늘어나다가 어느 시점에 파괴되고 장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스테이 역시 그런 시점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다시 본질을 중심으로 모이게 될 텐데 그것이 무엇일지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

스테이 느릇 전경. ©Roh Kyung
방: 이런 변화 속에 지랩에서 준비하고 있는 스테이의 다음은 어떤 모습인가?
노: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오래된 지역, 작은 동네를 살리고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사명감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경험하는 좋은 여행을 넘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교류와 커뮤니티, 지역과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더라. 서촌에서 실험한 마을호텔, 춘천 폐교를 리모델링한 오월학교(2020)를 비롯해 스테이 느릇도 그런 시도 중 하나였다. 최근 남원군의 한옥 음식점을 한옥호텔로 리모델링한 명지각 1956(2024) 같은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과 상생하는 가능성을 보게되는 것 같다.
강: 스테이 느릇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마스터플랜 개념으로 접근한 사례다. 제주 보롬왓 일대 농업을 기반으로 산업을 활성화하는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로써 지역 일자리도 창출하고 수국과 메밀 같은 특산물을 활용한 2, 3차 산업의 기반을 다진다는 취지가 중요했다. 지역 활성화와 더불어 경제적 수익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스테이와 건축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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