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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는가? 한국건축 출판 (1):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공간서가, 도서출판 마티

글
20기 SPACE 학생기자(김수경, 김예림, 이현수)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공간서가, 도서출판 마티
진행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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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은 정보를 대중과 공유하는 행위로, 단순한 기록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을 목표로 한다. 아카이빙이 정보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출판은 이를 세상과 연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현대에는 규모 있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개인도 자유롭게 출판을 시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건축 서적의 경우 종합출판사, 건축전문출판사, 독립출판사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건축을 탐구하고, 이를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해석하고 전달한다. 각 출판사는 고유한 철학과 지향점에 따라 주제와 담론을 선택한다. 이처럼 생산된 건축 지식은 단지 정보의 집합이 아닌, 출판사의 관점을 반영한 하나의 메시지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기록의 방식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는가’를 중심으로 출판사들이 건축을 사유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조명하고, 건축 지식의 다층적인 생산 구조와 의미 전달의 과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 내지 이미지  

 

 

인터뷰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 공간서가 / 도서출판 마티 × 20기 SPACE 학생기자(김수경, 김예림,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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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린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수학했다. OMA 로테르담과 협동원을 거쳐 이치훈, 정영준과 함께 2010년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이하 SoA)를 설립했으며, 2019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생산도시’를 기획했으며, 202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이치훈은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강예린, 정영준과 함께 SoA를 설립하였으며, 도시와 건축의 사회적인 조건을 분석하며 다양한 규모의 구축 환경을 탐구한다. 현대카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2015), 젊은건축가상(2015), 김수근 프리뷰상(2016), ‘아키텍처럴 리뷰’가 주관하는 신진건축가상 파이널리스트(2016)에 선정되었으며 코리아디자인어워드(2021),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2023)을 수상했다.

 

 

이민규는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 건축공간·예술학을 공부했다. SoA에서 출판과 아카이빙,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애뉴얼 북』과 『파괴적 창조』를 비롯한 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지면과 공간을 매체로 삼아 편집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을 실천하는 한편, 디자인 이론·역사·비평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관련 연구와 저술에도 참여해 왔다. 한국 디자인의 주변부와 하부구조에 주목하며, 지역·여성·현장의 목소리로 한국 디자인사의 공백을 증언하는 『이영희는 말할 수 있는가?』(2023)를 펴냈다.​ 

방유경은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현재 「SPACE(공간)」 선임기자로 「SPACE」의 단행본 브랜드인 공간서가를 담당하고 있다. 편집한 책으로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1996–2025』, 『김중업, 그 유산과 미래』,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 『서울 어바니즘』 등이 있다. 

서성진은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앳 시리즈’로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여성적 읽기로 여백을 쓰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고통, 장애 그리고 파멸에 대하여』 등을 편집하고 있다.

 

박정현은 건축비평가로 대학에서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미로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기자: 어떠한 콘텐츠를,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는가?

이민규: SoA는 건축뿐 아니라 가구나 공공예술, 리서치 등 여러 가지 형식을 통해 건축적인 고민을 실천해왔어요. 출판도 그런 실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기존의 건축 매체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체적으로 출판을 병행하고 있어요.

건축 스튜디오이면서 동시에 출판사로서 저희가 하는 작업의 특징이라면, 완공된 결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고민과 대화, 시행착오 같은 것들을 하나의 콘텐츠로 엮고 있다는 점이에요.

2022년부터 매년 만들어오고 있는 ‘애뉴얼 북’도 마찬가지예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심에 두고, SoA 안에서 20여 명의 건축가들이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지 기록하려는 시도죠. 결과를 만드는 데 함께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전면에 드러낼 수 있을까, 그걸 계속 고민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강예린: 최근에는 『파괴적 창조: 소멸의 디자인을 위한 워크숍』이라는 책을 새로 냈어요. 기존에 매년 만들던 ‘애뉴얼 북’ 외에도, 이제는 특정 프로젝트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단행본 출판도 병행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202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전시로 보여줘야 할 내용이 정말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그 공간 안에 다 담기는 어렵더라고요. 또 베니스까지 직접 가서 전시를 보는 분들이 많지도 않고요. 귀국전은 없고, ‘멀리서 뭔가 소란스럽게 벌어지고는 있는데, 그게 짧은 기사 몇 줄로만 전해지는 상황’이 제한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책’이라는 매체가 일종의 두 번째 전시처럼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가 못 담는 것들을 책에 더 자세히 담을 수 있고, 또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남을 수 있는 매체니까요.​ 

방유경(방): 공간서가는 월간 「SPACE(공간)」의 건축 예술 분야 단행본 브랜드예요. 일반 단행본 출판사와 달리 잡지와 함께 연동된 구조라 매체 기사에서 파생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이를 심화해나가는 방향을 따르고 있어요. 매체는 시의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취재해 기사가 나가지만, 이를 편집자가 단행본으로 발전시킬 때는 기획 방향에 따라 접근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잡지의 연재 기사를 묶은 책으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2024)이 있어요. 60년 가까이 쌓인 잡지 아카이브를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해보자는 기획 아래 성향이 다른 연구자 다섯 명이 모여 2년간 집필했는데, 그중 건축가 서재원 소장님의 원고를 묶어 가장 먼저 출간하게 됐어요. 기사를 기반으로 하지만 제목부터 판형, 디자인, 추가 원고 작성, 비평 의뢰 등 한 권의 책으로서 설득력과 완결성을 가지도록 섬세한 편집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죠. 물론 정반대의 프로세스도 가능하고요. 올해 2월 출간된 『나이층: 청파동 주택 리모델링 기록』은 단행본을 준비하며 저자들과 함께 기획한 두 차례의 포럼을 잡지 기사로 소개한 뒤 이를 다시 단행본에 녹여 콘텐츠의 의미를 확장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일반 출판사에서는 이런 과정을 소화하기 쉽지 않지만, 「SPACE」라는 매체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과 협업도 자연스럽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이런 역학 관계 안에서 건축, 문화, 예술 분야의 연구가 널리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끼고요. 

서성진(서): 어떤 주제를 어떤 기획 방향이나 관점으로 접근하느냐 정도로 받아들이고 대답하자면, 저희는 작가론이나 개별 작품 중심의 접근은 잘 하지 않아요. 그쪽에 관심이 없다는 것보다는,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출판의 방향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거죠. 순수 비평 쪽도 마찬가지고요. 예를 들어 여러 비평을 엮은 선집 같은 책들 있잖아요. 그런 형식도 지금은 별로 하지 않으려고 해요.

 

박정현(박): 오히려 저는 점점 더 ‘가장 밑바탕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쉽게 말해, 유행을 타지 않는 책. 교과서 같지만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책. 예를 들면 서구 건축 이론의 고전인데 그동안 한국에는 여러 사정상 소개되지 못한 책들, 그런 것들을 다루고 싶어요. 결국에는 역사와 이론 중심으로 가게 되는 것 같고요. 단순히 ‘비평’이라기보다도, 앞으로 계속해서 기준이 되어줄 수 있는 콘텐츠를 다루고 싶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습니다.

 학생기자: 이러한 콘텐츠를 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치훈: 실무는 늘 정신없이 돌아가요.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어떤 방향을 갖고 있는지, 무슨 고민을 해왔는지를 정리하고 기록해 두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게 건축가 그룹의 공동체성이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는 방식이죠. 추상적인 생각이나 방향성이 책이라는 형태로 정리되면서, 오히려 우리가 나아갈 길을 더듬어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강예린: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건 사실 어디에도 잘 담기지 않아요. 건축가의 프레젠테이션은 이미 많이 생략된 결과물이에요. 여러가지 안을 옵션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안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어떤 아이디어는 버려졌는지, 구성원들끼리 나눴던 모호하고 불완전한 얘기들은 다 빠져 있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나중에 잡지에 이름 한 줄 올라가는 걸로는, 그런 맥락들이 전혀 드러나질 않잖아요. 저희가 처음 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사무실에서 한 해를 정리하고 서로 공유해보자, 이게 출발점이었어요. 근데 이걸 하다 보니, 사무실 내부에서만 머물지 않고 건축계 전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치훈: 지금의 건축 콘텐츠가 소비되는 방식은 ‘스트리밍’에 가까운 것 같아요. 너무 빠르고, 즉각적이고, 플랫폼 지향적이죠. 그런데 사실 건축이라는 건 정말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깊은 시간과 맥락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여기에는 출판이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스트리밍이 아니라 ‘아카이빙’의 방식으로요. 출판은 시간의 층을 쌓을 수 있는 매체이고, 망각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되살릴 수 있는 매체니까요. 아카이빙을 한다고 해서 단순히 기억만 하려는 게 아니고, 다음 프로젝트나 다음 생각, 다음 매체로 이어지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 거죠. 이게 우리가 출판을 통해 건축 콘텐츠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트리밍처럼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남는 것. 그렇게 쌓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방: 「SPACE」는 건축‧문화‧예술계에서 상징적인 매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고유의 역할과 위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잡지만이 아니라 단행본을 통해 우리가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야 할 주제나 메시지도 분명 존재한다고 보고요. “지금, 우리가 다뤄야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도 단편적인 차원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다 입체적이고 확장된 관점이 필요하죠. 최근 작업한 아카이브 책인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1996-2025』은 건축전의 30년 역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전시가 건축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참여 건축가들의 활동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는지 여러 층위에서 풀어낸 작업이에요. 잡지와 단행본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시선을 확장해주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잊혀질 뻔한 역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보고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기자들도 한국 건축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답니다. 

박: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건축이라는 분야가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을 다루는 출판사들이 여럿 있지만, 저희는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와 이론에 집중해 텍스트를 선별하고 해석하는 데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건축 역사와 이론을 전공했고, 그런 맥락에서 오래된 고전서나 이론서를 어떻게 읽고 소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한국에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건축 고전서조차 번역돼 있지 않거나 단절된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 알베르티의 『건축에 관하여』 같은 책들은 너무나 잘 알려진 텍스트인데도 정작 한국어판은 없죠. 사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1학년 때부터 비트루비우스를 접하게 되잖아요. ‘피르미타스, 유틸리타스, 베누스타스’ 이렇게 배우고 시작하는데, 그 원전을 제대로 읽어볼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 상황이 아쉬웠고, 그런 책들을 다루는 게 저희가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기초를 다지는 책들이 하나둘씩 나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고요. 최신 유행이나 트렌디한 콘텐츠는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지금 아무도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책,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방향만큼은 꾸준히 유지하고 싶어요.

 학생기자: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편집 및 디자인에서 어떠한 지점을 고려했는가?

이민규: 통념적으로 ‘건축 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좋은 종이에 인쇄된 건축 사진, 선문답 같은 건축가의 글, 완성된 도면들. 뭔가 기념비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이미지예요. 근데 저희는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정말 손에 잡히는 이야기, 아주 가까운 감각으로 다가오는 건축을 담고 싶었고요.

 

강예린: ‘애뉴얼 북’의 크기나 물성도 건축가들이 자주 쓰는 작고 단단한 노트를 닮았어요. 책이 물리적인 매체다 보니까, 판형이나 촉감 같은 요소도 신경을 많이 써요. 놓이는 자리도 고려하고, 한 손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고민도 같이하고요.

 

이민규: 최근에 낸 책이 『파괴적 창조: 소멸의 디자인을 위한 워크숍』인데요. 군산의 빈집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워크숍 실험을 바탕으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저밀도 도시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책인데요.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된 동명의 프로젝트에서 출발해 군산 구도심에 자리잡은 프로파간다 출판사와 함께 단행본으로 엮게 됐어요. 워크숍과 전시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책이라는 매체로 옮기면서, 단순한 기록을 넘어 보다 폭넓은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군산이라는 도시의 맥락을 짚는 키워드 사전을 비롯해, 건축가, 활동가, 사회학자, 생태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함께 담아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들을 다각도에서 조망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디자인에 있어서는 직조가 성긴 린넨 천을 표지에 사용해 책의 물성이 개념적으로 작동하도록 했어요. 오동나무가 자라난 빈집이 그려진 표지가 시간이 지나며 천이 한 올 한 올 풀리도록 설계해, 책 또한 자연의 힘으로 서서히 소멸하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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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현

방: 잡지와 동일한 이야기를 담더라도 단행본에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지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을 작업할 때 잡지를 절반으로 접은 판형으로 제작한 것과 유사성과 차별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서였어요. 책에 들어갈 요소에 따라 디자인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고와 자료를 요청할때부터 디자인을 함께 고민한다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건축을 주제별로 연구한 『김중업, 그 유산과 미래』(김중업건축박물관 발행)에서는 김중업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드러낼지, 아카이브 위주의 도판을 어떤식으로 보여줄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작품집이나 전시 도록과 달리 내용의 깊이와 연구서로서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작업하게 됐죠. 책 뒤에 부록을 만들어 김중업 선생의 생애와 작품이 정리된 연표를 제작하고, 미공개 자필 공책과 수첩을 함께 수록했어요. 영어, 프랑스어, 한자가 뒤섞인 기록물들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우리말 음독을 병기해서 이미지 옆에 같이 배치했고요. 508쪽이라는 볼륨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밝은 형광색을 별색으로 사용하고, 평량이 가벼운 재생지로 제작했어요. 이런 과정에 편집자의 고민이 담기게 되는 것 같아요. 

 

 

서: 건축 책은 인문·예술·사회과학 책과 다르지 않게, "대중 교양 단행본으로서 어떻게 보이면 좋을까?"를 중심에 놓고 디자인해요. 다만 건축 책은 분량도 많고, 자료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외부 디자이너와 커뮤니케이션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내부에서 직접 작업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주택 유전자』는 박철수 교수님이 엄청난 양의 미공개 도면과 자료들을 모아 주셨고, 그걸 책에 담기 위해 오래된 도면들을 일일이 보정했어요. 도면이 어느 정도 읽힐 수 있도록 사이즈를 조정하고, 노이즈도 제거하고요. 이 책의 방향은 “자료가 살아 있어야 한다”라는 데 있었죠.

 

​박: 디자인 방향은 언제나 내용에서 출발합니다. 청사진이나 옐로페이퍼처럼, 한 시대의 흔적이 담긴 이미지들 자체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스며들게끔 했어요. 표지나 이미지도 단순히 예쁜 걸 고르기보다, 상징성을 기준으로 선택합니다. 예컨대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 번역본 표지엔 저자가 본문에서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더니즘의 상징적 요소를 집약한 도상이 계속 반복적으로 들어가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같은 원색, 엑소노매트릭 도면 같은 모더니즘의 도법이죠. 그 자체로 내용을 시각적으로 요약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사실 저 혼자였으면 이 작업들 못 했을 거예요. 전문 용어도 너무 많고, 건축 전공자는 "이건 다 아는 얘기지" 하고 그냥 넘기기 쉬워요. 그런데 비전공자 편집자가 함께 보면 "이건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걸러줘요. 그게 진짜 중요해요.

 

서: 좋은 건축 책은 전문성을 놓치지 않되, 비전공자가 읽기에 힘들지 않을 만큼 설명해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축계에선 너무 당연한 용어들도, 책을 한 발 벗어나면 아무도 몰라요. ‘스팬드럴’, ‘캔틸레버’, ‘페디먼트’, ‘오더’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저는 각주를 다는 게 필수라고 봐요. 책의 이해를 도와주는 연결고리. 그게 에디터의 역할이에요. 최종적으로는,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금방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완독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 번쯤 손이 가고, “읽어볼까?” 싶게 만드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학생기자: 출판사의 지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은 무엇인가?​

이치훈: 그동안 저희가 15년 넘게 SoA라는 이름 아래 쌓아온 색과 방향성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단지 개별 프로젝트로만 남겨두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줄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애뉴얼 북’이라 생각해요. 흩어져 있는 결과물들이 아니라, 하나의 내러티브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 그게 저희가 바라는 출판의 모습이고요. 

 

이민규: 매년 ‘애뉴얼 북’의 책등에는 우리의 한 해를 돌아보는 세 개의 서로 다른 키워드가 새겨져요. 책장 한 칸이 애뉴얼 북으로 점차 채워지게 되면, 이 기획도 점점 의미를 갖게 되겠죠. 언젠가는 그 키워드들이 서로 모이고 관계를 맺으며,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날지도 몰라요. 해마다 쌓여가는 이 작은 책이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가늠자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동시대 건축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렌즈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강예린: ‘애뉴얼 북’은 처음엔 내부 공유용으로만 시작했어요. 판매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요청이 많았어요. 이 책을 통해서 지금이라는 동시대성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학생이나 동료 건축가분들이 피드백을 주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책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 작동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우리 안에서 경험하고 있는 당대성을 기록하는 일, 그게 우리가 앞으로도 또렷하게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방: 책 하나만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요. (웃음) 공간서가의 강점은 동시대적 시각과 역사적 시각을 아우르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과거를 복기하고 다시 꺼내어 조명하는 역할. 그런 ‘재발견’의 작업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리-비지트’ 시리즈로 기획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이 적절한 사례일 것 같아요. 매체가 쌓아온 긴 흐름 속에서 우리가 그 호흡을 연장해가는 것. 그것이 공간서가 편집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자 힘인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단행본 편집자가 따로 있지 않아요. 저를 비롯한 기자들이 단거리와 장거리를 함께 뛰는 달리기 선수처럼, 온오프 스위치를 눌러가며 잡지와 단행본을 동시에 편집하고 있어요. 오늘도 마감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힘내라고 전하고 싶네요. 우리가 생산한 모든 기록이 다시 아카이브가 될 테니까요.

 

​

 

 

박: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박철수 교수님의 『한국주택 유전자』예요. 교수님의 역작이고, 저희도 그 책을 통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도 비슷해요. 이 두 권이 저희가 잘할 수 있는 걸 집중해서 만든 책이고, 결과적으로도 ‘우리가 이런 책은 잘 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확인한 작업이었죠.

그러고 보니 두 권 다 참 두꺼운 책이네요. 근데 두꺼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내용이 워낙 풍부하고, 아카이브나 자료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 볼륨으로 나와야 의미가 있죠.

그런데 오히려 『건축의 고전적 언어』는 생각보다 안 팔려서 좀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2쇄도 못 찍었거든요. 너무 좋은 책인데. 지금도 종종 ‘이 책, 다시 찍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고전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입문서로 딱 좋은 책이에요.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다’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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