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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군산으로 (돌아) 간 사람들

글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군산으로 (돌아) 간 사람들

 

군산에서의 첫 끼니는 해물짬뽕이었다. 군산이 고향이라는 손진(이손건축 대표)은 만나자마자 중식당으로 향했다. 특이한 지역 음식을 기대했던 나는 ‘군산까지 내려와서 굳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군산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오래된 중식당이 여럿이라 짬뽕이 유명해졌다는 설명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달고 매운 국물을 들이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것을 뒤섞음’을 뜻하는 ‘짬뽕(ちゃんぽん)’이라는 일본어가 은근히 군산을 잘 묘사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우치다 타츠루는 저서 『로컬로 턴!: 저성장 시대를 건너는 법』(2022)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시 문명의 취약함을 깨달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그들은 단순히 도시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만이 아니라, 돌아가되 고향과 조금 다른 곳이나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 지방소멸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본에서 압도적 수치는 아니지만, 저자는 그 현상을 자본주의의 종언을 예감한 사람들이 지역에서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새로운 경제 모델을 추구하는 의미 있는 망명이라고 보았다.

 

군산에도 이렇게 ‘망명’한 사람들이 있다. 「SPACE(공간)」 9월호는 일제 식민지기에 신도시의 일부로 만들어져 흥망성쇠를 거친 일련의 일식 가옥군을 재생한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하 리터닝 군산)과 이를 둘러싼 여러 겹의 서사를 들춰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왜 군산에 오게 됐는가?’는 이번 특집을 진행하며 여러 차례 반복했던 질문이다. 고향이어서, 즉흥적으로, 또는 지인의 권유로 군산에 정착하거나 관계하는 사람들 모두 이방인에게 수용적인 군산의 독특한 정서를 거론한다. 군산에서 여러 도시ㆍ건축 프로젝트를 주도해왔던 윤주선(충남대학교 교수)은 “군산은 오리지낼리티·정통성·원본성 같은 ‘근본주의적 가치’보다 혼합·섞임·재미·공존 같은 ‘짬뽕주의적 가치’가 우선하는 도시다. ‘원래 그런 것’이 없다 보니 낯선 도시실험을 받아들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고 말한다. 평생 여러 도시를 떠돌았던 소설가 황석영 선생 역시 ‘타자의 도시’ 군산에 정착해 미래 공동체를 위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연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탈식민주의를 논하기에 군산이 적당한 서사를 가졌다고 본 거죠. 근대를 극복하고 무엇을 수용할 것인가 이런 것이 나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군산의 주제이기도 하고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거지.” 

 

리터닝 군산의 대상지는 중국, 일본, 미국의 영향이 포개진 군산의 역사가 그대로 새겨진 장소다. 1899년 개항 이후, 일제의 미곡 수탈을 위한 항구도시의 일본인 거주지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군 클럽으로 영화를 누리다가 점집 골목으로 쇠락해간 원도심의 한 블록. 손진은 100여 년을 견뎌온 이 공간이 다시 100년을 물리적ㆍ사회적으로 지속되게 하는 것을 이번 리노베이션의 주요 원칙으로 삼았다. 이러한 장기 모델은 비용 절감과 성장 위주의 가치관이 전제된 대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지다. 

 

조용한 동네에서 매일 공연이 열리는 재즈클럽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에서 출발한 리터닝 군산은 여러 지역에서 모인 친구들이 함께 하며 구상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일종의 마을 호텔로 확장됐다. 즉 큰 건물에 객실과 부대시설을 갖춘 일반적 의미의 호텔이 아니라 리터닝 군산 안에 있는 호텔, 재즈클럽, 레스토랑, 바, 아이스크림 가게를 넘어 주변의 예술서점, 스테이, 노포, 바버숍, 어린이집, 로스터리 등이 ‘프렌즈 그룹’으로 연결되며 독특한 지역 문화를 발산하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손진은 이러한 리터닝 군산의 가능성을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삶의 흔적이 뒤엉킨 블록 내부에서 찾았다. 그 아우성 사이로 보이는 조그마한 공간들의 흐름을 살려내면 다시 피가 통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단다. 묵직한 벽이 덧붙여진 리터닝 군산의 외관은 속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군데군데 되살아난 골목길(입구)이 내부를 암시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치훈(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파트너)은 이를 두고 ‘표리역전’의 도시 건축이라 정의한다. 블록 구조의 형상은 복원하되 그것을 쓰는 방식, 즉 공적ㆍ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관습을 역전시켰다는 것이다. 리터닝 군산의 골목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며 벽으로, 바닥으로 두터운 레이어를 쌓아둔 중정과 캄포(campo)라 이름 붙인 기분 좋은 외부공간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원형이 1970~1980년대 서울 도심의 뒷골목, 혹은 미로처럼 연결된 베니스의 골목길과 작은 광장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문화가 짬뽕된 풍경에 유럽의 분위기가 더해진들 어색하지 않은 곳이 군산이다. 손진은 이 장소가 통과한 시간이 만들어낸 여러 요소가 또렷하게 대비되는 게 아니라 하나로 버무려져 제3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 서사를 아우르는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몇 주 전 리터닝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열린, 제국주의로 고통받은 유산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문화예술 협력을 목표로 한 칼라문화재단의 창립총회 사진을 보도기사에서 보았다. 드럼과 피아노 사이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는 황석영 선생의 모습은, 탈자본주의ㆍ탈근대ㆍ탈식민주의를 상상하기에 참으로 적당한 군산다운 장면이었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목차

 

008 EDITORIAL

010 NEWS

 

018 FEATURE

왜 군산인가?: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

Why Gunsan?: Project Re/Turning Gunsan

 

028 FEATURE: ESSAY

고집 피우지 않는 도시, 군산_ 윤주선

Gunsan: A City Open to Change_ Yoon Zoosun

 

036 FEATURE: PROJECT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_ 이손건축

Project Re/Turning Gunsan_ ISON Architects

 

046 FEATURE: ESSAY

다시, 피가 돌다_ 손진

Once Again, Back to Life_ Son Jean

 

054 FEATURE: BRIEF INTERVIEW

프로젝트의 시작 - 송성진 × 방유경

공간 만들기 - 정유미 × 방유경

군산, 책, 도시 - 김광철 × 방유경

Project’s Beginning – Song Sungjin × Bang Yukyung

Making Space – Jung Yumi × Bang Yukyung

Gunsan, Books, Cities – Kim Kwangchul × Bang Yukyung

 

060 FEATURE: CRITIQUE

군산 사용법_ 이치훈

Gunsan’s Colonial City Block: An Indigenous User’s Manual_ Lee Chihoon

 

066 FEATURE: INTERVIEW

소설가의 도시, 군산_ 황석영 × 김정은

The Novelist’s City, Gunsan_ Hwang Sok-yong × Kim Jeoungeun

 

072 PROJECT

플라토 현대 아트 갤러리 - KWK 프로메스

Plato Contemporary Art Gallery – KWK Promes

 

082 PROJECT

포인트투파이브세컨드 성수하우스 - 소피 힉스 건축+요앞 건축사사무소

Pointtwofive.Second Seongsu House – Sophie Hicks Architects + YOAP architects

 

092 PROJECT

남해 로컬푸드 직매장 - 오브아키텍쳐+세이브종합건축사사무소

Namhae Local Food Market – Of Architecture + Save Architects

 

102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함께하는 현장을 만들어내는_ 김원일 × 김혜린

Building Together On-Site_ Kim Wonill × Kim Hyerin

 

108 SERIES: The Possibilities Inherent in Extinction, Mid-Size City Forum 10

중소도시의 밖: 비인간의 건축_ 이장환, 이상현

Beyond the Mid-Size City: The Architecture of the Non-Human_ Lee Janghwan, Lee Sanghyun

 

122 SPACE ACADEMIA

아르케에서 알레테이아로: 비트루비우스의 파브리카와 라티오치나티오가 지닌 인식론적 덕성_ 김선우

From Archē to Aletheia: The Virtue (Aretē) of Fabrica and Ratiōcīnātiō in Vitruvius_ Sunwoo Kim

 

 

 

월간 「SPACE(공간)」 694호(2025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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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08월 30일
    여러 전문가들과 귀향한 소수인들에 의해 이렇게 군산이 재해석 재탄생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식견이 없어 볼 줄 몰랐던건지 군산이 이렇듯 근사한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건 몇년 짧게 살아본 기억으로 정말 작은도시이고 지금처럼 스토리텔링 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십수년이 지나고 군산에 관광객이 몰린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안보이는 곳에서 행정가와 그외 다수들의 노력과 손길들로 도시가 살아나는게 너무 흥미롭고 새로운 눈을 장착하고 꼭 다시 방문하고 싶습니다 글 너무 감사히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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