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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고집 피우지 않는 도시, 군산

글
윤주선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영화동 일대 항공사진.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 들어서기 전 부지는 가운데 블록에 위치한다. Image courtesy of ISON Architects 

 

 

하이브리드 도시의 탄생


최근 10년, 한국에서 가장 과감한 도시재생 실험이 벌어진 무대는 군산이었다. 민관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PPP)형 공공 건축 재생 ‘군산회관(GCC)’, DIT(Do It Together) 유휴공간 재생 ‘DIT 페스타’, 순수 민간 주도의 블록 단위 재생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하 리터닝 군산), SK E&S의 중소도시 창업 지원사업 ‘로컬라이즈 군산’, 한국형 지역관리회사 모델 ‘영화타운’ 등 ‘국내 최초’ 간판이 붙은 각종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군산에서 시작됐다.

왜 군산이었을까? 답은 군산의 역사 속에 새겨진 ‘하이브리드 DNA’에서 찾을 수 있다. 개항 전까지 원도심은 511명이 사는 작은 군산항이었지만, 19세기 말 교역의 흐름이 강 중심의 내륙 유통에서 바다를 통한 국제무역으로 전환되면서 군산은 서해 해상무역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금강·동진강·만경강에 맞닿은 호남평야의 쌀을 대외로 실어낼 유일한 항구가 군산이었기 때문이다.

1899년 5월 1일, 군산은 개항과 함께 도시로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영화동·월명동 일대 57.2만㎡가 치외법권인 각국 조계지로 지정됐고, 조선인들은 개복동 일대로 밀려났다. 비워진 자리는 일본인과 청국인이 채웠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일본은 ‘미(米)의 군산’이라 부르며 본격 쌀 수탈에 들어갔다. 군산 원도심에 남아 있는 넓은 격자형 가로 체계는 내륙의 쌀을 수월하게 부두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개항장 목포, 인천, 부산, 진남포, 군산 중 군산항을 통한 쌀 수탈량은 1914년 기준 40.2%로 압도적이었다. 농지 가격은 일본의 10분의 1인데 수익은 네 배가 넘으니, 일본의 미곡상, 정미업, 양조업 상인들이 몰려왔다. 교역, 간척, 건축, 인프라 건설이 활발해지며 개성상인을 필두로 전국 팔도의 상인과 노동자가 군산에 모여들었다. 포목업, 농업을 하는 화교들도 본토보다 대우가 좋았던 군산으로 꾸준히 유입됐다. 해방 이후 그들은 업종을 전환해 빈해원 같은 중국집을 열었고, 인천에서 짜장면이 탄생했다면 군산에서는 한국식 짬뽕이 탄생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1953년 미군 공군부대가 군산에 자리한다. 해방 후 일본인들의 귀국으로 슬럼화되었던 영화동은 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 수입상회, 의류상 등이 모인 ‘아메리칸 타운’으로 변모했다. 미군과 계약 동거를 하는 소위 ‘양공주’도 영화동에 포진했다. 그렇게 군산은 데뷔부터 한국·일본·중국·미국 문화가 겹치고 덧대지고 엉기며 ‘하이브리드 도시’로 성장했다.

군산은 1960년대 외항 개발로 산업도시로 나아갔다. 백화양조, 한국합판, 경성고무 등 전국구 기업도 속속 나타났다. 1980년대에는 군산의 첫 신도시 나운동을 시작으로 수송동, 조촌동이 차례로 개발됐다. 이 과정에서 영화동, 월명동은 개발의 광풍에서 빗겨나 조용히 잊혔다. 2000년대 초, 일제강점기 건물이 ‘청산의 대상’에서 ‘다크투어리즘의 대상’으로 재평가되며, 일식 가옥 170여 채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군산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근대역사문화 벨트화 사업’, ‘근대역사경관 조성사업’이 이어지며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고우당,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미즈상사(현 미즈커피),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등이 정비됐다. 2014년에는 국토교통부 선정 ‘도시재생 선도지역’이 되어 원도심 부흥의 전기를 맞았다.

 

 

일식 가옥에 한국 지방도시 특유의 덧댐 문화가 가미된 군산의 탁류적 건축. ©Yoon Zoosun 

일식 가옥에 한국 지방도시 특유의 덧댐 문화가 가미된 군산의 탁류적 건축. ©Yoon Zoosun 

 

 

탁류거나 짬뽕이거나


한 도시를 이해하는 데 도시의 역사, 건축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누적된 역사와 둘러싸인 건축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자란 지역민과의 반복된 대화다. 10년간 수많은 군산인과 교류하며 내가 느낀 군산은 탁류이자 짬뽕 같은 도시였다.

군산은 여러 국가의 문화가 맛있게 짬뽕돼 있다. 한 건물 안에도 일식 건물의 골격에 한국 지방도시 특유의 위트 있는 증축과 덧붙임이 이뤄지고, 콘텐츠는 미국 문화로 채워지는 식이다. 어느 양식이라 정의하기 어려운 이 복합적 풍경은 혼란을 주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문화를 부정하지 않고 품어내는 포용력이야말로 내가 발견한 군산의 정체성이다. 그렇게 군산은 오리지낼리티·정통성·원본성 같은 ‘근본주의적 가치’보다 혼합·섞임·재미·공존 같은 ‘짬뽕주의적 가치’가 우선하는 도시다. ‘원래 그런 것’이 없다 보니 낯선 도시실험을 받아들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군산에서 실험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기획·운영하며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른 도시에서 공공건축 2,400평 전체 면적의 사용허가와 20년 민간 계약의 PPP형 재생을 제안했다면 받아들여졌을까? 내 돈 내고 남의 빈집 고치는 DIT 마을재생(「SPACE(공간)」 688호 참고)이 시작될 수 있었을까? 동네 기획사 역할을 하는 민간 주도 지역관리 회사 모델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군산의 짬뽕적 태도는 한국에 남은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서도 드러난다. 해방 후 다른 도시들은 일제 청산이란 구호 아래 일본 사찰을 철거했지만, 군산의 동국사(당시 금강사)만은 마을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동국사 앞 뜰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우뚝 서 있어 상충하는 역사와 문화가 한 장면에 공존하는 짬뽕적 경관을 선사한다. 주지스님이 대웅전에서 스크린을 내려 프로젝터로 일제강점기부터의 동국사 역사를 설명하는 모습은 시공간이 버무려진 군산의 짬뽕적 포용력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군산엔 3대가 없다’는 말이 있다.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만든 도시라 군산 토박이는 애초에 없다는 뜻이다. 덕분에 텃세가 거의 없고, 새로운 외지인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다. 웬만한 지방에서는 그 도시에서 초·중·고교를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우리 사람’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군산은 일찍이 일본인과 장사하고 미군을 상대하며 화교와 어울려 살았던지라 타지인 정도는 가볍게 품는 모양새다. 

인구 감소·저성장 시대에 다양성의 가치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회의 변수가 커지고 예측이 불가능해질수록 종 다양성을 넓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본능이 작동하는 까닭이다. 그렇게 많은 기획자들이 독창적 취향과 깊은 다양성을 찾기 위해 지방도시, 이른바 ‘로컬’(낯간지럽지만 어쩐 일인지 지방도시는 최근 ‘로컬’이라 불린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 속 군산의 ‘탁류적’ 성격은 한층 빛난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군산을 금강의 청류(淸流)가 서해와 만나 탁류(濁流)가 되는 지점이라 표현했다. 혼탁했던 일제강점기 군산의 탁류는 혼란, 타락, 고난을 뜻하지만, 지금 군산의 탁류는 문화 융합을 통한 다양성과 창조적 기회를 뜻한다. 고집스런 청류보다 고집 피우지 않고 누구와도 무엇과도 섞일 수 있는 탁류가 더 많은 다양성의 갈래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산의 탁류성에 미군 문화와의 섞임은 빠질 수 없다. 외부에 군산은 일본 근대문화 도시로 알려졌지만, 정작 군산의 청년들에게 일제강점기는 너무 먼 과거다. 그보다는 마을로 놀러 나온 미군들과 어울리며 익힌 비보잉, 디제잉, 스케이트보드, 칵테일, 리바이스 청바지가 그들에겐 더 익숙한 문화다.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백댄서 중 군산 출신이 많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도 군산의 ‘이런 곳은 누가 만든 거지?’ 싶은 카페·바·식당의 운영자들은 알고 보면 비보이·디제이·바텐더·스케이트 보더 출신이 많다.

군산의 탁류적 성격은, 작은 전통시장 안에 ‘영원히 조화로운 마을’이라는 슬로건으로 스페인 타파스 바, 캐주얼 이자카야, 미국식 필리치즈 스테이크, 무국적 바가 공존하는 영화타운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립대 법대를 중퇴하고 칵테일 바에서 DJ를 하다 베트남 호텔에서 베트남 요리사로 전향하고, 다시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가본 적도 없는 스페인식의 타파스 바 ‘돈키호테’를 차린 고은은, 내게 영화타운의 탁류적 상징처럼 보인다. “군산에서 왜 스페인 식당인가?”라는 청류적 질문은 하이브리드 군산의 명랑한 탁류 속에서 “그게 어때서?”로 뿌옇게 흐려진다.

 

 

기존 군산시민문화회관(현 군산회관) 옥상 모습. ©Yoon Zoosun 

군산시민문화회관 옥상을 스케이트보드장으로 탈바꿈한 2020 그랜드 DIT 페스타(윤주선 총괄기획). ©Yoon Zoosun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의 탁류적 접근


탁류적 군산이 청류적 정통이 옅다고 기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산은 정통성 대신 어느 도시보다 탄탄한 ‘우정자본’이 있다. 변화가 많고 사람이 들고 남이 잦은 도시의 특성상 언제든 도움을 청할 이웃과의 우정이 발달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원도심의 군산인들은 그럴듯한 우정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낸다. 관광객 단계를 지나 생활인구·관계인구▼1로 자리잡으며 비집고 들어와 본 군산 원도심은 강력한 우정의 끈으로 엉켜 있었다. 많은 술집, 밥집, 카페의 운영자들이 서로 가게를 오가며 어울리고, 함께 협심해서 이벤트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식재료를 나누고 인력을 공유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군산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넓게 포진된 우정 생태계를 통해 필요한 재능을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우정자본이 생태계를 형성했다면, 음대와 미대는 군산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인구 26만 소도시 군산에는 이례적으로 음·미대가 모두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명문으로 알려진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와 군산대학교 미술학과 출신들이 졸업 후 지역에 남아 흥미로운 가게를 차리거나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간다. 최근에는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진까지 원도심에 나와 일상 속 음악을 한층 풍부하게 채워주고 있다.

리터닝 군산의 건축 디자인 뒤에도 군산 특유의 짬뽕·탁류적 성격과 우정자본, 그리고 음·미대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의 상가건물로 출발해 양공주집, 점집을 거쳐 올해 다문화 재생거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리터닝 군산의 디테일을 자세히 뜯어보면 어디가 새로 만든 부분이고 어디가 원본인지 모르게 의도적으로 경계를 흐려놨다. 명확한 시대 구분이나 단호한 철거 대신, 군산이 청(중국)·일본·미국 문화를 흡수한 방식 그대로 적절하게 수용하고 자연스럽게 혼합하는 ‘탁류적 건축’을 구현한 것이다. 리터닝 군산과 동년배인 구 조선은행에서 나온 대들보를 천연덕스럽게 바 테이블로 재활용한 모습에서도 이런 해석이 드러난다.

리터닝 군산은 우정자본이 쌓아 올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리터닝 군산을 이끄는 송성진(공유인 유한회사 대표)은 군산에서 가장 두텁고 짙은 우정자본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운영해온 군산의 대표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라디소 페르두또’(이하 파라디소)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이곳 출신들이 만든 업장들은 이후에도 파라디소 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파라디소 생태계’를 형성한다.

지역 출신 멤버들이 주축이 된 온전한 민간 주도 지방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리터닝 군산은 자재비, 인건비 상승으로 2024년 초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때, 파라디소 생태계에 속한 동네 선후배 가게 주인들과 지인 40명은 이자에 대한 언급도 없이 8억 원을 선뜻 모아주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낭만 채권단’이라 이름 붙였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이 현상을 하다 못해 학연·지연·혈연을 들어서라도 설명하고 싶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응원과 오래된 우정 이외에 어느 하나 공통분모가 없었다. 뚜렷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이들의 행보 역시 군산다운 탁류적 우정자본의 모습이다.

 

 

군산시민문화회관 지상주차장에서 진행된 2021 군산 파킹데이(채아람, 윤주선, 김보미 공동기획). 군산시의 지하주차장 조성 계획에 대응해 5일간 지상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빼고 시민 광장으로 운영했다. ©Yoon Zoosun 

2021 군산 파킹데이 준비 과정. ©Yoon Zoosun 

 

 

군산회관의 짬뽕적 건축

 

군산회관은 건축가 김중업의 유작인 군산시민문화회관(1989)을 민관협력 방식으로 재생한 프로젝트다. ‘지방소멸’이라는 섬뜩한 단어가 회자될 만큼, 지방도시의 인구 감소, 고령화, 세수 감소는 위협적이다. 정부가 택한 지방소멸의 대표적 대응책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대변되는 공공 건축물 건립이다. 공공 건축물 건립 시에는 50%를 국비로 지원해주지만, 준공 이후 운영기간 동안 건축비용의 4~5배가량 소요되는 운영비용은 온전히 지방비로만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공공 건축 운영적자는 매년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 연간 1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야말로 숨만 쉬어도 새나가는 돈이 매년 1조 원인 셈이다. 그 마저도 충실한 기획과 수요조사 없이 진행돼, 애써 만들고 나면 방문객이 찾아오지 않아 재유휴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군산회관의 시작은 이 지점에서였다.

군산회관의 PPP형 재생은 매년 15억 원 내외로 들어가던 세금 투입을 ‘0’으로 만들고, 부지 안에 민간 수익 파트를 병설해 수익 파트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공공 부분의 운영비, 인건비를 충당하는 모델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매년 15억 원씩 빠져나가던 운영비를 지출하지 않고, 거꾸로 사용료를 받는 ‘흑자형’ 공공 건축을 운영할 수 있다. 민간 운영주체는 사전 기획 권한을 포함해, 꼼꼼히 설정된 계약 범위 안에서 충분한 자유도와 20년의 안정적 운영 기간을 보장받는다. 시민들은 의례껏 그러려니 넘어가던 따분한 공공 건축이 아닌, 민간의 창의성과 운영력이 결집된 매력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개항 후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던 생경함만큼, 지금의 공공과 민간은 서로에게 낯선 집단이다. PPP형 재생은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잘 몰랐던 공공과 민간을 섞는 ‘짬뽕적 프로젝트’다. 탁류가 이질적 자원을 경계 없이 품는다면, 짬뽕은 각 재료의 존재감은 지킨 채 한 그릇 안에 어루러지게 섞는다. 군산회관에서는 공공과 민간이 각자의 역할을 지키면서도, 공·민 사이의 칸막이를 열어 한 팀으로 운영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공공 건축 운영의 주도권을 민간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공공 건축 운영에 민간주체가 20년간 들어올 수 있도록 개항한 첫 조계지가 바로 군산회관이다. 군산회관은 김중업의 유작이지만, 병중에 진행된 설계라 그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예산의 문제로 초기 설계공모 당선안과 준공된 건물의 차이도 컸다. 이에 오리지낼리티·원본에 대한 집착이 적은 군산의 짬뽕적 특성이 합쳐져 군산회관은 최대한 외관을 보존하면서도 과감한 건축적 시도를 보여줬다. 리노베이션 설계에 선정된 클리마 건축사사무소의 임권웅은 인도·계단·선큰광장·전시실·공연장·객석 등 여러 레벨로 분절된 건물을 하나로 연결할 ‘회관길’이라는 대담한 보행 블록을 건물 전면에 삽입했다. 무조건적인 원형 그대로의 보전보다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요구와 결부된 짬뽕적 보완을 택한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짬뽕처럼 섞이고 새로운 사람을 탁류처럼 품어낼 군산회관은 2025년 8월 14일 정식 개관했다. 짬뽕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며 섞여도, 탁류처럼 은근하게 합류해도 좋다. 군산에 방문한다면 어떤 이방인이라도 품어온 군산의 군산회관을 믿고 탁류 속 풍류를 즐겨보자.

 

 

군산 유휴 상점가 재생 프로젝트, 2022 앙동마차 DIT(윤주선, 채아람, 김보미 공동기획). Image courtesy of Yoon Zoosun 

군산 영화타운 내 타파스 바 돈키호테. ©Yoon Zoosun 

일제강점기에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조성된 격자형 매립지 영화동, 월명동 전경. 우측 하단의 큰 건물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건립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Image courtesy of Yoon Zoosun 

 

1 생활인구란 일본의 ‘관계인구( 関係人口, related population)’ 개념을 차용해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조 제2항에서 정의한 것으로, 주민등록 인구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정기적 교류 등 일상적 활동을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 방문·체류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월간 「SPACE(공간)」 694호(2025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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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선
윤주선은 건축의 업역을 확장하는 동네 건축가다. 건축·도시의 재생과 건축가 개념의 재구축에 관심이 있다. 2015년부터 군산을 중심으로 ‘보는 연구’가 아닌 ‘해보는 연구’로 범위를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2018년부터 ‘잇는 건축가’를 다루는 건축외계(建築外界) 세미나를, 2019년부터 ‘짓는 건축가’를 다루는 DIT(Do It Together) 워크숍을 기획해왔다. 현재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충남 지역을 거점으로 마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2019년부터 행동하는 도시건축 집단 우당탕탕 Lab을 운영한다. 동네의 창의적 공간 운영자를 존중하고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크고 작은 공간환경을 개선한다. 공(公)·민(民) ·학(学) 연계형 지역관리회사, 택티컬 어바니즘, DIT 마을재생, PPP형 공공 건축 재생, Walkable City 등의 분야에서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현장 연구로 군산 영화타운 재생 프로젝트, 군산시민문화회관(현 군산회관) 재생 프로젝트, DIT 공간재생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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