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인천 현장
인터뷰 김원일 백반건축 대표 × 김혜린 기자
소박한 가정식 백반이 있기까지
김혜린: 백반건축은 가능한 자재 안에서 설계를 하고, 손수 짓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정말 가정식 백반 같아요. 백반건축을 소개해주세요.
김원일: 돈이 많으면 한정식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맨날 한정식을 먹을 수가 없잖아요. 좀 덜 비싸고,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 공간을 만드는 걸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는 사무실이에요. 그러다 보니 설계만 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하죠.
김혜린: 연남동 부근에 2인 사무소 ‘공간 공방 미용실’로 처음 사무소를 개소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개소를 결심했던 이유는 뭐였나요?
김원일: 원래는 첫 회사였던 무회건축사사무소(이하 무회)를 나와서 다른 사무실에 가려고 했죠. 그런데 학생 때부터 쌓아온 그간의 포트폴리오가 들어 있는 노트북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한강에서 놀고 있었는데 누군가 훔쳐갔죠. 제가 치밀한 사람이 아니라 백업을 안 해놨었어요. 포트폴리오가 없으니, 내가 어떤 건축을 해왔던 사람인지 증명할 수가 없는 거죠. 물론 머릿속에 있으니 다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마침 그 시기에 작은 인테리어 작업 의뢰를 받게 됐고, 사무소를 개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김혜린: 2인으로 사무소를 운영하다가, 백반건축으로 독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김원일: 공간 공방 미용실을 함께 운영했던 박영국 소장과는 대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고, 6~7년 정도 사무소를 함께 잘 운영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또다시 독립을 해야하는 때가 왔다는 걸 느꼈어요. 나라는 사람은 그냥 1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공간 공방 미용실도 약간은 실험적인 팀이었지만, 지금 제가 건축을 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파트너를 구하기도 만만치 않고, 이러다가 망할지도 모르니까 혼자 일단 밀고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까지 어떻게 하면 망하나, 한번 혼자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웃음)

공사 중인 마스크를 쓴 집(가제)

김원일
현장으로부터
김혜린: 사무실 없이 현장에서 일을 하며, 시공까지 하고 있어요.
김원일: 보통은 설계자가 설계를 하고 시공사가 시공을 하죠. 그런데 그러면 여러 가지 비용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또 건축주 이외에 두 집단이 있는 거니까 거기서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요. 제가 주로 작업하는 소규모 건축물은 설계한 사람이 시공까지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다 생각했어요.
김혜린: 시공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김원일: 첫 실무를 집수리에 초점을 맞춘 무회에서 했어요. 학교를 다닐 때는 설계와 시공을 함께하는 건축사사무소의 어떤 롤모델도 없어 그게 가능한지 조차 몰랐죠. 당연히 시공할 사람은 시공사를 가고, 설계할 사람은 설계 사무실을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근데 무회가 시공과 설계를 병행하는 사무소의 첫 레퍼런스가 된 거죠. 그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건축을 하면 즐거운 건축 생활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김혜린: 그럼 무회에서 시공을 배운 건가요?
김원일: 어떤 게 궁금하면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고, 어딜 찾아가야 되고, 뭘 사고 싶으면 어디를 뒤져봐야 되고 이런 정도의 프로세스를 익힌 거죠. 1년 남짓 짧게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독학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그게 독학의 첫 단계잖아요. 물어볼 것과 탐구해볼 어떤 세계를 발견하는 것. 현장의 목수, 벽돌 쌓는 조적공 같은 시공자 분들한테 배웠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요즘에는 유튜브로도 많이 익히고요. 아는 선배나 좋은 사무소 출신 친구들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웃음)
김혜린: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김원일: 현장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것도 배우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후루꾸’(요행, fluke)도 있어요. 예를 들면 석고보드를 시공할 때의 정석은 피스 시공이죠. 외국에서는 대부분 정석을 따르고요. 하지만 한국의 현장에서는 95% 이상 타카 시공을 해요. 때문에 처음에는 타카 시공이 편법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정석 시공 방식을 알게 된 이후에는 구조체가 목조라서 목조의 변형이 예상될 경우에는 피스 시공을 하고 있죠. 그렇다고 무조건 정석만을 고집하진 않아요. ‘다루끼’라고 부르는 각재는 유연한 목재이기 때문에 본드에 타카로 시공을 하기도 하죠. 그게 속도도 빠르고, 작업자들이 숙련되어 있으니까요. 40년 동안 기존의 방법에 익숙해져 있던 작업자들한테 정석으로 해달라고 하면 갑자기 고장이 나요. (웃음)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인천 현장
김혜린: 함께 작업하는 시공자들이 정해져 있나요?
김원일: 제가 현장 소장이고, 목수 반장님, 금속 반장님 등 함께 일하는 현장 식구들이 20~30명 정도 있어요. 각 공정마다 합치면 그보다 더 많고요. 10년을 넘게 함께 하다 보니 은퇴하신 분도 있어요. 현재 목수 팀의 경우도 함께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분들도 나이가 드셔서 은퇴를 앞두신 것 같아요. 이제 다음 팀을 어떻게 꾸려야 될지 미리 생각 중이에요.
김혜린: 가장 규모가 작은 건축 현장에는 시공자가 몇 명 정도 투입되나요?
김원일: 15~10명 정도인 것 같아요. 목수 2명, 전기 2명을 두고, 그 밖의 시공자를 최소로 해요. 나머지는 제가 시공하기도 하고요.
김혜린: 현장에서 일하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김원일: 처음에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는데, 제가 현장에 있으면서 설계를 하다 보니, 즉흥적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리노베이션 작업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도면 안에서 완벽히 들어맞는 설계를 할 수 없거든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선 저는 못해요. (웃음) 현장에서 직접 건물을 뜯어보고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요. 또 만약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이질적일 경우 고쳐야 되잖아요. 원설계가 그렇다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최종까지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학교 다닐 때 스터디 모델 만드는 것처럼 현장에서 요모조모 잘라보고, 붙여보고 하죠. 어느 순간부터는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캐드로 도면을 그리며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게 됐어요. 지금 2층 거실에 있는 조명 같은 경우는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임팩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나흘 전에 설계해서, 금속집에 가공을 맡긴 걸 어제 오후부터 조립해서 오늘 아침에 달았죠. 이런 식이에요.
김혜린: 지금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인천 현장부터 하남, 파주, 제주, 일산, 괴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먼 곳에서 작업을 할 때는 현장 근처에 머무르나요?
김원일: 일단 설계 단계에서는 현장과 집을 오가며 설계를 어느 정도 해놓고, 착공 순간부터 현장 근처에 숙소를 구하죠. 현장 옆에 아예 사는 거예요. 제주에만 2년 정도 살았고요. 괴산에서도 7개월 정도 살았었죠. 물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는 출퇴근을 해요.
김혜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별로 없겠네요.
김원일: 그러다 보니까 사무실이 없어진 거예요. 그렇게 객지에서 반년 이상 머물다 보면 사무실이 없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뭐하농 박스(2021), ©Kim Wonill
우리를 만드는
김혜린: 사람들이 어떻게 백반건축을 알고 연락해 오는지 궁금해요.
김원일: 90% 정도는 소개를 통해 들어와요. 제가 했던 작업의 건축주 소개로 오거나, 했던 작업을 보고 수소문을 해서 오는 것 같아요. 지인들한테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제가 인맥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서 저도 신기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일이 많지는 않아요. (웃음)
김혜린: 밤의 서점(2016, 2024)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작업했던 연희동 공간을 대신동으로 옮겨온 작업이에요.
김원일: 제가 2015년 망원동에 작업한 술집을 보고 밤의 서점 점장님 두 분이 연락을 해왔어요. 2016년에 작업을 하며 점장님들과 굉장히 친해졌죠. 작업도 모두 만족스러워했고요. 밤의 서점 자체가 쉽지 않은 서점 세계에서 브랜딩이 잘 되었기도 하고, 오랫동안 잘 운영되다가 8년 만에 확장 이전을 하게 되며 점장님들이 다시 한번 인테리어 의뢰를 주셨어요. 그 사이에 점장님 중에 한 분의 집 인테리어도 했고요. (웃음) 원래 분위기를 손님들이 좋아했다고 들어서, 기존 공간에 있던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구조적인 변화만 준 작업이에요.
김혜린: 같은 건축주가 다시 의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나요?
김원일: 작업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종 있죠. 농막 작업인 괴산의 뭐하농 박스(2021)의 경우 뭐하농 하우스(2020)를 만들고, 그 이듬해에 맡은 작업이에요. 농막으로 신고는 하지만 텃밭과 주방, 서점, 굿즈숍을 포함한 공간 체계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였죠. 그런데 이미 성황리에 영업 중인 공간 주변으로 공사판을 벌이기가 부담스러울뿐더러, 괴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내려가기 싫은 거예요. 그 정도 사이즈라면 배달이 가능할 것 같아 포천에 있는 아는 가구 공장의 창고 공간을 세 달 정도 임대해서 그곳에서 농막 세 동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배달의 민족처럼 배달을 했죠. 괴산에 있는 아는 기술자들에게 미리 도면을 보내서 기초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저는 당일치기로 하루만에 설치하고 올라왔어요. 뭐하농 하우스의 건축주와도 굉장히 친해요.
김혜린: 항상 현장에 있어서 그런지 작업을 하면서 다 친해지네요. (웃음)
김원일: 모든 작업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많은 것 같아요. 현장에 매일 나와서 얼굴 보는데 친해지지 않는다면 정말 안 맞는 거죠. 보통의 클라이언트와는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소규모, 소자본 작업의 특성상 함께 일을 하기도 하니까 ‘집을 같이 지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요. 준공 후 한참 뒤 제가 놀러가면 저한테 함께 작업한 공간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해주기도 하는데 그때 ‘우리가’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우리가 이런 건 잘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건 좀 약간 미스인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요. 그럼 저한테 들리는 건 뭘 잘했나 못했나보다도 ‘우리가’라는 표현이에요. 그분들은 그 공간을 ‘우리가’ 함께 지은 걸로 생각해주시는 거죠. 그런 기억들이 저한테 무척 좋게 남아 있어요.

밤의 서점(2024), Image courtesy of Librairie de nuit
김혜린: 오늘 인천 현장에서도 곧 건축주가 페인트 칠을 하러 온다고 들었어요. (웃음)
김원일: 제가 막 시키는 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직접 작업을 할 때 공사비를 당연히 아낄 수 있다고 얘기를 하면 웬만하면 참여를 하죠. 특히 단독주택은 어느 정도 본인의 손길이 닿게 되면, 나중에 유지 보수를 할 때도 무조건 기술자를 부르는 게 아니라 손수 관리하게 되거든요. 그 면이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과의 애착 형성에도 좋죠.
김혜린: 인천 현장은 어떤 작업인가요?
김원일: 1980년대에 지어진 연와조 주택이에요. 리노베이션 후 주거로 쓰일 예정인데, 집 앞에 성당과 광장이 있어 일요일이면 집 앞이 사람들로 가득하죠. 적은 예산임에도 앞의 사이트에 대한 대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의 파사드 면에 울타리처럼 골강판으로 가림막을 만들었어요. 마치 집이 마스크를 쓴 것 같은 형태예요. 그래서 울타리 집, 혹은 마스크를 쓴 집이라 이름 붙일까 생각 중이에요.
김혜린: 주택 신축부터 리노베이션, 상업 공간 인테리어, 농막, 기념관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어떤 작업을 할 때 가장 재미있나요?
김원일: 다 재미있지만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이 재미있어요. 복합적이고 풀어야 될 숙제가 많고, 문제가 많으니까요. 어려운 게 재미있어요.
김혜린: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김원일: 제 집을 짓고 싶어요. 진짜 저렴하게요. 덜 비싼 건축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들어요. 정확히 말하면 싼 게 아니고 덜 비싼 거죠. 어쨌든 보편적인 미감이나 완성도에 대한 욕구를 다 반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비용을 아낀다고 재활용 자재들을 클라이언트가 원하지 않는데 사용할 수도 없고요. 때문에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전부 제 집에다 실행하고 싶어요. 진짜 싼데 나름의 멋이 있는 집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김혜린: 머릿속에 그려둔 청사진이 있나요?
김원일: 반 정도는 있고, 반 정도는 애드리브로 할 생각이에요. 재활용을 염두에 두다 보면 자재가 먼저 주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설계에 자재를 맞추는 게 아니고 자재에 설계를 맞추는 거죠. 모아 둔 자재들을 일단 현장에 갖다놓고 보면서 어떤 집이 될지, 마저 생각을 할 예정이에요. 그렇게 하면 건축적 재미도 있고, 제 인생에서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하이엔드 공간들이 대세잖아요. 건축 공사비가 올랐다고들 많이 하는데, 실제 원자재비나 인건비가 오른 것 외에도 그사이 한국 사람들의 건축을 보는 눈이 높아진 것도 이유죠. 불과 6~7년 전에 붙였던 타일을 지금 사용하면 저급하다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사비가 비싸지는 거죠. 그래서 ‘꼭 저런 건축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는 하이엔드 말고 ‘로우엔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김원일은 2025년 10월호에서 원계연, 이제선(스튜디오더원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