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김나영&그레고리 마스의 전시 섹션

김옥선, 김지평, 하차연의 작업이 모여 있는 2층 전시 전경
강홍구,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김옥선, 김지평, 하차연 등 중견작가 다섯 명(팀)을 조명한 전시 〈안티-셀프: 나에 반하여〉가 아르코미술관에서 10월 26일까지 진행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가조사-연구-비평 지원사업과 연계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자기 자신을 비평하고 참조하면서 예술 세계를 개진해나가는 중견작가들의 여정을 다룬다. 고유의 언어를 성취한 예술가들에게 과거를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의 나를 딛고 현재의 나로 나아가는 도전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비평과 실천 사이를 오가는 예술의 수행적 과정을 전시의 형식 안에 담아내고자 한 기획의 전략과 방법론, 그 의미를 들여다보았다.

강홍구, ‘나는 누구인가 10’, 1998, 디지털 합성, 디지털 C-프린트, 40.5×60cm.

왼쪽: 강홍구, ‘도망자 1’(1996, 디지털 합성, 디지털 C-프린트, 40.5×60cm). 오른쪽: 강홍구, ‘우무와 밥그릇’(1992, 캔버스에 혼합재료, 150×180cm).
회고적인 것, 시대착오적인 것, 지나간 것
일정 궤도에 오른 예술가, 자기의 언어가 완결된 작가의 작업을 재구성해 보여줄 때 큐레이터의 접근 경로는 우회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와 작품 자체가 지닌 의미와 서사의 무게가 기획의 논리보다 더 무겁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견작가 다섯 명(팀)을 불러낸 이번 전시의 타이틀 ‘안티-셀프: 나에 반하여’는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나’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예술가는 무릇 자신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진동 속에서 표류하고 나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완결된 언어를 의심하고 넘어서는 갈등은 작업을 지속하는 내적 동력이겠지만, 이 과정과 사유를 전시의 형식을 빌려 공식적으로 드러낼 때 그 대상과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서문에서부터 중견작가들의 “매체, 시각언어, 방법론에 주목해, 작업의 토대가 되는 매체와 시대성을 참조하거나 반목해 갱신해나가는 이들의 궤적을 살핀다”고 밝힌다. 이 말은 참여 작가들의 연령대와 매체가 다르더라도 모두 자기 전복의 태도와 서사를 가진 비평적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서문에는 ‘나’에 대한 비평과 성찰을 반추해 다시 ‘나’를 재정의해 나가는 자기 변신이 “작가와 관계하는 한국 미술의 시간과 동시대의 자장 안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는 역사적 시간과의 교차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비평의 토대 위에서 메타비평을 시도하는 이러한 전략은 기획 과정에서 큐레이터들과 작가가 나눈 대화를 정리한 ‘서신 교환’으로 구체화된다.

전시장 벤치에 비치된 ‘서신 교환’ 모습
나에 반하여: 자기 전복의 필연성
1~2층을 아우르는 전시는 먼저 강홍구의 작품으로 문을 연다. 그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사진을 활용해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사진 위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전시장 초입에는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 두 점이 나란히 병치됐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과 선글라스를 합성한 ‘나는 누구인가 10’(1998), 그리고 한강이 보이는 엽서를 스캔한 뒤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물에 빠진듯한 모습을 표현한 ‘나는 누구인가 16’(1998)이다. 이 사진들은 자본주의의 폐해와 이미지 정치가 범람하는 현실을 비판했던 강홍구의 두 번째 개인전 〈위치, 속물, 가짜〉(1999)에 등장했던 작업들이다. 전자가 당대 기술로 구현한 일종의 딥페이크 기법이라면, 후자는 서울로 상경해 작가로 살아가는 힘겨움을 물에 가라앉는 것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이처럼 순수 사진의 문법에서 벗어난 그의 ‘위장된 이미지’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에 드리운 전쟁 공포,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탄생한 여가의 풍경 등 일상을 낯설게 보는 시선을 통해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는 매체로 작동한다. 매체의 속성을 비틀고,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그의 메시지는 “예술가, 혹은 작가란 삶을 의심하는 자이다”라고 선언했던 해당 개인전의 전시 서문과 포개어진다. 스스로를 ‘B급 작가’로 설명하기도 한 풍자적 태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전시장에는 기존 작업들과 함께 포토샵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근작 ‘공룡’(2024), ‘풍선’(2024), ‘자화상’(2025)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 가짜 이미지가 난무하는 지금의 세태를 관통하는 메시지 덕인지 이질감 없이 연결되어 읽힌다.
강홍구의 작업 맞은편에 있는 베이지색 배경의 전시 공간은 김나영&그레고리 마스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쓸모를 잃은 사물, 지나간 사건들을 새로운 시점과 관계 안에서 재조합해 맥락을 재창조하는 전략을 취한다. 회화, 조각, 설치를 비롯해 출판(텍스트)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넘나드는 이들의 작업 대상은 유무형의 지식, 공간, 제도까지 포섭한다. 두 사람은 각각 한국인과 독일인임에도 자신들의 모국어가 아닌 제3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소통하면서, 대화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관계와 맥락을 작업의 개념으로 삼기도 하고, 특정한 장소 없이 운영되는 킴킴 갤러리(2008~)라는 가상의 플랫폼을 만들어 기존의 전시 방식과 미술계의 경제구조에 질문을 던지고 시스템에 대한 전복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들이 출판한 아티스트북 『다이어리아 원인, 증상과 치료』(2025)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다이어리아’는 설사(diarrhea)와 발음이 비슷한 다이어리(diary)라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지식, 체계,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정리한 이 책에 등장하는 열 가지 개념을 설치 작업 ‘10 슬리지 피시스’(2025)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자신들의 기존 작업,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품 등을 가져와 모방하고 변형하고 재배치하는 이들의 작업은 ‘오늘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일 거야’라는 책 속의 문구처럼, 작가와 작품이 정체되지 않고 사유의 흐름과 작업의 방법론에 따라 새롭게 갱신됨을 보여준다.

하차연, ‘나는 작가이다’, 1999, 시트에 잉크젯 프린트, 이부자리, 98×62cm. 작품이 설치된 공간은 하차연, ‘쪽방’, 2013(2025년 재제작), 혼합 재료, 가변크기.

하차연, ‘스위트 홈’, 200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분 29초.
정주와 이주, 차별과 배제, 배반과 갱신
2층은 김옥선과 하차연, 김지형 세 사람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김옥선은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아시아 여성과 혼종적인 이방인, 자연에 주목한 작업을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전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사진 작업과 신작 사진을 합쳐 거대한 벽면을 채운 신작 ‘큰내 아틀라스’(1962~2025)를 선보인다. 오래된 자신의 가족사진부터, 국제결혼여성, 상호문화청소년의 이미지가 병치된 이 작업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러 인물들을 찾아 나서고 이들과 연대해온 작가의 의지와 작업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재일교포 2세,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 국제결혼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여정과 인터뷰를 담은 2채널 영상 ‘홈’(2023)과도 연결된다. 여기서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한 채 사진으로 이야기를 압축하던 작가가 거리를 좁혀 인터뷰이들의 서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엮기 위해 영상으로 매체를 확장하게 된 필연적 변화도 감지된다.
김옥선의 작품 앞으로 작은 방들을 구획해놓은 듯 보이는 목재 구조물은 하차연의 ‘쪽방’(2013)을 재제작한 공간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후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해온 하차연은 이주자이자 이민자로서 경험한 ‘자리 잡기’의 문제를 작업의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그는 유럽에서 정부 정책에 따라 정착과 이주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주자, 이민자, 노숙자, 난민에 주목한다. (자신을 포함해) 이들에게 몸을 누일 한 평의 공간을 얻는 일—작가의 언어로 표현하면 자리 잡기, 둥지 틀기—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쪽방’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출되는 ‘스위트 홈’(2004)은 작가가 파리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 스티로폼을 깔아 누울 자리를 만드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다. 노숙인이 누울 수 없게 벤치 중간에 팔걸이를 설치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리 잡기’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쪽방’ 다른 한 켠에 설치된 영상 ‘영등포’(2014)는 도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과 존재를 은유한다. 한때 영등포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쪽방촌을 발견한 뒤 이곳을 배회하며 ‘내가 이곳에 머물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뒤 영상을 촬영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비추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향한 앵글 안에서 주인공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흙만 남은 빈 화분과 버려진 생활도구들을 수집하며 쪽방촌에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앞에 두 사람이 이주와 정주, 정체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부정당하고 배제된 존재들의 이야기에 천착했다면, 김지평이 주목하는 대상은 미술사, 문헌, 동양화 주류 담론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전통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공인된 전통(재료와 대상, 방법론)을 배반하고 이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전통 만들기를 시도한다. 부적에만 쓰이던 빨간 물감을 사용해 병풍에 그림을 그리고, 동양화에 잘 등장하지 않는 여성, 동물, 신화 속 대상 등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거나, 동물들이 인간과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그려 넣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이 훈련받고 따라온 원칙과 신념을 버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함으로써 전통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는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없는 그림’(2021)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고려시대 화가 이녕의 ‘천수사남문도’처럼 실물은 없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림에 관한 글들을 모아 거대한 유리장의 표면에 기록한 작품이다. 실물은 없이 그림을 묘사하는 글만이, 부재하는 그림을 지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오늘날 전통의 부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빈틈을 애써 채우려고 시도하기보다 새로운 해석과 갱신, 전복을 통해 존재할 수 있는 전통의 속성을 상기시킨다.

김지평, ‘없는 그림’, 2021, 유리 진열장에 실크 스크린, 60×60×190cm.
작가와 작품의 동시대성
예술가에게 초기작 혹은 지나간 작업들은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누군가에 의해 호명되지 않는 이상 박제된 과거이자 기억으로 고착된다. 작품이 구상되고 창조되고 전시된 특정 공간과 시간의 맥락에서 완결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 혹은 그때의 상황을 다시 읽는 과정은 어떤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가? 나아가 과거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가? 자신에 대한 반추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현재와의 관계 맺기 과정은 ‘서신 교환’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을 시작하게 된 맥락이나 의도, 매체를 선택하고 확장하는 이유, 기존 작업을 다시 꺼내 보이면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 향후 작업에 대한 고민은 자기 진술과 자기 비평을 오가는 대화 안에서 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된다.
일례로 강홍구는 회화를 전공했음에도 사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역사적으로 두터운 의미의 층위를 지닌 매체인 회화가 “높은 벽에 부딪힌 듯해서 도망 내지 회피의 차원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를 만들었던 1990년대에는 “단색화류의 추상과 그에 대비되는 민중미술의 사이에서 보다 개인적이고 덜 형식적인 작업, 포스트모던하면서도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것들이 스며 있는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던 시절”이라고 회상하며 한국 미술의 당대 흐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한다.

왼쪽: 김지평, ‘The World Spins’, 2023, 한지에 혼합재료 안료, 금은박, 160×130cm. 오른쪽: 김지평, ‘두려움 없이’, 2022, 옻칠 한지에 먹, 금박, 혼합 재료, 148×105cm.
“1999년에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위치, 속물, 가짜〉는 내가 보고 겪었던 당시의 세태를 축약한 단어들이었지요. ‘위치’는 우리나라의 위치, 분단,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 작가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이었고, ‘속물’은 작가인 내가 가진 속물적 욕망과 더불어 사회 전체가 가진 벗어날 수 없는 속물성에 관한 진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짜’는 내가 만든 이미지를 포함해 세계를 지배하던 모든 이미지들과,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 그리고 사람들의 삶 전체가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세 단어는 늘 내 작업의 배후에 있고, 그로부터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위치’, ‘속물’, ‘가짜’는 위세를 더해가며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요.”_강홍구와의 ‘서신 교환’ 중에서 발췌

김옥선, ‘홈’, 2023,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대화를 통한 관계맺기와 자기 비평은 작가와 작품뿐 아니라 기관으로도 확대된다. 참여 작가들 중 일부는 아르코미술관에서 1992~2003년 사이에 개최됐던 ‘신세대 흐름전’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강홍구는 〈프레임 혹은 시간-사진으로부터〉(1998)에, 김나영은 〈믹서&주서〉(1999)에, 김옥선은 〈우리 안의 천국〉(2002)에 각각 참여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됐던 강홍구의 ‘해수욕장’ 연작 중 일부와, 김나영의 ‘전설’(1997~1999)이 다시 등장하는데, 전시는 20~30년 전 신진작가로 호명했던 이들을 중견작가로 재호출함으로써 ‘기관’ 안에서 생산되는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시도한다. 큐레이터는 김나영과의 ‘서신 교환’에서 1999년 당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입장, 제도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개입을 다룬 작업들을 선보이며 2000년대 시각예술의 다양한 시각언어를 드러냈”다고 평한 뒤, “미술을 둘러싼 메커니즘과 제도에 대한 작가들의 비판적 자각이 [김나영에게는] 킴킴 갤러리로 이어지게 되는 듯”하다고 평한다.
하지만 다층적인 관계망을 포착해 드러내는 ‘서신 교환’은 아쉽게도 전시 현장에서 소극적인 모습으로 제시됐다. 출력물 형태로 전시장의 의자와 벽면에 비치되었을 뿐, 그 이상 작품과 물리적 연결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내용이 작가와 작품을 압도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풀이되지만, 작가별로 10장 넘게 기록된 편지 내용을 관객들이 전시장에 앉아 차분히 읽도록 유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자기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자신을 비평하고 갱신하는 행위를 통해 의미의 층위를 확장해나가는 시대적 징후를 발견하는 흥미로운 현장이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이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느린 호흡으로 작업하는 중견작가들의 고뇌와 도전을 살펴볼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김지평의 전시 섹션

김옥선, ‘큰내 아틀라스’, 1962~202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디지털 C-프린트, 가변크기(전체 31점 사진 중 28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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