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사회적 가치를 지닌 건축을 지켜내는 일은 많은 이들의 의지와 실천을 필요로 한다. 지난 9월, 서귀포 최초 근대식 전용극장으로 개관해 쓰임에 맞게 변용 및 활용 되어오며 60여 년간 그 자리를 지키던 서귀포 관광극장의 철거가 진행됐다. 소식을 접한 제주 건축계는 즉시 현장으로 향해 철거를 중지시켰고, TF를 꾸려 관련 조사, 집담회, 포럼 등으로 대응하며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서귀포시는 11월 말까지 결정을 일단 보류해놓은 상태다. 이러한 국면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급박했던 상황, 철거와 보존을 둘러싼 논리, 그리고 남겨진 과제를 강정윤(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을 통해 들어본다. 편집자

건축사진가 박영채가 촬영한 철거되지 않은 면의 서귀포 관광극장 외관 전경 ©Park Youngchae
서귀포 관광극장 앞으로 모인 사람들
9월 19일 토요일,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던 초가을. 오랜만에 주말 오후를 여유롭게 보내려던 찰나였다. “철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장실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네요. 지금 서귀포로 가고 있습니다. 현장 상황을 보며 공유하겠습니다.” 현군출(대한건축사협회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회장)의 문자였다. 서귀포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며 서귀포 관광극장을 예의주시하던 김지건(아뜰리에 지 건축 대표)이 언론에 철거 이야기가 거론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여 시장 면담을 요청한 지 하루 만에, 그것도 주말 아침에 기습적인 철거가 이뤄진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극장 둘레로 펜스가 처져 있었고, 안에서는 돌벽을 부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급한 마음에 근처 이중섭 초가 앞마당에서 높은 나무 뒤로 보이는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주황색 포크레인이 분주히 팔을 휘저을 때마다 먼지가 피어 올랐다. 이창규(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와 극장에 바로 면한 올레길로 자리를 옮겨 펜스의 틈이 보이면 핸드폰을 밀어 넣어 촬영을 했다. 소리라도 담으려는 심산이었다. 먼저 도착한 현군출과 김지건, 강명숙(건축사사무소 시오 대표)은 현장 사무실에서 철거 중지를 요청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최종 책임자는 연락이 닿지 않아 현장을 관리하는 주무관, 현장 소장과 옥신각신하며 철거 범위를 최소화하고, 철거된 돌들은 현장에 보관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오후가 되어 박경택(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회장), 양건(가우건축사사무소 대표)과 김태일(제주대학교 교수), 김봉찬(더가든 대표), 임재영(뉴시스 제주 본부장)을 포함한 제주의 건축, 문화, 언론인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모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고 그렇게 철거는 중단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급박한 하루였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서귀포 최초 근대식 전용극장이다. 홀과 영상실은 1950~1960년대에 제주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콘크리트 구조로, 관람석과 무대 부분은 마치 돌창고와 같은 제주 특유의 돌쌓기 방식으로 구축됐고, 지붕은 목재 트러스로 틀을 짜 함석지붕을 얹은 구조다.▼1 해양 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양식의 융합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서귀포 시민들이 출자까지 하며 지어진 극장 건물은 1960년 사용승인을 받았고, 1963년 정식 개관하여 영화를 상영했으며, 이따금 학예회와 음악회도 열리곤 했다. 이 극장은 단순한 문화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 생활의 무대였다. 1982년에는 사무실과 창고가 증축됐으나 1993년 화재로 인해 지붕이 소실되어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방치됐다. 1999년 폐업 후 십여 년간 방치되었던 건물은 2013년 서귀포시 아트플랫폼 사업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었다. 지붕이 없는 극장, 시간이 흐르며 드러난 현무암 벽,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담쟁이 덩굴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됐다. 2015년 리모델링 이후 예술전용 노천극장으로 재개관했고, 한해 1만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기도 했다.▼2 박정근(제주대학교 교수)과 이선민(동그라미네모세모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매년 봄이면 1학년 대학생들과 이 극장을 방문해 형태와 조형 수업을 진행했고, 관광객과 지역 주민은 너나없이 담쟁이가 뒤덮인 이곳에서 흥겹게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개인이 소유했던 극장을 무상 임대하여 사용하던 서귀포시는 이중섭의 주택 및 산책로와 함께 옆에 자리한 이 극장을 “상징적 공간의 원안유지” 등을 조건으로 2022년 매입했다. 그리고 3억 원을 들여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한 후, 올해 봄까지 작가의 산책길,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을 활발히 이어왔다.

고성은(고글 건축사사무소 대표)이 촬영한 철거 전 서귀포 관광극장의 야외 극장 모습 ©Ko Seongeun
그런데 2025년 9월, 서귀포 관광극장의 철거가 예고 없이 시작됐다. 이중섭미술관 신축을 위해 지하를 공사할 때 바로 옆 건물인 서귀포 관광극장의 불안정한 구조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 집 지하를 공사하는데 옆집의 구조가 부실하다고 옆집을 부수는 격이다. 서귀포시는 지난 5월 급하게 구조 안전 진단을 발주했고 8월에 건물은 E등급을 받았다. 2022년 시에서 매입 당시 C등급이었던 건물이 채 3년도 되지 않아 E등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서귀포시의 관리 소홀로 비춰질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공개된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에는 첫 번째 방안으로 보수, 보강 후 재사용이 제시돼 있으나 시는 마지막 제안인 철거 후 개축을 선택해 급히 철거를 진행했다. 이른바 ‘안전을 위한 신속한 행정’이었다. 심지어 서귀포 관광극장은 2020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발주한 「건축자산 기초조사보고서」에서 건축적・사회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제주의 건축 자산이고, 2021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에서 수여하는 제주다운 건축상을 받았다. 서귀포 관광극장의 벽이 허물어지던 날 모인 사람들은 단순히 한 건물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과 기억을 잃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건축은 시설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이며, 한번 무너진 기억은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인식이 모두를 그곳으로 모이게 했다.
9월 22일 월요일, 마음 졸이던 주말을 보내고 급박하게 서귀포시와 면담이 이뤄졌다. 제주 건축계는 카사 델 아구아(2009, 리카르도 레고레타 설계)와 제주대학교 본관(1970, 김중업 설계) 철거라는 그간의 아픔으로 얻게 된 깨달음으로 세 개 단체가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그날 대한건축사협회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대한건축학회 제주지회 회원들이 서귀포 관광극장 앞으로 모였고, 언론도 이를 집중 조명했다. 이후 제주 건축 3단체는 ‘서귀포 관광극장 보존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통해 행정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 결정이 아닌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리적 활용 방안을 만들 것, 역사적・문화적・건축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보존과 재생을 통해 미래 세대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즉각적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제주올레 이사회, 서울건축포럼을 포함해 타 지역 건축가들과 시민단체 등이 내준 공동 성명서와 테크캡슐(대표 황지은) 등이 공유해준 정성스런 자료들 또한 큰 힘이 됐다. 시와의 논의와 더불어 서귀포 관광극장의 가치를 도민과 함께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에 제주의 건축가들은 자발적으로 ‘2060 서귀포 관광극장 TF팀’을 구성하고 연대하며 서귀포 관광극장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리는 작업, 기록과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는 작업, 대안 검토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백승헌(에스오디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이 제작한 서귀포 관광극장 1층 평면도 ©Baek Seunghun
‘수눌음’ 정신으로 지어진 공공 건축
우리는 흔히 건축의 가치를 말할 때 먼 과거에 특정한 계급이 향유한 문화재나 세계적 건축가의 걸작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근현대 건축, 특히 우리가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시대,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온 공간의 가치 또한 중요하다. 이것은 미래에 또 다른 가치로 전해지며 그렇게 역사가 되어갈 것이다.
서귀포 관광극장을 지탱하는 돌벽은 제주 건축의 기본인 돌쌓기에서 출발한다. 제주에서 돌쌓기는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필요하면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유연한 구조다.▼3 그 과정 자체가 건축의 일부이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기술적・정신적 지역성이기도 하다. 이는 제주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닮아 있다. 자연의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건축은 언제나 수정되고, 고쳐지고, 다시 세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의 건축은 완결보다는 과정, 형태보다는 태도에 가깝다. 또한 서귀포 관광극장이 지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수눌음’이라 불리는 공동체 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돌을 나르고, 쌓고, 정리하며 노동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마을은 더욱 끈끈해졌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던 공동체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감각은 우리가 제주에서 관찰하며 깨닫게 된 가치, 무덤덤함의 서정성과 경험이 만든 디테일과도 이어진다. 과장되거나 장식되지 않은 형태,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표면, 그리고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구축의 방식 등이 모여 투박하지만 제주 특유의 평온한 아름다움을 이루어낸다.
국제 기준으로 보아도 서귀포 관광극장의 가치는 분명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역사적 증거, 사회적 기억, 건축·기술 발전 과정,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핵심 가치로 본다. 또한 이코모스는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보존의 기준으로 삼는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앞서 말한 현무암 돌쌓기라는 지역 기술, 수많은 공연과 사건을 품은 기억, 제주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고스란히 담아낸 건축적 증거다. 특히 이 극장은 드물게도 내부 기둥 없이 폭 약 14m, 길이 약 21m, 높이 약 10m 가까이 되는 벽을 돌쌓기 방식으로 지은 건물이다.▼4 장비가 부족한 시대에 이 정도 규모의 돌벽을 지역의 주민들과 장인들의 손으로 쌓아 올린 것은 제주의 노동과 기술이 응축된 성취였다. 제주의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건축물은 단순한 구조적 역할을 넘어 그 당시 제주민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의 구술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곧 유네스코가 말하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

건축사진가 박영채가 촬영한 서귀포 관광극장의 일부가 철거된 모습 ©Park Youngchae
건축가로서 이 건물의 가치는 한 지역의 건축물을 넘어 장소성, 시간성, 공공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된다. 제주의 재료와 기술, 기후와 생활의 결이 건축 곳곳에 녹아 장소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며 여러 세대를 매개해왔고, 많은 대중이 이를 공유하고 사용해왔다. 이러한 가치는 서귀포 관광극장이 단순히 노후돼 안전하지 않은 건축이 아니라 한 시대의 풍경을 품은 근현대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 안에서 쌓인 시간은 물리적 구조를 넘어선다. 수많은 손길이 닿은 곳, 세대가 겹쳐 사용한 곳, 여러 공연과 모임, 학예회와 상영회가 열린 곳. 사람이 떠나도 여러 용도를 거쳐온 건물의 흔적은 벽과 바닥에 남아 있으며, 사람들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보존과 활용의 문제는 이 건축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기억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보존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건축이 그 태도를 회복할 때, 도시는 더 느리지만 깊게 성장할 수 있다. 형태나 기능이 변해도, 그 안의 시간과 정서가 이어진다면 그 건축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지금도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어가는 철거와 보존 논의는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다룰지 묻는 출발점이다. 올해는 우리와 가까운 과거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손건축(대표 손진)의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SPACE(공간)」 694호 참고)은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받으며 우리와 가까운 과거의 건축이 현재의 삶과 만나 펼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구가도시건축(대표 조정구)의 25주년 기념전시인 <픽션 논 픽션>(본지 118~121쪽 참고)에서는 건축가가 그동안 집념으로 읽어낸 기록들을 통해 우리의 일상과 그것이 담긴 건축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볼 수 있다. 남산자락 피크닉에서 CAC의 기획으로 열린 <힐튼서울 자서전>(「SPACE」 696호 참고)에서는 다양한 건축, 문화, 예술인들이 철거되는 힐튼호텔과 설계자 김종성(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명예사장)에게 정중하고 아름다운 배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용기를 얻어 제주에서도 11월에는 서귀포 관광극장에 대한 좌담회가 열릴 예정이며, 12월에는 근대건축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힐튼서울 자서전>에서 읽은 글귀가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기념물들보다 우리가 파괴한 것들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5 시간을 견디며 잘 사용되던, 그래서 계속해서 서 있을 것 같던 건물과의 갑작스러운 작별은 지금 서귀포 관광극장이 맞이한 현실과 닮아 있다. 다른 점이라면 서귀포 관광극장은 아직 모두 철거되지 않았고, 행정의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보존과 활용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겨진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로 이어줄 것인지, 지금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우리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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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명숙, ‘백년프로젝트 ‘서귀포 관광극장’’,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건축 저널」, 85(2024. 11.), 6쪽.
2 주미령, ‘옛 서귀포 관광극장,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 「국민일보」, 2017년 12월 12일.
3 양성필, ‘시간을 먹은 건축물은 사물이 아니라 생명이다’, 「제주의소리」, 2025년 9월 25일.
4 강명숙, 위의 글, 6쪽.
5 에이다 루이스 헉스터블, ‘펜역에 보내는 작별’, 「뉴욕타임스」, 1963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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