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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의 변이: 이동식 시설과 정류소 | 소멸의 가능성, 중소도시포럼 11

글
이장환
자료제공
중소도시포럼
진행
윤예림 기자
데이터 분석 및 시
이상현

「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이동성’은 지금까지 연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 키워드다. 소멸해가는 중소도시에서 이동성의 향상은 생존을 위한 다른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이동성을 동력으로 시작된 변화를 구체적으로 짚는다. 도시부터 농촌까지 이동의 가능성이 촘촘해진 동시에, 비워지고 흩어진 중소도시의 틈을 메우는 것은 ‘이동식 시설’이다. 통학버스만이 아니라 움직이는 세탁소, 목욕탕, 보건소가 수요자를 직접 찾아간다. 여기에 일상의 교통수단으로 전동스쿠터를 획득한 고령자의 확장된 이동성이 겹쳐지며 관습적 방식과 다른 정주체계가 형성된다. 무색무취의 ‘정류소’는 두 이동성이 만나는 지점에 중소도시포럼이 제안하는 새로운 건축 존재다. 마지막 회차를 마무리하며 시리즈 제목인 ‘소멸의 가능성’을 다시 떠올려본다. 소멸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건져냈을까? 

 

 

​[Series] 소멸의 가능성, 중소도시포럼

01 수도권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02 도시 농도

03 도시 천공

04 소거 계획

05 덧대기 건축1

06 덧대기 건축2

07 세계적 중소도시

08 일시적 중소도시

09 시설의 변이1

10 중소도시의 밖

11 시설의 변이2​ ​ 

 

 

국도를 주행하는 의료용 전동스쿠터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기존 시설에 어떠한 변화를 유발하는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를 전제로 구축된 각종 시설들은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고 고령화됨에 따라 유지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 병원, 상점과 같은 기본적 생활 시설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면소재지의 클러스터가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도로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농촌 지역의 접근성이 향상되었고,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다양한 이동식 시설의 개발이 가능해졌다. 또한 의료용 전동스쿠터의 보급으로 고령자의 이동 반경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정된 시설 중심의 전통적 정주체계에서 벗어나 이동성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 공급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이러한 체제 전환을 위해 이동식 도서관, 이동식 목욕차, 이동식 보건소 등 다양한 ‘이동식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시설이 만드는 새로운 흐름을 통해 인구 감소를 겪는 농촌 지역이 어떻게 이동성 기반의 새로운 정주체계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중소도시 면소재지의 생활편의 시설 감소 현황(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농촌 중심지에서 생활편의 시설과 공공 서비스가 이루던 클러스터가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정주체계

중소도시 밖 농촌 지역에서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 그에 따라 마을의 집합성은 해체되고, 면소재지 클러스터는 분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에서 인간의 정주체계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농촌 지역의 정주체계는 마을에서 농촌 중심지(읍·면 소재지)를 거쳐 농촌 중심 도시(시·군)로 이어지는 계층적 구조를 지닌다.▼1 그런데 이러한 계층적 정주체계는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기술·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가 감소하면서 면의 인구가 3,000명 이하로 줄어들면 지역 내 보건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인구가 2,000명 이하로 줄어들면 의·식·주 중 의·식과 관련된 식당, 제과점, 세탁소, 이·미용실 등이 폐업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읍·면 중 약 25%에서 의·식과 관련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2 그 결과 농촌 중심지에 주로 입지한 상점, 금융 기관, 음식점, 주점, 미용실, 찻집 등 상업적 거래를 통한 서비스 제공 사업체 수가 크게 줄었다.▼3 이는 그곳에 위치한 공공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농촌 중심지에서 생활편의 시설과 공공 서비스가 한데 이루던 클러스터가 해체되면서, 생활편의와 공공 서비스를 함께 보던 장소였던 농촌 중심지가 이제는 공공 서비스만 남은 장소로 변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장소에 오래 머물 이유가 감소했다. 그 결과 하위 중심지의 위상이 함께 하락하면서 과거에 여러 단계를 이루던 계층적 정주체계가 단순화되었다. 특히 면소재지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마을에서 면소재지를 건너뛰고 바로 읍이나 시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4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도로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일반 국도 외에 다양한 도로가 새롭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최근 50년간 도로율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1970년대까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는 소수의 국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속도로와 각종 우회 국도, 지방도 들이 추가되면서 도로의 양이 크게 증가한다.▼5 그 결과 운전자의 선택권이 늘어났고, 오지로의 접근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의 1970년(왼쪽), 2025년(오른쪽) 광역 교통망 비교. 최근 50년간 도로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농촌 지역의 접근성이 향상됐다. 

 

 

이동식 시설

전통적 정주체계는 특정 지점에 고정된 시설을 전제로 한다. 즉 행정복지센터, 보건소, 우체국, 농협, 파출소 등이 농촌 중심지에 위치하면서 배후 지역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구조다. 하지만 인구 감소에 따라 이러한 구조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시설 대비 이용 인구가 줄어들면서 시설이 과잉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많은 공공시설이 통폐합되거나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일례로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의 치안센터는 이미 5~6년 전에 폐쇄됐고, 의료시설인 보건진료소와 보건지소에는 각각 한 명이 근무하고 있다. 우체국은 오전 시간 동안만 운영하고 점심 이후 문을 닫는다. 3명뿐인 우체국 직원들은 오후가 되면 인근 대구면에 있는 우체국으로 이동해 근무한다.▼6 이러한 근무 방식은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 우체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7 면소재지에 위치한 공공시설 중 통폐합 규모가 가장 큰 시설은 치안센터다. 치안센터는 주로 농어촌처럼 인구가 적은 지역에 위치하며 1~2명의 인원이 상주하거나 방문해 주민의 치안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23년, 경찰청은 그해 말까지 전국 치안센터 952곳 가운데 60.5%에 해당하는 576곳을 폐지할 방침을 세운 바 있다.▼8

시설 통폐합은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간 거리를 멀게 만들어 수요자의 이동 거리를 늘어나게 한다. 공공 서비스를 특정 거점으로 통합하면 그곳이 관할하는 공간 범위가 넓어지고 이는 서비스 소외 계층을 발생시킨다. 또한 인력 감축은 1인당 공간 사용 면적 과대로 이어져 시설의 유지관리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인구 감소로 시설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고정된 형태의 공공시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공공 서비스 수요가 줄어든 지역에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공급 방식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로율 증가에 따른 접근성 향상은 공공시설 통폐합으로 인한 서비스 공백을 메울 새로운 운용 방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과거에 비해 고속도로망이 크게 확장되고, 도로의 포장률도 크게 향상되었으며, 국도의 종류도 다양해져 농촌 지역 내 연결성은 크게 확대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면 단위를 하나의 공공시설이 관할하기보다, 두 개 이상의 면 단위를 하나의 ‘이동식 시설’이 움직이면서 서비스하는 방식이 지금의 현실에 더 유효하지 않을까? (하략)

 

 

 

중소도시 농촌 지역의 면소재지 기능 약화, 도로 신설, 내비게이션 시스템 발전으로 인해 단순화되는 계층적 정주체계. 마을에서 면소재지를 건너뛰고 바로 읍이나 시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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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양부・정철모, 「농촌지역의 정주체계와 중심지개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4.​ 

2 한이철·이순미·정학성·박대식·안규미, 「인구감소 농촌 지역의 기초생활서비스 확충 방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2, 102쪽.​

3 김정호·김창길·송미령·한석호·장도환, ‘농업·농촌 2030/2050 비전과 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책연구보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0.​

4 위의 보고서.

5 이장환·이상현, ‘중소도시의 밖: 비인간의 건축’, 「SPACE(공간)」 694(2025. 9.), 110쪽. 

6 방국진, ‘면 전체에 400명 산다…소멸위기 엄습’, 「내일신문」, 2025년 9월 11일.

7 신하림·김광희, ‘‘반나절 우체국’ 늘어나는 농촌…주민들 “지역 소멸 부추겨”’, 「강원일보」, 2023년 6월 9일.

8 ‘‘치안센터’ 대폭 축소 방침 옳지 않다’, 「농민신문」, 2023년 11월 1일. ​

 

 

 

 

월간 「SPACE(공간)」 696호(2025년 1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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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환, 이상현
이장환과 이상현이 결성한 중소도시포럼은 대도시권역 밖의 변화를 관찰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 그룹이다. 이장환은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로 도시, 문화, 건축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건축학교(sa)를 졸업했고 델프트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우수 졸업했다. OMA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카타르 국립중앙도서관 설계와 더불어 다수의 아시아, 유럽, 중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상현은 대구광역시 도시디자인과 주무관이자 독립 도시연구가이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와 델프트 공과대학교 도시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팜보트 어반 랜드스케이프에서 도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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