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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도시건축, 우리 삶의 보편을 찾아온 25년: 〈픽션 논 픽션〉

글
김보경 기자
사진
진효숙(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구가도시건축

「SPACE(공간)」 2025년 12월호 (통권 697호) 

 

2025년 11월 7일, 구가도시건축(대표 조정구)의 25주년 전시 〈픽션 논 픽션〉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전시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개최됐다. 조정구와 정다영(CAC 공동 디렉터), 김종헌(배재대학교 교수)이 참여해, 지난 25년 동안 구가도시건축이 해왔던 건축 실천과 그 의미, 그리고 이를 모아 선보인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픽션 논 픽션〉의 전시 장소인 구 구영숙 소아과 

 

 

보편의 삶을 향한 마당의 확장과 변주

북토크는 김종헌(배재대학교 교수)의 발표로 시작됐다. ‘몸으로 읽은 마당, 마음으로 만든 집: 공간 짠돌이 조정구의 육감으로 만든 집’이라는 제목처럼 그는 전시와 구가도시건축(대표 조정구, 이하 구가)의 건축 실천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마당을 중심으로 구가의 건축을 분석했다.

김종헌은 1,100회 넘게 이어진 수요답사에 주목해 구가의 마당을 도시 스케일로 확장해 해석했다. “조정구에게는 골목이 곧 동네의 마당이고, 수요답사를 통해 목격한 다양한 골목길이 지금까지 설계해온 다양한 마당집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구가의 건축을 마당 개념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새롭게 시도해온 과정으로 읽는다. 

가회동 양유당(2011) 개보수 작업에서는 구가의 ‘공간 짠돌이적’ 면모가 도드라진다. 리모델링 후 전체 건축면적은 줄었으나, 더욱 효율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췄다. 20여 년간 이어온 수요답사의 경험으로 단련된 예민한 치수 감각을 통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면적을 가늠하고, 불필요한 면적을 덜어내며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구가의 마당은 안으로, 위로 확장된다. 천연동 한옥(2016)에서 구가는 거실 역할을 하는 대청에 부엌의 역할을 부여하고, 마당 일부에 아트리움을 두어 ‘거실화된 마당’을 시도한다. 김종헌은 “현대식 거실을 한옥에 접목한 것이 아닌, 본래 마당이 지녔던 거실로서의 성격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평했다.

삼청동 K(2008), 은평 한옥마을에 자리한 낙락헌(2016), 공방주택 열달나흘(2017)에는 들어 올려진 마당이 시도됐다. 삼청동 K에서 마당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지나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마당이 펼쳐진다. 마치 누각 밑을 지나 대웅전을 향하는 듯한 전통적인 경험을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낙락헌은 2층 한옥으로, 2층의 거실화된 마당과 필로티 위 돌출되어 있는 식당에서 북한산 조망을 확보했다. 도시 한옥의 전형적인 내향적 ㄷ자 배치를 뒤집음으로써 새로운 도시 한옥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공방주택 열달나흘의 2층 마당은 실내화된 마당이나 전형적인 ㄷ자 배치를 하고 있다. 이 2층 실내 마당을 중심으로 각 실이 이어져 자유로운 동선의 흐름이 가능해졌다.

김종헌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910년에는 지면에 밀착한 안정적인 로비 하우스를, 1959년에는 점차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변화에 빗대며, 전주주택(2020)을 이러한 시도의 정점으로 꼽았다. 구가가 지금껏 만들어온 집에 둘러싸인 마당 혹은 집 안에 위치한 마당이 아니라, 집을 둘러싼 마당을 구현함으로써 마당과 집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이 집의 타원형 평면은 마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며, 1층 남쪽에 위치한 한실의 한지문을 들어 올리면, 한실은 외부의 마당과 시각적으로 통합된 실내 마당이 된다.

구가는 재료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마당을 시도한다. 바로 흙, 타일, 돌이 아닌 물로 구성된 마당이다. 한옥호텔 라궁(2007)의 노천탕 그리고 대지 전면의 인공 연못이 바로 물의 마당이다. 제주문학관(2021)과 이중섭 미술관 공모 제안안에서는 좀 더 큰 스케일의 큰물 마당을 시도했다. 큰물이 마당을 형성하고, 건물은 마치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어진 대화 중 정다영(CAC 공동 디렉터)은 ‘마당’이 구가의 건축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임과 동시에 우리 한국 건축계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레토릭(rhetoric)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었다. 평소에 마당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계해오지 않았음에도 개인전을 준비하거나, 특히 해외에 작업을 알리려 할 때, 마당이라는 레토릭은 매력적인 개념으로 소환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다영은 마당이 특정 세대의 전유어가 아닌, 한국 현대건축 내에서 다채롭게 변주되는 현상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그러한 레토릭에 불과한 마당의 쓰임과 구가의 마당은 무엇이 다른가 질문했고, 조정구는 구가에게 마당은 정제된 개념이 아니라 다소 자질구레해 보이더라도 실제의 삶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2층 ‘구가가 만든 집’ 전시 전경 

 

 

기획자가 아닌 건축가의 시선으로

이어 정다영은 전시 기획자의 입장에서 〈픽션 논 픽션〉이 한국 건축 전시사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폈다. 우선 전시가 한국 건축계에서 익숙한 매체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한국 건축계 최초의 건축가 개인전은 1957년 소공동의 공보실 공보관에서 열린 〈김중업건축작품전〉이고, 이외 주목할 만한 개인전으로는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올해의 작가 2002: 건축가 승효상〉이 있다. 〈김중업건축작품전〉과 비슷한 시기인 1955년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때부터 건축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한국건축가협회의 대한민국건축대전으로 이어져온 바 있으나, 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기획된 건축 전시와는 다르다. 

그 밖에도 1996년부터 참여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나 〈메가시티 네트워크〉(2007) 등 국제전들이 이어져오긴 했으나, 한국 건축계에서 전시가 지금과 같이 익숙한 매체로 자리 잡는 데에는 2011년 정다영이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들어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건축 전시들은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처럼 작고한 혹은 은퇴한 건축가들에 대한 아카이브 전시 혹은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2014)과 같은 젊은 건축가 중심의 파빌리온 전시에 국한되었다. 조민석의 개인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2014) 등의 예시를 들 수는 있겠으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기성 건축가를 다루는 전시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정다영은 이러한 맥락에서 〈픽션 논 픽션〉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중견 건축가의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도권의 개입 없이 오롯이 건축가 스스로 조직해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다만, 과거에도 많은 건축가들이 스스로 전시를 꾸리면서 작가이자,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며, 조정구도 스스로가 자신의 건축과 작업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한 만큼 비평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에 조정구는 “전문 큐레이터에게 기획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스스로 기획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기획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기보다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관람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자 전시라는 매체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조정구가 전시를 구성한 방식에서도 전문 큐레이터와는 다르게 건축가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마치 건축가가 대상지의 맥락에 대응해 설계를 하는 것처럼 구 구영숙 소아과라는 공간에 맞추어 전시를 구성했다. 조정구에 따르면 1층(‘구가의 바탕’)은 층고가 낮고 땅에 묻혀 있으니 수요답사를 통해 쌓아온 자료들이 모인 창고처럼 보였으면 했다고 한다. 2층(‘구가가 만든 집’)은 투명하고 맑은 공간으로 집처럼 꾸미고자 했고, 지붕의 골격이 드러나 층고가 높은 3층(‘새로운 삶의 형상을 찾아서’)에는 공간의 스케일에 걸맞은 큰 모형들을 모았다.

전시장의 주차장 자리에 설치된 1:1 스케일의 파빌리온 굳찌 또한 전시장의 맥락에 대응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가는 전시 기획 단계부터 1:1 스케일의 설치를 구상했지만, 형태는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조정구는 구 구영숙 소아과를 전시 장소로 확정 짓기 전 다양한 전시 장소를 물색했고, 주한 스위스 대사관을 전시 장소로 염두에 두고 있을 때에는, 오두막과 같은 소형 한옥 구조의 파빌리온이 어울릴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전시 장소가 구 구영숙 소아과로 결정되면서, 실현되지 않은 이중섭 미술관 설계안의 최상층 유닛을 변형한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장소의 맥락을 기반으로 그것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디자인을 찾은 것이다.

 

 

 

3층 ‘새로운 삶의 형상을 찾아서’ 전시 전경. 앞에 보이는 것은 한옥 호텔 라궁(2007)의 모형이다. 

 

 

통계가 아닌 실제의 삶에서 찾는 보편성

구가의 건축은 언제나 현실의 삶에서 출발한다. 수요답사와 지금까지 지어온 마당집은 모두 실제 삶의 형상을 관찰하고, 이를 건축이라는 매체로 표현해온 과정이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 〈픽션 논 픽션〉은 이러한 구가의 건축 철학을 담고 있다. 답사로 대표되는 경험의 영역이 논픽션이라면, 이를 구가의 시선으로 해석해 내놓는 설계의 영역은 픽션이다. 

정다영은 이를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계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기는 하나, 법규, 물리적 조건, 예산 등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논픽션이며, 반대로 수요답사의 대상이 된 마을 대부분이 이미 사라져버렸기에 픽션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확장된다. 구가가 수요답사를 통해 주목하는 서울은 대부분 사대문 안의 마을이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자란 ‘아파트 키즈’가 대부분인 이 시대에 사대문 안의 마을이 정말 서울의 보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특정 시기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적 시선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조정구는 이에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좋은 아파트’가 아닌 빌라, 다세대·다가구, 원룸, 반지하, 쪽방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에서는 과도하게 아파트만 주목받는 것 같다”며, 자신이 주목하고자 하는 ‘보편성’은 통계적 다수가 아니라 실제 삶이 존재하는 곳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임을 역설했다.​ 

 

 

 

왼쪽부터 김종헌, 정다영, 조정구 ©guga urban architecture

 

 

 

 

월간 「SPACE(공간)」 697호(2025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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