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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 서 있는 지점들: 재료, 툴, 물질 | 이용주건축스튜디오

사진
이용주건축스튜디오(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이용주건축스튜디오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5년 11월호 (통권 696호) 

 

 

 

 

DIALOGUE 이용주 이용주건축스튜디오 대표 × 윤정원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대표

 

 

상황과 선택 

 

윤정원(윤): 미국에서 작업을 할 때부터 멀리서 지켜봐왔다. 당시에는 미디어 설치나 컴퓨테이션을 사용하는 작업을 많이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반적인 건물과 공공 작업도 다뤘다. 그 후 대학교에 소속되면서 연구적인 설계라 할 수 있는 프로토타이핑 위주의 설계로 바뀌었다. 이러한 작업 경향의 변화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이용주(이):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2010년쯤 미국에서 미디어 작업을 했던 때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 취업이 전혀 되지 않았고, 비자는 1년 남아 있었다. 컴퓨터 기반 작업을 하던 미국 친구와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가장 최첨단이라 여겼던 미디어를 다루게 됐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기반이 없어 공공 건축으로 시작했는데 학교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연구를 해야 했다. 국내 건축학과의 논문은 사례 분석이 주를 이루는데 나는 디자인과 연구를 동시에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다시 컴퓨테이션 관련 분야로 돌아가게 됐다. 결과론적으로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셈이다.

 

윤: 대학생 때부터 컴퓨테이션, 디지털 분야에 관심을 가졌나?

 

이: 맞다. 공간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설계 방식에 공감이 가지 않던 차에 그렉 린, 벤 판 베르켈, 마르코스 노박 같이 디지털 건축을 하는 건축가들을 접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이라 이러한 건축 경향이 한국에서 막 주목받던 때였고, 이상한 그래픽에 매료돼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3D 맥스를 배웠다. 이후 미국 동부에서 주요하게 디지털 건축을 다룬다는 걸 알게 돼 컬럼비아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윤: 나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나는 툴을 피해 다녔는데 어쩌다가 하게 된 경우다. (웃음) 개별 작업 간 연결 지점들이 보이더라. 기존 작업이 다음 작업의 동기가 되어 재생산 혹은 진화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이: 아무래도 건축 분야에서 정립되지 않은 최신 기술을 사용하다 보니 작업의 결론이 어디로 가 닿을지 모른다. 그러한 상태에서 작업자는 자체적으로 완결을 짓는다. 나 또한 당시 사고의 방향, 주어진 상황, 기술력 등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 하지만 아쉬움은 항상 남고 이후 기회가 되어 발전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가 없는 경우가 많아 좀 더 자유로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간 연결 지점 을 만들어내는 게 어느정도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정해욱(정): 작업자가 곧 클라이언트인데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아쉬움인가?

 

이: 위상한옥(2025)의 경우 계획의 절반 밖에 만들지 못했다. 본래 데미안 허스트의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1993)처럼 벌려진 위상한옥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가서 이리저리 관찰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예산과 시간의 문제로 불가능했다. 여건이 된다면, 위상한옥의 나머지 반쪽을 마저 만들고 싶고, 균사체를 3D 프린터로 몰드 없이 사용해보고 싶다. 과거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충분한 높이를 쌓는 데에는 실패했다. 익스트루더의 기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익스트루더를 주문해 제작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이를 통해 크고 이상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정: 그렇다면 굳이 돔을 만들 필요가 없어지니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나올 수도 있겠다.

 

이: 균사체에 다른 재료가 섞이면 곰팡이가 잘 생겨 점성을 맞추기가 어렵고, 자체적으로는 구조 성능이 강하지 않아 다소 평범하게 원통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도 균사체를 3D 프린터로 한번에 50cm 이상 쌓은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다.

 

윤: 그런데 갈래마당(2025)은 한강에 지어진 뿌리벤치(2018)를 보고 클라이언트가 찾아온 경우다. 크고 이상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던 기회였을 텐데, 이 경우에는 어떤 아쉬움이 남았나?

 

이: 갈래마당은 내 작업들 중 과거의 작업과 가장 유사한 경우다. 스스로 계속 다른 걸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새로운 안을 갖고 갔지만 클라이언트가 뿌리벤치와 같은 작업을 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한 알고리즘이라도 다른 인풋을 넣어 차이를 주고자 했다. 그러면 콘셉트적으로나 프로세스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 원형의 지붕이 인풋이라 보면 되는가?

 

이: 보통 파라메트릭 디자인에서 형태 변화를 유도하는 어트랙터가 있지 않나. 뿌리벤치는 점 하나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고, 외부의 어떤 자극에 의해 조율된 형태다. 갈래마당에서는 하나의 어트랙터가 더해졌는데 그것이 언급한 것처럼 원형의 지붕이다. 이 지붕은 위아래를 반사하는 동시에 벤치의 패턴 자체를 또 다르게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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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과 형태, 그리고 재료

 

윤: 장비의 조건을 고려하다 보면 모듈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된다. 호텔명동역(2025)은 모듈이 전면에 드러나고, 위상한옥은 얼핏 하나의 덩어리로서 구축적 모듈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존재한다. 모듈이 초기 개념이 되거나 모듈을 와해시키기 위한 전략을 쓰기도 하는가?

 

이: 모듈을 자의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모듈보다 전체적인 형태를 다루는 것에 관심이 있다. 앞서 한 말처럼 크고 이상한, 극단적 형태를 만들 방법을 현실의 툴과 가공 방식에 맞춰 계획하다 보니 규격화되고 모듈화된 것이다.

 

윤: 모듈을 중요시 여기지 않아서 그런지 호텔명동역은 일반적으로 모듈이 적용되는 방식과 유사한데, 위상한옥은 다르다. 1층, 2층, 3층과 같이 구분해서 규격화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각 유닛의 크기와 결합 위치가 불규칙적이다.

 

이: 그것 또한 툴의 한계였다. 형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로봇팔의 작업 가용 범위를 넘는 부분이 생기다 보니 절단의 위치가 불규칙해진 것이다. 만약 작업 가용 범위가 훨씬 넓은, 10m에 달하는 로봇팔이 있고 충분히 정교하게 제어된다면 위상한옥은 절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윤: 제조의 한계가 없다면, 전체 형태를 단일체로 완성했을 것이라는 말인가?

 

이: 그렇다. 만약 타워크레인 같은 거대한 3D 프린팅으로 단일한 형태를 만들고 그것이 자동으로 구조적 안정성까지 확보한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건축적 담론의 상당수는 사라질 것이다. 또한 모듈이 시각화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호텔명동역과 위상한옥의 차이다. 위상한옥은 처음부터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길 원했다.

 

윤: 그렇게 되면 결구 방식인 한옥의 특성과 멀어진다.

 

이: AI를 주된 툴로 정하면서 여기서 생성된 2D 이미지를 통해 결구와 같은 구조적인 내용을 이미지에 담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상황에서 2D 이미지 단계에서 한옥을 특정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한옥 단면의 이미지를 통해 이를 형태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D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생성하되 서서히 변형시키고 이를 합쳐 단일한 볼륨을 만든 것이다. 결구와 같은 시스템 보다는 그것이 뭉개져도 살아 있는 형식적 특성을 남기고 싶었다.

 

정: 유닛을 도구로 삼느냐 아니냐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에서 경향을 가르는 지점 중 하나다. 나에게 익숙한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들에게는 셀의 의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AA 스쿨의 디자인 리서치 연구실(DRL)은 디자인한 셀(cell)을 어떤 셸(shell) 혹은 막(membrane)으로 만들 것인지를 주요하게 탐구한다.

 

이: 셀 단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다. 그것은 나에겐 ‘이상하기 위해서 이상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그러한 작업의 결과물들은 눈에 익어서 그런지, 지금에 와서는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꿀렁꿀렁거리는 이상한 형태를 만들고 싶은데 이를 덩어리로 구현하지 못하니 분할을 하는 거다. 그런데 결과물이 이상해야 하니 그것의 부분 또한 이상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툴이 조금만 발전을 해도 이러한 논리는 사라질 수 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는 약간 지나간 이야기처럼 들린다.

 

정: 동의한다. 초창기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툴의 제약 조건을 창의적 산물로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든 복잡성으로 귀결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윤: 모듈 중심적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경향은 벌써 20년도 지난 이야기라 식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여기서 차별화되기 위해 재료 선정에 공을 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용주 또한 스티로폼, 목재, 균사체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재료 선정에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가? 세계적인 경향을 한국에서 실천해보고 싶었던 것인가? 혹은 상용화되지 않은 재료를 택한 것인가?

 

이: 둘 모두다. 약 100년 넘게 지속된 철근콘크리트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기물을 재료로 한 건축물을 상상하게 됐고, 이 방향이 나의 연구를 다른 연구와 구별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연구를 진행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선행 연구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다음 선행 연구와 차이점을 줄 수 있을지 가늠하고, 연구의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논문의 결론에 클라이맥스가 될 만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는지도 고려한다. 이는 실험과 작업의 프로세스가 정리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 재료 실험은 실무가 아니라 아카데미의 영역에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무에서는 갖은 제약과 법규로 인해 재료가 한정된다. 그렇기에 초기의 실험적인 실천들은 아카데미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1980~1990년대 베르나르 추미, 스티븐 홀 같은 이들이 페이퍼 아키텍처를 탐구할 수 있었던 것도 학교에 몸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내에서 가능한 건축적 실험의 영역은 현재 ‘페이퍼’에서 ‘메이킹’까지 확장된 것 같고.

또한 이용주가 관심을 기울이는 재료의 범위가 넓은데 그 이유는 건축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 가지 재료에만 천착해 연구하는 것은 공학자나 기술자의 태도다. 우리는 디자인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으로, 재료의 속성을 미세하게 파악하는 것을 실험의 주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다만, 특정 재료와 특정 디자인 방법론을 결합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진척되지 않으면 선회를 하고, 그러면서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용주도 이 과정들을 연속적으로 변환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 아닐까?

 

이: 일부 공감되기는 하지만, 여러 재료를 다루게 된 이유는 국내에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의 토양이 잘 다져져 있었다면 더 좁고 깊은 연구가 가능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BIM 학회에서도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BIM은 설계, 시공, 운영의 데이터를 통합하여 관리하는 툴인데도,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라고 하면 건축에서는 보통 BIM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나를 캐드 교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웃음)

 

윤: 그런데 건축에서 재료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해외에서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이를 탐구하는 팀들조차 하나의 재료에 천착하지는 않는 것 같다.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도 근래에 재료 디자인이라는 분과가 생겼다. 또 광주폴리에 참여한 아틀리에 루마는 재료 디자인을 연구하는 팀인데 여기에 속한 디자이너들도 한 재료만 연구하지는 않는다. 한 디자이너가 지역과 상황에 따라 해바라기씨로 패널을 만들다가, 소금으로 블록을 만들고, 다시 짚으로 패널을 만들기도 하고, 이후 두 가지 이상의 재료가 합쳐지기도 하는 식이다. 결국 디자이너들은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 캘리포니아 대학교(UC) 버클리의 교수 로널드 라엘은 흙에 천착한 작업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안다.

 

윤: 그도 초기에는 지금보다 다양한 재료를 다뤘다. 소금으로 3D 프린팅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흙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 것이다.

 

 

 

 

​연구를 가장한 창작

 

정: 새로운 재료와 형태를 추구하면서 나아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갈림길에 맞닥뜨릴 것이고, 그러면서 다시 새로운 디자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용주의 최종 목적지는 어딘가? 크고 이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혹은 열린 결말을 갖고 있는 것인가? 어떤 지점에서 본인의 작업이 문화적 차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고 보는가?

 

윤: 이용주와는 다를 것 같지만, 나는 언젠가는 내가 설계한 실제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상용화를 목적으로 작업한다.

 

이: 나는 상용화보다는 사람들이 크고 이상한 나의 작업을 보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정: 연구를 가장한 창작인 것인가?

 

이: 맞다. 건축에 관심 없는 사람이 내 작업에 ‘저건 뭐지?’라며 흥미를 갖는다면, 꽤 괜찮은 반응으로 여길 것 같다.

 

정: 그 말을 들으니, 갈래마당을 방문한 때가 떠오른다. 당시 드물게 날씨가 좋았었는데 아이들이 갈래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더라. 이 순수한 엔터테이닝을 보며, 이것이 건축의 기본적인 목적 중 하나인데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때가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사실은 차분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그 공간을 즐기기를 바랐다. (웃음) 아이들이 벤치에 많이 올라가서 안전을 위해 기둥을 추가해야만 했었다.

 

정: 연구보다는 창작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개인적 관심사가 궁금해진다. 크고 이상한 것을 추구하게 된 이유, 그 저변에 엄청난 레퍼런스의 세계가 있을 것 같다.

 

이: 사이언스 픽션(SF)에 등장하는 변형된 생물체들을 좋아했다. 사람과 기계, 유기체와 무기물이 섞이는 것들 말이다. 또 과도하게 폭력적인, 과도하게 지저분한, 정도를 벗어난 이미지들을 좋아한다. 이것을 건축에서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정: SF에 기반한 이미지는 초창기 컴퓨테이셔널 디자인과 결합한 경향이 있다. 이는 특정한 시공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세대론적 특성인 것 같다. 톰 위스콤브의 작업도 모든 레퍼런스를 SF에서 찾는다. 그는 1970년생인데,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인 시차가 10년 정도 된다고 추정해본다면, 이용주는 미국의 1970년대생, 그리고 한국의 1970년대 후반 세대와 공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다닌 독일의 슈테델슐레에서는 피터 쿡의 페이퍼 아키텍처, 벤 판 베르켈의 테크놀로지 기반 실험을 지나 일종의 과도기를 맞으면서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그때 ‘비물질’을 답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디지털을 다시 물질로 치환하지 않아도 VR 등의 방식을 활용해 관찰하거나 느낄 수 있지 않나. 일부 디지털에 몰입한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 생은 이상한 것은 그대로 컴퓨터 안에 두자는 결론을 내리는 것 같았다. 서던 캘리포니아 건축연구소(SCI-Arc)의 리암 영도 건축학과 교수로 있지만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지 않는다. 반면, 그 직전 세대의 흐름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듯하다.

 

이: 컬럼비아 대학교에 다닐 때, 컴퓨터를 좋아하는 그룹에 속했다. 그 그룹에서 SF 영화를 많이 이야기하고, 기이한 스케치도 많이 그렸다. 최근 개봉한 ‘F1 더 무비’ 감독인 조지프 코신스키도 같은 기간에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정해욱이 말한 것처럼, 나는 건축가는 무조건 눈에 보이고, 사람보다 큰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쪽이다. 대학원 때 친구와 함께 만든 소프트 셸프(2008)를 작업할 때도 마지막 조각을 올리면서 ‘드디어 사람보다 큰 것을 만들었다’며 굉장히 뿌듯해했다. 이전보다는 이런 열망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 이제는 물리적 구축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이용주 같은 사람이 더 귀해지지 않을까?

 

 

 

 

 

AI와 건축가

 

윤: 로봇팔은 여러 작업에서 일관되게 정밀한 실행 도구로 활용된 반면, AI의 역할은 호텔명동역에서 위상한옥으로 넘어가면서 능동적 설계 주체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AI가 건축가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파트너가 될 때 건축적 저자성(authorship)은 어떻게 재정의될 것이라 보는가?

 

이: 저자성은 처음 컴퓨테이션이 등장했을 때에도 논란이 됐었다. 지금은 많은 디자인들이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있어 쉽게 비슷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다만, 같은 오픈 소스를 활용하더라도 어떤 작가는 작업물에 자신의 색을 담는다. 이런 작가들이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프로그래머로 분류될 것 같다. 결국 기준을 넘어선 작업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저자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사람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윤: 프로그래머와 작가로 구분해 설명을 했다. 건축가는 작가의 영역에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 확실히 프로그래머는 아니다. 아마 최종 결정권자에 가까울 것이다.

 

정: 저자성에 대한 논의는 건축보다 현대미술이 좀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놓았을 때부터 조형적 창작과 저자성은 별개의 문제가 됐다. 버질 아블로도 폴로 랄프 로렌 셔츠를 구매한 후 ‘PYREX 23’이라는 문구를 인쇄해 재판매하면서 옷의 형상을 디자인하는 것과 가치를 생성하는 저자성을 분리하지 않았나. 계속 세대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지금의 20, 30대들은 멋진 형태를 만드는 것과 저자성을 구분해 생각하는 것 같다. 저자성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다. 또한 이용주는 건축가가 “과정을 관찰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의 대상은 기술이 아니라 무형의 게임의 규칙 자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술을 다루는 것 자체가 사람이 아닌 AI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는 근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정해욱은 더 먼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정: 최근 AI를 다룰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과거에는 일일이 코드를 다 작성했다면 호텔명동역에서는 주어진 이미지를 고르는 입장이 됐다. 직접 루트를 설계하다 갑자기 자연어만으로 이미지를 얻게 됐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이: 현실적으로는 그 당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AI가 제 역할을 하겠구나 생각했다. (웃음) 프롬프트를 얼마나 정교하게 작성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시간이 빠듯하기도 했지만 건축주가 상업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캡슐 호텔의 외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AI를 일종의 설문조사처럼 사용해 대중적 인식의 캡슐 호텔을 구현한 것이다.

 

윤: 영속성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건축은 영원해야 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건축가가 있는가 하면, 이용주는 찰나에 사람들이 받는 임팩트 혹은 순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 같다. 호텔명동역에서도 사람들이 캡슐 호텔 하면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고. 작업의 속성이나 재료에서도 짧은 시간성이 드러난다. 밀웜이 스티로폼을 먹게 한 분해의 적층(2025)은 사라지는 건축이고, 균사재(2024)의 주재료인 균사체는 지속 가능한 기간이 짧다. 건축의 역할, 속성, 재료의 차원에서 시간성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결과물의 모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프로세스 설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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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 Ji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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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프로세스

정: 이용주는 늘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형식의 결과물을 잇는다. 콜라주가 두 요소의 충돌을 일으킨다면, 이용주의 방식은 콜라주보다는 연결점을 찾는 매핑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프로세스에서 추구하는 바가 있나?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지점이 맞물렸을 때 쾌감을 느끼나?

이: 전통적인 방식의 설계 프로세스 말고 다른 프로세스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쪽이다.

정: 전통적이지 않은 설계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어떤 방식에서, 혹은 무엇을 뒤틀었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이: 설계할 때 자주 변주를 두는 요소는 툴이다. 새로운 툴을 사용하려면 본래의 설계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툴을 어떻게 사용해서, 어떤 방식의 프로세스를 설계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정: 만약 로봇팔을 툴로 선택했다면, 그에 따른 프로세스도 다양하다. 분명 그 프로세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의 기준과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예를 들어, SCI-Arc의 교수 피터 테스타와 데빈 와이저는 로봇을 도구가 아니라 매체로 바라보며, 새로운 제작 장치로서의 가능성보다는 표현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들은 로봇팔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포착 가능한 건축적 표상을 실험했다. 일례로 SCI-Arc의 한 학생은 로봇팔에 매달린 특정한 표면이 로봇의 움직임을 통해서 공간에 대한 표현으로 전환되는 프로젝트를 했다. 이 표면은 로봇의 차원에 따르면 새로운 도면이라 주장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건축적 표상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새로운 프로젝션이나 머신 비전 등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다. 새로운 형태를 도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즉 같은 도구라 하더라도 목적이나 의도에 따라 프로세스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나는 어떤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과 가능하지 않는 방식, 그 경계에 있는 어떤 방식을 택하는 쪽이다. 내가 조율할 수 있는 프로세스 중 가장 어려운 것을 택한다.

윤: 가능과 불가능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사실 기준이 없다. 나의 경우에는 작업의 한계치를 주어진 시간에 맞춰 결정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다. (웃음)

이: 나 또한 납품과 같은 마감 기한이 기준이 된다. 다만, 위상한옥은 마감일이 별도로 없었고, 완성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는 작업이라 탐구를 많이 했었다. 또 일단 라이노로 설계를 하다 보면 만들어야 하는 최종 형태가 나온다. 그 형태적인 목표를 갖고 나아간다. 프로세스의 최종 단계는 이 3D 파일을 실제로 존재하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정: 형태를 만드는 것과 관련해, 물리적인 혹은 시각적인 스펙터클이 일으키는 놀람은 과거에 비해 계속 줄어드는 것 같고 AI가 등장했기에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건축학과 학생들도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사용하고, 랜더를 특정한 방식으로 작업해야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프롬프트로 이러한 이미지를 쏟아질 정도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근본적으로 미학적인 감각을 변화시킬 텐데, 이용주는 이를 최전선에서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이: AI든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든, 그것이 생성하는 스펙터클은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하한선을 정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에 빨리 익숙해져야 하고, 무조건 그것보다는 더한 스펙터클을 만들어야 한다. 툴을 다루는 창작자라면, 툴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논리와 직관

정: 대화 이전에는 이용주의 작업이 SF보다는 생명의 형태에 관심을 두었던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들의 미적 경향성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이는 일종의 장르 문법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여기서 ‘장르’라고 칭한 이유는 논리적 치밀함과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형식적 관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내가 추정하는 그것의 뿌리는 18~19세기 서양에서 자연과학/생명과학이 태동할 때, 생명의 형태에서 법칙을 찾아내고자 했던 일련의 실험들이다. 에른스트 헤켈의 자연사 도판, 괴테의 모폴로지 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이는 이용주도 언급한 바 있는 앨런 튜링의 패턴 등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건축에서 텍토닉적 복잡성에 관한 시각화 충동이나 순수 구조물에 대한 동경으로 연결된다.

이: 그 세계관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영향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 이에 대한 대답은 본인을 ‘작가’라고 칭한 것에서 일정 부분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또 작업의 형태에 상징적 메타포를 차용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균사재는 원시 오두막(Primitive Hut)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 같은데 이는 아직 산업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재료의 현재 상태를 의도적으로 노출하기 위한 유비로 읽힌다. 분해의 적층 또한 산업 폐기물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벌레가 파먹어야 하는 대상이 ‘쓰레기산’임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이: 작업을 잘 해석해준 것 같다. 사실 균사재의 돔 모양은 구조체가 동일한 곡률을 갖고 있어야 패널을 만들기 쉽기 때문도 있었고, 디자인되지 않은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헛간(hut)의 형태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균사체 패널만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굳이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든 이유는 균사체가 건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해의 적층은 폐스티로폼이 쌓인 모습이 사람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 모습 그대로 스캐닝했다. 건축의 잘못은 건축이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드러내기도 하고.

정: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다 보면 결국 끝단에서는 어떤 형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적 결과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듯하고. 한편, 위상한옥은 AI를 통해 한옥의 위상학적 유사성을 포착하려 하지만, 그 접근은 컴퓨테이션의 논리보다는 인간의 시각적 판단에 최종적으로 기대고 있다. 특히, AI에 정보를 넣은 후 그것을 ‘블렌딩’시켜 복잡한 형태를 얻어내는데, 실제로도 사포질을 통해 적층된 경계 간의 단차를 부드럽게 연결짓고 있다. 이 과정은 ‘위상학’이라는 개념의 계산적 결과물을 드러낸다기보다는, 개념 자체를 곡선적 형태로 상징화한 일종의 기호적 제스처에 가까워 보인다.

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식적으로 뭉개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있었다.

정: 위상한옥뿐 아니라 균사재나 분해의 적층에서도 최종적인 작업의 형태로 가기 위해 하는 직관적인 선택은 늘 테크놀로지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 지점이 흥미로워 말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이: 나는 건축 사진을 보는 데 큰 흥미가 없고, 건축 답사라는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건축보다 소설, 기사, 영화, 음악, 전시 등 건축 이외의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속에서 건축적으로 구현할 무언가를 찾게 될 것 같다.



월간 「SPACE(공간)」 696호(2025년 1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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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원
윤정원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서울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의 설계에 참여하면서 건축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종합적 접근과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경험했다. 현재 교육과 연구, 설계 실무를 지속적으로 연결하고자 초학제적 건축 설계를 지향하는 TAD 연구소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제5차 광주폴리의 건축생산 큐레이터를 맡아 폐자원, 자연재료, 전통재료 등의 원자재 수급, 생산, 적용 등에 이르는 과정을 조율했다. 현재 바이오 폐자원의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정해욱
정해욱은 미드데이 공동대표이자 고려대학교 겸임교수다. 미드데이는 출판, 저술, 전시, 실무 등을 넘나들며 ‘건물 이전에 실존하는 건축’, ‘건축 표피 이면의 질서와 에스테틱’에 대한 사고를 전개한다. 두 권의 단행본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공동 저술)과 『Upperhouse-Oriented』를 출간했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축적 리얼리티가 확장되는 프로젝트를 지향한다. 2024년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등장하는 건축가들’에 소개됐다.
이용주
이용주는 공간의 모든 층위에서 실험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다. 그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축을 다양한 스케일과 매체로 탐구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베니스비엔날레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iF 디자인 어워드, 「아키텍처럴 레코드」의 디자인 뱅가드 등 국내외 디자인상을 다수 수상했다. 연세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로서 로보틱 패브리케이션 스튜디오를 이끌며 연구와 창작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저서로 『생각의 구축』(202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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