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3월호 (통권 700호)
기록의 무게: 1966년부터 이어진 700개의 발자취
1966년 11월, 한국 건축계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척박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건축과 예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월간 「SPACE(공간)」가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러 이제 700호에 도달했습니다. 700권의 잡지는 단순히 종이의 묶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건축의 태동기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도시가 어떻게 변해왔고 우리의 삶이 어떤 공간 속에 담겨 왔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생생한 기록물이자 거대한 아카이브입니다. 「SPACE」는 한국 건축의 변화와 성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망해왔습니다. 국가 재건의 열기가 가득했던 격동의 시기, 한국 건축이 서구의 양식과 우리의 전통 사이에서 격렬한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 「SPACE」는 그 중심에서 ‘한국적 건축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건물만을 소개하는 잡지를 넘어,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담론의 장을 형성하며 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시도였습니다.
비평의 힘: 성찰이 만든 건축 생태계
700호의 여정 속에서 「SPACE」는 당대의 건축가들에게 때로는 따뜻한 격려를,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던졌습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그들의 건축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루는 한편, 대중들에게는 건축이 단순한 부동산이나 공학의 결과물이 아닌 ‘문화의 정수’임을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사된 비평의 노력은 한국 건축의 체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건축 작품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SPACE」의 태도는, 한국 건축이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700권의 잡지가 층층이 쌓여 이룬 이 거대한 탑은, 우리 건축이 걸어온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훈장과도 같습니다.
700의 의미: 완전함 그리고 채워야 할 ‘00’
서양에서 숫자 ‘7’은 흔히 행운과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완전함의 7’이 가진 역설을 경계해야 합니다. 완전함이란 두 선의 끝이 만나 닫힌 원(closed loop)을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완성이면서 또한 안과 밖이 닫힌, 분리된 상태이지요. 그래서 「SPACE」 700호의 성과를 ‘최초, 최고, 완벽’이라 자부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는 ‘닫힌 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700에서 ‘7’의 완결성과 함께 그 뒤의 두 ‘0’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0은 무(無)인 동시에 무한대(∞)를 의미하며,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을 뜻합니다. 그래서 700호의 00은 지난 역사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열린 가능성’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의 상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로운 화제: 기술의 진화와 사회적 건축의 대두
이제 「SPACE」 700호 이후의 미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과의 공존입니다. 인공지능(AI)이 설계를 돕고, 가상 세계에서 물리적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는 시대에 건축 잡지는 어떤 담론을 담아야 할까요? 「SPACE」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건축적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는 선구자가 되고자 합니다. 둘째는 기후 위기와 지속가능성입니다. 탄소 중립과 친환경 설계는 오늘날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건물을 짓는 행위가 지구에 끼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재생 건축과 친환경 소재에 대한 담론을 주도하는 것은 700호를 맞이한 매체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로컬리티(locality)와 K-건축의 세계화입니다. 현재 전 세계는 K-문화에 열광하고 있지만, ‘K-건축’이 그만큼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SPACE」는 신진 건축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한국적인 고유함이 어떻게 보편적인 현대건축의 언어로 치환될 수 있는지 세계에 알리는 창구가 될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동반자: 막힘없는 상상력을 위하여
「SPACE」는 단순히 건축을 ‘보여주는’ 잡지에서 벗어나 ‘경험시키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700호라는 거탑 위에서 우리가 응시해야 할 지점은 저 아래가 아니라 저 먼 너머입니다. 00이 함축하는 ‘막힘없는 미래’는 편집만의 몫이 아닙니다. 이 잡지를 읽고, 건물을 설계하고,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건축가-독자가 함께 시도할 거대한 실험입니다. 앞으로도 「SPACE」는 지난 700호 동안 그래왔듯, 건축의 공공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것입니다. 700호를 넘어 1000호, 그 이상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이 여정은 우리 건축 문화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SPACE」는 여러분의 곁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이자 엄격한 비평가로 남겠습니다. 700권의 역사가 내일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여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발행인 황용철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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