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운생동의 주거 실험을 ‘실험’이게 하는 것
주거는 건축가의 영원한 주제지만, 그에 다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이번 호 FRAME 섹션에서는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이하 운생동)의 주택 작업을 통해 오늘의 거주를 논한다. 달리 말해, 단독, 연립, 집합 등 다양한 유형과 규모의 주택을 통해 운생동의 건축을 들여다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운생동이 대한민국 주택설계의 최전선에 있다거나, 주택이 운생동의 건축을 대표하느냐는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유달리 ‘실험’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 운생동의 작업이라면 충분히 호기심을 가져봄 직하다. 아르텍건축(대표 김관석)에서 만나 2000년부터 운생동을 함께 이끌어온 장윤규와 신창훈은, 아틀리에와 대형 사무소의 중간 지점에 놓인 독특한 포지션에 걸맞게 다양한 주택 유형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특히 주거 건축에서 ‘실험’이 성립하려면, 촘촘한 제도와 관성, 사회적 욕망이 뒤엉킨 현실의 틈새를 파고드는 영리한 전략과 과단성 있는 행보가 필요하다. 설사 구현되지 못하더라도, 개념적 차원에서의 과감한 시도는 현실에 대한 비판성을 품기 마련이다. 더구나 건축계에 몸담고 있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해묵은 문제라도 시장 논리를 뛰어넘는 풀이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주택과 관련된 시도는 곧 실험이 된다.
단독주택인 큐브하우스(2023), 다섯 가족이 따로 또 같이 사는 콰르테르 연립주택(2025), 아파트단지인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2024), 그리고 친환경·스마트 기술의 테스트베드인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2021, 이하 스마트 빌리지).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네 개의 주거 건축은 한 사무소의 작업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물론 운생동의 다른 건축에서 보이는 공통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전형을 재정의하며 ‘개념’만 남기고, 벽이나 지붕과 같은 하나의 건축적 요소에 집중한다. 현실적으로 완성도를 확보하기 어려운 ‘디테일’은 과감히 포기한다. 잘게 나누어진 블록, 건물이 모여 도시를 이룰 때에 더 바람직한 도시가 된다는 입장 등이 겹치며 특징적 조형이 드러난다. 물성과 디테일을 통해 좋은 만듦새를 추구하는 우리 건축계의 최근 경향 속에서 이는 분명 운생동 건축의 특이성을 형성한다.
장윤규와 신창훈은 집짓기에서 거주의 본질을 다시 사유하며, 도시와 자연의 관계, 공동체를 둘러싼 다양한 가치를 앞세운다. 문제는 그 지향점을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다.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네 가지 작업이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건축적 주제들을 짚기 위해, 운생동의 두 건축가와 함께 이은경(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과 이재원(도시건축정류소 건축사사무소 대표)을 초청했다. 이들이 나눈 비평적 대화 가운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의 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큐브하우스는 여느 신도시의 단독주택처럼 폐쇄적인 형식을 통해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요구에 직면한 사례다. 이은경은 “닫힌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수직적 절개를 통해 외부와의 연결을 남김으로써 공공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준다고 평한다. 콰르테르 연립주택에서 논한 선택적 공유의 방식은 민간 분양 아파트인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에서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넘어설 수 있는 유형적 논의로 확장된다. 스마트 빌리지는 에너지와 생활 전반에 걸친 많은 기술을 집약한 패시브 하우스 단지다. 민간 분양 아파트 단지가 그렇듯이 패시브 하우스나 스마트 기술이 전제된 주거 단지 역시 건축가들이 개입할 여지가 작은 유형이다. 그간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에 관해 꾸준히 연구해온 운생동은 패시브 하우스의 전형을 넘어 거주자의 삶이 풍부해질 수 있는 건축적 관여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스트베드 역시 분양을 고려하는 일반적인 신도시 개발과 유사한 방식을 유지하는 상황은 주거에 관한 우리 사회의 견고한 관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건축가가 도시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아주 먼 일이기 때문에 아주 순수하게 건축적인 입장에서 도시적인, 사회적인 것을 탐구해보려 한다”는 운생동의 실험은 유효한 ‘실험’으로 남는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2 FRAME
경계 위의 주거 실험: 운생동건축사사무소
024 FRAME: ESSAY
경계 위의 거주_ 장윤규, 신창훈
032 FRAME: PROJECT
큐브하우스
038 FRAME: PROJECT
콰르테르 연립주택
044 FRAME: PROJECT
고덕 풍경채 어바니티
052 FRAME: PROJECT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
058 FRAME: DIALOGUE
주거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실험_ 장윤규, 신창훈 × 이은경, 이재원
066 PROJECT
토라베이 29 ‐ 필만 아키텍츠
076 PROJECT
라룬 하우스 ‐ 차르콜라 아르키테티
086 PROJECT
연천초등학교 ‐ 이집건축사사무소
096 ARCHITECT
관계성에 기반한 건축을 향해 (하): 구마 겐고_ 구마 겐고 × 정인하
104 LIFE
조각적 가구, 건축적 조형의 모색: 김민재_ 김민재 × 김혜린
110 REPORT
복원과 활용의 기준점을 찾아서: 흑린각_ 김경인, 서동천 × 방유경
116 EXHIBITION
쓰는 도구와 담는 도구: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_ 방유경
120 EXHIBITION
기계의 시간과 노동하는 몸: 〈모터타임즈: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_ 김은희 × 방유경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삶 속에서 다시 질문하는 건축: 박경미, 장정우_ 박경미, 장정우 × 김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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