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쓰는 도구와 담는 도구: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

글
방유경 기자
자료제공
국립한글박물관

「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왼쪽에 보이는 미디어아트 작업은 작가가 나열한 감정 언어(한글)를 인공지능이 해석해 영상이미지로 송출하는 박제성의 ‘자간’이다.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

문화역서울284 RTO

2025. 11. 19. ~ 2026. 3. 22. 

 

 

글자의 질감, 물성은 어떤 모습일까? 이것은 어떻게 감각될 수 있을까? 국립한글박물관의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는 글자를 쓰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의 변화를 도구와의 접합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쓰기-도구의 관계에 집중해 작가, 디자이너 23팀에 글자의 물성과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작업을 주문했다. 그 결과 종이, 안료, 금속, 나무, 가죽 등 다양한 재료로 번역된 쓰기 도구부터 책상, 의자, 등처럼 쓰는 행위를 위한 가구와 공간, 쓰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표현한 오브제와 영상까지 구체적인 물성을 지닌 작업들이 소개됐다. 전시장 한 켠에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의식한 작업 또한 배치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쓰는 감각을 소리로 전환하는 기계, 쓰는 순간에 가해지는 압력·속도 등 데이터를 분석해 벡터 기반의 글자로 출력하는 장치, 디지털 문자도를 그리는 로봇, 작가가 제시한 감정 언어를 영상 이미지로 송출하는 인공지능 미디어아트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실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기획을 가장 강력하게 떠받치는 작업은 쓰기-도구의 관계를 탐구한 네 편의 문학 작품이다. 김영글, 김성우, 전병근, 김초엽은 사전, 에세이, SF소설과 같이 각기 다른 형식의 글과 서술 방식 아래 쓰기의 의미, 쓰는 도구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확장을 꾀한다. 그리고 네 편의 글은 ‘기대고 붙잡히고 매달리고 휘둘리고’라는 담는 도구를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됐다. 당초 책으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북디자인을 의뢰받은 에이에이비비(AABB)는 다른 방식의 해석을 제안했다. “원고 내용에 어울리는 책을 만드는 건 너무 뻔한 동어반복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하며 “쓰임을 당한 도구, 즉 저장매체라는 책의 성격에 집중”했다. 이들은 글쓰기나 글자의 조형이 쓰는 도구의 영향을 받지만, 현대에는 담는 도구의 영향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스크린의 발달은 글자의 조형을 변화시켰고, 컴퓨터의 발명 이후 글자의 속성이 코드로 변화됐고, SNS와 숏폼이 대중화되면서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표현도 축약되듯, 글자가 쓰는 도구뿐 아니라 담는 도구에 의해 변화해왔음을 지적한 것이다.

 

 

 

김성우, 김영글, 전병근, 김초엽 네 작가의 글이 담긴 에이에이비비(AABB)의 ‘기대고 붙잡히고 매달리고 휘둘리고’ 

 

쓰는 도구에 대해 탐구한 마음 스튜디오의 ‘함께 쓰는 즐거움’(왼쪽), 비 포머티브의 ‘모음 도구’(가운데), 이준희의 ‘금속 문구류 시리즈’(오른쪽) 

 

 

‘담는 도구’의 조형에 주목한 이들의 작업은 전형적인 책의 형태에서 벗어나 있다. 책의 낱장처럼 제작된 검은 패널들을 기본 모듈로 삼아, 테이블 위에 나열하거나 기울이고 매다는 등 조합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글-쓰는 도구-담는 도구’의 관계를 온화한 것에서 급진적인 것까지 네 단계로 구분하고, 이를 상호보완적으로 해석한 것이 ‘기대고’(김성우, 「계속 나의 언어로 쓰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라면, ‘붙잡히고’(김영글, 「흔적 사전」)는 담는 도구가 약간 지배력을 미치고 있는 상태를, ‘매달리고’(전병근, 「쓰기의 감각과 생각하는 인간」)는 담는 도구에 종속된 관계를, ‘휘둘리고’(김초엽, 「사각의 탈출」)는 종속을 넘어서 완전히 통제당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편안히 손으로 책장을 넘기거나 눈으로 글자를 따라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높이와 각도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읽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픽과 조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초기 디자인 개념이 ‘몸으로 읽는 책’으로 진화한 셈이다. 

 

한편 전시에 소개된 대부분의 작품이 글(자) 쓰는 주체를 발신자로 설정했다면, AABB의 작업은 각도를 살짝 비틀어 수용자의 입장에 무게를 두고, 매개자로서 어떻게 글을 읽고 감각하게 할 것인가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어쩌면 이것은 전시가 놓친 다른 한 줄기의 서사―쓰는 감각에 따라오는 읽는 감각―에 대한 필연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적확한 응답이 아닐까. 전시장 입구에서 첫인사와 끝인사를 전하는 네 편의 문학과 이를 담는 도구를 독해하는 데 꽤 긴 시간을 할애할 것을 추천한다.​ 

 

 

 

석재원의 ‘한글 그로테스크’(왼쪽)와 메이저 마이너리티의 ‘쓰기의 기술: 속기에 대한 임의적 연대기’(오른쪽) 

 

가운데 보이는 작업은 박윤형의 ‘데이터의 유물: 임의의 반경의 원’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작가 이상(1910~1937)의 문장을 분해하여 텍스트‐이미지‐3D 오브젝트 순서로 변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른편에 설치된 6개의 주황색 패널은 리프트오프의 ‘한글의 또 다른 시간’이다. ‘가로쓰기를 하면서 붓을 사용했다면 한글은 어떤 형태로 진화’했을지 상상하며 한글 조형을 재구성했다. 

 

 

 

 

 

월간 「SPACE(공간)」 699호(2026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