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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도시를 다시 여는 건축 |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글
김세훈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
윤준환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이소운 기자

「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코엑스몰 리노베이션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 60년의 궤적은 단일 대형 설계사무소의 성장사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 사회가 건축가 집단을 통해 어떤 도시를 구축하고, 어떤 공공성을 상상했으며, 근대화에서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보여주는 압축된 서사다. 초기의 정림건축이 국가 성장을 대변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다면, 성장기를 지난 도시는 이제 복잡하게 얽힌 단절의 매듭을 푸는 미시적 접근을 요구한다. 이제 건축은 물리적·사회적 단절을 극복하고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며 시민들의 일상을 품어내는 공간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글에서는 최근 정림건축의 작업을 적응적 재사용, 회복탄력성, 지하 공간의 확장, 지역성과 공동체라는 화두로 엮어보고자 한다. 이는 건축을 통해 도시를 다시 여는 과정이자, 더 세우기보다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도시의 생명력을 키우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대구은행 제2본점

 

망상오토캠핑리조트 ©Kim Changmook

 

 

​적응적 재사용: 시간의 지층을 다듬어 일상을 여는 건축 

적응적 재사용은 철거와 신축 중심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장소가 지닌 기억과 물성을 오늘날의 도시 자산으로 일깨우는 작업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현재의 쓸모로 바꾸는 정교한 편집 능력이 핵심이다. 관건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있다. 도시 이론에서 이는 흔히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로 다뤄지지만, 물성 자체의 보존이 반드시 공간의 의미를 전달하는 건 아니다. 삼일빌딩과 전일빌딩 리노베이션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낡은 장소의 기억을 살아 있는 일상으로 다시 엮어낸 사려 깊은 프로젝트다. 

1970년에 준공된 삼일로빌딩은 한국 근대화의 자부심이자 국내 초기 고층 건축의 이정표다. 정림건축의 리모델링은 그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오늘날의 근로자가 상주하는 업무시설로서 이 건물이 서울이라는 도시 조직 내에서 다시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건축가 김중업의 언어가 담긴 철제 커튼월과 H형 멀리언, 입면의 격자 비례, 브라운 톤의 유리는 건물의 진정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 남겨졌다. 반면 실내 공간은 오늘날의 업무 환경에 맞게 전면 재구성되었다. 허니콤 구조를 드러내 천장을 개방하고, 구조 및 내진 성능을 크게 보강했으며,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던 1층은 투명성을 높여 가로와 자연스럽게 연계되도록 바꾸었다. 그 결과, 닫혀 있던 빌딩의 저층부는 도시의 공공 접면(public interface)으로 되살아났다. 1965년부터 네 차례 증개축을 거친 전일빌딩 역시 보존과 개입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기억의 자연스러운 전승이 단절될 때 한 사회는 집단적 정체성을 공간에 새긴다는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 개념처럼, 1980년 5월 광주의 총탄 자국을 품은 이 빌딩의 외벽은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표면으로 보존되었다. 반면 폐쇄적이었던 1층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장을 향해 활짝 열었다. 이렇듯 비극의 현장이 일상의 무대로 전환될 때, 건축은 비로소 역사를 위로하고 미래를 향해 열리게 된다. 결국 건축의 적응적 재사용이란 도시의 집단 기억과 공동체성은 지키되 낡은 기능과 닫힌 구조는 오늘의 생활에 맞게 덜어내는 일이다. 이는 건축이 현재의 시장과 도시 생태계 속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도록 새로운 효용가치를 부여하는 치열한 과정이기도 하다.

 

 

 

부산항 북항 마리나

 

삼일빌딩 리노베이션 

 

 

회복력: 위기를 통과하며 더 단단해지는 도시의 근육 

회복력은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충격과 변화의 스트레스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재난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건축은 단순히 에너지를 절감하는 차원을 넘어, 위기 속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며 시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특히 정림건축이 구현하는 회복력은 충격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단순한 복원력을 넘어, 위기를 겪으며 과거의 표준보다 더 강화된 상태로 나아가는 ‘기술과 습관의 집합’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2002년 국내 최초로 세계 캠핑캐라바닝 대회를 개최하며 오토캠핑 문화를 이끌었던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이 지점에서 유의미한 프로젝트다. 여기서는 2019년 산불로 인해 전소된 목구조와 재난을 겪은 장소를 단순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불연성 재료인 콘크리트와 라임스톤을 사용해 방재 성능을 높였고, 주 풍향을 고려한 배치 및 이격거리 확보로 방재 성능을 본질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는 재난의 기억을 물리적으로 치유하는 동시에, 상처 입은 휴양지에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 표준을 정립하며 장소의 신뢰를 다시 세운 ‘진화적 회복(evolutionary resilience)’의 사례다.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는 연구 역시 궤를 같이한다. 정림건축은 높은 방벽으로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 대신, 물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조절하는 적응형 연안 전략 ‘소프트 엣지’에 주목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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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702호(2026년 0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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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김세훈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설계연구실에서 도시의 ‘부’와 ‘매력’을 탐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 구로구 도시발전기본계획 MP, 서울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MP를 맡고 있고,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도시 관측소』(2025),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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