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산수 설계자: 기후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 전시 전경
그간 현대건축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물렀던 아시아의 조경 실천을 지식 체계 속에 새롭게 위치시키는 전시 〈산수 설계자: 기후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1가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드루커 디자인 갤러리에서 진행 중이다. 전시는 산수(山水)를 아시아의 어휘로 다시 호출하면서도 이를 문화권의 정체성으로 환원하지 않고, 기후변화라는 과제 앞에서 조경 실천을 읽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제안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정윤(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부교수, 오피스박김 서울/보스턴 공동대표)과의 대화를 통해 그 배경과 큐레토리얼 전략을 짚어보았다.
인터뷰 김정윤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부교수 × 이소운 기자
이소운(이): 이번 전시는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진행한 김정윤의 리서치와 학생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고, 전시와 함께 열린 동명의 컨퍼런스에서는 하버드대학교 내 여러 기관의 협업 속에서 논의를 확장하기도 했다. GSD 내부에서 왜 지금 아시아 조경을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이번 전시와 컨퍼런스라는 형식으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설명해 달라.
김정윤(김): 하버드 GSD에서는 매년 1~2개의 주요 전시 및 컨퍼런스가 열리는데, 예년에 비해서도 이번 전시와 컨퍼런스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어느 교수가 전시를 큐레이팅하고 컨퍼런스를 주최하는지는 행사 1~2년 전에 교수들이 정식으로 제안서를 만들어 학장실에 제출하여 경쟁을 통해 정해진다. 조경학과는 GSD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과인데, 이번에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전시와 컨퍼런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시아에 대한 연구와 교육, 그리고 토의가 너무 부족하다는 내부적 인식이 이미 형성돼 있었고, 기후변화 시대에 조경의 역할, 특히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던 아시아의 조경을 초국가적인 틀 안에서 들여다보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3년 전부터 내가 아시아 조경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학과장인 개리 힐더브랜드의 전폭적 지원으로 시작되었고, 수업을 위한 리서치와 학생들의 연구가 이번 기획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 세미나에서는 매주 아시아의 조경가들과 학자들이 특강을 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전시와 컨퍼런스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이: 동시대 조경 실천의 맥락에서 ‘산수(山水)’는 어떤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전시는 이를 어떻게 읽어내고자 했나?
김: 산수라는 단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자 문화권인 동북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쓰여왔지만 각 문화권에 따라 다른 함의를 가지는데, 특히 산과 물을 항상 다루는 전문인인 조경가들에게 물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조경가 미야기 사쿠에게 “산스이(sansui)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지체 없이 “산스이는 정원이다”라고 답했다. 중국의 조경가 위쿵젠에게 물었을 때는, “샨수이(shanshui)란 전통적으로 엘리트 집단이 주도해온 중국의 고급 문화이며, 사람들의 일상과 노동이 행해지는 산과 물의 중간, 즉 들판(field)이 배제되어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조경가 박윤진은, “산수(sansu)는 매일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다”라고 말한다. 이 차이는 일차적으로 각 지역의 상이한 지형과 산수의 규모에서 비롯되며, 그 차이는 다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의 차이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그릇을 다루고 변형해야 하는 조경가들의 작업 역시 같을 수 없다. 이 점에서 산수는 조경가에게 별도로 번역되어야 할 전통 개념이 아니라, 실천 속에 작동하고 있는 조건이자 방법론이다. 이미 조경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산과 물에 대응해왔고, 이번 전시는 58개의 조경 프로젝트들을 그 대응의 결과물로서 들여다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산수 설계자: 기후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 전시 전경
이: 남아시아·동남아시아·동북아시아에 걸친 조경 작업들을 다루면서도 제목에는 ‘아시아’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 않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아시아라는 범주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나?
김: 기획의 맨 처음부터 나는 동양 대 서양이라는 이분법을 경계했다.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 아시아의 어느 언어권도 아시아와 유사한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아시아라는 개념은 서양이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시아라는 지역 혹은 집단은 공통점을 뽑아내기 불가능할 만큼 이질적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제목에서도 아시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 작업들을 ‘이국적으로 아름답고 정신적인 어떤 것’이 아닌, 분석 가능한 시스템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한편, 아시아라는 지역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쌀을 전시 대상지의 지표종으로 택한 이유다. 쌀은 한 지역의 기후, 지질 환경 등 자연 요소뿐 아니라 계급, 문화적 특성, 생활 방식 등 다양한 면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바이오리전(bioregion)’이라는 생물물리적·생태적·기후적 경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 23개 설계사무소의 58개 작업을 배치하고 있다. 아시아를 국가 경계나 문화권의 정체성이 아니라 이러한 환경적 단위로 다시 조직해야 한다고 본 이유는 무엇인가?
김: 한국 정원, 일본 정원, 중국 정원 등 랜드스케이프를 설계자의 국적과 해당 프로젝트의 위치를 통해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미 매우 많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국적 꼬리표는 자칫 우리 모두를 정체성과 역사의 함정에 가둘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 경계에 갇힌 분석은, 아시아의 조경 실천들이 형성해온 방법론을 다른 지역에서도 유효한 지식체계로 재편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런 한계를 넘기 위한 다른 범주를 찾다가, 바이오리전이야말로 기후변화 시대에 조경학적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플랫폼이라고 보게 되었다. 본 전시에서 인용한 13개 바이오리전의 경계와 정의는 나의 창작물이 아니다. 이는 세계 생태학자들의 연구와 합의로 정의된 844개 에코리전(ecoregion)을 다시 묶어 제시한 것이며, 우리는 원 얼스(One Earth)가 발표한 버전을 참조했다.

‘바이오리전 PA40’ 설치 전경

58개 조경 작업의 도면과 사진이 갤러리 벽면에 투사되며,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학생들이 수행한 심층 단면 연구가 이를 보조한다.

2색 단면 지형도 확대
이: 각 바이오리전의 산과 물을 검정과 파랑의 선으로 표현한 드로잉이 전시의 시각적 틀을 구성한다. 이러한 표현 형식에 담긴 의도는 무엇인가?
김: 이 선들은 추상화를 거치지 않은 매우 정확한 단면들이다. 13개 바이오리전의 지형은 5km 간격으로 단면을 끊어 1:5,000,000의 축적으로 땅은 검정, 바다와 강 등의 물은 파란색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다만, 대륙적 스케일에서의 수직적 지형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수직 방향으로 10배를 과장했어야 했다. 학교에서나 실무에서나 나는 언제나 색을 최소화한 정확한 라인 드로잉들을 통한 디자인 과정을 중요시해왔고, 결과물로서도 선 가중치의 차이만으로 구체화된 흑백 드로잉만큼 아름다운 표현 방식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형이야말로 조경가들의 영원한 재료이자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전시의 주인공이 산수의 지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특정 지역의 조경 설계자가 자신이 속해 있는 바이오리전에서 수행한 작업들 위주로 선정되었다. 이는 사전에 세운 원칙이었나, 아니면 조경 설계가 결국 그 지역의 환경에 대한 설계자의 이해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과였나?
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상하이와 베이징에 지사가 없는 미국 대형 조경회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조경은 위쿵젠의 투렌스케이프를 비롯한 자국의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아시아 조경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훌륭한 프로젝트와 설계자들을 알게 되었는데, 모두 자신이 속해 있거나 익숙한 바이오리전에서 작업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번 전시와 컨퍼런스의 공동 주최자인 하버드 한국학연구소 소장인 교수 니콜라스 하크니스가 컨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말했듯 “조경은 땅이 있는 그 자리에서 땅과 만난다,” 즉 조경은 새로운 랜드스케이프가 놓일 땅에 대한 진지한 반응을 통해서만 지속 가능하며 공간적으로, 또 미적으로 설득력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해당 지역의 산수 설계자가 수행한 작업만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투렌스케이프의 경우 7개 프로젝트를 전시에 포함했지만, 그들의 방콕 벤자키티 공원은 좋은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제외했다. 물론 아시아의 조경회사가 아시아 내에서만 작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땅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도출한 산수설계의 방법론에서 핵심을 추출해 이를 미국이나 유럽의 바이오리전에 적용하고, 훌륭한 시스템으로서의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번 전시와 컨퍼런스는 정말 좋은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바이오리전 PA48(한반도 혼합림)에 위치한 오피스박김의 물 위의 언덕 ‐ 수성못 수상공연장(진행 중). 대표적인 6개 프로젝트는 도시 맥락과 지질 조건을 드러내는 1:500 축척의 3차원 모형으로 제시되었다.

모형 설치 모습

바이오리전 IM12(인도차이나 혼합림 및 이탄지)에 위치한 랜드프로세스의 출라롱콘 백년 공원(2017). IM12의 전형적인 지질 조건을 보여주는 심층 단면을 포함한 프로젝트 모형.
이: 바이오리전이 단지 분류와 분석의 틀을 넘어 조경 생산의 실질적인 참조점이 된다면, 특히 기후변화로 조경의 생산 조건이 바뀌는 상황에서 그것은 왜 중요한가?
김: 아주 직설적이고 현실적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해 식물의 내한성 구역(hardiness zone)이 변하고 있고 집중호우와 이상기후가 급증하며 도시에서의 배수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조경가들이 매일의 실천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수종의 선정, 혹은 포장재의 변경과 같은 즉각적 대응에 머무른다면 조경이라는 분야가 기후변화 시대에서 문화적 주체로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한정시키는 것이다. 앞서 했던 언급처럼, 국적 꼬리표만을 통해 프로젝트들을 들여다볼 때 생길 수밖에 없는 한계와 비슷한 경우다. 바이오리전의 경계선은 자연이 그린 것이다. 수계, 지형, 식생, 지질, 기후,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환경에 영향받은 정주 패턴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한 분류이며, 그 안에 위치한 프로젝트들이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방법론을 분석하는 것이 기후변화 시대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 각 프로젝트들은 자신이 속한 바이오리전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나?
김: 어떤 프로젝트들은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대응하고, 또 어떤 프로젝트들은 보다 조용하게 대응하지만, 모두가 산과 물을 다루는 데 있어 특별한 감수성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랜드프로세스(태국 방콕 소재)의 출라롱콘 백년 공원(바이오리전 IM12)은 이탄 지질의 특성상 배수가 어려워 홍수가 빈번한 이 지역에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저수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해, 산수 설계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선구적 모델이다. 투렌스케이프(중국 베이징 소재)의 톈진 차오위안 습지공원(바이오리전 PA49)은 빗물을 가두고, 습지를 정화하며, 토양을 개선하고, 자생 식생을 복원하고, 열린 배움터로 기능함으로써 사라져버린 자연의 대체 자연으로 작동한다. P랜드스케이프(태국 방콕 소재)의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바이오리전 IM12)는 한때 과도하게 이용되던 농지를 예술의 숲으로 탈바꿈시켜 지역 고용을 창출하고 보전 지향적인 농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트롭(태국 방콕 소재)의 안 빌라(바이오리전 PA50)와 오피스박김의 CJ 블러썸 파크(바이오리전 PA48)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우배수의 작동 방식을 조직하는 매우 명료한 조형 언어를 통해 지속가능성의 미학에 관한 담론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바이오리전 PA51(쓰촨 분지 및 중부 산지 산림)에 위치한 랩디에이치의 워터라인 파크(2022)에 대한 단면 연구
이: 소개된 많은 작업들이 자연을 모사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도시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산수는 이미지인가, 성능인가?
김: 이는 컨퍼런스의 첫 세션인 ‘자연의 문화(Cultures of Nature)’에서 네 명의 하버드대학교 학자들의 발표와, 그에 이어진 토론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지기도 했다. 이 내용들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산수는 이미지, 즉 ‘저기 어딘가 나로부터 떨어져 있는 물성’이라면 랜드스케이프는 성능을 가진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조경가는 산수를 재료로 설계하여 성능을 가진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 전문인, 즉 산수설계자이다.
이: 이번 전시에서 산과 물을 다루는 데 있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감각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 58개 프로젝트 중 어떤 것도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 가능한 것은 없다. 다만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가치는 분명하다. 바로 산과 물을 다루는 데서 드러나는 예민함 자체다. 근대 직제로서의 조경은 200여 년 전,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로 악화된 서구 도시 안에 모사된 자연을 조성하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도시화와 조경 모두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조건에서 볼 때, 서구의 이러한 계보가 언제나 최선의 참조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조경 설계에서는 서구가 오히려 아시아권보다 훨씬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각 바이오리전에 대응한 프로젝트들을 보면, 대상지의 지질구조까지 파악해 적극적으로 땅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건축과 조경의 업역 구분 안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작업들도 있다. 나는 이런 시도들이야말로 ‘기후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라고 본다.

바이오리전 PA40(티베트 고원 광역권 내 고산 초원 및 관목지)의 2색 단면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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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전시와 전시 오프닝으로 열린 동명의 컨퍼런스는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공동주최로 마련됐다. 각 기관의 책임자는 각각 김정윤과 니콜라스 하크니스이며, 전시 큐레이터는 김정윤이다. 전시는 1월 20일부터 5월 15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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