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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것들에 대하여: 데이지 쯔옌 장

사진
데이지 쯔옌 장
자료제공
데이지 쯔옌 장
진행
김보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No Leftovers No Left Out(남겨진 어떤 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2023, 영화, 2’34’’) 스틸 이미지​

 

‘No Leftovers No Left Out’ 스틸 이미지와 유사한 장면의 작가 촬영 사진 

표준화된 건축 방식은 필연적으로 잉여를 남긴다. ‘No Leftovers No Left Out’은 너무 불규칙하거나 낡았다는 이유로 버려진 재료들에 주목한다. 앙상블 스튜디오가 채석장의 자투리 돌과 재활용 CD 케이스로 만든 고요하고 유쾌한 공공 공간을 중심으로, 이 영화는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감상자가 공간의 가치를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가 익히 접해온 다큐멘터리 형식의 건축 영화들과는 다르다. 시드니대학교와 MIT에서 건축을 공부한 건축가이자,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 수상, 베니스 건축영화제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경력이 있는 작가이기도 한 데이지 쯔옌 장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이름 없는 건물에 주목하고,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을 담게 되더라도 건축가의 목소리는 싣지 않는다. 대신 그의 카메라는 바닥을 쓸고, 식물을 돌보고, 건물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 곁에,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머문다. 왜 영화를 선택했을까? 왜 건축가 없는 건축과 꾸밈없는 건물의 삶에 주목하는 걸까? 그가 말하는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데이지 쯔옌 장 × 김보경 기자​​

 

 

김보경(김): 건축을 표현하는 매체로 영상을 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데이지 쯔옌 장(장): 무엇보다 이 매체에 끌리는 이유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친밀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관찰자라고 여기며, 영화 제작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번역 행위이다.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과 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출발해서 아주 작은 개입을 더한다. 우리가 대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을 조금 비틀 수 있을 만큼만 개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소에는 지나쳐버리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상상력을 열어주는 약간의 도발이 만들어진다. 

논픽션 작업은 내게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길러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건축 환경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말이다. 이는 서로 이해하고 취약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물론 언제나 편안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무방비한 순간은, 아무리 정교하게 연출된 장면도 닿을 수 없는 깊은 힘이 있다. 영화는 그런 순간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를 액체이자 동결된 건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건축가로 일하던 시절, 건축 사진의 ‘표준’이라는 것에 늘 몰래 웃음이 나곤 했다. 건물을 완벽하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연출하지만, 촬영 한 시간 전에도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다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진을 보고 ‘걸작’을 찾아가지만, 막상 가보면 건물은 이끼와 빨랫감, 시간의 흔적으로 덮여 있다. 건물의 ‘원래 상태’라는 것은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극히 짧고 덧없는 순간일 뿐이다. 건물의 진짜 삶은 훨씬 더 끈적하고 복합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모습이 훨씬 더 흥미롭다. 나는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것들, 즉 시공, 유지보수, 노화, 그리고 건물의 수명이 다한 이후의 일에 매료된다. 영화는 내가 그 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작은 균열이다.  

 

 

 

 

‘Wrinkles(주름)’(2022, 리서치 및 영화, 10’00’’) 스틸 이미지 

 

 

김: 건축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영상을 만들 때, 전통적인 영화 문법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방식이나 기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 지난해 ‘She Crossed(그녀는 건넜다)’(2024)가 오버하우젠에서 상을 받았을 때, 누군가가 이 작품이 영화의 어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뜨려서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웃으며 “아마 내가 영화의 규칙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답했다.  

나는 영화를 보며 자라지 않았다. 중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근처에는 영화관조차 없었다. 처음 극장에 간 것은 고등학교를 거의 졸업할 무렵이었고, 그때 본 영화가 ‘타이타닉’(1997)이었다. 매우 인상 깊었지만, 그 경험이 나를 영화의 세계로 곧장 이끌지는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가서야 호기심으로 영화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금세 영화에 매료되었다. 나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에서 영화를 보며 보냈고, 그곳은 내게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지만, 오랫동안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망설였다. 나는 ‘예술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 개념은 낯설고 의심스러웠다. 내가 자란 곳에서 예술은 천재들이나,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흔히 ‘건축 영화’—나는 이 표현을 조금 경계한다—라고 불리는 범주에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움직이는 사진처럼 보이는 정적인 화면, 과도하게 사용되는 배경음악, 혹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인터뷰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간이 스스로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공간이 말하도록 충분히 기다려준다면 말이다.  

나에게 사운드는 장식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디자인의 본질적인 층위이다. 움직이는 이미지와 함께, 사운드는 나의 듀엣이다. 나는 직접 현장의 소리를 녹음하고, 그 장소에서 나온 소리를 다시 그 장소를 위해 엮어내는 일을 좋아한다. 또한 나는 결코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 공간 안에 있어 달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은 느리고, 두서 없으며,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개입되지 않은 순간이 지닌 질감은 결코 흉내낼 수 없다. 연출될 수 없는 정직함이 있고,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챈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병원(Hospital)’(1970)을 본 경험은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뜨거운 관심과 인내심, 그리고 민첩함만 있다면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스스로의 속도와 리듬으로 펼쳐질 것이다.

 

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에서부터 건축 폐기물을 활용하는 방식, 건축물의 노화 혹은 노화 그 자체, 소비와 거주 공간의 관계, 유지보수 노동까지, 다루는 주제의 폭이 넓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각각의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나? 주제를 발견하는 계기나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장: 대개 프로젝트는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시작된다. 하나의 몸짓, 어떤 디테일, 혹은 내가 보는 것과 그 안에 감춰져 있다고 느끼는 것 사이의 작은 마찰처럼, 아주 미세한 깜박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 작업 방식이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근접성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됐다. 

예를 들어 ‘Wrinkles(주름)’(2023)의 경우, 건축의 노화를 다룬 영화를 만들기 위해 멕시코시티에서 3개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잘 알려진 건물에서 시작했지만,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매일 밤 아파트로 걸어 돌아오며, 점점 더 내가 머물던 건물에 이끌렸다. 콘크리트 외벽 뒤에는 식물과 임시로 덧붙여진 구조,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뒤엉킨 정글 같은 세계가 있었다. 옥상의 빨랫줄, 퇴비 정원, 와인병을 끼워 넣어 만든 벽들. 주민들과 더 가까워지며 그 건물의 역사를 알게 됐다. 70년 동안 이어진 훼손과 방치, 지진, 그리고 수리의 역사. 완공 직후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은 지금의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건물과는 전혀 달랐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은 모두가 알지만, 거리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 익명의 건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She Crossed’는 훨씬 더 우연히 시작됐다. 애초에 프로젝트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MIT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복도 곳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발견했다. 나 역시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 누가 그들을 돌보는지 몰래 지켜보다가 청소 노동자인 M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학생들이 떠나며 남겨둔 식물들을 거두어 돌보는, ‘고아 식물’들의 자발적 보호자였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식물을 잘 키우는 비결을 물었고, 그녀는 윙크하며 말했다. “콜롬비아에서는 바나나 껍질을 물에 불려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2년 동안 그녀를 촬영했다. 반은 연습 삼아, 반은 재미로.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연습이 아니었다. 바로 영화 그 자체였다.

 

 

 

‘Wrinkles of Time(시간의 주름들)’(2023), 3D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된 프린트 

 

‘Traces of Growth(성장의 흔적들)’(2022), 3D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컬러 레진 모형

‘Wrinkles’는 영상, 3D 스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멕시코시티 도심의 한 평범한 주거 건물을 추적한다. 완공 이후 사람들의 거주, 지진, 방치, 수리와 돌봄으로 이어진 70년의 역사를 품은 이 건물을 통해, 건축이 완성된 오브젝트가 아닌 끊임 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바닥을 쓸고 파이프를 교체하는 일상적인 돌봄의 행위들, 유지관리 노동은 작가에게 건축설계의 부산물이 아닌 창조적이고 정치적인 힘이다. ​

 

 

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면서도 작업에서 일관되는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결국 건축에 관한 거창한 이론이나 디자인 방법론보다도 일상적인 실천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수렴되는 듯 보인다. 

장: 오랫동안 나는 내 작업들 사이에 별다른 일관성이 없다고 느꼈고, 그것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미줄처럼 아주 가느다랗고 거의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맞다. 결국 모든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일상성’이다. 그것은 평범하다는 의미의 일상이 아니라, 밀도 있고 충만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상이다. 그 중심에는 감각하는 몸이 있다. 적응하고 회복하고 상처받기도 하는 몸이다. 바닥을 쓸고 있는 사람의 몸이든, 상처 입은 채 자라는 나무의 몸이든, 나는 몸이 자신의 환경을 견디고 협상하고, 바꾸어가는 방식에 끌린다. 오랫동안 나는 몸과 감정을 다루기를 피해왔다. 훨씬 더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것들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묘한 방식으로 늘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나는 그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따라가는 일이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다. 

필름 아카이브에서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Commerce Quay, 1080 Brussels)’(1975)을 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감자를 깎는 장면을 보고 있는 동안 실제로 땀이 날 정도였다. 세 시간이 끝났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영화가 그렇게까지 강렬한 집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보통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의 곁에 오래 머물러도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을 골수를 파내듯 깊이 들여다본 뒤, 그 에너지를 조용한 내파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그런 용기를 존경한다. 

 

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건축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작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She crossed’에서 MIT 기숙사와 건물보다도 청소 노동자 여성의 삶에 주목했다는 점이 유지보수 노동자 또한 건축의 주체라는 급진적인 선언처럼 느껴졌다.

장: 나는 지금 이 순간 건축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 경계를 넓히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속 편하게 무시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내가 계속해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화려하거나 잘 꾸며진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칠고 진실하고, 때로는 조금은 불편하기까지 한 무언가. 나에게 아름다움은 존엄과 연결되어 있으며, 조용하지만 완고한 저항의 행위다.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정의하는 힘은 실재하는 권력이며, 우리가 반드시 붙들고 있어야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란 역시 나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다. 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항상 혼란스럽고, 이제는 그 혼란을 하나의 나침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너무 쉽게 답을 내리지 않도록 하고, 내 안의 편견에 도전하게 만든다. 

여러 장소를 오가며 작업하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떠나지 않는 매우 다른 상황들을 마주해왔다. 착취적인 노동, 정치적 불안정, 사라지지 않는 식민주의의 구조, 그리고 지배적인 서사 속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생존의 방식들. 나는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작업하는데, 카메라의 존재가 때로는 침입이 될 수 있고, 심지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카메라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도구다. 나는 아직도 그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올바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삶을 ‘소재’나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까? 

 

 

 

 

‘She Crossed(그녀는 건넜다)’(2024, 영화, 20’00’’) 스틸 이미지

‘She Crossed’는 건물을 돌보는 사람들, 특히 그 노동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이주 여성들의 삶을 통해 노동과 경계가 얽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 MIT 기숙사 복도에서 버려진 식물을 돌보는 청소노동자 M을 발견한 작가는 그녀와 서서히 친구가 된다. 이주 여성으로서 낯선 땅에서 삶을 일궈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4년에 걸쳐 담아낸 이 영화는, 청소, 식물 가꾸기 같은 일상의 작은 행위들 속에서 조용히 싹트는 연대를 보여준다.​ 

 

 

김: 호주와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멕시코, 브라질, 미국에서의 레지던시를 거쳐, 스위스에서 연구자로 있었다. 지금은 중국을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고,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인 ‘How Green?(얼마나 친환경적인가?)’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다루고 있다.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이어갈지 알려 달라. 

장: 세계 여러 곳을 옮겨 다닌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을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움직임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자란 작은 마을은 탄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농경지 한가운데 산업시설이 있었고, 또 다른 광산이 있었고, 다시 밭이 이어졌다. 내 어린 시절은 이후에 접한 제도적 의미의 ‘예술’이나 ‘아름다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풍경이 주는 낙인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거의 20년 동안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떠나기만 했다. 떠나는 일은 활력을 주지만, 어느 순간 조용한 공백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떠나온 것을, 혹은 나를 두고 가버린 것을 다시 바라볼 적절한 때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교육, 장학금, 어쩌면 내가 혜택을 받아온 엘리트 시스템까지. 그것은 저자성과 책임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누가 어디에서, 어떤 조건 아래에서 말할 수 있는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문화나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는 어떤 연결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확신시켜주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도 함께한다는 감각은 남아 있다. 그 에너지를 앞으로도 계속 작업으로 끌어들이고 싶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납작하게 지워지지 않은 채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키워나가고 싶다. 나는 영화와 건축을 배우는 영원한 학생으로 남겠다.​ 

 

 

 

2025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내 ‘Spring, Along Beijing Central Axis(봄, 베이징 중축선을 따라)’[2025, 영상 설치, 듄스 워크숍(리 야룬, 천 페이워)과 협업] 설치 전경.

‘Spring, Along Beijing Central Axis’는 13세기부터 베이징의 도시 공간을 구조화해온 7.8km의 중축선(202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을 포인트 클라우드 3D 스캔 데이터를 시각화한 영상과 현장 녹음 사운드로 담아낸다. 자금성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보다 공원의 장기판, 노점상, 태극권을 연습하는 주민들에 시선을 두며, 역사적 공간이 일상의 리듬 속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쉬는지를 포착한다.​ 

 

 

 

 

월간 「SPACE(공간)」 702호(2026년 0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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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쯔옌 장
데이지 쯔옌 장은 관찰자다. 건축을 공부했고, 디자인과 영화를 번역하듯이 작업한다. 그는 시간성을 통해 건축을 탐구하며, 노동과 재료, 건물을 돌보는 행위와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 안에 숨겨진 교섭에 주목한다. 감각적인 몸을 조율과 저항의 장소로 삼아, 일상의 밑바닥에 흐르는 조용한 연대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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