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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과 유목성: 오동숲속도서관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조정구
사진
남궁선
자료제공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진행
윤예림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4년 2월호 (통권 675호) 

 

 

건축가는 근린공원을 둘러본 뒤에 나즈막한 정상에 있는 지저분한 목재 파쇄장 자리를 골랐다. 어지러운 자리를 정리하고 거기에 뭔가를 만드는 게 여러모로 나을 거라 생각했다. 나무를 없애는 자리에 나무로 지은 공간을 제안했다. 처음 해본 목조건축이라 했다. 남동쪽 끝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건물을 감아 나선을 그리며 올라간 지붕은 사라진 봉우리를 다시 만드는 듯 보였다. 설명을 들으며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나선, 구조화된 책장, 겹쳐진 지붕, 그 사이로 드는 빛, 산책길과 이어진 경사로와 회랑⋯. 전체를 떠올리기 쉬워서인지 복잡한 모양이 잘 이해가 갔다. 건물을 나오며 실력자는 재료와 도구를 가리지 않음을 보여주듯 건물 한쪽에 건축상 수상 현판이 아래위로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목조 전문회사에 구조를 맡겨서 했지만⋯다음에는 목구조를 좀 내 맘대로 만져보고 싶지!” 장윤규(운생동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말이다. (참고로 장윤규는 필자의 학교 선배이자 작업실 선배다.)

 

 

 

 

도서관의 풍경

한파가 몰아치던 주말에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낮게 솟은 월곡산 둘레를 아파트 단지와 학교시설이 차지해 공원과 주거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건물 앞, 여전히 초입의 회랑 높이가 맘에 걸렸다. 가장 낮은 처마 아래가 2m 정도로 조금 궁색해 보였다. 공사비를 맞추기 위해 전체 높이를 낮췄다는 이틀 전 설명이 떠올랐다. 아쉬웠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았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안은 동네 잘나가는 카페처럼 북적였다. 전체 431m2(약 130평) 중 회랑을 빼고 260m2(약 80평) 되는 실내에는 대략 40명 가까운 사람이 책장과 책장 사이에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형태로는 소라고둥이지만, 공간감은 양파와 같이 켜켜이 겹쳐진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동쪽, 책장이 없이 계곡으로 시야가 트인 자리였다. 빈자리가 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좁은 감이 들지만 공간을 쓰기에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다. 간단하게 자리 잡고 책을 볼 수 있는 간이의자나 옷을 벗어 담아두는 바구니 등 사소하지만 머물기에 도움되는 물건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구석의 작은 카페도 한몫을 했다. 사람들은 읽고 싶은 책을 보고 간간이 커피를 홀짝이며,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에서 충만한 주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선으로 이어진 공간, 나선에 얽매인 구조, 책꽂이 월의 정교함

오동숲속도서관(이하 오동도서관) 평면도를 보면 그 치수들이 모듈이라 할 것도 없이 제각각이다. 하나 짐작할 수 있는 건, 나선으로 이어진 공간을 길이라 생각하면, 중심 마당에 해당하는 공동체 공간은 4m로 넓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나 머무는 곳은 3m나 3.3m, 그 외에 좁은 길은 2.5m 정도였다. 회랑에서는 그 폭이 더 가늘어지다가 동쪽에서는 테라스처럼 바뀌어 3m의 여유 있는 폭이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중심선이 교차하는 모든 위치에 기둥이 선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지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커뮤니티 공간인 가운데부터 높은 기둥을 세우고, 그 밖으로 감싸는 켜는 아까 세운 높은 기둥에 기대어 보를 끼우고 다른 한끝에 새 기둥을 세운다. 이렇게 계속 밖으로 켜를 늘리며 기둥과 보, 지붕을 얹어 가장 바깥에 회랑 한 켜를 두르고 나면 목구조의 큰 얼개가 완성된다. 

나선을 이루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접힌 지붕’은 마치 중국의 용춤에서 막대기로 용을 받치듯이, 기둥과 보가 일일이 지붕을 지지하고 있다. 지붕 모양과 구조가 강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설계자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구조화된 가구라는 개념으로 ‘책꽂이 월’을 정교한 높이와 폭으로 배치하고 조율하였다. 덕분에 시선을 가리지 않고, 위로는 겹쳐진 지붕과 지붕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아래에는 수평으로 펼쳐지는 공간의 켜와 그 너머의 풍경이 보여,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역동적이고 투명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준다. 막는 것으로 트임을 조절한 절묘한 해법이라 하겠다.

 

 

 

한내로 오동을 복기하다

영화든 건축이든 감동과 여운이 잦아들면 조용히 떠오르는 감상 같은 것이 있다. 그러면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궁금해 찬찬히 따져보게 된다. 복기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즐겨 찾고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음에도, 필자의 속에 떠오른 오동도서관의 감상은 ‘어지럽고 답답하다’였다. 설계 자료를 보고 설계 과정을 살펴보았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건축가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한내에서는 구조와 책장이 분리되었는데 그걸 하나로 하고 싶었지⋯.” 건축탐정이 된 심정으로 단서를 찾아 그 작업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한내 지혜의 숲 도서관(이하 한내도서관)은 훌륭했다. 완공되고 5년이 지났음에도 기품과 윤기가 있었다. 양쪽에 책장이 있는 큰 박공지붕 아래, 넓고 긴 책상에 사람들이 앉아 책을 보고 저편으로 조용히 눈 내리는 공원이 보였다. 코너에는 북카페가 있어 공원으로 다니는 문도 나 있었다. 서로 다른 크기의 박공지붕을 여러 켜로 겹쳐놓은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중정이 보였다. 한내도서관을 보고 나서야 오동도서관 설계 과정에서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오동도서관은 한내도서관을 따라 코너에 북카페 공간을 두고, 가운데 큰 중정을 두었다. 오동도서관에서 ‘접힌 지붕’이라 부르는 연속된 박공지붕 역시 한내도서관의 조형 언어와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동도서관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공간과 구조가 하나를 이루는 구조-공간의 개념적 형상이 바뀐 것이라 하겠다. 한내도서관이 ‘수평으로 밀려오는 물결’처럼 공원을 향한 하나의 생성축을 바탕에 두었다면, 오동도서관은 ‘나선으로 길이 감아 올라간 산’으로 근린공원을 향한 두 개의 축, 어쩌면 높이까지 세 개의 생성축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오동도서관에는 한내도서관의 안정된 공간감 대신 자유로운 유목성이 생겨나면서, 카페는 별도의 마시는 공간 없이 카운터에서 받은 커피를 어디서든 마실 수 있게 되고, 나선의 지붕 사이로 빛이 들어오게 되면서 건물 중간에 빛을 넣는 중정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문제는 회랑을 포함한 공간의 켜가 많아져 사이가 좁아지고, 책장도 켜마다 놓여 전후좌우가 둘러싸인 ‘좁고 답답한 공간’에, 자유로워진 동선의 흐름이 난기류처럼 여기저기에 발생하면서 ‘어지러움’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조금은 어지럽지만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더 많이 반영된 것은 오동도서관이 아니었을까? 정해진 공간의 세팅에서 주어진 프로그램으로 대응하는 것이 한내도서관이었다면, 오동도서관은 간이의자라 하여도 여기저기로 돌아다닐 수 있는 ‘유목적 자유로움’을 지닌 것은 확실하다. 다만 좋은 자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모든 방향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라 동쪽 창가 자리가 나면 언제든 옮겨가는 편향과 불안이 깔려 있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의 매력은 창의적 상상력으로 만든 그들만의 ‘새로운 형상’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반응되는 작은 스케일의 공간 작업에서 얼개가 되는 구조-공간은 좀 더 섬세한 인간적 감각과 환경에 대응하는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밀도 있는 그들의 작업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월간 「SPACE(공간)」 675호(2024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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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운생동건축사사무소(장윤규, 신창훈)

설계담당

김봉균, 한나례, 고영동, 이시영

위치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13가길 110-10

용도

근린생활시설(공공도서관, 카페)

대지면적

997.5m²

건축면적

431.2m²

연면적

431.2m²

규모

지상 1층

주차

2대

높이

5.5m

건폐율

43.22%

용적률

43.22%

구조

목구조

외부마감

집성목, 징크 패널 거멀접기(지붕), 로이복층유리

내부마감

목재 위 오일스테인, 강마루, 석재타일, 카펫타일

구조설계

(주)금나구조기술사사무소, (주)수피아건축

기계설계

(주)건양엠이씨

전기설계

(주)전기설계협인

시공

원하건설(주)

설계기간

2020. 6. ~ 2021. 12.

시공기간

2021. 12. ~ 2023. 4.

건축주

성북구청


장윤규
장윤규는 건축과 관련된 현상들을 탐구하며, 건축의 개념에서 물리적 실체가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진보적 건축가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장윤규건축실험아뜰리에를 세웠다. 이후 건축가그룹 운생동건축사사무소를 결성하고 초창기 작품인 예화랑, 크링 등으로 해외 유수 건축매체와 어워드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문화시설과 도심 오피스 작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며 주거와 중소 규모 공공건축 작업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건축문화 플랫폼 ‘스페이스 코디네이터’와 유튜브 채널 ‘건축공감’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다.
신창훈
신창훈은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아르텍건축,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힘마건축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시대의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서 끈을 놓지 않고 연구하며 운생동친환경연구소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국내 건축가 지원, 한국의 건축산업 발전과 아카이브 및 소개에 힘쓰는 한편 다양한 전시 기획과 출간을 통해 대중 건축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며 대구 지역 최초 총괄건축가로서 수성국제비엔날레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정구
조정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하고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20년간 진행한 ‘수요답사’를 통하여 서울의 수많은 동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그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삶의 형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건축’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