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과 비범함 사이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의 초입에 내곡동을 찾았다. 낯선 동네에 초행이었지만 N주택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을 주변의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제법 묵직한 인상을 주는 건물의 외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전벽돌 마감에 창문이 거의 없는 단순한 곡선 매스는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모습이었다. 대지 경계를 따라 둥글게 처리된 곡선벽은 얇은 깃털을 겹치듯 위로 갈수록 미세하게 돌출된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이런 처리는 육중한 벽돌 건물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게 한다. 이렇듯 건축가가 전략적으로 외부를 정교하게 다듬은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벽돌을 깎아 날렵하게 처리한 모서리, 곡선벽의 완만한 각도와 달리 가파른 곡면으로 강조한 입구, 깊이감이 느껴지는 2층과 3층의 창문 배열, 공극이 보이는 중앙부의 영롱 쌓기 패턴. 건축가의 손길에 시선이 가면서 단순해 보였던 N주택을 보다 차근차근 살피게 되었다. 어느새 답사는 관조에서 관찰로 태세가 전환되었다.


건축가의 공예적인 솜씨는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소나무 사진이 연상되는 거실의 발코니 창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소나무 풍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평범한 집성목재를 사용한 거실 천장의 조명은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무의 물성이 배어 있는 거실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의 중목구조 주택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곡선 계단은 영롱 쌓기로 세운 벽을 통해 걸러진 빛이 유입된다. 벽돌 사이의 틈은 시각적으로 열리거나 닫히는 정도를 계산해 벽돌의 각도를 조금씩 달리하여 밀도를 조절했다. 여기에 쓰인 벽돌은 세 개의 구멍이 뚫린 기성 제품이 아니라 특별 주문으로 제작해 크기를 재단하여 조적벽의 완성도를 높이고 어색함을 소거한다. 다만 이 벽을 따라 배치한 계단실은 1층에서부터 다락까지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시각적으로 조금 위험해 보였다.
열기와 닫기
이러한 정교한 장치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 시작은 북측으로 창을 최소화하고 남측에 접하는 면을 늘려 채광을 확보하는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N주택은 서울 강남에서도 몇 안 되는 공공택지지구의 주택지 입구 모퉁이에 위치한다. 북쪽과 동쪽은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서쪽은 옆집 벽을, 남쪽은 주택가 골목을 면하고 있다. 건축가는 도로 쪽 입면에 마을의 배경을 채우듯 튀지 않는 곡선벽을 세웠다. 골목과 접한 남쪽에는 작은 마당을 두어 채광과 시야를 확보하고, 외부의 간섭을 줄이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1층에 담장을 세웠다. 이로써 ㄷ자 형태의 매스가 완성되었다. 배치와 구성을 결정하는 이러한 설계 프로세스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방식이다. 건물의 주재료인 벽돌 또한 최근 건축주들이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소수건축사사무소(이하 소수건축)가 전작에서도 많이 사용했던 익숙한 재료다.여기까지 보면 배치와 디자인, 재료를 선택하는 일련의 설계 과정은 평범했으리라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외부 입면의 콘셉트를 정하고 실제로 지어가는 과정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공택지지구 내 단독주택들은 도시적 맥락을 고려하기에 앞서, 건축가 혹은 건축주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단독주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주택박람회장으로 불리는 판교를 비롯해 일산, 광교, 위례 등의 신도시를 보면 이러한 양상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집들은 제각각 개성 있는 형태 언어와 재료에 치중한다. 집집마다 건축적 완성도는 높지만 함께 모였을 때 맥락이나 조화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과 부동산, 작업과 작품 사이
도시라는 공적 공간에서 사적 열망이 공공연하게 소비되는 주택 시장에서 건축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이는 소수건축에게도 어렵고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강남의 몇 안 되는 공공택지지구에서 100평이 넘는 고급 주택을 설계하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공성이 강한 부지의 도시적 맥락에서 단독주택만의 개성을 가지면서 공공적으로는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놓기 어려운 문제”였다는 그들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소수건축은 무채색의 검은 벽돌로 검박하면서 담담한 표정의 배경을 만들어 마을과 도시에 대응한다. 대신 공간과 스케일, 재료의 변주를 통해 그들의 개성을 드러낸다. 안과 밖, 부분과 전체를 정교하게 맞추는 이 작업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 모든 장치들이 최근 유행하는 이형 벽돌이나 롱브릭 계열이 아닌 표준 규격(190×90×57mm)의 검은 전벽돌만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작은 단위들을 쌓고 조율하여 전체를 완성한 그들의 태도는 다분히 공예적이다. 벽돌은 적재적소에 다양한 구법으로 사용되었고, 필요에 따라 맞춤 주문, 맞춤 절단 등의 방법도 사용했다.

벽 뒤에 감춰진 것들
주택 내부는 사적 영역과 공공성을 재해석해 각 실들을 배치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태도가 소소하다. 먼저 외부와의 접촉이 많은 마당(정원)의 역할이 위축되어 있다. 마당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주변과 거리를 두고 실내로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일 뿐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거실과 주방, 식당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주택과 달리, 마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을 시도하는 공간이 많지 않다. 1층 손님방과 취미방에서만 접근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주거 공간이 시작되는데, 안과 밖이 철저하게 이원화되어 사적 영역으로만 작동한다. 마당이 생활의 중심 공간이 아니다 보니 수직적인 이동 동선에서 외부를 볼 수 있는 조망 역시 최소화된다. 곡선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에도 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택의 단면을 보면 손님방이 있는 가장 공적인 성격의 1층,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2층, 침실을 포함해 가장 사적인 공간들이 위치한 3층이 수직적으로 적층되어 있다. 이는 물론 건축주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겠지만, 주택의 면적이나 규모를 생각할 때 거주자들이 눈빛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수직적 연계가 부족해 보인다. 각 층이 따로따로 기능하는 주택에서 각 실들은 남측의 커다란 통유리 창을 통해서만 연계된다. 이마저도 실제로는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어 시선을 주고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건축 이론가 베아트리츠 콜로미나는 그의 저서 『프라이버시와 공공성』에서 “근대인의 가장 독자적인 특성은 어떠한 외면에도 대응하지 않는 내면과 어떠한 내면에도 대응하지 않는 외면 사이의 진기한 대립에 있다”고 했다. 소수건축의 N주택은 근대 주택의 이러한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규모 공공택지지구 내 단독주택 용지라는 땅의 목적은 ‘철저하게 내면을 감춘 외부와 바깥 환경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내부’라는 이분법을 보다 강화한다.머릿속에 몇 가지 질문들이 맴돈다. 공공성을 배려하며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 공간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택에서 마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독주택은 공동주택과 어떻게 달라야 할까? 주택에서 공공성과 사적인 내면의 경계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 어떤 삶의 태도와 방식을 지녔는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거주자의 삶을 구성하고 표출하는 일종의 복잡한 메커니즘의 결과로서, N주택이 도시 속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이제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글 김창균 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 /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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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건축사사무소(고석홍, 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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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225㎥
134.96㎥
330.52㎥
3F
3
12.21m
59.98%
146.9%
철근콘크리트조
치장벽돌
친환경 페인트, 지정 원목마루
한길구조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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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오에이종합건설(주)
2019. 3. ~ 12.
2019. 12. ~ 202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