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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축을 향하여’: 상동 갤러리-주택

정진국 +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

글
정진국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정진국,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건축의 기원

미(美), 용(用), 강(强), 삼원칙으로 정리한 『건축십서』의 저자 비트루비우스 이래 건축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있어왔다. 그러나 시대와 인물에 따라 달라질 뿐, 건축의 정의는 결코 고정되지 않았다. 계몽주의의 도래와 함께 합리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비트루비우스의 삼원칙을 수정해 건축을 정의하고자 했던 이론적 계보에 전혀 다른 접근이 출현한다. 바로 건축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다. 논쟁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두 가지 오두막이 있다. 하나는 예수회 수도사 마크 앙투안 로지에가 1753년 그의 『건축론』에서 제시한 ‘원초적 오두막’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의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가 1860년 그의 『양식론』에서 언급한 ‘카리브 오두막’이다. 한 세기의 시차를 두고 발표된 두 가지 오두막은 건축의 기원을 각각 합리적 구축과 상징적 표현에 둔다는 주장을 증명한다. 주두, 피복 등 복잡하게 전개된 논쟁의 전말과 그 영향을 추적하는 대신에, 여기서 지적할 사항은 역사적으로 건축적 난제로 여겨져온 두 가지 인식론적 이항대립의 관계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유추된 구축의 원리가 중요했던 전자로부터 구조와 형태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거주를 위한 공간적 구분이 중요했던 후자로부터 내부와 외부의 관계다. 

건축의 기원에 관한 논쟁에서 근대건축의 성립을 가져왔던 르 코르뷔지에의 ‘돔-이노 골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간의 수평적 확장을 목표로 1914년에 연구되기 시작한 돔-이노 골조는 돔-이노 주택이라는 독립된 개별 건물의 가능성과 함께 20세기 급격한 근대주의적 도시화에 따른 이들의 집합의 가능성을 동시에 겨냥한 구조 체계다. 부분인 건축이 전체인 도시와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이 돔-이노 골조가 의미하는 바인데, 이로써 구조와 형태의 관계와 내부와 외부의 관계에 이어 또 다른 인식론적 이항대립의 관계인 개별과 집합의 관계가 건축적 난제로 등록된다. 

 

 

한 개의 상자 

경사지붕, 특히 검은 빛깔의 기와로 이뤄진 우진각, 팔짝, 맞배 등의 지붕은 과거 목재 가구조 건물 높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조형적으로 가장 비중 있는 건축 요소다. 수평선을 그리면서 발전하는 경사지붕의 경사면이 주 출입구가 있는 정면에 해당한다. 경사지붕의 경사면을 이를 받치는 기둥보다 더 길게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처마는 특별하다. 처마가 특별한 이유는 내부와 외부 사이에 있는 전이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처마의 밑면이 기둥 밖에 있는 관찰자의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검은 빛깔의 기와로 인해 육중함이 더해진 경사지붕을 가볍게 들어 올려 놓은 듯이 보이게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경사지붕은 건물 주변을 안정적으로 장악하는 위력을 갖는 일종의 공중에 뜬 수평선이다. 공중에 뜬 수평선은 수직선이 강조된 건축물의 기념비성과 반대되는 기념비성을 획득한다. 

수평선의 기념비성이 회복돼야 한다. 상동 갤러리-주택에서는 두 가지 의미의 수평선이 강조됐다. 하나는 형상적 의미에서 새로운 건물이 주어진 대지와 그 주변을 최대한 긴장 관계에 놓이게 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 의미에서 새로운 건물이 과밀한 수직선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건물은 직사각형의 대지 전체를 점유하는 직육면의 단일체, 즉 상자의 형상을 지니게 됐다. 벽돌은 이러한 단일체를 강화하기 위해 선택된 외장재다. 

 




두 개의 용도 

상동 갤러리-주택은 명칭이 가리키는 대로 갤러리와 주택이라는 두 개의 용도가 한 개의 상자에 깃들어 있다.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 갤러리고 나머지 3분의 2가 주택이다. 새로운 건물은 완전히 분리된 입구를 가져야 했다. 입구는 별개지만 대문은 공유된다. 필요에 따라 전체 혹은 부분 개폐가 가능하도록 대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갤러리는 세 개 층으로 이뤄졌다. 도로에 면한 1층 전시실에 붉은 빛깔을 띤 원통 속 나선계단이 각 층을 이어준다. 2층 전시실은 3층 전시실 높이까지 뚫린 테라스와 연결된다. 테라스는 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이 두 공간의 질적 차이는 분명하며, 감동은 이러한 차이에서 발생한다.

갤러리를 지나면 주택의 현관문을 만난다. 주택 역시 세 개 층으로 이뤄졌다. 현관문을 열고 1층에 들어서면 천창을 통해서 쏟아지는 햇빛에 의해 공간은 폭발하듯이 팽창한다. 여기서 거실로 갈 것인가 계단을 오를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거실의 천장은 3층의 바닥이다. 두 층 높이의 거실 바로 옆에는 세 층 높이의 테라스가 있다. 거실과 테라스의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간의 질적 차이가 감동의 원천이다. 챌판 없이 디딤판만을 벽에 직접 부착해 만든 계단은 햇빛을 그대로 통과시킨다. 침실을 비롯해 기능적 필요에 따른 방들은 2층과 3층에 있으며 3층은 천창과 이웃하는 한 층 높이의 테라스와 연결된다. 옥상정원과 같은 이곳에서 멀리 있는 산과 하늘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상동 갤러리-주택에서 갤러리와 주택은 다르지 않다. 공간 전체가 전시실로서,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이 예술 작품을 품는다. 예술 작품이 자연광과 함께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정교하게 개념화된 것이다. 

 

 

세 개의 허공

상동 갤러리-주택에서 발견되는 세 개의 테라스는 한 개의 상자에 세 개의 허공을 구조화한 결과다. 이들 허공, 즉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곳의 평면적 치수는 동일하지만 단면적 치수는 상이하다. 공간적 육체성이 강조된 한 층 높이, 두 층 높이, 세 층 높이의 허공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두가 하늘로 열려 있기 때문에 햇빛과 바람과 나무, 르 코르뷔지에가 삶에 있어서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 이 세 가지가 허공을 통해 들어온다. 

과거 땅을 넓게 쓸 수 있었던 시절, 나지막한 담과 가옥의 본채 사이에 언제나 마당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앞마당과 뒷마당, 햇빛과 바람과 나무가 자유롭게 드나들던 곳에서 하늘과 땅의 이로움을 오롯이 느끼며 살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 한 울타리에서 다양한 성질로 존재하는 마당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상동 갤러리-주택의 허공이 바로 이러한 마당이다. 

 

 

균형, 질서, 정신 

건축은 건축이어야 한다. 건축이 회화일 수 없고, 조각일 수 없다. 더더욱 디자인일 수 없다. 그렇다면 언제 건축은 건축일 수 있는가? 물론 건축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때겠지만, 건축의 정의는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을 건축이게 하는 건축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질문이 건축에서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불변의 사실을 의미한다면, 대답은 건축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 노출한 세 가지 인식론적 이항대립의 관계에 이미 내장돼 있다. 말하자면, 구조와 형태의 관계, 내부와 외부의 관계, 개별과 집합의 관계 등의 세 가지는 건축을 사유하는 한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건축적 난제들이다. 이러한 건축적 난제에 도전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건축은 건축이 되는 것이다. 

세 가지 건축적 난제에 연관된 건축의 기원에 관한 논쟁은 상동 갤러리-주택의 

참조체다. 건축의 외적 요인이 아니라 건축의 내적 요인이 개념화를 위한 참조체라는 의미다.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빌리면, 건축은 스스로 건축이 될 수 있다. 균형, 질서, 정신이 개념화의 모든 것이다. 사물의 ‘무게’를 인식하고, ‘나’라는 존재가 소속된 ‘우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축조예술로서의 건축이 탄생한다. 

 

이 글의 제목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를 차용했다.​ 

 

월간 「SPACE(공간)」 678호(2024년 0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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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정진국(한양대학교)+ (주)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이혜승, 서진석)

설계담당

소한서

위치

대구시 수성구 상동 23-5

용도

단독주택, 소매점(갤러리)

대지면적

362m²

건축면적

210.64m²

연면적

484.75m²

규모

지상 3층

주차

3대

높이

8.85m

건폐율

58.19%

용적률

117.96%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콘크리트벽돌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구조설계

(주)센텀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재원엔지니어링

전기설계

(주)승진이엠씨

시공

(주)엠디종합건설, (주)우인건축

설계기간

2021. 7. ~ 2022. 2.

시공기간

2022. 6. ~ 2023. 10.

건축주

백현실, 이정재


정진국
정진국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와 프랑스 파리 벨빌 국립건축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건축학 석사)했고,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를 연구(예술사 박사)했다. 다수의 국제설계공모에서 수상했으며, 2016년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르 코르뷔지에 서울특별전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에 전시고문으로 참여했다. 주요 작품으로 곤지암 주택, 토포하우스, 박화영 음악관(계획)이 있고, 주요 저서로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최초의 색채들』, 『상자의 재구성』, 역서로 『프레시지옹』,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논문으로 ‘성당의 새로운 유형: 르 코르뷔지에의 피르미니 성당으로부터’가 있다. 1994년부터 2022년까지 한양대학교 공학대학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다.
이혜승, 서진석
이혜승, 서진석은 2018년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를 공동 설립했다. 건축사사무소 스튜디오 뮤트는 다양한 분야 간의 유연한 대화와 연구를 통해 건축, 조경, 인프라스트럭처의 통합을 추구한다. 뮤트(M.U.Te.)는 ‘multiply undefined territories’의 약어로, 건축은 하나의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의 지속적이고 다양한 질문과 대화들이라는 실천적 태도를 견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