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7월호 (통권 680호)

더하기와 빼기의 건축
오래된 것을 새로운 요구에 맞게 고쳐달라는 일은 언제나 반가운 제안이다. 대상물은 제주 중산간의 2차선 도로변에 20여 년간 버려져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스파와 음식점을 하려고 짓다 만 것이라고 한다. 지붕과 프레임만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그 너머의 숲과 중첩되어 깊은 공간감을 만들고, 세월의 풍화를 겪은 흔적들과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지우며 파고든 식물들이 얽혀 그 자체로 엄청난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랜 봉인이 해제된 비밀의 공간을 탐색하며 매료되는 한편, 어떻게 이 멋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건축주는 프로젝트와 딱 맞는 느낌의 ‘하우스오브레퓨즈(House of Refuge)’라는 프로젝트 이름과 함께 지하에는 전시 및 공연을, 지상에는 간단한 식음을 위한 열린 공간을 제시했다. 주어진 기간과 공사비가 제한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구조물이 갖고 있는 오라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개입으로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시작은 지하에 있던 나무 한 그루였다. 본래 장비 반입을 위해 슬래브를 뚫어놓은 곳인데 나무 씨가 날아들어 자라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의 한구석에서 마주한, 연하게 스며든 빛을 받고 있는 여린 나무에서는 태고적 야생 같은 신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 공간(지하 선큰정원)을 잘 살려 주동선의 흐름에 엮을 수 있도록 계획을 시작했다.
새롭게 배치한 주차장에서부터의 진입 동선과 전시 관람을 위한 진출입 동선이 연속적인 시퀀스를 이루며, 사용자들이 이동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이벤트와 풍경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슬래브를 뚫고 계단을 삽입해 입체적인 연결 공간들을 만들었다.

주 진입홀은 도로에서 인지가 잘 되도록 단순한 형태의 반투명 박공 매스로 계획하고 기존 주 출입구의 캐노피를 철거한 부분에는 2층 슬래브의 1/4원형 라인을 살린 뾰족한 타원 모양의 철골 프레임으로 만든 정원 구조물을 삽입했다. 철골의 단단한 선과 나무의 부드러운 선의 대비를 통해 독특한 풍경을 연출, 1층과 2층 테라스를 묶어주는 중심 요소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지붕과 프레임이 먼저 읽히는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적정 면적의 기능 공간을 구조 프레임 뒤로 삽입하고 그 외의 공간은 지붕이 있는 외부 공간으로 처리했다. 그 밖에는 높은 층고를 갖고 있었던 기계 전기실을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새로운 기계 전기실을 낮은 쪽에 조정해 넣는 등, 새로운 프로그램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기존 공간의 볼륨에 맞게 기능을 재배치하며 계획해나갔다. 처음에 마음먹은 최소한의 개입은 이렇게 더하기와 빼기의 균형을 맞춰가며 완성됐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도피처로써 총체적 경험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기 위해선 고정물인 건축은 배경이 되고 변화물인 주변 자연과 콘텐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관전시로 기획된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의 <레트로스펙티브 인 제주(Retrospective in Jeju)>와 연수당이 공들인 정원들이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건축은 거들 뿐’이란 말이 실감난다. 감사한 일이다.

안과 밖을 이어주는 조경
거대한 구조체의 안과 밖, 위와 아래에 배치된 각기 다른 크기와 환경 조건을 가진 녹지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연속되는 공간적 체험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경계 너머의 초지와 숲, 멀리 보이는 해수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경관의 스케일을 깨뜨리지 않아야 했다.
차도와 인접한 부지의 입구는 북서 방향으로 크게 열려 겨울철에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동북 쪽의 주 진입 광장과 2층 테라스 둘레를 따라 50cm 높이로 설치된 철재 플랜터 안쪽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펄라이트(perlite)와 보습력을 높여주는 피트모스(peatmoss)를 혼합한 용토를 채워 식재 기반을 만들었다. 여기에 건조에 강하며 꽃이 지고 난 후에도 마른 상태로 지상부의 구조체가 남아있는 그라스와 계절 초화를 함께 식재하여 제주의 오름이나 방목지에서 볼 수 있는 초지의 모습을 재현했다.


주 진입 광장에서 계단을 올라 이어지는 1층 필로티 사이, 철골 프레임 구조물 아래 부채꼴 모양의 인공지반 녹지는 자연석 배치를 통해 지형을 들어올려 토심을 확보한 후 제주 특산종으로 주로 토심이 부족한 빌레(암반을 뜻하는 제주어) 위 목장이나 습지에 자생해 납작한 뿌리분을 가진 솔비나무를 이식해 2층 테라스와의 연결성을 갖도록 했다.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뻗은 다간형(multi-stem)의 줄기 아래로는 주로 단정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이끼와 고사리를 식재했으며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 난간과 함께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육할 수 있도록 인위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어둑한 필로티를 지나 건물 뒤쪽으로 이동하면 다시금 밝게 트인 이벤트 공간이 나타난다. 완만한 지형 위로 펼쳐진 잔디마당은 숲의 경계부에 마련된 야외무대와 만나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당초 계획에 없었던 야외무대는 마지막까지 그 규모와 높이, 소재 등을 논의한 끝에 기존 구조물과 비슷한 거친 콘크리트 질감으로 결정됐고 주차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별도의 동선과 함께 타설을 진행했다. 주차장과 1층 바닥 사이 1.8m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옹벽 앞으로는 완충녹지가 길게 이어져 있다. 야외무대 터파기 과정에서 드러난 암반을 깨뜨려 나온 자연석을 활용해 존치수목인 곰솔의 주변으로 새롭게 지형을 조성한 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낙엽활엽수와 다양한 그늘식물을 식재해 상록성인 곰솔 위주의 잡목림과 대비되는 깊은 숲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꽃이 화려한 식물은 배제하고 사초와 고사리 위주로 하부식생을 구성하면서 야생화인 노루오줌을 드물게 심었는데 밤사이 노루가 내려와 개화 직전의 꽃망울을 먹어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지하의 선큰정원은 함몰로 인해 만들어지는 수직동굴처럼 햇빛과 빗물의 유입이 제한되고 토심 확보까지 쉽지 않아 식물이 안정적으로 살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이었다. 이러한 곳까지 비집고 들어와 싹을 틔우고 살아가는 생명에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이 프로젝트를 여기까지 끌고 오게 만든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의 간섭 또는 개입을 통해 만들어진 지속 가능한 자연스러움이 이 공간을 오래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곰솔림 하부의 잡목을 제거하며 나온 비목나무와 이끼 낀 돌담석을 최대한 활용해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분위기의 숲을 조성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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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아키텍츠(김정임)
장한진, 박소연, 정은재, 이상미, 김석천
제주시 애월읍 하소로 735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 소매점)
4,562m²
1,358.43m²
3,390.18m²
지상 2층, 지하 1층
31대
10.8m
29.78%
37.78%
철근콘크리트조
노출콘크리트, 폴리카보네이트 패널, 외단열 시스템, THK24로이복층유리
노출콘크리트, 모노브릭
윤구조(황윤선)
주성이엔지(권병인)
동양디앤에스(조생수)
이안알앤씨(현장관리 – 박보상, 백승윤, PM - 황보철)
2022. 8. ~ 2023. 2.
2023. 6. ~ 12.
60억 원
(주)하우스오브레퓨즈(박현, 김기현)
비츠로(고기영)
중도건축(장미량)
박소연
연수당(신준호, 나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