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6월호 (통권 691호)


©N.E.E.D. Architecture
포스톤즈 삼청은 삼청동 골목 깊숙한 곳, 총리공관과 인접한 대지에 들어선 대형 카페다. 답사 전 자료만으로 파악할 때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축적 표현은 ‘떠 있는 볼륨’이었다. 이 인상은 다음 세 가지 근거에서 비롯된다.
우선 건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보게 되는 닫힌 입면이다. 이 건물은 동측으로 삼청로를 면하고 있음에도 구시가지 특유의 풍경을 전혀 응시하지 않는다. 건축가는 멀리서도 돋보이는 곡면으로 이루어진 입면이 창으로 인해 훼손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둘째로는 1층의 천장, 즉 떠 있는 볼륨의 빛나는 밑면이다. 건물의 진입로에는 3m 높이의 계단이 형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물을 올려다보게 되고, 이때 천장면이 직접 드러난다. 실외에서 실내까지 연속되는 이 면은 반투명의 천장재로 감싸져,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온다. 밖이 어두워질수록 1층의 빛만이 보여 무겁고 거대한 덩어리가 떠 있는 듯한 시각적 모순이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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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는 코너를 피해 자리를 옮긴 1층의 기둥들이다. 떠 있는 볼륨을 구현한 많은 프로젝트들이 1층 외벽을 유리로 처리하지만, 평면의 코너에 기둥이 서 있으면 공간의 경계가 쉽게 인식된다. 이 건물에서는 의도적으로 기둥들을 꼭지점에서 비껴난 위치로 옮겨, 테두리를 흐리게 만든다. 사실 이는 고도의 구조적 해법을 동원한 것이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2층 볼륨은 북측에 편중된 콘크리트 벽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이를 통해 건물에 적용되는 횡력에는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남측의 철골 기둥에 적용되는 하중을 경감시킨다. 건축가는 기술적 해법을 기념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이 기둥들을—미스 반 데어 로에의 크롬도 르 코르뷔지에의 백색도 아닌—창의 멀리언과 같은 먹색으로 칠해 감각 세계의 조연임을 분명히 한다.
설계 소묘, 도면, 사진을 통해 이런 요소들을 파악하며 포스톤즈 삼청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삼청동을 찾아 맞은편 동측 언덕에서 건물을 바라보았을 때, 생각은 달라졌다. 육중한 매스의 지붕 위로 튀어나온 볼륨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옥상까지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만든 옥탑이라고 하기에는 형태가 복잡하고 눈길을 끈다. 기둥을 옮겨가면서까지 보호한 완결된 덩어리를 이계(異系)의 매스가 관통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로운 형태를 더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지 못한 건축가의 판단착오는 아닐까. 의구심을 품은 채 건물에 다가갔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1층은 층고가 낮은 공간이다. 층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평면은 깊은 처마를 두른 공간과 비슷한 톤의 빛을 들인다. 햇빛이 직접 눈에 도달하지 않으며, 천장의 부드러운 조명이 편안하게 조도를 보완한다. 실내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받는 동안 시선은 카운터 뒤 담장에서 시작해 정원을 지나 엘리베이터 코어를 감아오르는 곡선형 계단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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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2층에 도달한 순간 모드의 전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환을 알리는 것은 전망도 층고도 아닌 ‘소리’다. 공간을 채우는 음악의 얕은 메아리는 오래전 중요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급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던 순간의 기억을 불러낸다. 잔향이 이다지도 자극적인 것이었던가. 건축가는 한지로 감싼 1층 천장이 주는 편안하고 일상적인 음환경과 대비되는 2층을 만들게 된 까닭이 음악당을 설계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너무 조용해서도, 시끄러워서도 안 되는 카페를 설계했던 다년간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이 인상 깊은 전환은 사진과 도면으로는 전달할 수 없다. 높은 층고와 스피커, 요철이 있는 벽의 모습으로 이 공간의 감각을 암시할 뿐.
기억에서 현실로 시선을 돌리면, 비로소 정원을 향한 뷰와 공간을 빼곡히 채운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교회나 극장의 좌석처럼 중앙의 의자들은 모두 정원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상업 공간인 카페에서 건축가의 의도만을 존중해서 의자를 배치했으리라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2층 객장은 방향성이 분명한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몇 백 년은 거뜬히 버텼을 은행나무와 적절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나무들을 정확한 위치에 한 그루씩 심은 정원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공간의 동측과 서측 벽에는 창이 없다.)
카페의 클라이맥스 공간인 2층 객장을 지나면 노출콘크리트, 금속, 원목이 모두 사용된 유혹적인 곡선형 계단을 따라 자연스레 이동하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두 번 휘감아 돌며 2층 전체를 바라보는 조감을 제공하는 계단을 오르면 옥상 테라스에 도착한다. 동측으로는 골목을 따라 오밀조밀한 건물들이 모인 삼청동의 전형적인 풍경이 보이고, 서측과 남측으로는 나무 사이로 양복을 입은 수행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2층의 풍경이 오랜 시간 가꿔진 총리공관의 정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Finishing materials diagram
계단실을 통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시선이 향한 것은 창 밖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곡면벽이다. 코어 바깥쪽에 덧붙은 이 벽은 이제는 감상을 마무리할 때임을 알려주듯 빛은 들이되 풍경을 가린다.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려갈 때에는 보이는 창, 계단의 중간참을 지나칠 때 정확히 눈앞에 놓이는 조각보 작품을 흘려보내던 순간, 이제는 닳도록 읽힌 건축계의 한 경전이 떠오른다. 빌라 사보아.
옥상에 솟은 곡선형 매스, 시선을 유도하는 곡선 계단, 떠 있는 매스와 가는 기둥들, 지하의 자동차 진입 램프까지. 건축가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2025년 한국판 빌라 사보아를 의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적한 교외 주택과 도심 속 카페라는 입지와 쓰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의 구조, 형태, 경험에 대한 아이디어는 빌라 사보아의 그것과 많이 겹친다.
빌라 사보아보다 약 100년 늦게 지어진 이 카페는 당시의 선언 위에 얼마나 진보했는가. 르 코르뷔지에는 띠창을 통해 벽체가 구조적 역할에서 해방되었음을 알렸다. 사실 필자는 빌라 사보아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1층에 늘어선 기둥의 연장선에서 2층의 띠창이 계속 분절되는 것을 보며 대체 어디가 자유롭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 이 건축에서는 층에 따라 기둥의 위치마저 바뀐다. 2층에 있던 기둥이 1층에서는 사라지기도 하고, 1층에 있던 기둥은 지하 1층에서 또 한번 다른 위치로 옮겨진다. 2층 입면에서는 구조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집착은 희석되었다. 2층 매스의 양측 벽은 충분한 벽량과 두꺼운 기둥을 기꺼이 소화해낸다. 구조체의 요철에 마감을 덧댄 곡면벽은 객장 좌석을 연약하게 구획한다. 반면 남측면은 구조 기둥이 없는 전면 유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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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사보아와의 유사성에 사로잡혀 구조와 형태의 관계만을 파고드는 것은 이 건축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 건물에서 가장 정교한 시공이 요구되었을 부분이자, 가로변의 얼굴이기도 한 동측 파사드를 보자. 얇고 긴 비례를 가진 벽돌은 기본적으로 네 개의 반복되는 곡면을 따라 움직인다. 그 안에 미세한 돌출을 임의로 배치하여 언뜻 잔물결을 품은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일 이 카페가 바닷가에 있었다면, 혹은 이 카페의 브랜드가 물결과 관련이 있었다면 얄팍한 형상화라고 받아들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톤즈와 삼청동 모두 물결과는 연이 없다. 그러니 의미보다는 시각적 참신함에 중점을 둔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성을 들여 완성한 이 입면이 건축의 다른 부분과 만나는 지점은 석연치 않다. 벽과 1층 천장이 만나는 부분의 처리는 지극히 상투적이다. 구조체 앞에 덧붙은 치장과 단열층의 두께를 그대로 드러내기라도 하듯 화강석 판재로 입면을 받쳤다. 이 노골적인 처리는 벽돌로 만든 물결에 담긴 흥미로운 아이러니와 빛나는 천장면의 신비감 모두를 꺼트린다. 무엇보다 이 벽은 남측 벽면과도 전혀 화해하지 않는다. 참신한 물결은 코너를 도는 즉시 중단되고, 남측면은 판판한 화강석으로 슬래브의 단면과 천장 속을 무심히 가리고 있을 뿐이다.
이 건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건축가에게 ‘떠 있는 볼륨’이라는 표현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외려 카페에 찾아온 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게 할지, 감각적 시퀀스를 정교하게 조율해내는 데 더욱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관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실용적인 태도다. 감각, 표현, 기술 중 승자가 누군지 분명하게 드러난 건축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것일까?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미래를 위해 쓰인 경전에 기대어 건축을 하지 않던가? 오늘 본 이 건축은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는 기술과 표현의 관계를 정립하려던 르 코르뷔지에의 목소리도, 건축에 포함할 감각의 범주를 확장해야 한다던 한스 홀라인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이쯤 되면 다음 장을 쓰기 위한 헛기침 소리라도 듣기를 기대하더라도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확인한 정돈된 태도의 다음, 더 큰 목소리를 기다리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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