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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대안적 지역경제: 남해 로컬푸드 직매장

오브아키텍쳐+세이브종합건축사사무소

글
나종원
사진
최용준(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오브아키텍쳐
진행
김보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9월호 (통권 694호)

 

  

 

 

나는 1988년 올림픽 직후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서울은 편의점이 처음 생기는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문화가 빠르게 바뀌어가던 때였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내가 살던 충정로까지는 아직 온전히 닿지 않았던 듯하다. 우리 동네의 중심은 여전히 과일과 채소, 음료수가 길가에 진열된 슈퍼였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없던 나는 자주 할머니를 따라 그 슈퍼에 가곤 했는데, 여느 동네처럼 가게 앞에 놓여진 작은 평상에 앉아 장을 보시는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어른들의 익숙한 대화를 엿듣는 일은 어린 나에게 어떤 안정감 같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마주했던 어른들의 그런 일상적인 경제활동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흐릿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동네의 공동체적 풍경이었다. 이후, 도시화는 너무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은 ‘규모의 경제’ 논리에 더욱 깊이 포섭됐고, 오늘날의 경제활동은 기업과 자본 중심의 복잡한 유통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대도시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 결과, 이제 대부분의 소비는 지역과 무관하게 대형 마트나 편의점, 온라인 플랫폼 같은 표준화된 유통 채널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단순히 상품 구성의 획일화를 넘어 지역성의 소멸, 더 근본적으로는 ‘생활 방식의 표준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Of Architecture 

©Of Architecture 

 

 

이러한 맥락에서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은 작지만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기업 중심의 유통 구조를 벗어나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은 유통 과정의 단순화 이상으로,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에 가깝다. 이는 지역 소농의 자립을 돕고, 소비자에게는 지역 고유의 상품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며, 더 나아가 지역 문화의 재생산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적 경제활동의 장(場)으로서 건축은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매개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건축은 어떤 풍경을 그려낼 수 있을까? 남해군 창선면에 위치한 남해 로컬푸드 직매장은 한쪽으로는 낮은 산을, 다른 한쪽으로는 바다를 마주한다. 더없이 매력적인 자연경관을 품고 있지만, 주간선도로만을 접하고 있어 진입은 보행보다 차량 이동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조건 탓에, 대상지는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동네 매장의 풍경과는 차이가 있는, 다소 삭막한 인상의 장소였다. 그래서 일상적 풍경을 이곳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건축 유형적으로는 다소 당연할지 모르지만, 계획의 시작은 ‘시장’이었다. 시장은 단순히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를 넘어, 지역의 정서와 감각이 겹겹이 밴 곳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접적 교류가 만들어내는 생생한 풍경은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시장 고유의 장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은 지금도 남해 전통시장에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남해에는 전통시장 외에도 네다섯 곳에 소규모 시장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 외견상 ‘시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작은 규모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들은 모두 각자의 마을에서 나름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공동체적 성격은 매장의 규모나 시설보다는, 렉산 지붕 아래 놓인 평상이나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주민 간의 느슨한 교류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남해 로컬푸드 직매장은 이와 같은 시장 건축 유형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 연결과 교류를 중심 가치로 둔, 일상적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공동체적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Of Architecture 

 

 

 

전체적으로 건물은 T자형 평면으로 구성된다. 서측 도로를 따라 길게 펼쳐진 지붕 아래 매장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되고, 반대편 동쪽에는 바다를 향해 반원형 건물이 돌출돼 있다. 이는 지역사회와 자연경관이라는 대상지가 지닌 두 조건에 각각 대응하고자 한 것이다. 한쪽에는 활력 있는 직매장을 두어 주민 간 공동체적 장소를 조성하고, 다른 한쪽에는 수려한 경관을 마주하는 카페를 배치해 조용한 휴식의 공간을 계획하고자 했다. 얇고 가벼운 형태의 지붕은 설계 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쓴 요소다. 넓은 면적으로 매장 영역을 덮는 이 지붕은 내외부 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며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판매 공간을 조성한다. 지붕 아랫면은 밝은 노란색으로 도장해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차양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지붕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더욱 강조하고자 했다. 이러한 지붕의 조형성이 주된 경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아래를 채우는 주민들의 다양한 행위가 더 드러났으면 했다. 그렇게 그려지는 시장 같은 풍경이 지나치는 방문자의 시선을 끌고,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이끄는 힘이 되길 바랐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시설임에도 건물을 세 동으로 나눈 이유는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폴딩도어를 적극 활용해 내부 행위를 외부로 확장할 수 있다면, 면적의 한계를 넘어 더 넓고 유연한 공간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 봤다. 전통시장의 실제 매장들은 대체로 협소하지만, 지붕 아래 놓인 평상과 가판대 덕분에 우리는 더 넓은 시장을 경험한다. 이처럼, 영역의 경계를 흐려 매장의 행위가 외부 공간으로 적극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건축은 늘 계획대로만 완결되지 않는다. 특히 공공 건축은 다양한 현실 속에서 조정되고 변화된다. 이 프로젝트 역시 준공 즈음 운영 부서가 변경되면서 원안의 구상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공간이 쓰이게 됐다. 바다를 향한 카페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직매장으로 변경됐고, 서쪽 도로를 따라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매장 중 가운데 건물은 운영 사무실로 쓰이게 됐다. 그 결과 도로를 바라보는 세 동의 구성은 한쪽엔 매장이, 다른 한쪽엔 생산자가 직접 상품을 포장하는 출하장이, 그리고 가운데엔 사무 공간이 놓인 형태가 됐다. 원안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되레 그 덕분에 지붕 아래 중앙 공간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생산과 운영, 소비가 한데 얽히는 지역공동체의 일상 공간이 됐다. 시간이 지나며 건물 외부에도 여러 요소들이 하나둘 덧붙여졌다. 지붕선을 따라 줄줄이 매달린 전구들, 전면에 내걸린 만국기, 대형 현수막 및 간판 등으로 인해 얇고 단정하게 정리했던 지붕선이 흐려지고, 절제된 외관이 다소 요란해졌다. 하지만 그 변화 역시 지역의 일상 속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남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이러한 장식적 요소들은 어쩌면 원안이 가지고 있던 건축적 언어의 과시적 긴장을 풀고, 지역의 경관적 리듬에 잘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로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그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건물이 공공시설로서 보다 익숙한 모습으로 주민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운영자 모두가 서로 교류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경제,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라나는 고유한 지역 문화에 있을 것이다. 평균 연령 72.5세의 농가 어르신들로 분주한 아침 여덟 시 출하장, 생산자가 직접—조금은 서툴지만 정성 어린 손길로—포장한 진열 상품들, 주말마다 열리는 야외 직거래 장터의 풍경은 남해군 고유의 색채가 담긴 예쁜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 풍경은 극적인 변화도 대단한 장관도 아니지만, 조금씩 사라져가던 그 어떤 정서를 붙들어보려는 조용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붕 아래 머무는 이 시간과 장면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으로 남겨지기를, 그리고 이 건축이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야기이기를 마음 깊이 염원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월간 「SPACE(공간)」 694호(2025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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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오브아키텍쳐 유한회사 (나종원, 제임스 막)+ (주)세이브종합건축사사무소 (박성기, 류근학

설계담당

김민지(오브아키텍쳐), 이학성(세이브종합건축사사무소)

위치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동부대로 2420 (동대리 482-8, 483-1)

용도

1종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 마을공동구판장)

대지면적

2,906㎡

건축면적

734.3㎡

연면적

482-8 - 578.9㎡/ 483-1 - 155.4㎡

규모

지상 1층

주차

10대

높이

5.2m

건폐율

482-8 – 29.18% / 483-1 – 16.3%

용적률

482-8 – 29.18% / 483-1 – 16.3%

구조

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스터코, 모자이크타일, 데크플레이트, 노출콘크리트 등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 위 페인트, CRC보드 위 페인트 메탈라스 등

구조설계

(주)모아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전기설계

(주)성지이앤씨

시공

극동글로벌(주)

설계기간

2023. 4.~11.

시공기간

2024. 5.~2025. 4.

공사비

20억 원

건축주

남해군 농업기술센터


나종원
나종원은 오브아키텍쳐의 공동대표로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중퇴하고 AA 스쿨에 입학하여 피어 비토리오 아울렐리 지도 아래 디플로마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런던의 6a 아키텍츠에서 수년간 활동하다, 2021년 제임스 막과 함께 런던에서 오브아키텍쳐를 개소했다. 예술, 디자인, 출판, 학술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제임스 막
제임스 막은 오브아키텍쳐의 공동대표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AA 스쿨에서 디플로마를 수료했다. 런던의 dRMM에서 교육, 주거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분쟁 이후 국가에서 나타나는 지역 건축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탐구했으며, 2009년에는 캄보디아 타케오 지역에 마을 학교를 설계, 건축, 운영하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